염상섭, 「전화」 _013 식민지 부르주아를 바라보는 우울한 시선 _044 이기영, 「쥐불鼠火」 _049 가진 것이 조금 남아 있는 농투성이들 _122 현진건, 「운수 좋은 날」 _127 손아귀에 힘을 주어 현재를 움켜쥐리라 _143 채만식, 「치숙痴叔」 _149 현실과 외관의 차이에 그대는 웃는다, 그리고 운다 _175 김유정, 「금 따는 콩밭」 _181 집 팔고 땅 팔아서 모조리 바쳤건만 _200 이태준, 「달밤」 _207 미친년과 바보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_220 박태원, 「골목 안」 _231 이 땅에서 사는 작가의 운명 _298 강경애, 「소금」 _313 두만강 푸른 물에 _367 이상, 「날개」 _377 미열微熱과 반항 _408 김사량, 「빛 속으로」 _415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마시고 살 수는 없다 _459
해설 | 신수정(문학평론가) 어느 아이러니스트의 소설 읽기 _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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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염상섭부터 김애란까지, 거장 황석영과 함께 걷는 한국문학 100년의 숲
1962년 등단, 오십여 년 한결같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거장 황석영이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소설문학 작품들 가운데 직접 가려 뽑은 빼어난 단편 101편과 그가 전하는 우리 문학 이야기. 작가 황석영이 온몸으로 겪어낸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과거의 작품들은 그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부활했고, 오늘의 작품들은 그 깊이가 달라졌다. 긴 시간 현역작가로 활동해온 그이기에, 그리고 당대와 언제나 함께 호흡해온 그이기에 가능한 ‘황석영의 한국문학 읽기’! 특유의 입담과 깊이 있는 통찰, 과거와 오늘의 작품을 새로 읽는 데 있어 반성을 주저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우리 문학에 다가서기 어려워하는 독자들까지도 작품 곁으로 성큼 이끌어준다. 기존의 국문학사나 세간의 평가에 의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현재 독자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선정된 작품들에는 유명한 작가의 지명도 높은 단편뿐만 아니라 지금은 거의 잊힌 작가의 숨은 단편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각 권의 말미에는 시대와 작품을 아우르는 문학평론가 신수정의 해설이 덧붙여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은 우리 시대의 한국문학에 바치는 나의 헌사가 될 것이다. 아직도 나라와 사회의 운명이 평탄치 않아서 서구문학에 견주어 우리 문학의 수준을 감히 타매하는 이도 있고 일본과 중국 문학에 빗대어 비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집을 통해서 ‘고통받은 고통의 치유자, 또는 수난당한 수난의 해결자’인 문학의 이름으로 곡절 많은 이 땅의 삶을 담아낸 한국문학의 품격과 위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한다. 이 작품과 작가들을 보라.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인생을 문학에 바쳤다. 나는 특히 작고한 선배들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자신의 갖가지 영욕의 생활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던 그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우리 근현대문학의 강인한 힘을 새삼 확인했다. 그들은 동구 밖의 돌담이나 정자나무처럼 풍상 속에서 무너지고 꺾이기도 하면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_‘펴내며’ 중에서
나는 이 명쾌한 해설 앞에서 새삼 황석영 선생의 문학적 깊이에 압도당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문학 그 자체로 구성해온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실 진술의 진경이라고 할 만하다. _신수정(문학평론가)
*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반항에 있지 않다 저 젊은이들의 나에 대한 사랑에 있다 아니 신용이라고 해도 된다 ‘선생님 이야기는 20년 전 이야기이지요’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나이를 찬찬히 소급해가면서 새로운 여유를 느낀다 새로운 역사라고 해도 좋다
이런 경이는 나를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 한다 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 이 다리 밑에서 엇갈리는 기차처럼 늙음과 젊음의 분간이 서지 않는다 다리는 이러한 정지의 증인이다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 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
_김수영, 「현대식 교량」 중에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한국문학의 밝은 길잡이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지난 2012년 작가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황석영은 김수영의 시 「현대식 교량」을 낭독했다. 이 낭독은 어쩌면 이후 그의 문학적 향방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까지, 101편의 작품을 가려 뽑고 편마다 해설을 덧붙인 그의 작업은 마치 ‘현대식 교량’의 역할을 하겠다는 천명의 증거들처럼 보인다.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자로서 무언가 증언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하겠다는 근본적이고도 절박한 욕망으로, 그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을 2011년 11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꼬박 3년 동안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전10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이 해설들을 다시 검토하고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이 대대적인 작업 덕분에 우리는 황석영의 ‘현대식 교량’ 위를 건너다니며 소설 안에 기록된 시대의 풍경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업은 그 첫걸음부터 예상을 뛰어넘는다. 우리는 흔히 ‘한국 근현대문학사’를 떠올릴 때 관습적으로 혹은 너무도 자명하다는 듯 그 시작점에 ‘이광수’를 놓는다. 그러나 황석영은 이광수로부터 연원하는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출발점을 물리치고 염상섭을 그 시작으로 두었다. 그것은 이광수의 소설 안에 ‘사람’의 세계가 부족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계의 실감을 소설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보는 작가는 염상섭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단편소설 「전화」를 첫머리에 두면서, 이 작품에 이르러 비로소 구체적인 일상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통해 모호한 계몽주의를 벗어나 한국 근현대문학의 형상이 갖추어졌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작업은 지금의 거장 황석영을 있게 한 선배들의 작품과 그들이 살다 간 시대를 다루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역사의 현장 어디쯤에선가 한번쯤 어깨를 부딪치고 술잔을 기울인 동료들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작품을 해설하는 데 작품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 작가의 개인사이다. 그것은 어디에 기록된 무엇이라기보다, 구체적인 관계와 뜨거운 체험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기억’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의 주체가 사라지면 그 기억들 역시 증발해버리고 만다. 작가의 ‘현대식 교량’에 대한 열망, 그리고 ‘증언’에 대한 책무는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가 “아, 정말로 이문구를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옛 벗들의 삶과 작품을 객관적으로 대하려고 애쓰면서도 추억을 자꾸 곱씹게 되는 것은 나도 늙어간다는 것이리라”(『04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폭력의 근대화』, 140쪽)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 목소리의 생생함에 놀라는 한편, 이와 같은 해설을 다른 어느 자리에서도 만나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스스로를 “소설가 남편”으로 지칭하며 객관적 서술을 시도하지만 속절없는 회한을 차마 숨길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는 마음이 젖어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이가 소설가 남편과 함께 전라도에 내려갔을 때는 1976년 서른두 살이었고 서울로 돌아온 것이 2004년 예순 살이었으니 광주에서 그이는 한평생을 보낸 셈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떠맡은 셈이었고, 내가 길을 떠나 새로운 것들과 대면하고 세계를 겪어가는 동안 그이는 ‘빈터’에 남아서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고 남겨진 이웃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뒷마무리까지 해냈다. 이것이 내가 문학과 인생에서 놓친 부분이며 그이가 채워놓은 부분이다.”(『07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변혁과 미완의 출발』, 95쪽)
선배와 동료 작가들에 대한 증언 이후 작가는 ‘현대식 교량’의 한쪽 끝에서 현대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식민지 시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담아낸 전10권 가운데 세 권(8~10권)이 1990년대 이후의 소설들을 담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수적으로 불균형하다고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이 여타의 선집과 구분되는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시대에 중점을 둘 것. 이러한 이유로 꽉 채우고 끝이 난 ‘100’이 아니라 이를 채우고 다시 시작되는 ‘101’이 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지속되는 한, 소설 또한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1897년에 태어난 작가 염상섭의 「전화」로 시작된 대장정은 1980년에 태어난 작가 김애란의 「서른」으로 끝을 맺는다. 황석영이 이 젊은 작가의 작품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쩌면 시대가 바뀌어도 영원할 작가와 소설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누가 이런 꼴의 지옥을 만들었는가. 작가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한 정경과 기록은 저 어둡고 캄캄했던 식민지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닿는 기록이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기를 넘어서 다시 시작해야 할 또다른 출발점이다. 한국문학은 그런 생명력을 가진 문학이다. 나는 무엇이 되었든 당대와 현존이 가장 힘이 있다는 사실을 젊은 김애란의 소설에서 재삼 확인한다.”(『10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너에게로 가는 길』 , 388쪽)
*
_그는 만만치 않은 그간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사의 두께를 소설가의 직관과 감성으로 단번에 뚫고 나올 줄 알았으며, 난삽한 관념적 용어로 설명되는 당대의 문학사적 맥락을 당신의 경험담에 기초한 구체적인 상황 제시로 산뜻하게 풀어낼 줄 알았다. 이를테면, ‘식민지 근대’를 ‘도둑이 집안에 들어올 때 걸쳐놓은 사다리’로 비유하는 대목이나 채만식의 「치숙痴叔」에 나타나는 풍자를 ‘봉산탈춤의 양반과장에 나오는 말뚝이 대목’과 겹쳐 읽어내는 모습, 이상이 경영했다가 말아먹은 다방 ‘제비’나 ‘낙랑파라’ 등 사실상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이나 변명이 면제된 모더니스트들의 ‘자발적 왕따의 소외 공간’을 토마스 만의 ‘맨 뒷자리 의자’로 이해하는 장면 등은 오십여 년에 이르는 작가적 연륜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_선생은 이광수로부터 연원하는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점을 가볍게 물리쳤다. 그는 염상섭을 진정한 근대문학의 출발지로 지목하며 이광수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고등학생 때 비로소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틈틈이 우리 문학을 체계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광수의 장편소설들은 어쩐지 시시하고 쑥스러워서 끝까지 읽지 못하고, 그가 수양동지회사건으로 사 개월간의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썼던 「무명」 정도를 겨우 건질 수 있었다. 이광수의 세계에서는 그쯤에 가서야 먹고 마시고 훌쩍대는 ‘사람’의 일상이 보였던 것이다.”(45쪽) 선생에게 이광수의 소설은 ‘사람’의 세계라고 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사람’의 세계는 그가 일생 동안 견지해온 ‘소설의 기본상수’라고 할 만하다. 그것은 지나치게 이상화될 필요도 없고 추상화될 필요도 없다. 이상화되고 추상화되는 순간, 소설은 ‘어쩐지 시시하고 쑥스러워’진다. 오히려 소설은 이 이상화되고 추상화된 사람 대신 ‘먹고 마시고 훌쩍대’는 구체적인 일상 속의 사람을 그리는 순간, ‘진짜 소설’이 된다.
_그가 공들여 묘사하고 있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식민지 시대 작가들의 미처 제대로 발굴되지 못한 말년의 삶에 대한 복원은 이 시리즈의 첫 권이 거둔 가외의 소득이라고 할 만하다. 선생과도 여러 차례 주고받은 이야기이지만, 식민지 시대 작가들의 삶과 운명을 생각하면 어느 누군들 숙연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난과 요절, 식민지 현실의 정치적 억압과 구속, 전통에 대한 뿌리 깊은 애증…… 특히 ‘방북’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경험으로 확인하게 된 월북 문인들의 말년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치는 대목이 적지 않다. (…)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대목들을 쉽사리 잊기 어려울 것이다. 선생의 입을 통함으로써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작품이 되었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놀라운 서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_신수정 해설, 「어느 아이러니스트의 소설 읽기」, 『01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식민지의 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