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에는 뜻이 있다.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이름도 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름도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누군가가 붙이고 또 불렀을 이름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지금은 어원을 알 수 없다니! 애석한 노릇이긴 하나 그런 이름들이 제법 있다. 저자 역시 생물에 대한 이름 유래에 갈증을 느껴왔고, 옛 문헌에서 ‘고래’의 이름 유래를 알고부터 해양생물의 이름에 대해 ‘소박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용의 아들 가운데 포뢰(蒲牢)는 어떤 동물이 모습을 드러내면 너무 놀라 산천이 떠나가도록 울어댔다는데, 그 동물에 ‘포뢰를 두들겨 울린다’ 해서 ‘고뢰(叩牢)’라는 이름을 붙였고, 바로 바다 포유동물 고래의 어원이다.
이렇게 이름을 수집하고, 수집한 자료를 정리해서 분류하니 ‘생긴 모양에서 따온 이름’, ‘생태적 특성에서 따온 이름’, ‘육지생물 이름에서 따온 이름’, ‘민담이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이름’ 등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단다. 예를 들면 생긴 모양에서 따온 홍어(洪魚)는 몸의 폭이 넓어 붙인 이름이지만, 어떤 문헌에서는 수컷의 음란함으로 ‘해음어(海淫魚)’라 적고 있다(260쪽). 또 생태적 특성에서 이름 붙인 ‘멸치’는 물에서 잡아 올리면 급한 성질 때문에 바로 죽어버린다 하여 ‘멸할 멸(滅)’ 자를 붙였다(88쪽). 갯강구는 좀 억울한 경우에 속하는데, 육지생물 이름에서 따온 이름을 대표한다. 바다의 청소부인데 바다바퀴벌레라니(339쪽)! 여기서 ‘강구’는 ‘바퀴벌레’의 사투리이다. 민담이나 전설 속에서 이름의 유래를 찾는 생물도 있다. 임진왜란 때 군(軍) 관기였던 ‘평선’이가 이순신 장군에게 대접했던 고기라 전해지는 군평선이는 산란 전에는 등지느러미와 가시뿌리까지 지방이 잘 배어들어가 가시까지 통째로 씹어 먹을 만큼 그 맛이 단연 최상이다. 여수 지방에서는 군평선이를 굴비보다 더 값지게 여겨 ‘샛서방 고기’라고 부른다. 본남편에게는 아까워서 안 주고 샛서방(남편 있는 여자의 외도 상대)에게만 몰래 차려준다 해서 생긴 말이란다(34쪽).
이렇듯 이 책은 바다에 기대어 사는 생물들의 이름 유래와 뜻, 그에 얽힌 온갖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에 곁들여 아름다운 바다생물들의 수중 사진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우리나라 수중 사진작가를 대표하는 저자의 이력이 빛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볼 수 있는 사진도 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깊은 바다를 배경으로 귀엽거나 엽기적이거나 또는 역동적인 바다생물들의 모습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매력이다. 저자의 지독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픈 순간이다.
선조들의 놀라운 과학적 관찰력과 해학이 담겨 있는 바다생물 이름의 유래에서 문화와 시대를 읽다!
망둥이가 제살 뜯어 먹는 습성에서 『자산어보』에는 조상도 알아보지 못하는 물고기라 해서 무조어(無祖魚)라고 기록하는가 하면,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는 일을 서두르다가 오히려 더 늦어지거나 망치는 꼴에 비유해 ‘제 성질에 죽은 망둥이 꼴’이라고 표현한다. 「전어지」에는 민물에 사는 망둥어의 눈이 망원경 모양을 닮아 망동어(望瞳魚)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망둥어 이름의 유래는 이 망동어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_84쪽
크기가 작아 먹을 것이 없어 보였는지 『우해이어보』에는 멸치를 멸아(?兒), 말자어(末子魚)로, 『자산어보』에는 추어(?魚), 멸어(蔑魚)라 기록했다. 거기에다 물에서 잡아 올리면 급한 성질 때문에 바로 죽어버린다 하여 ‘멸할 멸(滅)’ 자까지 붙였다. 『자산어보』에 등장하는 추어(?魚)라는 이름에도 변변치 못하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_88쪽
지방의 어느 관찰사가 벼슬길을 봐준 한양의 정승에게 큼지막하고 미끈한 삼치를 보냈지만, 한양으로 몇날 며칠을 가는 동안 이미 속은 썩을 대로 썩은 터. 정승은 겉이 멀쩡한 밥상에 오른 삼치를 한 점 뜯어 맛을 보고는 비위가 상해 며칠 동안 입맛을 잃어버렸다. 당연히 관찰사는 괘씸죄로 파직되었고, 이후 사대부들은 ‘망할 망’ 자를 붙여 ‘망어’라 하며 기피했다._127쪽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긴 등지느러미의 첫 번째 가시를 마치 미끼처럼 흔들어 물고기들을 유인한다고 하여 『자산어보』에는 ‘아귀’를 가리켜 ‘낚시를 하는 고기’라 해서 ‘조사어(釣絲魚)’라 기록했다._165쪽
양태머리는 납작한데다 살이 없다. 그래서 “고양이가 양태머리 물어다 놓고 먹을 게 없어 하품만 한다”거나 “양태머리는 미운 며느리나 줘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양태머리에 붙은 볼때기 살은 대구 볼때기 살에 견줄 만큼 맛이 좋다. 그래서 밉상을 보였던 며느리는 “양태머리에는 시엄씨 모르는 살이 있다”라고 맞받아쳤다고 하니 양태를 놓고 고부간 장군멍군인 셈이다._169쪽
연어는 문헌에 한자로 ‘年魚・鰱魚·連魚’라고 적었다. 『훈몽자회』와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연(?) 자를 ‘연어 련’이라고 했다. 이는 연어가 강을 올라올 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달아 올라오는 모습에서 ‘이어질 연(連)’ 자를 붙인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해 년(年)’ 자를 써서 연어(年魚)로 표기하고 함경도에서 많이 잡히고, 강원도와 경상도 몇몇 지방에서 잡힌다고 기록했다. 이는 1년에 한 차례, 때가 되면 모습을 나타내는 연어의 회귀 특성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_174쪽
이처럼 저자는 조선시대 3대 어보인 1803년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바다생물 도감이며 한학자의 관점에서 특이한 어류를 중심으로 소개한 김려의 『우해이어보』, 그보다 11년 뒤에 간행된 실학자의 관점에서 바다생물을 자세히 묘사한 정약전의 『자산어보』,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16갈래 중 하나이며 우리가 아는 동물 대부분을 인간 생명 유지에 필요한 섭생 대상으로 다룬 「전어지」를 중심으로 우리 바다생물에 관한 이름과 생태 특성을 풀어나간다. 거기에 『세종실록지리지』 『신동국여지승람』등등 여러 문헌을 인용하여 당시 풍물과 수산물에 대한 시대 상황도 곁들여 읽는 즐거움과 깊이를 더한다.
우리나라 전 연안은 물론 남극해와 북극해까지 생명의 바다에서 건진 아름다운 바다생물 이름에 관한 기록물!
20대 초반에 바닷속 여행을 시작, 30년 동안 잠수 횟수가 물경 2100회를 넘어선 저자가 만난 바다생물들은 대체 얼마나 될까? 그저 스치며 지나간 생물들까지 헤아린다면 어마어마하겠지만 이 책에 주인공으로 발탁된 바다생물들은 모두 151종이며, 이들에 곁가지로 소개된 개체까지 헤아리면 200여 종에 가까운 생물들이 50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이 책에 실려 있다.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 남해안에 터를 잡은 파랑돔, 호박돔, 혹돔, 흰동가리 등의 어류 90여 종과 연체동물, 절지동물, 남극과 북극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펭귄을 비롯한 바닷새와 멸종위기에 몰린 바다 포유류 바다코끼리와 북극곰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바다생물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동서양은 물론, 고금의 자료를 바탕으로 직접 바다로 나아가 관찰하면서 이름의 유래뿐만 아니라 각 개체의 생태 특성까지 알기 쉽게 정리한 교양 과학서라 할 수 있다.
용치놀래기에서 용치라는 이름은 송곳니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롭고 뾰족하여 붙인 이름이다. 튀어나온 입 모양이 상징하듯 식탐이 워낙 강해 먹이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면 용치놀래기를 쉽게 잡을 수도 있다. 양파망에 멍게 조각을 넣고 망의 주둥이를 벌리고 물속에 앉아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양파망 안으로 모여든다. 이때 망의 주둥이 부분을 끈으로 조이면 망태기 안에 용치놀래기가 가득 차 있다. 용치놀래기가 속해 있는 놀래기류는 전 세계적으로 500여 종이고, 우리나라에는 20여 종이 분포한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뾰족한 주둥이에 두툼한 입술이 튀어나와 있다는 점이다. 영어명은 이런 두툼한 입술에서 따와 ‘늙은 아내’란 뜻의 ‘래스(wrass)’이다. 아마도 처음 래스라 이름 지은 사람의 아내가 나이 들면서 심술보가 터져 늘 입을 삐죽 내밀며 다닌 듯하다. 지역에 따라서는 놀래기류의 튀어나온 입이 돼지 입 모양을 닮았다고 보았는지 ‘호그피시(Hogfish)’라고도 한다. 용치놀래기가 속한 Halichoeres 속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얕은 바다’와 ‘새끼돼지’의 합성어이다. 얕은 수심에서 돼지처럼 엄청난 식탐을 보이는 용치놀래기의 특성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176~178쪽)
이름을 알고 자연을 바라보면 시선의 폭이 두 배로 열린다는데, 조금 거짓말을 보태서 심봉사 눈 뜨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알찬 정보로 가득 찬 두툼한 책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한 꼭지 한 꼭지 읽고, 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름휴가는 물론, 언제든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참 좋은 책으로 강력하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