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표제: Barbarian days : a surfing life 감수: 김대원 수상: 퓰리처 상, 2016 부산관 소장본은 2021년(3쇄) 발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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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이아몬드헤드에서 2 바다의 냄새 3 새로운 흐름의 충격 4 하늘에 키스하는 동안 잠깐 실례 5 탐색 6 행운의 나라 7 에티오피아를 선택하다 8 퇴락에 대항하여 9 바소 프로푼도 10 산이 흔들려 바다의 심장에 빠진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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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2016 퓰리처상 수상작 버락 오바마가 선택한 책 “커다란 파도 속으로 나아가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강렬하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기쁨과 절망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다.”_〈LA타임스〉 “숨을 멎게 만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다.”_〈뉴욕타임스〉 “장대한 마스터피스.”_〈가디언〉
2016년 퓰리처상 수상작 《바바리안 데이즈》가 알마에서 출간됐다. 《바바리안 데이즈》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여름휴가 도서로 선택하여 전 세계 독자들의 이목을 끈 화제의 책이기도 하다. 내셔널매거진어워드 최종 후보에 두 차례나 지명되고 해외특파원상을 2회 연속 수상한 저명한 저널리스트 윌리엄 피네건이 서핑과 함께한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아름다운 중독이고, 정신과 신체에 대한 연구이자, 열정적인 삶의 방식이다. 《바바리안 데이즈》는 한 남자가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페루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를 여행하며 파도를 쫓고 그것에 도전하는 데 바친 일생에 관한 회고록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위험한 파도에 오롯이 자신을 내던졌던 시간들. 압도적인 파도에 보잘것없는 육체를 던지고, 찰나의 시간이나마 그것을 정복함으로써 문명을 벗어나 야만의 날들로 회귀하고자 하는 낭만과 열정이 아름다운 산문으로 펼쳐진다. 파도와 함께한 저자의 삶은 격랑의 현대사와 그 궤를 같이하며, 지적이고 장대하며 격렬한 모험의 시공간으로 우리를 싣고 간다.
야만의 나날을 꿈꾸다 서핑 순례의 여정 하와이에서 백인인 ‘하울리(Haole)’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저자는 그곳에서 파도와 맞닥뜨리며 자신에게 드리워진 영원한 이방인의 운명을 감지한다. 그 운명이란 저 거대한 파도를 쫓아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다. 파도가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모든 곳,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페루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가 그의 유랑지다. 서핑의 발원지인 하와이에서 과거에 서핑이 종교의식으로 성행했듯이, 저자는 어떤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파도를 타면서 찰나의 순간이나마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순수와 자유를 뜻하는 야만의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저자는 가장 유명하고 가장 위험한 파도를 찾아 전 세계를 떠돈다. 그러나 그는 파도의 고장으로서 그토록 바라온 야만의 세계에서도 결국은 서구의 백인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자신이 누리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실망한다. 그것은 그가 바라는 순례자의 삶은 아니다. 그는 그 세계에 더욱 전념하고자 현지의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그곳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받아들이는 한편, 인상적인 서핑 동료들을 만나 그들과 긴 여정을 함께한다. 극적이고 낭만적인 로드무비를 떠올리게 하는 각각의 여행에서 서퍼들은 강렬한 태양빛 아래 끈끈한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무서우리만치 울부짖는 파도 위를 서프보드를 탄 채 미끄러지며 흡사 어린아이들이 벌이는 것과 같은 순수한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때로는 깊은 불신과 갈등에 휩싸이기도 한다. 물론 자연의 압도적인 힘에서 비롯되는 위험 또한 없지 않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기도 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는 것은 물론, 속수무책으로 너울에 휩쓸려가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녹초가 된 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여행의 순간에서 찬란한 인생을 건진다. 저자가 꿈꾸던 진정한 낭만, 곧 야만의 날들을 말이다.
파도를 쫓는다는 것의 의미 뜨거운 삶의 방식 저자가 처음부터 서핑을 위한 여행으로 일생을 보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평범한 무전여행으로 계획되었던 여자 친구와의 유럽 여행이었고, 한때는 철도 회사 직원으로서 노동의 기쁨을 누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한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아파르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고통받는 흑인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애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여행들의 경과는, 긍정적인 상황이든 부정적인 상황이든 언제나 자연스레 서핑 쪽으로 흐르곤 했고, 저자 역시 파도를 뒤쫓는 삶과 파도에 육체를 내던지는 자기 파괴적인 순간들로부터 스스로의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느꼈다. 이러한 희열이 그를 파도로 끝없이 이끌고 내몲으로써 모험과 서핑은 마리화나와 엘에스디의 시대라 할 수 있는 시절에조차 그를 중독시켜 놔주지 않는 강력한 마약이 되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증명이야말로 가장 큰 쾌락이었기에, 저자는 그것과 파도를 일체시하며 파도를 향한 장엄한 열망의 일대기를 온몸으로 써 내려가고자 했던 것이다. 심지어 파도를 향한 그의 열망과 집착은 저널리스트로서 종군 활동을 포함한 탐사 보도로 명성을 떨친 이후에도, 딸의 출생과 함께 뉴욕에 안착한 이후에도 완전히 그치지 않고 이어질 정도다. 하지만 서핑의 기쁨이 오로지 저자만의 것은 아닐 테다. 노년이 된 그는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눈앞에서 비장한 의식을 거행하듯 파도를 타고, 그렇게 소년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어머니로 하여금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과 아련한 감동에 젖게 한다. 오래전 그가 가족의 곁을 떠날 때부터 함께해온 서핑이 비로소 그와 함께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기나긴 노정에 마침표를 찍는, 빛나는 순간이다. 그 기쁨에 동참하는 것은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그가 강대한 파도와 마주치고, 그것에 도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여 도망쳤다가, 마침내는 그것을 정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읽으면서 독자들 또한 가공할 만한 카타르시스의 파도 속으로 내던져진다. 언론으로부터 “언어의 승리”라는 찬사를 받은 《바바리안 데이즈》의 이러한 묘사는, 각지의 풍경과 사람들을 묘사한 애정 어린 필치에서 드러나듯 다만 저자가 저명한 저널리스트였기에 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세계를 떠도는 중에 그가 한 번도 놓지 않은 꿈이 바로 ‘작가’였고, 글과 서핑은 그의 열정적인 삶을 이루는 두 개의 균형추인 동시에 하나가 다른 하나의 연료로 작용하는, 서로가 경쟁하고 서로를 보완하는 뜨거운 기관이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 파도로써 그를 사로잡아 끝내 놔주지 않은 방외자(方外者)의 운명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자는 구할 길 없는 답을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서핑과 글을 선택했을 것이다. 퇴락에 대항하기 위하여. 그렇게 파도와 서핑을 통해 문명으로부터 벗어난 야만의 날들을 꿈꿨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의 상징인 글로써 야만의 날들을 그려내며 파도와 인생에 관한 아름답고 장대한 기록을 탄생시켰다.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아름다운 중독이고, 정신과 신체에 대한 연구이자, 뜨거운 삶의 방식이다. 저자는 자신의 오롯한 생으로써 이를 증명하고자 했다. 《바바리안 데이즈》는 저자가 평생에 걸쳐 천착을 거듭한 끝에 얻어낸 장엄한 결론이다.
책속에서
[P.50]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의 고대 하와이에서 서핑은 종교적으로 중요했다. 기도와 공물을 드린 후에, 장인들은 신성한 코아, 혹은 윌리윌리 나무로 보드를 만들었다. 사제들은 너울에 축복을 내리고, 너울을 일으키려고 나뭇가지로 바다를 후려쳤으며, 어떤 파도 지점에는 신자들이 파도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해변의 헤이아우스(사원)가 있었다. 영적인 곳이라 해도, 소란한 경쟁이나 대규모 도박을 막진 못했다. “마우이와 오아후의 챔피언들이 벌인 한 경기에는 4,000마리의 돼지와 열여섯 척의 전투용 카누가 판돈에 포함되었다.” 역사가 피터 웨스트윅과 피터 뉴설은 이렇게 썼다.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어른, 귀족과 서민 모두 파도를 탔다.
[P. 70~71] 나는 이제 햇볕에 그을린 이교도였다. 나는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세계는 육지였다. 서핑이 아닌 모든 것. 책, 여자애들, 학교, 가족들, 서핑하지 않는 친구들. ‘사회’라고 부르게 된 것, 책임감 있는 소년에게 주어진 강요. 깍지 낀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나는 표류했다. 멍이 든 것 같은 색의 구름이 코코헤드에 걸렸다. 하와이 가족이 백사장에서 소풍을 즐기는 곳,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방조제 위에서 쨍쨍 울렸다. 햇볕에 데워진 얕은 물에서는 낯설게도 삶은 채소 같은 맛이 났다. 그 순간은 거대하고, 잔잔하고, 반짝거렸으며, 일상적이었다. 나는 그 각각의 부분을 기억 속에 고정해놓으려 했다. 서핑이라는 문제에서 내게 선택권이 있다는 생각은 스치듯이라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매혹되었고, 그 감정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갔다.
[P. 85] 너덧 파도가 몰려 있는 파도 세트에 닿은 나는 파도 하나를 타고 올라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각각의 파도에서 해변으로 뿜는 물보라에 흠뻑 빠져버렸다. 몇 미터 뒤에서 터지는 파도 소리에 배 속까지 떨렸다. 그 안에 휩쓸리면 살아 나올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이런 확신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서핑을 특별하게 만드는 공포의 선이라는 게 있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극히 무겁게 강조되었다. 나는 《모비딕》에 나오는 핍이 된 기분이 들었다. 배 바깥으로 떨어져 구조되었지만, 바다의 무한한 악의와 무심함이라는 환영에 망가져 정신을 놓은 사환 소년. 나는 열심히 패들하며 멀리, 통스 쪽의 라이스보울 암초를 멀리 돌아 해변으로 갔다. 머리가 어지럽고 굴욕적인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