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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혁명 전야
번영 꿈꾸는 제국의 심장부 | 혁명 전야 | 불화의 근원, 한일병합 | 일제의 조선 지배체제 | 식민지 무단통치 | 무단통치의 실상과 염상섭의 『만세전』 | 하라의 집권과 식민지배체제의 균열 |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민족자결주의 | 상하이의 여운형과 찰스 크레인 | “파리에 특사를 파견하라” | 뉴욕 ‘소약속국동맹회의’ | ‘퍼스트 펭귄’ 재일 조선인 유학생 | ‘비운의 군주’ 고종의 죽음 | 김규식 파리강화회의 파견 | 나비, 날기 시작하다
제2장 기미년 3월 1일 경성 태화관
1919년 3월 1일의 아침 | 발칵 뒤집힌 일본 경찰 | 그날 경성 태화관 | 니콜리스크 ‘무오독립선언’ | 천도교 독립운동 결의 | 감리교 및 학생 그룹도 준비 | 도쿄 ‘2·8독립선언’ | 천도교의 선회와 이승훈의 분투 | 감리교와 장로교 연합 | 최린과 이승훈의 만남 | 단일 대오의 형성 | 독립선언서 완성 | 서명자 규합 및 노령(露領) 임시정부 수립 | 서명 및 날인 | 독립선언서 인쇄 | 가장 길고 바쁜 하루
제3장 “대한독립만세” 천지를 흔들다
경성으로, 파고다공원으로 | ‘천지진동’시킨 만세 함성 | 쏟아져 나온 시위대, 시내로 | 그날 그들은 독립을 봤다 | 일본 군경의 반격 | 혼마치 회전과 일제의 무력 진압 | 평양의 외침 “의를 위해 고난받으면 복” | 선천, 첫 총격 사망자 발생 | 진남포와 원산에서도 “대한독립만세” | “독립을 환영하자” 의주·안주·해주 시위 | 상하이, 워싱턴, 그리고 도쿄 | “경거망동 말라” 경고하고 심야 대책회의
제4장 요원의 불길… 제국의 기만
경성, 만주, 도쿄로 번지는 불씨 | 통곡하는 산하, 고종의 장례식 | “왜놈 물러가라” 수안의 눈물 | 군대 파견 및 발포 진압 보고 | 성천의 비극과 사천 모락장의 학살 | 언론을 통한 프레임 짜기 | 경성을 뒤흔든 2차 만세시위 | 총독의 유고와 언론 보도 해금 | 육군성의 지령 “시위를 조속히 진압하라” | 인쇄 노동자 파업과 대구 시위 | 경성 파업시위와 철시 투쟁 | 맹산 학살 | 단천의 눈물 | “감옥은 차고 넘쳤다” 성진의 비극 | “표면상 경미, 실제로는 엄중” 일제의 기만과 공작
제5장 간도, 연해주, 미주, 파리
꿈틀거리는 간도… 13도 대표 독립애원서 | 용정의 독립만세 소리 | 김규식, 마침내 파리 도착 | “손병희를 모욕하라” | 명천의 눈물과 동씨 부녀 | 샌프란시스코의 결의 “죽음으로 성공” | 블라디보스토크 뒤흔든 “코레아 우라” | 여성이 앞장선 옌지 독립선포식
제6장 확산하는 불길
만세시위의 대형화와 공세화 | 진주 ‘기생독립단’과 덴노지의 염상섭 | 훈춘과 함안 시위 | 산청 및 마산 1차 만세시위 | 남대문 앞 노동자대회 | 야간 및 봉화 시위와 합천 삼가 의거 | 일제 군법회의 증설 | 주택 방화와 전차 투석
제7장 절정
뜨거워지는 경성 | 임시정부로 할 것인가, 당으로 할 것인가 | 차금봉과 철도 노동자 파업 | 노구치의 죽음과 김윤식의 청원 | 조선 상황 보고받은 다이쇼 덴노 | 청주 미원 의거 | 정주 학살 | ‘발안장 시위’와 ‘수원 의거’ 사이 | 천안 아우내장터의 외침 | 해주 기생 시위와 철시 해제 강압 | 최대 시위와 13도 대표자회의 | ‘유림의 비원’ 파리장서 운동 | 하세가와 총독의 군대 증파 요청 | 창원 삼진 의거 | 방극용 부부와 문용기의 죽음 | 일제의 6개 대대 증파 결정 | 수촌리 복수극과 이완용의 ‘망동’ | “시위를 저지하라” 친일파 ‘자제단’ 결성
제8장 무력 진압과 제암리 학살
한반도로 향하는 일제 증원군 | “조선을 위압하라” 무력 진압 겨냥한 군대 증파 | 대조선 정책 비판 본격화 | 하세가와의 세 번째 유고 “또 단호 대처” |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 수원 화수리 잔혹 학살극 | 야마가타 이사부로 “시위 진압 협의 마쳐” | 수원에 나타난 아리타 도시오 | 필라델피아 미주 한인대회 | ‘조선의 십자가’ 수원 제암리 학살 | ‘조선판 토비 토벌령’ 제령 공포… 여행도 통제 | 커티스, 제암리 학살 확인 | 제천의 눈물 | 스코필드의 확인과 일본군 지도부의 은폐 모의 | 제암리를 찾은 로이즈 | 입 맞추는 일본군 지도부 | 기만적인 제암리 진상 보고 | 한성 임시정부 수립 | 분투하는 김규식, 외면하는 열강 | 일제 “만세시위 평정” 선언 | “방심 금지” 훈시와 친일파의 준동 | ≪재팬애드버타이저≫의 제암리 보도 | 만세시위 1500여 회 “세계여, 들어라”
제9장 여진과 파문
국제 여론에 흉내만 낸 책임자 문책 | 미국과 영국 “잔혹 탄압 NO, 식민통치 OK” | 중국 5·4운동에 미친 영향 | 계속되는 일제의 탄압 | 멈추지 않는 독립운동 | 독립운동 체제 정비 | 고민하는 일제 ‘군법회의 카드’ 부상 | 베르사유조약 “약자를 위한 정의는 없다” | 노리스의 물음 “죽은 조선인, 무슨 죄인가” | 틀 갖춰지는 상하이 임시정부 | 하세가와의 퇴장과 증원군 철수 | “도시오를 무죄로 한다” 사라진 정의 | 세계를 향한 ‘기억투쟁’ | 기만적인 관제개정과 조선 정책 변경 | 구체화하는 정책 변화 | 사이토의 부임과 강우규의 폭탄 세례 | 통합 임시정부의 출범
제10장 꺼지지 않는 불꽃
앞에서는 문명적 통치, 뒤로는 군사력 강화 | 독립운동가 회유와 친일파 육성 | “임시정부 와해시켜라” 막 오른 ‘상하이 사업’ | 여운형의 방일과 도쿄 뒤흔든 대한독립 | “조국을 되찾으리라” 조선을 떠나는 이들 | 문화통치의 실상 |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 “몸을 가둬도 독립 의지는 가둘 수 없다” | 전쟁으로 내달린 일본제국 | 한민족의 저항과 독립운동 | 책임도, 진실도 없었다 | 친일과 매족에 빠진 자들 | 푸른 눈의 독립운동 조력자 |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 독립 여정에 뿌려진 꽃 |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에필로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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