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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 사진……… 011
불이 붙다……… 055
프로스트……… 071
위버멘쉬……… 115
삶의 조각……… 163
한 입으로 두말하기……… 181
운명이 당신을 수치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때……… 229
책에 실릴 만한 사건……… 271
소식지……… 291
스승……… 309

옮긴이의 말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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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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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함께하는 삶,
문학으로 성장하는 삶,
우리를 감동시키고 일깨우며 변화시키는 문학의 힘

『올드 스쿨』을 읽고 참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청춘들의 치열함, 그리고 꿈틀거림이 분명
이 우주를 받치고 있다는 사실은 엄연하다.
_타블로(뮤지션)

우리 시대의 헤밍웨이, 토바이어스 울프 대표작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읽고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_산타 크루즈 센티널


‘우리시대의 헤밍웨이’이자 미국의 장/단편소설, 회고록 작가 토바이어스 울프의 대표 장편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올드 스쿨』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울프의 작품이다. 첫 단편집으로 오헨리 문학상을 수상한 울프는 이후 레이먼드 카버, 존 업다이크, 리처드 포드 등과 함께 1980년대 ‘더티 리얼리즘’을 내세운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펜/포크너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북 어워드, 스토리상 등 저명한 문학상들을 수상했고 1997년부터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문학과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에 대한 평생의 공로로 2014년 스톤상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예술훈장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올드 스쿨』은 <뉴요커>에 3부작으로 연재된 단편소설이었는데 2003년 장편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이듬해 펜/포크너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의 어느 명문 사립고, 이곳은 계급과 명예가 지배하는 곳이다. 대놓고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금기시되고 있지만 이곳 선생들과 학생들은 모두 품위 있는 말투와 행동 뒤에 그런 욕망을 감추고 있다. 이 학교에서 소중히 여기는 가치 중 첫번째는 문학적 재능이다. 이곳에는 학기에 한 번씩 유명 작가를 초청하는 전통이 있다. 문학 경연대회가 열리고 우승자는 초청 작가와 개인 면담 기회를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음번 초청 작가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고, 학생들의 고상한 우정에 묘한 긴장감과 시기와 질투가 끼어들기 시작하는데……
『올드 스쿨』은 우리를 일깨우고 변화시키는 문학의 힘, 자기이해의 수단으로써의 문학 읽기, 계급의식의 미묘한 작동방식을 예리한 문체와 우아한 묘사, 소소한 유머로 그려낸 작품이자 소설과 소설가에게 바치는 찬가이다.

“진실이 담긴 글은 위험한 물건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진정한 작가의 첫번째 자질, 진실을 말할 것


학교에서 ‘나’는 유대인 핏줄과 중산층 집안 출신인 걸 감춘 채 부유층 자제들과 어울린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곤란한 순간이 와도 자신의 출신을 철저히 숨긴다. 이 학교에서 유대인 핏줄을 밝히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니까. 그게 계급의식과 우월감으로 가득한 이 학교에서 살아남는 그의 방식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교양과 기품이 넘치고 문학적 재능마저 타고난 뛰어난 친구이자 선배로 통하게 된다.

계급은 실재했다. 한 소년의 계급은 입은 옷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 옷을 입는 방식, 여름방학을 보내는 방식, 할 줄 아는 스포츠의 종류, 돈 이야기가 나올 때나 야심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 보이는 냉담한 태도를 통해 드러났다. _본문 중에서

학생들은 프로스트, 포크너, 조이스, 호손, 피츠제럴드, 커밍스, 케루악을 읽었다. 학생 각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헤밍웨이는 만인의 인정과 존경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이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초청 작가 제안을 수락했다는 소식을 발표한다. 학교는 문학적 열정으로 들끓는다. 위대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은, 모두의 우상이었던 헤밍웨이의 인정을 통해 중요한 인물로 발돋움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 민낯을 드러낸다. 그간 쿨한 척, 연연하지 않는 척 고상을 떨던 학생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타자기 앞에 틀어박힌다.

내 소설은 대부분 자전적으로 읽히도록 쓰였다. 독자들이 고향에 있는 우리 가족과 나 자신의 삶에 대해, 그러니까 나의 정체에 대해 잘못된 그림을 그리도록 만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소설은 그냥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그런 짓을 할 핑계를 만들었다. 내 소설은 나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보이게 하려고 고안된 것이었다. 연기에 필요한 소품이었다. 내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치욕감을 느끼며 그 페이지들을 치워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_본문 중에서

사방에서 타자기 소리가 들려오지만, ‘나’는 단 한 글자도 치지 못한다. 그렇게 고심을 거듭하던 중에 다른 학교의 문학 교지를 읽게 되고, 화자 자신의 거짓된 신분과 이중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소설을 만난다. 그 소설로 인해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동안 그에게 소설이란, 문학이란 자신의 진짜 출신을 감추고 거짓된 신분을 더욱 공고히 하는 장치일 뿐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하는 건 유아적인 사고로 간주되었지만, 그럼에도 작품의 이미지가 곧 작가 자신의 이미지에 투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작가 헤밍웨이의 단편들 속 주인공 ‘닉’이 헤밍웨이의 분신이라는 것도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나’는 자신의 진짜 신분을 폭로하고 이중성을 깨부수는 작품을 쓰고자 결심한다. 그 후폭풍이 얼마나 거셀지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문학 읽기, 그 ‘오독’의 가능성에 대하여

세상의 모든 작가 중에서 ‘나’가 가장 존경한 작가는 헤밍웨이였다. 그러나 그를 존경한 이유는 그의 작품을 특정한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헤밍웨이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혼자만의 힘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낸 인생, 계급과 전통의 밧줄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거머쥔 인생을 선망했다. 그러나 타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 동료를 위한 희생, 국민을 위한 희생―을 어리석음으로 간주하는 어느 작가를 만난 후, 그동안 자신이 헤밍웨이를 ‘오독’했음을 깨닫게 된다. 헤밍웨이의 등장인물들은 “강철 같은 천재 전사”가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특별할 게 없는 사람, 온갖 상처와 부상으로 고통받는 사람,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인물의 상처 위로 헤밍웨이의 연민이 머물렀고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착잡한 깨달음이 무겁게 얹혀 있었다.

헤밍웨이 단편소설들 속 인물은 내 첫인상을 잔뜩 흐려놓았던 강철 같은 천재 전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면에서 특별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의 정신 활동으로 인한 두려움을 포함해 온갖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 가끔은 도저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 _본문 중에서

‘나’는 헤밍웨이를 오독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동안 이 학교를 방문한 많은 작가들을 오독했다. 작가 자신의 입을 통해 드러난 작품의 진실은 대중의 이해와 다른 경우가 많았다. 작가를 실제로 만난 뒤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 전혀 다르게 읽힐 때도 있었다. 때로는 그 작가들도 학생들의 작품을 오독했고 그 오독의 결과로 우승작을 선정했다.
어쩌면 그 ‘오독’이 문학 읽기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취향과 그때의 상황에 따라 작품을 읽고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더라도. 그렇게 오독한 결과로 우리는 깊게 감동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증오하기도 하며 어떤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실제 삶에서 변화를 꿈꾸기도 한다. 문학작품은 독자의 오독으로 인해, 독자 각각의 의미망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지며 생생하게 살아난다. 『올드 스쿨』 역시 독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오독이든 간에 우리는 이 작품을 읽고 감동받고 변화할 수밖에 없다. 『올드 스쿨』은 문학과 함께하는 삶, 문학을 통해 감동하고 변화하는 삶, 그리고 문학을 만들어내는 삶에 대한 아스라한 찬가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문학으로 한 뼘 성장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미디어 소개]
☞ 한겨례신문 2019년 4월 5일자 기사 바로가기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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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9] 아버지가 남부 침례교도의 후손이라는 걸 알게 되면 나도 남부 침례교 신자가 되는 건가?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을 알기 바로 전날의 내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조상이 유대인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이었지만 내 본질을 정의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었다. 억지로 받아들일 것도, 구태여 거부할 것도 아닌 사실.
[P. 52] 내가 그랬듯 다른 소년들도 작가가 된다는 건 혈연과 계급의 문제에서 탈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작가들은 일상의 위계 서열 바깥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특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권력을 얻었다. 체제와는 한 발 거리를 둔 채 그 체제에 대한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그럼으로써 체제를 재단할 권력.
[P. 53] 황제는 왜 오비디우스를 두려워했을까? 신의 뜻을 받은 자신도, 그 모든 군대도 잘 쓴 시 한 줄의 공격은 결코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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