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전체메뉴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목차보기


시혼(詩魂)/김소월
끝나지 않을 그리움과 기다림/박건웅
시가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어/서정홍

엄마야 누나야
초혼
못 잊어
개여울의 노래
바다
풀 따기
산유화
진달래꽃
여수
먼 후일
부부
개여울
임에게

가는 길
길손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 대일 땅이 있었더면
고향
우리 집
부모
접동새

금잔디
오는 봄
기억
낭인의 봄
왕십리
산 위에
첫 치마
제비
들도리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봄비
비 소리
바닷가의 밤
그리워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고독
가을 아침에
가을 저녁에
옛이야기
춘향과 이도령

오시는 눈

임의 노래
비단안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자전거
임에게
임의 말씀
맘에 속의 사람
꿈꾼 그 옛날
꿈으로 오는 한 사람
애모
깊고 깊은 언약
팔베개 노래
맘 켕기는 날
꿈자리
눈 오는 저녁
담배
잊었던 맘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 보냐
몹쓸 꿈
그를 꿈꾼 밤
여자의 냄새
분 얼굴
만나려는 심사
후살이
불운에 우는 그대여
비난수하는 맘
원앙침
꽃 촉불 켜는 밤
꿈길
강촌
고적한 날
달밤
옛 임을 따라가다가 꿈 깨어 탄식함이라
칠석
흘러가는 물이라 맘이 물이면
삭주구성
고락
개미
옛 낯
마른 강 두덕에서
밭고랑 위에서
나무리벌 노래
수아
봄 밤

자주 구름
닭소리

하늘 끝
부엉새
만리성
실제
서울 밤
반달

님과 벗
지연
설움의 덩이
엄숙
저녁 때
합장
묵념
열락
무덤
찬 저녁
무심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황촉 불
새벽
구름
여름의 달밤
물 마름
집 생각
나의 집
바리운 몸
낙천
바람과 봄
천리만리
붉은 조수
생과 사
어인
귀뚜라미
월색
무신
꿈길
희망
둥근 해
달맞이
등불과 마주 앉았으려면
닭은 꼬꾸요
신앙
해 넘어 가기 전 한참은
기분전환
기원
하늘
생과 돈과 사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차 안서선생 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

시혼(詩魂
안서(岸曙) 김억(金億) 선생님에게
김소월의 추억
김소월 해적이

이용현황보기

이용현황 테이블로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532291 811.15 -19-696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532292 811.15 -19-696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우리말과 겨레의 얼을 지킨 김소월 시인을 기리는 애장판 시화집

박건웅 화가가 김소월 시 141편에 그림을 그렸다. 우리말과 겨레의 얼을 지킨 김소월 시인을 기리는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애장판 시화집이다. 김소월 시의 다함없는 주제, 사랑.그리움.기다림을 그림에 담았다. 박건웅 화가는 「그린이의 말」에서,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감정을 감추는 김소월의 시를 읽으면서 잡히지 않을 것 같던 꿈속의 주인공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화면에 담기 위해 반구상화로 표현하였다. 구체적이지 않으면서 독자들이 보다 시에 몰입할 수 있는 형식들로 채워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의 상상력의 여지를 다양하고 폭넓게 그리고자 하였다.’라고 적었다. 서정홍 농부시인은 「시가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어」에서 ‘시마다 그림 한 편씩 담았는데, 그림 하나하나가 명화입니다. 그래서 시 감상하는 맛이 절로 납니다. 더구나 고급 양장본에 애장판으로 만들어져 그리운 사람 누구에게나 선물하기 좋은 책입니다. 책 말미에 김소월이 쓴 시에 대한 자기 생각과 문학 스승인 김억과 나눈 편지를 담아 김소월의 드넓은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추천사를 썼다. 김소월 시는 작곡되어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최희준, 정훈희, 윤형주, 조영남, 혜은희, 이은하, 나훈아, 이은하, 조용필, 산울림 같은 300여 명의 유명가수들이 불렀다. 노래로 불린 시마다 캡션으로 작곡가와 가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듯이 한국에는 김소월 시인이 있다. 김소월 시집은 여러 판본이 나와 있다. 그러나 시화집은 없다. 좋은 시는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된다. 김소월 시는 영화나 드라마로 연출되기도 했다. 앞으로 오페라나 연극으로도 만들어지면 좋겠다 싶다. 화가들의 다양한 시화 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은 이런 고민 속에 기획되었다.
세월이 갈수록 김소월 시인에 대한 그리움은 커 간다. 영어 말과 서양문화에 우리말과 겨레의 정서는 시들어가고, 물질만능과 경쟁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세태에, 진정한 사랑과 그리움, 기다림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시는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어

김소월 시와 박건웅 화가의 그림이 담고 있는 작품세계를 몇몇 시를 뽑아 짧게 살펴본다.

*엄마야 누나야_맑고 고운 동심의 세계, 동요의 가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초혼_사랑하는 임, 빼앗긴 나라를 그리워하며 목 놓아 부르는 애절한 작품이다.
*못 잊어_애련한 사랑과 실연의 서글픈 그리움이 가슴을 치는 작품이다
*개여울의 노래_애달픈 외사랑의 안타까운 심정을 그린 작품이다.
*바다_망망한 바닷가에서,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너머를 동경하는 청춘남녀의 꿈 많은 모습 이 신비롭고 황홀하게 우리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는 작품이다.
*풀 따기_사춘기 청소년 시절에 겪는 첫사랑의 꿈과 애수가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산유화_피고 지고, 지고 피는 서러운 꽃의 운명을 사랑의 덧없음으로 그린 작품이다.
*진달래꽃_자기를 저버린 임을 원망하지 않고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가 뿌려드리는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먼 후일_떠나간 임에 대한 미련을 넘어서 속절없는 위안으로 몸부림치는 애달픈 심정이 눈물겹도록 애련한 작품이다.
*개여울_떠나간 임을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가슴을 후벼 파는 작품이다.
*길_나라 잃고 타향살이하는 외로운 나그네가 고향을 그리는 구슬픈 작품이다.
*가는 길_좋아하는 임을 두고 길을 떠나면서 이별의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애달픈 심정을 그린 작품이다.
*부모_진자리 마른자리 낳아주고 키워 준 부모님을 뼈가 저리도록 그리는 작품이다.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_철없던 시절 옛사랑을 추억하며 세상 고락에 인생의 덧없음을 담은 작품이다.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다면_나라 잃은 민족으로 방랑으로 떠도는 나그네가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고픈 심정이 절절하게 울리는, 빼앗긴 우리 땅을 찾겠다는 다짐이 절절하게 울리는 작품이다.
*산_나그네가 고개 마루에서 고개 넘어 있는 임을 찾아갈까 말까 망설이다 발길을 돌리는 가슴 아픈 작품이다.
*금잔디_깊은 산천 가신 임 무덤가에 온 봄을 느끼며 다시금 세상을 떠난 임을 애절하게 부르는 작품이다.
*첫 치마_먼 산촌, 먼 산골에 사는 소박하고 쓸쓸한 처녀가 꽃 지고 잎 지는 것을 보고 치맛자락에 눈물을 적시며 임을 그리는 작품이다.
*제비_나라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애달픈 심정을 제비에 견주어 그린 작품이다.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_사랑은 삶을 되돌아보는 회상 속에 피는 꽃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움에 빠지게 하는 것인지, 서로 만날 때에는 몰랐던 심정을 담은 작품이다.
*옛이야기_고요하고 어두운 밤에 등불 아래 누워 옛이야기에 빠지듯 임을 추억하는 작품이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늘 그림자 같이 붙어 다니던 벗이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느꼈을 때, 그러나 서로 사랑하노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속에 마음을 감추고 지내버리는 불운에 우는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해가 산마루에 저무나 떠오르나, 자나 깨나 떠나간 임을 그리는 작품이다.
*산 위에
바다가 가로막힌 먼 마을에 있는 임을 그리며 인간의 순정한 영혼의 교감을 그린 작품이다.
*임의 노래
맑은 영혼이 꿈꾸며 사모하는 임에 대한 사랑이 한결 아름답고 깨끗하며 그러므로 사랑이 사랑으로서 높은 보람을 담은 작품이다.
*실제
젊은 날이 애달픈 사랑은 다가 올 미래의 고락을 이기는 보람찬 추억일 거라는, 지금은 혼자이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는 작품이다.
*임의 노래
밤마다 닭이 울적이면, 그 꼭두새벽에 임의 넋을 맞이하려 나가보는 그 애달프고 창자를 저며내는 슬픔을 담은 작품이다.
*임에게
떠난 임에 대한 미련과 원망, 야속한 여인에 대한 가슴에 솟구치는 설움을 담은 작품이다.
*봄밤
애절한 감상과 사무친 그리움으로 꽃과 바람과 밤과 봄을 맞이하는 심정을 그린 작품이다.
*밤
임을 기다리다 지쳐서 홀로 잠자리 들어 흐느끼며, 뼈에 저리도록 고독한 심정을 담은 작품이다.
*고적한 날
애틋한 첫사랑의 서러운 인연이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헤어져 그 아른한 꿈과 설움이 어린 작품이다.
*꿈으로 오는 한 사람
청소년 시절의 가녀린 풋사랑, 부끄러워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인연이 맺어지지 않은 채 평생을 애틋하게 가슴에 새겨진 연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꿈꾼 그 옛날
눈, 달빛, 꿈과 임과 샛별로 젊은 날의 티 없는 사랑과 그리움을 하얗게 내린 눈밭에 아로새긴 꿈 같이 서러운 작품이다.
*맘 켕기는 날
온다고 약속하고 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는 사람의 안타가운 심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개미
꾸밈없이 쓴 어린이 동시 같은 작품이다.
*삭주 구성
임이 계시는 고향을 그리는 사향가(思鄕歌)이다. 임을 그리는 애절한 정감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접동새
우리나라 마을 곳곳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시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여수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고향의 임을 그리는, 나라를 잃고 떠도는 나그네의 쓸쓸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평론글]

시혼(詩魂)
김 소월

1
적어도 평범한 가운데서는 물(物)의 정체를 보지 못하며, 습관적 행위에서는 진리를 보다 더 발견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어질다고 하는 우리 사람의 일입니다.
그러나 여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밤에 깨어서 하늘을 우러러보십시오. 우리는 낮에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파릇한 별들은 오히려 깨어 있어서 애처롭게도 기운 있게 몸을 떨며 영원을 속삭입니다. 어떤 때는 새벽에 져가는 오묘한 달빛이 애틋한 한 조각, 숭엄한 채운(彩雲)의 다정한 치맛귀를 빌려 그 가련한 한두 줄기 눈물을 문지르기도 합니다. 여보십시오, 여러분. 이런 것들은 적은 일이나마 우리가 대낮에는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던 것들입니다.
다시 한번, 도회(都會)의 밝음과 지껄임이 그 문명으로써 광휘와 세력을 다투며 자랑할 때에도 저 깊고 어두운 산과 숲의 그늘진 곳에서는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가 그 무슨 설움에 겨웠는지 쉼 없이 울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버러지 한 마리가 오히려 더 많이 우리 사람의 정조답지 않으며, 난들에 말라 벌바람에 여위는 갈대 하나가 오히려 아직도 더 가까운 우리 사람의 무상과 변전을 서러워하여 주는 살뜰한 노래의 동무가 아니며, 저 넓고 아득한 난바다의 뛰노는 물결들이 오히려 더 좋은 우리 사람의 자유를 사랑한다는 계시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고인은 꿈에서 만나고, 높고 맑은 행적의 거룩한 첫 한 방울의 기도의 이슬도 이른 아침 잠자리 위에서 젖습니다.
우리는 적막한 가운데서 더욱 사무쳐 오는 환희를 경험하는 것이며, 고독의 안에서 더욱 보드라운 동정을 알 수 있는 것이며, 다시 한번 슬픔가운데서야 보다 더 거룩한 선행을 느낄 수 도 있는 것이며, 어두움의 거울에 비춰 와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보이며, 삶을 좀 더 멀리한 죽음에 가까운 산마루에 서서야 비로소 삶의 아름다운 빨래한 옷이 생명의 봄 두던에 나부끼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곧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나 맘으로는 일상에 보지도 못하며 느끼지도 못하던 것을, 또는 그들로는 볼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없는 밝음을 지워버린 어두움의 골방에 서며, 삶에서는 좀 더 돌아앉은 죽음의 새벽빛을 받는 바라지 위에서야 비로소 보기도 하며 느끼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몸보다도 맘보다도 더욱 우리에게 각자의 그림자같이 가깝고 각자에게 있는 그림자같이 반듯한 각자의 영혼이 있습니다. 가장 높이 느낄 수도 있고 가장 높이 깨달을 수도 있는 힘, 또는 가장 강하게 진동이 맑게 울려오는 반향과 공명을 항상 잊어버리지 않는 악기, 이는 곧 모든 물건이 가장 가까이 비쳐 들어옴을 받는 거울, 그것들이 모두 다 우리 각자의 영혼의 표상이라면 표상일 것입니다.

2
그러한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가장 이상적 미의 옷을 입고 완전한 운율의 발걸음으로 미묘한 절조의 풍경 많은 길 위를 정조의 불붙는 산마루로 향하여, 혹은 말의 아름다운 샘물에 심상의 배를 젓기도 하며, 이끼 돋은 관습의 기구한 돌무더기 사이로 추억의 수레를 몰기도 하여, 혹은 동구(洞口) 양류(楊柳)에 춘광은 아리땁고 십이곡방(十二曲坊)에 풍류는 번화하면, 풍표만점(風飄萬點)이 산란한 벽도화(碧桃花) 꽃잎만 져 흩는 우물 속에 즉흥의 두레박을 들여놓기도 할 때에는, 이 곧 이르는 바 시혼(詩魂)으로 그 순간에 우리에게 현현(顯現)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시혼은 물론 경우에 따라 대소심천(大小深淺)을 자재변환(自在變換)하는 것도 아닌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어디까지 불완전한 대로 사람의 있는 말의 정(精)을 다하여 할진대는, 영혼은 산과 유사하다면 할 수도 있습니다. 가람과 유사하다면 할 수 있습니다. 초하루 보름 그믐 하늘에 떠오르는 달과도 유사하다면, 별과도 유사하다면 더욱 유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산보다도 가람보다도, 달 또는 별보다도, 다시금 그들은 어떤 때에는 반드시 한 번은 없어질 것이며 지금도 역시 시시각각으로 적어도 변환되려고 하고 있지만, 영혼은 절대로 완전한 영원의 존재이며 불변의 성형(成形)입니다. 예술로 표현된 영혼은 그 자신의 예술에서, 사업과 행적으로 표현된 영혼은 그 자신의 사업과 행적에서, 그의 첫 형체대로 끝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혼도 산과도 같으며, 가람과도 같으며, 달 또는 별과도 같다고 할 수는 있으나, 시혼 역시 본체는 영혼 그것이기 때문에 그들보다도 오히려 그는 영원의 존재이며 불변의 성형(成形)일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면 시 작품의 우열 또는 이동(異同)에 따라 같은 한 사람의 시혼일지라도 혹은 변환한 것같이 보일는지도 모르지마는 그것은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 적어도 같은 한 사람의 시혼은 시혼 자신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산과 물과, 혹은 달과 별이 편각(片刻)에 그 형체가 변하지 않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작품에는 그 시상(詩想)의 범위, 리듬의 변화, 또는 그 정조의 명암에 따라 비록 같은 한 사람의 시작(詩作)이라고는 할지라도 물론 이동(異同)은 생기며, 또는 읽는 사람에게는 시작 각개의 인상을 주기도 하며, 시작 자신도 역시 어디까지든지 엄연한 각개로 존립 될 것입니다. 그것은 또 마치 산색(山色)과 수면과 월광성휘(月光星煇)가 모두 다 어떤 한때의 음영에 따라 그 형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달리 보이도록 함과 같습니다. 물론 그 한때 한때의 광경만은 역시 혼동할 수 없는 각개의 광경으로 존립하는 것도 시작(詩作)의 그것과 바로 같습니다.
그렇다고 산색(山色) 또는 수면, 혹은 월광성휘가 한때의 음영에 따라 때때로 그것을 완상하는 사람의 눈에 달리 보인다고 그 산수성월(山水星月)은 산수성월 자신의 형체가 변환된 것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작에도 역시 시혼 자신의 변환으로 말미암아 시작에 이동(異同0이 생기며 우열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며 그 사회와 또는 당시 정경의 여하에 의하여 작가의 심령상에 무시로 나타나는 음영의 현상이 변환되는 데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겨울에 눈이 왔다고 산 자신이 희어졌다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으며, 초승이라고 초승달은 달 자신이 구상(鉤狀)이라고 하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으며, 구름이 덮인다고 별 자신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으며, 모래바닥 강물에 달빛이 비친다고 혹은 햇볕이 그늘진다고 그 강물이 ‘얕아졌다?, 혹은 ‘깊어졌다?고 할 사람이야 어디 있겠습니까.

3
여러분, 늦은 봄 삼월 밤, 들에는 물기운 피어오르고 동산의 잔디밭에 물구슬 맺힐 때, 실실이 늘어진 버드나무 잎새 속에서 옥반(玉盤)에 금주(金珠)를 굴리는 듯 높게, 낮게, 또는 번거로이 또는 삼가는 듯이 우짖는 꾀꼬리 소리를 소반같이 둥근 달이 등잔같이 밝게 비치는 가운데 망연히 서서 귀를 기울인 적이 없으십니까? 사방을 두루 살펴도 그때에는 그늘진 곳조차 어슴푸레하게, 그러나 곳곳이 이상히도 빛나는 밝음이 살아 있는 것 같으며, 청랑한 꾀꼬리 소리에 호젓한 달빛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보십시오, 그곳에 음영(陰影)이 없다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호젓이 비치는 달밤의 달빛 아래에는 역시 그에 고유한 음영이 있는 것입니다. 지나(支那) 당대(唐代)의 소자첨(蘇子瞻)의 구(句)에 ‘적수공명(積水空明)’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이러한 밤, 이러한 광경의 음영을 떠낸 것입니다. 달밤에는 달밤에 고유한 음영이 있고, 청려한 꾀꼬리의 노래에는 역시 그에 상당한 음영이 있는 것입니다. 음영 없는 물체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존재에는 반드시 음영이 따른다고 합니다. 다만 같은 물체일지라도 공간과 시간의 여하에 의하여 그 음영에 광도의 강약만은 있을 것입니다. 곧, 음영에 그 심천(深淺)은 있을지라도 음영이 없다고는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영국 시인 아서 시먼스의,

At Dogana

Night, and the silence of the night;
In the Venice far away a song;
As if the lyrics water made
Itself a serenade;
As if the waters silence were a song,
Sent up in to the night.

Night a more perfect day,
A day of shadows luminous,
Water and sky at one, at one with Us;
As if the very peace of night,
The older peace than heaven or light,
Came down in to the day.

라는 시도 역시 이러한 밤의 이러한 광경의 음영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면 시혼은 본래가 영혼 그것인 동시에 자체의 변환은 절대로 없는 것이며, 같은 한사람의 시혼에서 창조되어 나오는 시작에 우열이 있어도 그 우열은 시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 음영의 변환에 있는 것이며, 또는 그 음영을 보는 완상자(翫賞者) 각자의 정당한 심미적 안목에서 판별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동탁독산(童濯禿山)의 음영은 낙락장송(落落長松)이 가지 벋어 틀어지고 청계수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울울창창한 산의 음영보다 미적 가치가 낮을 것이며, 또는 개지도 않고 비도 내리지 아니하는 흐릿하고 답답한 날의 음영은 뇌성전광(雷聲電光)이 금시에 번갈아 일며 빗발이 붓듯이 내리쏟히는 취우(驟雨)의 여름날의 음영보다 우리에게 쾌감이 적을 것이며, 따라서 삶에 대한 미적 가치도 적은 날일 것입니다.
그러면 시작(詩作) 가치의 여하는 적어도 그 시작에 나타난 음영의 가치 여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음영의 가치 여하를 식별하기는, 곧 시작을 비평하기는 지난(至難)의 일인 줄로 생각합니다. 나의 애모하는 사장(師匠) 김억(金億) 씨가 졸작 「임의 노래」

그리운 우리 임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임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임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임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를 평하심에 “너무도 맑아 밑까지 들여다보이는 강물과 같은 시다. 그 시혼 자체가 너무 얕다.”고 하시고, 다시 졸작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를 평하심에 “시혼(詩魂)과 시상(詩想)과 리듬이 보조를 가즉이 하여 걸어 나아가는 아름다운 시다.”라고 하셨다. 여기에 대하여 나는 첫째로 같은 한 사람의 시혼 자체가 같은 한 사람의 시작에서 금시에 얕아졌다 깊어졌다 할 수 없다는 것과, 또는 시작마다 새로이 별다른 시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하여 누구의 것보다도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는 자기의 시작에 대한 씨의 비평 일절을 일년 세월이 지난 지금에 비로소 다시 끄집어내어 쓰는 것이며, 둘째로는 두 개의 졸작이 모두 다 그에 나타난 음영의 점에 있어서도 역시 각개 특유의 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려 함입니다.
여러분, 위에도 썼거니와 달밤의 꾀꼬리 소리에도 물소리에도 한결같이 그 특유의 음영은 대낮의 밝음보다도 야반(夜半)의 어두움보다도 더한 밝음 또한 어두움으로 또는 어스름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을에 새어가는 새벽 별빛도 희미하고 헐벗은 나무 찬비에 쳐져 젖은 가지조차 어슴푸레한데, 길 넘는 풀숲에서 가늘게 들려와서는 사람의 구슬픈 심사를 자아내기도 하고 외롭게 또는 하염없이 흐느껴 스며서는 이름조차 잊어버린 눈물이 수신절부(守臣節婦)의 열두 마디 간장을 끊어지게 하는 실솔(??)의 울음을 들어보신 적은 없습니까. 물론 그곳에 나타난 음영이 봄날의 청명한 달밤의 그것보다도 물소리 또는 꾀꼬리 소리의 그것들보다도 더 짙고 완연한, 얼른 보아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봄의 달밤에 듣는 꾀꼬리의 노래 또는 물노래에서나 가을의 서리찬 새벽 우짖는 실솔의 울음에서나, 비록 완상하는 사람에 조차 그 소호(所好)는 다를는지 모르나 모두 그의 특유의 음영의 미적 가치에 있어서는 결코 우열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다시 한 번 시혼은 직접 시작(詩作)에 이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영으로써 현현 된다는 것과, 또는 현현된 음영의 가치에 대한 우열은 적어도 그 현현된 정도 및 태도 여하와 현상 여하에 따라 창조되는 각자 특유의 미적 가치에 의하여 판정할 것임을 말하고 이제는 이 부끄러울 만큼이나 조그만 논문은 이로써 끝을 짓기로 합니다. (1925년, 『開闢』 5월호)

[김소월이 김억에 올린 편지]

안서(岸曙) 김억(金億) 선생님에게

(김소월이 세상을 뜨기 전 1934년 9월 21일에 쓴 편지)

몇 해 만에 선생님의 수적(手迹: 손수 쓴 글)을 뵈오니 감개무량하옵니다. 그 후에 보내 주신 책 『망우초(忘憂草)』는 재삼피열(再三披閱: 여러 번 살펴 봄)하올 때에 바로 함께 있어 모시던 그 옛날이 안전(眼前)에 방불(彷彿)하옴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제(題) 「망우초」는 근심을 잊어버린 망우초이옵니까? 잊어버리는 망우초이옵니까? 잊자 하는 망우초이옵니까?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마음 둘 데 없어 잊자 하니 이리 불러 망우초라 하였으면 좋겠다 하옵니다.
제가 구성 와서 명년이면 10년 이옵니다. 10년도 이럭저럭 짧은 세월이 아닌 모양이옵니다. 산촌에 와서 10년 있는 동안에 산천은 별로 변함이 없어 보여도 인사(人事)는 아주 글러진 듯하옵니다. 세기(世紀)는 저를 버리고 혼자 앞서서 간 것 같사옵니다. 독서도 아니 하고 습작도 아니 하고 사업도 아니 하고 그저 다시 잡기 힘든 돈만 좀 놓아 보낸 모양이옵니다. 인제는 또 돈이 없으니 무엇을 하여야 좋겠느냐 하옵니다.
요전 호(號) 『삼천리(三千里)』에 이러한 절구가 있었습니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雲滅 浮雲自體本無質 生死去來亦如是
라 하였사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옵니다. 초초하지 말자고, 초초하지 말자고. 그러하온데 이 글을 인용하신 그분이 생사운명 좌담회 좌석에서 운명을 부정하였으니 역시 사람의 심리란 ‘모르겠다’ 하였사옵니다. 저는 술이나 한 삼오 배 마신 후이면 말을 아니 하면 말지 어쨌든 제 마음 나는 양으로 하겠다 생각이옵니다.
자고이래로 중추명월(仲秋明月)을 일컬어 왔사옵니다. 오늘 밤 창밖에 달빛, 월색(月色), 옛 소설에 어느 여자 다리 난간에 기대서서 흐득흐득 울며 사(死)의 유혹에 박덕한 신세를 구슬프게도 울던 그 월색, 월색에 백화와 지지 않게 밝사옵니다. 오늘이 열사흗 날 저는 한 10년 만에 선조의 무덤을 찾아 명일 고향 곽산으로 뵈오러 가려하옵니다.
지사(志士)는 비추(悲秋)라고 저는 지사야 되겠사옵니까 마는 근일 몇 며칠 부는 바람에 베옷을 벗어 놓고 무명것을 입고 마른 풀대 욱스러진 들가에 섰을 때에 마음이 어쩐지 먼먼 거친 마음이 먼먼 어느 시절 옛 나라에 살다가 지금은 너무도 소원해진 그 나라에 있는 것 같이 좀 설워 지옵니다.
잊자 하시는 선생님이 잊지 아니하시고 주신 『망우초)』 책은 역문(譯文)이라든가 원작(原作)이라든가 졸(拙) 혹은 가(佳)는 막론하옵고 고침(孤枕)에 꿈 이루기 힘들 때마다 낭공(囊空)에 주붕(酒朋) 없이 무경(無卿)하올 때마다 읽겠사옵니다. 나중으로 글 한 수를 쓰겠사옵니다. 제(題)는 「차 안서선생 삼수갑산운(次岸曙先生三水甲山韻)」이옵니다.

[김억이 쓴 김소월의 추억]

김소월의 추억

안서 김억(김소월의 문학 스승)


이제 소월이는 돌아가고 말았으니, 여기에 이야기가 있다 하면 그것은 모두 돌아볼 길 없는 지나간 그 옛날의 추억에 지나지 않을 것이외다. 한창 젊은 몸으로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을 보여 줄 수가 있었거늘, 그만 그대로 검은 운명의 손은 아닌 밤에 돌개바람 모양으로 우리의 기대 많은 시인 김정식군을 꺾어 버리고 말았으니 우리의 설움은 이곳에 있는 것이외다.
생(生)을 좋아하고 사(死)를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금할 수 없는 인정이외다. 그러하거늘 하물며 재능 있는 사람이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갔음에 이겠습니까? 이는 우리들이 소월의 요절을 맘 깊이 안타까워하는 소이(所以)외다. 그러나 생사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운명이외다. 어떠한 힘으로든지 면할 수가 없는지라 우리는 엄청난 사실에 대하여 한갓 머리를 숙이고 가장 엄정하고 진실하게 자기의 모든 주위를 살펴보는 것이외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생각한 것이런가. 사랑하는 기대 많던 시인이 돌아간 이날에 나는 과연 무엇을 생각할 것이런가. 나는 저 아일랜드의 시인 월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함께

내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은
물처럼 자취 없이 하나하나 스러지니

하면서 혼자 한숨이나 쉴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면 어스름 저녁에 어두워지는 무덤가를 혼자 휘돌면서 서러운 노래나 맘껏 부를 것인가. 또는 그것도 아니라고 하면 돌아오지 못할 그 옛날의 귀여운 기억을 고요히 가슴에 안고 언제든지 그러한 심정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외다.
저 무심한 세월은 혼자서 기록을 지워 놓으면 밤낮 없이 흘러갑니다. 달아납니다. 사람의 마음도 흘러가는 물이외다. 저 맑은 하늘을 떠도는 구름이외다. 물이요 구름인지라 이 아침에는 이 기슭을 돌고, 이 저녁에는 북녘 하늘을 헤매지 않을 수 없고 보니 곳에 따라 때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변하는 것이외다. 이리하여 아 우리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깊고 간절하여도 언제까지든지 우리는 같은 그 심정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외다. 서러운 일이지마는 이 또한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외다. 한껏 취하여 무어라고 노상 떠들던 심정도 언제 한번은 반드시 깨는 법이외다. 깨고 나면 지나간 일은 모두 다 자취 없는 뜬구름이외다. 누구라서 밝은 월색(月色) 아래서 깊이깊이 맺은 언약이 변하지 아니하리라고 굳이 믿고 그것을 단언할 수가 있겠습니까?
소월의 요절을 가장 섧게 흐느끼는 우리의 마음도 하루 이틀 지내는 동안에는 자기도 모르게 잊어버릴 것이외다. 소월을 잃어버린 이날에 나의 서러워하는 점은 이곳에 있는 것이외다. 사람은 어찌하여 잊지 말자던 마음이, 언제든지 사랑스러운 기억을 그대로 가슴에 지니자던 마음이, 언제든 한번은 무심한 세월에 따라 그것조차 잃어버리게 되는가. 이것이 나의 가장 서러워하는 바외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의 이 마음을 참을 수 없이 서러워하는지라 지금 나는 나의 지나간 날의 소월을 추억하는 바외다. 지나가는 세월은 물이라 어름어름하다가는 그 기억조차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외다.
더구나 중앙문단에 지기(知己)가 적은 소월이외다. 비록 작품에 나타난 이 불행한 시인의 사랑스러운 자취는 있을망정 지기로의 기억이나 사람으로의 소월의 자취는 그야말로 찾아볼 길이 드물 것이외다. 일찍이 소월이 노래한 「못 잊어」의 한 편을 나는 이날 와서 생각 아니 할 수가 없는 일이외다. 그것은 아무리 아니 잊으려고 하여도 결국 세월이 지나가면 잊어버린다는 것이외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소월 자신도 이렇게 노래했던 것이외다. 들고 나는 세월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씩 하나씩 기억까지 잊어버리는 것이외다.
생별(生別)도 서럽거든 하물며 사별(死別)이리까. 사별의 불행을 들을 때에 나는 참을 수 없는 안타까운 애석을 소월에게 가지게 되니, 이것도 소월의 읊은 바 서러운 심정이외다.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것이외다. 이 시의 작자인 소월을 잃은 이날에 이 시의 작자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아득한 예전 날로 돌아가서 이 작자의 이 시에서 나의 안타까운 심정을 하소하게 되니, 이것도 무슨 소월과의 뜻하지 아니한 숙연(宿緣)인가 보외다. 더구나 생각하면 이 시는 소월의 십 팔구 세 전후의 작으로 이 시에 대하여 토론도 하였을 뿐 아니라, 그때에는 하루같이 만나서 동서 시인들의 시가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는 것으로써 일과로 삼다시피 했으니, 시의 작가가 불행하게도 요절해 버린 이날에 나의 심정이 어떻게 어두워지지 아니할 수가 있을 것입니까? 생각하면 모두가 지나간 꿈이외다.
그런지라 나는 나의 나날이 희미해 가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소월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외다. 시간에 대한 이 시인의 태도라든가. 그 생활이라든가 하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적어 보고자 하거니와 이것이 살아 있는 내가 불행한 이 시인의 요절을 서러워하는 고요한 소리외다.
만일 그 사람의 인야(人也)와 취미와 사상을 사생활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사신(私信)을 보는 것이 제일 가까운 길일 것이외다. 더구나 그 사신이 서로 우의를 허한 사람에게 보낸 것이라면 그 속에서 우리는 전체로의 그 사람의 인야를 넉넉히 엿볼 수가 있는 것이외다. 이리하여 나는 소월의 인야를 좀 더 나타내기 위하여 이 불행한 시인이 내게 보낸 사신을 하나 공개하겠습니다. 이것이 비록 소월에게 예가 아닐지 모르나마 필요상 어찌할 수 없게 되었으니 지하의 시인도 용서할 것이외다.
나는 작년 나의 역시집(譯詩集) 「망우초(忘憂草)」를 소월에게 한 권 보냈던 것이외다. 그것에 대한 화답이외다. 실로 나와는 서로 길이 달라지면서부터 최근 삼사 년 동안 별로 서신 왕래조차 잦지 못하여 한 해에 하나, 이태에 한 장 된 적도 없지 아니하외다. 그리고 나와 이 시인과는 어찌어찌 되어 소위 사제의 분의(分誼)가 있었던 것이외다.
“몇 해 만에 선생님의 수적(手迹)을 뵈오니 감개무량하옵니다. 그 위에 보내 주신 책 「망우초」는 재삼피열(再三披閱)하올 때에 바로 함께 있어 모시던 그 옛날이 안전(眼前)에 방불(彷彿)하옴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제(題) 「망우초」는 근심을 잊어버린 망우초이옵니까. 잊어버리는 망우초이옵니까. 잊자 하는 망우초이옵니까?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마음 둘 데 없이 잊자 하니 이리 불러 망우초라 하였으면 좋겠다 하옵니다.”
하였으니 이곳에서도 나는 그때의 소월의 심정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외다. 잊으려도 잊을 수 없는 많은 시름을 잊자 하는 설움을 비록 이러한 이야기에서나마 나는 발견하였던 것이외다. 그의 심정에는 원망스러운 시름이 있었던 것이외다.
그리고 다시 나아가 이 불행한 시인은 자기의 신세를 이야기하였으니
“제가 구성 와서 명년이면 10년이옵니다. 10년도 이럭저럭 짧은 세월이 아닌 모양입니다. 산촌에 와서 10년 있는 동안에 산천은 별로 변함이 없어 보여도 인사(人事)는 아주 글러진 듯 하옵니다. 세기(世紀)는 저를 버리고 혼자 앞서서 간 것 같사옵니다. 독서도 아니 하고 습작도 아니 하고 사업도 아니 하고 그저 다시 잡기 힘든 돈만 좀 놓아 보낸 모양입니다. 인제는 또 돈이 없으니 무엇을 하여야 좋겠느냐 하옵니다.”
이것이외다. 이 시인이 여러 가지로 일이라고 하여 보다가 모두 다 패(敗)를 보고 무참한 현실을 쓸쓸히 들여다보는 것이외다. 나로서는 금할 수 없는 깊은 암수(暗愁)를 가졌던 것이외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것에 실망을 하고서 스스로 자기 그림자를 돌아보면서 한탄하던 것이외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어
“요전 호 「삼천리(三千里)」에 이러한 절구가 있었습니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雲滅, 浮 雲自體本無質, 生死去來亦如是라 하였사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옵니다. 초조하지 말자고. 초조하지 말자고. 그러하온는데 이 글을 인용하신 그분이 생사운명 좌담회 좌석에서는 운명을 부정하였으니 역시 사람의 심리란 ‘모르겠다’ 하였사옵니다. 저는 술이나 한 삼오 배 마신 후이면 말을 아니 하면 말지 어쨌든 제 마음 나는 양으로 하겠다 생각이옵니다.”
하였으니 이곳에서 시인의 마음이 어떠한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외다.
또다시 소월은 붓을 내리어 자기의 신세를 말하였으니 이것은 때가 중추명월(仲秋明月)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회고의 정이 있었던 것이외다.
“자고이래로 중추명월(仲秋明月)을 일컬어 왔사옵니다. 오늘 밤 창밖에 달빛, 월색(月色) 옛 소설에 어느 여자 다리 난간에 기대서서 흐득흐득 울며 사(死)의 유혹에 박덕한 신세를 구슬프게도 울던 그 달빛, 그 월색이 백주(白晝)와 지지 않게 밝사옵니다. 오늘이 열사흗 날 저는 한 10년 만에 선조의 무덤을 찾아 명일 고향 곽산으로 뵈오러 가려 하옵니다.”
하고 나서 다시
“지사(志士)는 비추(悲秋)라고 저는 지사야 되겠사옵니까마는 근일 몇 며칠 부는 바람에 베옷 을 벗어 놓고 무명것을 입고 마른 풀대 욱스러진 들가에 섰을 때에 마음이 어쩐지 먼먼 거 친 마음이 먼먼 어느 시절 옛 나라에 살다가 지금은 너무도 소원해진 그 나라에 있는 것같이 좀 서러워지옵니다.”
라 하였으니 비록 시필(詩筆)은 놓아 버렸을망정 지나간 시작(詩作)에 열중하던 그 시절을 섧게 돌아보던 것이외다. 그리고 그 뒤 서신에는 다시 시작을 하겠노라고도 하였으나 여하간 소월의 심정은 차차 시작으로 옮겨 오던 것이외다. 그러나 그 기대되던 시작을 보여 주지 못하고 그대로 요절해 버렸으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스러운 애석에 가슴을 두드리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이외다.
그리고 끝으로 소월은
“잊자 하시는 선생님이 잊지 아니하시고 주신 「망우초」 책은 역문(譯文)이라든가 원작(原作) 이라든가 졸(?) 혹은 가(佳)는 막론하옵고 고침(孤枕)에 꿈 이루기 힘들 때마다 낭공(囊空)에 주붕(酒朋)없이 무료하올 때마다 읽겠사옵니다. 나중으로 글 한 수를 쓰겠나이다. 제(題)는 「차 안서선생 삼수갑산운(次 岸曙先生 三水甲山韻)」이옵니다.
하고는 소월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시 한 수를 보냈던 것이외다. 소월도 무심히 쓴 것이요 받아 본 나도 무심히 받아 본 것이언마는 지금으로 보면 그것이 소월의 유작(遺作) 이었으니 이 또한 이 편지를 볼 때마다 나로서는 개인으로의 다시없는 애석(愛惜)에 망연자실하는 바외다.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메냐
오고 나니 기험(崎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이 예로구나.

삼수갑산이 어디메냐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로다 내 고향
아하, 새더라면 떠가리라.

임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삽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내 고향을 가고지고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이날 와서 편지와 함께 노래를 공개하는 나의 마음은 실로 쓰라리외다. 그러나 이것도 하루 이틀 지나가노라면 다 잊어버릴 때가 있을 것이니 돌아간 박행(薄倖)의 시인에게 예는 아니나마 지금 발표하지 아니하면 이것이나마 후일에는 잃어버릴 것이외다.
이곳에서 생각나는 것은 소월의 제일 초기작에 「먼 후일」이라 제(題)한 시가 있으니, 그 역시 잊으려야 잊을 것이 아니요 하도 세월이 오래 지나가는 동안에 그만 자기도 모르게 무심히 잊었다는 것이외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외다. 아무리 아니 잊고 이 목숨이 있는 동안에는 사랑스러운 기억을 고요히 가슴에 붙안고 언제든지 생각하자고 하나 하늘 같은 심두(心頭)에 끊지 아니하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어나니 어떻게 그 하늘이 언제든지 같은 빛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소월은 순정(殉精)의 사람은 아니외다. 어디까지든지 이지(理智)가 감정보다 승(勝)한 총명한 사람이외다. 그리고 소위 심독(心毒)한 사람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사물에 대하여 이해의 주판질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외다. 다른 사정도 없는 바는 아니었거니와 이 시인이 시작(詩作)을 중지하고 달리 생활의 길을 찾던 것도 실은 시로서는 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이지에서외다.
도교(東京) 가서 문과(文科)에 들지 아니하고 상과(商科)를 택한 것도 또한 그것의 하나외다. 그리고 아무리 감정이 쏠린다 하더라도 이지에 비추어 보아서 아니라는 판단을 얻을 때에는 이 시인은 언제든지 고개를 흔들며 단념하던 것이외다. 강직(剛直)하였습니다. 강직하였는지라 남의 잘못을 발견할 때에는 용서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어디까지든지 모난 편이요 이편으로 저편으로 둥글게는 있을 수 없던 사람이외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설움에도 보드라운 설움은 가질 수가 없고 원망스러운 설움을 가졌던 것이외다. 20세를 지낸 뒤의 그의 시작에 나타나는 설움 같은 것이 그것이외다.
이러한 사람이었으니 그에게는 극기의 힘이 있었고 자체의 과단이 있었던 것이외다. 소위 재래식으로 말한다면 그는 시인으로서 풍류미(風流美)가 적었던 것이외다.
그러나 한창 꽃 같은 그의 20세 때에는 이 한때의 감정에 움직인 일도 적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아직 사상이 고정되지 아니하였고 체험 같은 것이 적었기 때문이외다. 도리어 이 시인의 시작에는 한창 감정적이던 20세 전의 것이 순정(純情)으로의 포근포근한 보드라운 시가 많았던 것이외다. 저 「임의 노래」 같은 것이 그것이외다.

그리운 우리 임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임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임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대로 임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이 얼마나 부드럽고 신비로운 노래입니까? 순정을 고이고이 자아낸 시외다. 본시 소월의 시단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큰 공적은 그 표현수법의 하나로의 언어이외다.
그 당시로 말하면 모두 다 외국어식 언어 사용에 열중하여 조선말다운 조선말을 사용하지 못하던 때에 소월은 순수한 조선말을 붙들어다가 생명 있는 그대로 자기의 시상(詩想) 표현에 사용하였던 것이외다. 아마 이 점에서는 그때의 어떠한 시인이든지 소월에게 훨씬 미치지 못하던 것인 줄 압니다. 여하간 그 당시에 이러한 조선말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하나의 경이(驚異)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외다. 그리고 시고(詩稿)의 수정에 대하여 여간 고심하지 아니하던 것이외다. 그야말로 후딱 써 버리지 아니하고 어디까지나 세심한 주의를 다해 고쳤다, 지웠다, 지웠다, 고쳤다 하기를 여러 번 하고 하고 또 하던 것이외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음조(音調)에다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하여, 가령 같은 7?5조(七五調)라도 그것을 그대로 쓰지 아니하고 행을 이렇게도 나누고 저렇게도 나누고 찍어서 그것에다 움직일 수 없는 음조미(音調美)를 주던 것이외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이것은 소월의 「가는 길」의 두 절이거니와 이 시구(詩句)가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상당한 고심이 있었으니, 시구와 수정이 다 끝난 뒤에도 이 시구의 행별(行別)은 지금의 그것과는 자못 달랐던 것이외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이렇게 7.5조로 소월은 음조미를 돕기 위하여 두 절로 나누어 지금의 것과 같이 만들어 놓았으니, 이 시 같은 것은 누가 읽는다 하더라도 작자의 행렬(行列)에 따라 구별해 놓은 음조미대로 읽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이외다. 그는 그만치 세심한 주의를 호흡에다 연관시켜 그 음조를 생각하던 것이외다. 그리고 그다음 두 절을 들어 놓으며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이거니와 같은 7.5조의 시구라도 이렇게 행별을 달리하는 곳에 그 음조미는 사뭇 달라지는 것이외다. 지금은 모르거니와 그 당시에 더구나 소위 신시(新詩)라는 것이 들어온 지 몇 해 아니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용어(用語)니 그 향조(響調)니 하는 것을 거의 돌아보지 아니하던 그 당시에 이렇게 주밀(周密)한 생각을 가졌던 시인이 몇 사람이나 되었을 것입니까? 나의 생각 같아서는 소월을 제하고는 별로 생각한 시인이 없었을 듯하외다. 그리고 이 시인이 어떻게 그 용어를 붙잡아다가 살려서 사용하였는지, 지금의 우리로도 실로 탄복하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이외다. 만일 이 시인이 중도에 시작을 단념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나아갔더라면 우리의 시단(詩壇)은 좀 더 많은 유산을 받았을 것이거늘 생각할수록 아까운 일이외다.
만일 같은 시가(詩歌)라도 그것을 나누어 민요(民謠)니 시가(詩歌)니 하는 형식적 구별을 할 수가 있다면 소월에게 민요 이외의 시가가 없다는 것은 아니외다. 그러나 그것들이 민요의 시에 의하여 딱딱하여 이지(理智)를 거쳐 나온 것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 유감이외다.

들가에 떨어져 나가 앉은 멧기슭의
넓은 바다의 물가 뒤에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다시금 큰길을 앞에다 두고,
길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제가끔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이얀 여울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 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이것은 「나의 집」의 시거니와 이것을 만일 이 시인의 민요에 비겨 본다면 그 얼마나 순정의 빛이 적은지 손쉽게 볼 수 있는 것이외다. 소월 자신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거니와 민요시인으로 자기를 부르는 것을 싫어하여 시인이면 시인이라 불러 주기를 바라던 것이외다. 그러나 사실은 역시 그는 어디까지든지 민요형에 남보다 유다른 솜씨를 보여 주던 것이외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웠습니다.
이것은 이 시인이 남겨 놓은 시집 《진달래꽃》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용이하게 알 일이거니와 일찍이 「접동새」라 제(題)하고 노래한 것을 나는 이곳에 인용하겠습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시재(詩材)를 전설에다 가져다가 시작(詩作)시킨 것이외다. 이 시인의 용어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 동시에 또한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음조미를 어디까지든지 나타낸 데는 실로 탄복할 바이외다. 이만한 별하지 아니한 상(想)을 가져다가 이만큼 자연스럽게 시화(詩化)시킴에는 무엇보다도 저자의 시적(詩的) 소질이 보이지 아니할 수가 없는 일이외다. 나는 이것을 무슨 가장 좋은 가작의 하나로 인용한 것이 아니요, 이 시인이 표현 수단으로 용어와 음조에 대하여 어떻게 유의하였는지 그것을 보자 함이외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저 유명한 「진달래꽃」이라든가 「삭주구성」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실로 소월의 민요에는 두고두고 애송할 만한 작(作)이 적지 아니하외다. 이것으로써 보면 우리 시단은 분명히 높이 평가할 만한 시인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지라 일찍이 외우(畏友) 월탄(月灘)이 여러 해 전 《개벽》지에다 “무색한 시단에 소월의 시가 있다.”고 하면서 이 시인의 노래를 가장 높이 평가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로 보면 월탄의 그 말이 결코 한갓된 찬사가 아니었던 것이외다. 그러나 이미 소월이 돌아간 이날에는 이것도 다 지나간 옛날이외다. 한갓되이 자취도 없어질 기억이 있을 뿐이외다.

첫날의 길동무
만나가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이것은 박행한 이 시인이 노래한 「팔베게 노래」의 첫 절이거니와 이 시를 만일 월탄이 보았다면 그 무어라고 하였을는지 생각하기 어렵지 아니한 일이외다. 이 시는 너무도 길어서 인용하지 아니하거니와 그 상(想)을 홍루(紅淚)에서 취하여 한탄스러운 신세와 함께 단야(短夜)의 꿈을 노래한 것이외다. 소월이 몸소 이러한 체험을 가졌는지 그것은 나의 알 바가 아니거니와 여하간 그 애절한 실감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외다.

오늘은 하룻밤
단잠의 팔베개
내일은 상사의
거문고 베개라.

집 뒷산 솔버섯
다투던 동무야
어느 뉘 가문에
시집을 갔느냐.

라 한 것이라든지 한갓된 문자의 장난이 아니요 이 시의 전문을 다 읽고 나면 그야말로 원망스러운 애절이 그윽하게 다시금 손을 가슴에 대고 무엇을 생각게 하던 것이외다.
그리고 소월의 시에 나타나는 원망스러운 한(恨)과 고독(孤獨)은 역시 소월 그 자신의 성격이외다. 가끔 가다가 자폭(自爆)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는 것도 또한 소월의 생활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면이외다.
불우한 속에서 뜻을 얻지 못하였는지라 이 시인의 심독한 성격은 원망스럽게도 그것을 단념해 버린 것이외다. 사위(事爲)에는 패(敗)를 보고 생활이 안정을 잃게 되니 그의 고독은 컸던 것이외다. 그리고 복받쳐 오르는 울분에 가끔 소월은 총명한 이지의 판단을 잃어버렸던 것이외다.
대체로 보아서 20세 전후의 작(作)에 좋은 것이 많았고, 그 이후의 작에는 딴딴한 이지가 보이는 것은 결코 소월 그 자신의 성격이던 것이외다. 또 조숙한 결과라고 할 만도 한 것이외다. 여하간 이 시인의 짧은 33세의 일생은 대단히 불행하였습니다. 불행하였는지라 이 시인에게 대한 우리의 애석은 그 끝을 모르는 바외다.
그리고 언제든지 소월이 생사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요절(夭折)은 저다병(楮多病)의 그것이라기보다도 요절을 의미하는 무슨 전조(前兆)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아니하외다.
생사에 대하여는 소월로서 자기다운 무슨 확신이 있는 듯이 조금도 두려워할 것 아니라는 듯한 태도로 이야기하던 것을 나는 이날 와서는 도리어 혼자 이상히 생각지 아니할 수가 없는 일이외다.
이 박행한 시인에 대한 더듬길 될 만한 나의 추억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우선 이만한 것으로 끝을 맺고 다른 기회에 다시 적어보려 하거니와 다시금 금할 수 없는 애석한 생각과 함께 나는 머리 숙여 이 박행한 시인 김소월의 평화로운 명목을 고요히 비는 바외다.
그리고 이 시인이 우리에게 남겨 준 작품 유산을 나는 언제든지 섧은 심정으로 대할 것을 서러워하는 바이다.

(「조선중앙일보」 1935년 1월 14일)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챗봇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