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벌어진 사고, 부상, 혹한 그리고 생존 본능 한 쌍의 장갑이 두 가족의 운명을 바꾼다 미국의 소설가 수잰 레드펀의 『한순간에In an Instant』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2020년 3월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즉시 영미권에서 12,000여 건의 온라인 평가가 달리고, 여전히 아마존 상위 순위권 내에 머물렀던 책으로, 재난을 당한 두 가족의 생존을 위한 분투가 흥미진진하게 담긴 이야기이다. 참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도덕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매우 감동적이면서 밀도 있게 탐구한다. 한겨울, 스키 여행 중 갑작스러운 자동차 추락 사고로 막내딸 핀이 즉사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한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혹한의 상황에 무방비로 놓인 사람들,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한 켤레의 어그 부츠와 한 쌍의 장갑을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하게 된다. 가족들은 그날 아침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부츠를 신고 장갑을 끼며, 아무도 그 방한 용품들이 친밀했던 두 가족의 우정을 깨뜨리는 것에 더해 자신들의 운명까지도 바꾸어 놓을 줄은 몰랐다. 두 가족의 우정과 삶을 산산조각 낸 사고와 그날 있었던 미묘한 일들에 대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현장에 있던 열한 명이 각각 다르게 기억한 조각들로 인해 더욱 혼란스럽다. 작가는 독자가 그 조각들을 꿰어 맞추도록 즉사한 막내딸 핀의 입을 빌어 능숙하게 등장인물들을 오가며 상황을 묘사한다. 가족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지닌 솔직하고 맑은 영혼인 열여섯 살 핀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는 한 가족의 새로운 미래를 다시 엮어 나간다.
상실, 생존, 용서 그리고 회복에 관한 강렬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모든 종류의 감정과 그 이상을 내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희망의 감정이다. 총 94챕터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는 마치 영화의 장면들 같다. 챕터 하나하나를 읽어 가다 보면 처음에는 슬픔과 분노가, 이후에는 기쁨, 안타까움, 그리고 마지막에는 희망의 감정에 북받치게 된다. 우리는 생존이 최우선이 된 혹한의 상황에서 일어난 분투와 구조 그리고 이후의 회복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인간들의 대처와 선택이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묘사된 인간의 나약함과, 동시에 느끼게 되는 강인함이 인상적이다.
책속에서
[P.67~68] 나는 엄마를 소리쳐 부른다. 소리치고 또 소리쳐 부른다. 아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의 외침에는 소리가 없다. 캠핑카의 앞쪽 끝부분이 아빠 쪽으로 우그러졌다. 아빠의 몸은 운전석 창과 핸들 사이에 옆으로 끼워져 있다. 다리는 부러지고 대퇴골의 아래쪽 반은 청바지를 뚫고 나와 피가 새어 나온다. 얼굴은 깨진 유리 파편에 온통 찢기고 눈과 함께 얼어붙었다. 사방은 온통 피투성이다. 제발, 나는 애원한다. 제발 와서 아빠를 좀 도와줘. 파르르 떨며 눈을 뜬 아빠는, 통증뿐 아니라 점점 선명해지는 시야로 들어오는 광경에 겁에 질려 한 번 더 신음을 내뱉는다. 아빠는 작은 소리로 내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고 끔찍한 비명을 내지른다. 아빠를 따라 같이 내 쪽을 돌아본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버린다. 나의 죽음은 생각했던 것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도, 고통 없는 죽음도 아니었다. 반쯤 잘린 내 머리에 있는 눈과 입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벌려진 채 굳어 있고 괴기하게 아빠 쪽을 향해 있다. 내 몸에 그 많은 피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 아빠 주변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아빠는 자리에서 벗어나 나에게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끔찍한 통증이 뒤따른다. 그런 아빠에게 나는 제발 그대로 있으라고, 나는 괜찮고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소리친다. 나는 이런 말들을 마구 쏟아 낸다. 고함도 질러 본다. 생각으로 전달해 보려고도 하지만, 아빠는 듣지 못한다. 계속 근육을 혹사시키며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간절하게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지켜보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마침내 내 기도가 통해서 아빠가 고통으로 기절할 때까지.
[P. 87~88] 두 사람은 앞 유리창을 눈으로 막을 때 묻히지 않도록 내 시체를 운전석에서 끌어낸 후 차의 기울어진 앞부분 쪽으로 옮겨 어느 정도 주변으로부터 보호되도록 앞바퀴 뒤쪽에 눕혀 놓았다. 엄마는 내 어그 부츠와 양말 그리고 운동복 바지를 벗기면서 훌쩍거린다. 카일은 내 파카와 티셔츠를 벗긴다. 나는 날이 어두워 나의 벗은 몸이 카일에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바라본다. 이미 죽은 다음에도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다니 참 웃기는 일이다. 다 끝나자, 엄마가 앞 유리창을 통해 옷을 가지고 차로 들어간다. 「모, 이거 입어.」 엄마가 옷 더미를 옆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모가 침을 삼키며 추위 때문에 떨던 것보다 더 심하게 몸을 떤다. 어둠 속에서도 내 코트에 묻은 피가 보인다. 「핀 옷이에요?」 물어보는 내털리의 목소리가 딸꾹거린다. 내털리는 내가 거기 없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았거나 아니면 잊고 있다가 이제야 다시 생각난 것처럼 행동한다. 내털리의 뇌는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털리의 말에 엄마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캐런 이모와 내털리를 발견하고는 마치 그들이 거기 있었던 사실을 잊었던 듯 흠칫 놀란다. 캐런 이모의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동공이 확장된다. 「부츠는 내털리가 신어야 될 것 같아.」 내털리를 껴안은 이모의 거친 눈길이 내 옷더미 위를 잽싸게 내달린다. 엄마의 얼굴이 캐런 이모의 말을 처리하느라 옆으로 기운다. 마치 데이터가 추가로 입력되어 사고를 재편성하려는 것처럼. 모와 내털리 둘 다 방한에 적합하지 않은 부츠를 신었다. 엄마 역시 더 나을 것도 없는 발목까지 오는 군화식 부츠를 신었다. 어쩌면 캐런 이모가 엄마를 바라볼 때 보인 표독한 눈길 때문이었는지도, 아니면 엄마가 창문을 막는 데 이모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아서 인지도, 아니면 나는 죽었고 모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여서인지도, 아니면 엄마가 카민스키 부인에게 모를 돌보겠다고 한 약속 때문인지도, 또 아니면 엄마는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뭐든, 엄마는 캐런 이모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다시 말한다. 「모, 네가 신어.」 그리고 아무 말없이 몸을 돌려 다시 전장으로 되돌아간다. 모는 추워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다. 모의 근육은 격렬히 떨리고, 손가락은 얼어서 곱은 상태다. 그래도 가까스로 내 티셔츠와 파카를 껴입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부츠를 벗고, 찢어진 청바지 위에 내 운동복 바지를 겹쳐 입은 뒤 내 작은 어그 부츠에 발을 밀어 넣는다. 내 양말은 장갑처럼 손에 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캐런 이모의 쏘아보는 눈길과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내 파카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턱까지 조여 맨다.
[P. 116~117] 오즈가 눈을 가늘게 뜬다. 내 동생은 똑똑하지는 않지만 이상하리 만치 직감이 발달해서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대체적으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금세 표정이 어두워진 오즈는 아랫입술을 밖으로 삐죽 내밀며 머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한다. 「우리 누나.」 그의 말에 내 심장이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오즈가 아주 뜻밖의 행동을 한다. 아무 말 없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내 옆에 무릎을 꿇고는 내 얼굴을 눈으로 덮는다. 그러고는 속삭인다. 「잘 자, 누나.」 오즈가 일어서자, 밥 삼촌이 말한다. 「오즈, 난 걱정이 돼.」 왠지 삼촌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내 몸의 털들을 쭈뼛쭈뼛 곤두서게 만든다. 오즈가 고개를 갸웃한다. 「네 엄마가 떠난 지 한참이 지났잖아. 가다가 길을 잃었을까 봐 말이야.」 오즈가 미간을 찌푸리고, 나의 맥박이 요동친다. 「누군가 너희 엄마를 찾으러 가야 할 것 같아.」 밥 삼촌이 말한다. 오즈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가고 싶은데, 발목을 너무 심하게 다쳐서.」 나는 고개를 흔든다. 너무 믿어지지가 않아서 공포감마저 천천히 찾아 든다. 「내가 갈 수 있어.」 오즈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신이 나서 말한다. 안 돼!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다. 나는 밥 삼촌 앞에 코가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간다. 이러지 마세요. 「엄마를 찾을 수 있겠어?」 밥 삼촌은 마치 오즈의 생각에 감동이라도 한 듯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한다. 「빙고가 같이 가면 돼.」 오즈가 말한다. 「빙고는 누구든 찾을 수 있어. 핀이랑 숨바꼭질하면 언제나 빙고가 찾아냈어. 누나는 아주 잘 숨는데도.」 「아주 좋은 생각이네!」 제발요. 나는 애원한다. 제발, 밥 삼촌,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다시 생각해 봐요. 「빙고가 같이 가면, 엄마랑 여기로 다시 돌아오는 길을 찾을 때도 도움이 되겠네.」 나는 오즈를 돌아본다. 아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오즈의 얼굴은, 남자들끼리 뭔가 심각한 대화를 할 때 짓는 아빠의 표정을 따라하고 있다. 모, 도와줘. 나는 울부짖는다. 하지만 모는 이 상황을 전혀 알 리가 없다. 모는 안에서 오즈가 돌아오기 전에 되도록 빨리 눈을 녹이는 데만 집중한다. 「가기 전에 말이야.」 밥 삼촌이 말한다. 「내가 줄 게 있어.」 오즈는 여전히 아빠의 표정을 흉내 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 공포감이 차가워진다. 상황이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더 나빠지는 게 확실하다. 「너하고 빙고가 엄마를 찾다 보면 힘을 내기 위해 먹을 게 필요할 거야.」 「배고파.」 오즈가 말한다. 「맞아. 자,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하자. 나한테 크래커 두 봉지가 있어.」 밥 삼촌은 캐런 이모 가방에 들어있던 셀로판지에 포장된 짭짤한 크래커를 주머니에서 꺼낸다. 「이거랑 네 장갑이랑 바꾸자.」 나는 더 이상 애원하지 않는다. 오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방금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거래를 성사시킨 것처럼 장갑을 홱 벗어서 밥 삼촌에게 건네고, 크래커를 얼른 빼앗듯이 가져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런 믿기지 않을 만큼 섬뜩한 장면을 바라보는 일 밖에없다. 「나 좀 올려줘.」 밥 삼촌의 말에 오즈는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그가 차 문 쪽으로 올라가도록 받침대를 만들어 준다. 밥 삼촌은 오즈를 돌아보지도, 행운을 빌어 주지도 않는다. 그는 오즈와 빙고에게 춥고 광활한 숲속을 헤쳐 엄마를 찾아오라는 불가능한 임무를 맡기고 밖에 놔둔 채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