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58] 계속 설거지만 하면서도 그 심각성을 모르던 나는 어느 날 진지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말이다. 숱한 잘못으로 벌을 받고, 정작 하고 싶은 야구는 하지 못한 채 주방에서 설거지만 하는 이 현실. 훈련을 게을리 하니 좋았던 성적이 유지될 리가 없었고 그 결과 경기에서 제외되는 날이 늘었다.
‘아, 이러면 안 되겠구나. 일본에 온 이유가 야구 때문인데, 야구해야지.’
설거지만 1년 하고 얻은 깨달음이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훈련에 집중했다. 감독님과 선수단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다시 운동화 끈을 조였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황목치승이 돌아왔음을 알리고 싶었다. 한 달에 6만 개의 스윙을 목표로 연습했다. 양으로 따지면 하루에 2,000번 스윙을 하는 셈이다. 한 번은 개인훈련을 새벽까지 하다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숙소 사우나에서 잠이 들어 질식할 뻔했다.
[P. 122] 또 이런 날이 있었다. 연습이 끝나면 대체로 저녁 6시에 식사하러 간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감독님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연습이 끝나질 않았다. 오후 4시를 지나 5시, 6시가 지나도 꿈쩍도 하지 않으셨다.
“오늘 무슨 일 있으신가? 왜 안 끝나지?”
“모르겠어, 너무 배고프다...”
시곗바늘은 저녁 8시를 가리켰다.
“우리 지금 몇 시간 째 치고 있는 거지?”
“글쎄, 일단 치자!”
“오늘 안으로는 끝나겠지?”
“...”
이윽고 밤 9시가 지나자 연습이 끝났다.
“너희에겐 아직 절실함이 없어.”
“왜 프로에 가지 못하고 여기에 있는지 잘 생각해 봐라”
감독님은 우리의 연습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답답했던 것이다. 당연하다. 프로에서 잘하는 선수들만 보다가 이곳에 오셨으니 앞이 캄캄할 수밖에. 감독님 말대로 죽을힘을 다해야만 했다. 다시금 내 위치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언지 깨달았다. 지금 내 인생은 '모'아니면 '도'다. 하다가 몸이 부서지면 거기까지고, 살아남으면 희망을 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