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 다른 우주 속으로 들어가기-“서정성과 통속성의 이중 심연 사이에 드리워진 머리카락 위를 걸어서” 귀스타브 플로베르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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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귀스타브 플로베르 탄생 200주년 구상과 표현의 일치라는 완전함에 도전하며 예술적 문체로 벼려낸 삶의 초상과 인류 보편의 심리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귀스타브 플로베르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 『마담 보바리』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0번으로 출간된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자리잡은 이후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설, 단 하나의 단어도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 없다는 ‘일물일어설’을 낳은 작품, “플로베르가 없었다면 프루스트도, 조이스도 없었을 것이고 체호프도 지금의 체호프가 아니었을 것”(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이라는 단언에 가장 크게 기여한 소설, 출간된 지 백육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읽히며 그 항구적인 문학적 가치를 증명하는 이 고전을 삼십 년 넘게 프랑스 문학과 영미 문학을 유려한 우리말로 소개하며 국내 독자들에게 탄탄한 신뢰를 쌓아온 번역가 김남주의 번역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현대소설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기념비적 고전 희대의 논란을 딛고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탄생하다
무명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문제작 『마담 보바리』는 1856년 문학잡지 『르뷔 드 파리』에 6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부르주아 기혼 여성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이 작품은 연재 시기부터 평단뿐 아니라 대중 독자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으나 한편으로는 불륜 이야기에 반감을 가진 구독자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잡지사 측은 이러한 독자의 반발과 더불어, 프랑스 제2제정 당국으로부터 종교 모독과 풍기문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소설의 내용 일부를 삭제하라는 요구까지 직접적으로 받는다. 이에 따라 내연 관계에 있는 남성과의 밀회가 생생하게 그려진 마차 장면(제3부 1장)을 포함해 후반부(제3부 9장)의 몇몇 장면을 편집부에서 자체적으로 검열해 삭제하는 조치를 취한다. 그럼에도 플로베르와 잡지 편집장은 이듬해 1월 결국 나란히 기소되어 법정에 선다. 선정적이고 반사회적 작품을 발표해 “미풍양속과 대중의 종교심을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플로베르는 마리앙투안쥘 세나르 변호사를 선임했고, 그의 변론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면이 있지만 일말의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음”이 인정되어 마침내 무죄판결을 받는다. 그는 그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가 1857년 『마담 보바리』의 초판을 출간하며 세나르에 대한 헌사를 추가한다. 19세기 프랑스 문단을 뒤흔든 이 희대의 문학 소송은 이후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매김한다. 『마담 보바리』를 발표하기 전까지 플로베르는 책을 한 권도 출간하지 않은 작가였다. 10대 때부터 문학에 관심과 재능을 보였고 16세에 지역 문예지에 처음 글을 발표하며 습작을 시작했으나 부친의 바람대로 파리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신경성 발작으로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고, 고향인 루앙 교외의 크루아세에 정착한 뒤부터 자신이 원하던 창작활동에 전념한다. 1849년 『성 안투안의 유혹』의 초고를 완성하지만 친구들로부터 어마어마한 혹평과 함께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써보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뒤 일 년 반에 걸쳐 스페인, 베이루트, 예루살렘,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고 크루아세로 돌아온 플로베르는 이전까지의 형이상학적이고 낭만성 짙은 작품세계에서 벗어나 범속한 삶으로부터 소설의 소재를 찾고 일상적 사건과 현실을 빈틈없이 꼼꼼하게 기록해나가며 새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낭만주의의 종말과 사실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이 탄생한다. 그는 그전까지의 서정적 경향을 띤 작품들과는 달리 객관성과 정확성을 견지한 사실적 색채의 작품 『마담 보바리』를 완성함으로써, 문체와 구조, 주제 등 모든 면에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현대소설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에마 보바리라는 고유한 인물에서 길어올린 인류 보편의 심리 “마담 보바리는 곧 나다”
플로베르는 당시 노르망디 지역에서 유명했던 ‘들라마르 사건’, 즉 불륜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고 결국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 어느 의사의 아내 델핀 들라마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마담 보바리』를 구상했다. 델핀을 모델로 삼아 창조한 인물 에마 보바리는 플로베르의 펜 끝에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재탄생하며 세계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 인물이 된다. 유복한 농장주의 외동딸인 에마 보바리는 감상적이고 예민한 면모를 지닌 인물로 시골에서의 조용한 생활을 권태로워한다. 감상적인 기질의 소유자로서 자주 몽상에 빠지곤 하며, 어디서든 감동을 찾아내고 싶어하고 자신의 마음에 호소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쓸모없다고 여기고 거부하기 일쑤다. 그는 “장식해놓은 꽃 때문에 교회를 사랑했고, 감상적인 노랫말 때문에 음악을 사랑했으며, 감정을 휘젓는 힘 때문에 문학을 사랑했다.(63쪽)” 로맨틱한 연인, 영원한 사랑, 성의 안주인처럼 고급스러운 삶을 꿈꾸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에마는 어느 날 아버지의 다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온 의사 샤를 보바리를 만나 결혼한다. 샤를은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해주는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이지만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지 못하고 에마의 기분이나 상태에 대해서도 눈치채지 못하는 둔감한 남자다. 에마는 이제껏 읽어온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묘사된 사랑과 도취, 열정, 희열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이 결혼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맛보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결혼하기 전 그녀는 자신이 사랑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마땅히 따라와야 할 행복이 느껴지지 않자 어쩌면 자신이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마는 책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도취, 열정, 희열 같은 말이 실제 삶에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_56쪽
에마는 곧 다른 남자들과 인연을 맺고 사랑에 푹 빠져 밀회를 이어간다. 거짓말이 늘어가고 몸치장과 사치스러운 생활에 드는 돈도 불어나면서 빚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여간다. 끝없이 파도에 휩쓸리며 파멸을 향해 가는 이러한 에마의 삶은 인류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시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통속적 줄거리로만은 요약되지 않는 인간 심리의 총체가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플로베르는 투철한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에마 보바리라는 인물을 통해 체현되게끔 했다. 그는 삶에 대한 권태와 환멸,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욕망,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한 갈망, 타고난 서정성과 낭만적 기질 등의 요소를 배합해 한 인물을 창조해내고, 그 인물의 심리를 정교하고 치밀하게 묘사하며 좇는다. 권태로워하고, 사랑하고, 절망하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이 한 편의 위대한 심리적 전기는 이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꿈이나 환상을 살고자 하는 성향을 뜻하는 ‘보바리슴Bovarysme’이라는 고유명사를 탄생시키며 그 보편성을 다시금 입증한다.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는 지구처럼 문체의 내적인 힘만으로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한 권의 책
『마담 보바리』는 ‘문학의 수도사’ 플로베르가 홀로 상아탑에 틀어박혀 고행에 가까운 집필을 이어가며 사 년이 넘는 시간을 바쳐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외과의사였던 부친과 형이 메스를 잡듯 과학과 관찰 정신과 성숙함과 냉정함으로 무장하고 펜을 잡았다(생트뵈브)”. 플로베르는 자신의 눈에 ‘진실’로 비치는 것을 보다 분명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 심리와 사회 현실,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까지도 표명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에마의 결혼식이나 농업 박람회와 같은 소설의 주요한 장면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직접 길을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관찰한 것을 토대로 현실을 글로 옮기고, 이를 예술적 문체로 벼려내는 데 공을 들였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지닌 낭만성과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작품의 서정성 역시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플로베르는 “가능하다면 주제랄 것이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책”을 집필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표현이 생각한 바에 가까워질수록, 언어가 사고와 하나가 되어 사라져버릴수록 작품은 더 아름다워”진다고 믿었다. 구상과 표현의 일치라는 완전함에 도전하며, 철두철미한 준비와 치밀한 계산으로 쓰인 이 책은 그가 바랐던 꼭 그 모습으로 백육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홀로 우뚝 서서 빛난다.
“내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는 지구처럼 외부적으로 전혀 묶인 데 없이 문체의 내적인 힘으로 저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한 권의 책입니다.”
뉴스위크 선정 ‘역대 최고의 명저 100’ 업저버 선정 ‘역대 최고의 소설 100’ 가디언 선정 ‘역대 최고의 소설 100’ 노벨연구소 선정 ‘100대 세계문학’ 미국대학위원회 SAT 추천도서
책속에서
[P.58] 그녀는 어디에서든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끌어내고자 했다. 예술적이기보다는 감상적인 기질의 소유자로서 그녀는 풍경이 아니라 감동을 찾고자 했으며 자신의 마음에 즉각 호소력을 갖지 못하면 무엇이든 쓸모없다고 여기고 거부했다.
[P. 63] 열광적인 감정에 잠기면서도 실제적인 정신을 지닌 그녀는 장식해놓은 꽃 때문에 교회를 사랑했고, 감상적인 노랫말 때문에 음악을 사랑했으며, 감정을 휘젓는 힘 때문에 문학을 사랑했다.
[P. 130]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당한다. 무력한 동시에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여자는 약한 육체와 더불어 법의 속박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여자의 의지는 끈으로 고정된 모자에 달린 베일처럼 바람에 사방으로 펄럭인다. 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관습에 제약당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