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자는 건 매개일 뿐이다. 어떻게 사는지 듣고 싶어도, 터놓고 싶은 고민이 있어도, 그냥 밥 한 번 먹자고 한다. 한술두술 떠먹다 보면, 자 이제부터 우리 근황 토크를 시작하자고! 그다음에 이어서 고민상담을 하게 될 거야! 식의 멍석을 깔아놓지 않아도 된다. 멍석만큼 부자연스러운 건 없다. 반대로, 밥은 자연스럽다.
맛집 에세이를 표방하는 이 책도 마찬가지다. 맛집 운운하는 건 매개일 뿐이다. 음식 사진 하나 없다. 읽고 나면, 저자의 일상, 고민, 경험, 취향까지 속속들이 알게 된다. 누구도 안 물어봤지만, 저자는 맛집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토마토를 먹다 든 생각, 산책하다 겪은 일,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는다.
책을 덮고 나면,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오늘 뭐 먹었지? 내가 좋아하는 거였나? 맨 마지막 장에는 질문과 함께 독자가 스스로 적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독자는 그렇게 저자가 된다.
책속에서
[P.20]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일하기에 적합한 신체를 가지고 오늘도 출근한다. 먹히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달달한 대추방울토마토가 와그작와그작 씹어먹힌다.
[P. 51] 오늘도 꽃집을 지나가는데, 여기를 그냥 지나갈 수 없지, 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다고, 여자친구가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를 그냥 지나갈 수 없지.
[P. 61] 이때다! 하고 치킨을 튀겼지만, 이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