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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콜라보 합시다!

신은 왜 금은보화를 좋아할까요
어쩌면 AI를 만드는 건 신이 되고 싶은 것일 테죠
자전거만 타면 노래를 부르는 AI
사람들은 매일매일 누군가를 떠올리며 살더군요
기억할 수 없는 말들이 기록되는 시대를 살며
우리 인간은 올바른 언어를 구사하지 못합니다
신이라면 지옥을 만들 리 없지요
우리의 의식과 사고가 모두 신의 언어라면

그 이야기를 그만할 수 없습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그리는 사람
제 장래 희망은 ‘구경꾼’입니다
인간의 삶이야말로 가장 큰 이야기다
노인이 되어서도 글을 쓰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3대 스트레스는 첫 번째가 돈, 두 번째가 병, 세 번째가 마감이에요
훔치는 건 자유로운 행동에 포함될까요
여차하면 다들 도망가

저는 준이치와 함께 집에서 죽기로 했습니다
고양이와 다름없이 날마다 먹고 자고, 다시 잠드는 평화로운 생활이 가능할까요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으로 변제할 때까지 빚을 지고 사는 인생이라니요
‘믿는다’는 건 아마도 인간에게만 있는 감정 아닐까요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모아도 그 돈으로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돈을 벌면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저는 제 친구들이 안전한 세상을 바랍니다
고난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필로그 마음 한구석에 아직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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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이 역병의 시대에 ‘어떤 사회가 좋습니까?’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나눠야 할 것은 결국 사랑임을.”
_ 김보라 (영화 「벌새」 감독)

전 지구적 재난 시대에 시작된
아티스트 이랑 x 『보노보노』 이가라시 미키오 콜라보 에세이


‘위드 코로나’ 시대 선언이 무색해질 만큼 전 세계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팬데믹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한국의 독보적 아티스트이자 작가인 이랑과 일본의 대표 만화 『보노보노』의 작가 이가라시 미키오가 만났다. 두 작가는 2020년 4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주고받은 편지들을 묶은 콜라보 에세이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를 미디어창비에서 출간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간 24통의 편지 속에는 인생의 파도가 쉼 없이 몰아치는 1986년생 이랑의 삶과 이제는 매일이 별다를 것이라고는 없는 잔잔한 1955년생 이가라시 미키오의 일상이 대비된다. 35년간 『보노보노』를 그리고 있는 이가라시 미키오는 한 가지 일만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이랑이란 사람에 대해 “나는 불꽃 소리만 들으면서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사람인데, 이랑은 불꽃놀이도 보러 가고 스스로 불꽃놀이도 하는 사람”이라고 감탄한다.
이렇게나 다른 둘이 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평생 골몰하고 있는 키워드가 신 그리고 죽음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이별이 닥치는 게 두렵기만 한 이랑과 부모님의 죽음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 아프지만 이제야 비로소 곁에 있음이 더욱 실감난다는 이가라시 미키오, 그럼에도 마지막이라는 끝을 상상했을 때 서로를 향해 건넨 마지막 말의 시시함에 같이 웃으며, 둘은 성별 나이 국적을 초월해 마음이 통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만날 수 없는 코로나 시대, 삶의 방향을 바꿔야만 했습니다

첫 편지를 띄웠던 건 2020년 4월, 코로나가 막 시작된 즈음이었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공연을 하고 생계를 꾸리던 이랑 작가는 생활이 막막해졌고, 이가라시 작가는 30년간 출퇴근해오던 작업실을 접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중에 코로나라는 이례적인 상황으로 빠르게 정리하게 되었다. 예기치 않게 시작된 전 지구적 재난 사태에 일상이 고립되어 가는 동안 둘은 랜선으로 만날 수 있는 편지에 더욱 집중했다. 비록 가끔 파업을 선언하거나 오역으로 유머를 구사하는 AI 통역기로 연결된 소통이었지만, 불완전한 언어로도 마음만 있다면 통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정확한 의사표현으로도 오해가 가득한 세상에서, 두 작가는 오랜 시간 만나온 사람들처럼 소중한 감정을 나누고 기꺼이 곁을 내주며 서로의 힘듦에 공감했다. 이렇게 둘은 서로가 있어 2020년과 2021년을 무사히 건너올 수 있었다.

딱히 해결해보자는 건 아니지만, 같이 생각해볼까 합니다

세상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언제부터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이랑은 늘 궁금하다. 돈이란 숫자를 그린 종잇장에 불과하면서, 2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돈을 모아 전셋집 보증금을 마련해 집주인에게 넘기는 삶, 그 아슬아슬한 테두리를 유지하기란 매년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인지 죽을 때까지 돈을 모아도 집 한 채 갖기 어려운 건 이상한 세상이 아닌지 신에게 묻고 싶다.
그런 이랑에게 이가라시 상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보편적 가치가 정해져 있기에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고 답장을 쓴다. 간편하게 가치를 셈하자고 만든 게 돈인데 어느새 돈, 땅, 주식이라는 ‘자본’ 그 자체가 가치 행세를 하고 있는 게 옳지 않은 것 같다고. 어쩌면 은행에 있지도 않은 돈만이 굴러가는 사회라면 그런 세상은 망해버리고 다 같이 가난한 사회를 꿈꾸는 것이 더 사람에게 이로운 세상이 될 것 같다고.
어느 날에는 영화 「벌새」를 본 이가라시 미키오가 ‘보편성’을 화제로 올린다. 26년 전 한국의 여자아이들 이야기이지만 그 시절 일본과도 많이 겹쳐 닮아 보인다는 편지에 이랑은 답한다.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겪은 한국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고. 그 이야기를 그만하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슬프고 그 이야기를 그만할 수 없다고.
이처럼 두 작가의 편지 속에는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나무이지만 나무에서 돋아난 가지들이 제멋대로 갈라지고 펼쳐지듯 넓고도 자유롭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편지들은 겪어보지 못한 사회의 풍경에 암담함과 불안과 조급함을 느끼고 있을 독자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위로로 다가가며, 앞으로 두고두고 떠올리게 될 코로나 시대의 인상을 가슴 깊게 남길 것이다.

“유령이 되어서도 이어나가고 싶을 정도로 즐겁게 편지를 썼고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이 콜라보 프로젝트는 2019년 10월 11일, 이랑이 ‘이가라시 미키오 오피스’를 찾아갔던 그날로부터 시작되었다. 작업실로 깡충깡충 뛰어 들어간 이랑과 이가라시 미키오는 콜라보를 외치며 의기투합했다. 무엇보다 둘이서 나누는 대화가 무척 즐거웠으므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편지를 쓰기로 하고, 1년이 넘도록 랜선 편지를 보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영화를 보고 삶의 조각들을 공유했다. 그리고 마지막이지만 결코 마지막일 수 없는 열두 번째 편지에서 둘은 생사를 초월한 두터운 마음을 나눴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이가라시 상에게 편지를 쓸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가라시 상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 일을 영원히 하고 싶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요. 무당 친구 칼리 말로는 삶과 죽음은 나누어져 있지 않고 이승과 저승이 지금 여기에 함께 존재한다고 합니다. 신과 소통하는 칼리에게는 그런 세상이 보인다고요. 지금 당장 저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말대로 이승과 저승이 이곳에 다 함께 있는 거라면, 많은 것들을 아쉬워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가라시 상과 저, 둘 중 한 명이 먼저 저승으로 간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연결될 수 있겠네요. 혹시 제가 저승에서 편지를 보내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어디서라도 즐거운 편지 주고받기를 이어나갑시다.
(이가라시 상에게 보내는 열두 번째 편지 중에서)

이랑 씨와 편지를 주고받은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군요. 코로나로 어디도 가지 못한 채 일만 하는 와중에도,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 한 해였습니다. 저는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도 하나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와 이랑 씨 사이를 오간 이야기들과 거기서 탄생한 말들도 편지를 읽은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들어냈으리라 믿어요.
정말이지 언어는 어디서나 싹을 틔우는 식물 같습니다. 설령, 시들어버리더라도 거기에 자리 잡은 뿌리와 씨앗에서 또 다른 싹이 돋아나지요. 어쩌면 오직 이런 방식만이 ‘지금과 다른 세상’을 만드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랑 씨. 조만간 또 편지 보내주세요.
(이랑 씨에게 보내는 열두 번째 편지 중에서)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P.28~29] 이랑 씨는 신이 되고 싶다고 했죠. 만화가인 저는 작품에서만큼은 신 같은 존재입니다. 이야기뿐 아니라 주인공과 다른 캐릭터도 다양하게 만들면서 마음껏 조종할 수 있지요. 왜 보노보노를 30년 넘게 계속하냐면, 그만둘 수가 없어서예요. 보노보노 그리기를 멈추는 순간, 보노보노와 다른 캐릭터들이 죽게 되니 불쌍해서 그만두질 못하겠더라고요. 출판사가 연재를 중단한다고 하면 온라인에서라도 묵묵히 그려나갈 것 같아요.
이랑 씨와 저의 공통점은 신이 있다고 믿는 점 같네요.
[P. 73] 부조금을 받는 자리에 앉아 조문객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당연하겠지만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부조금 봉투를 건네주는 사람들 면면이 다 달랐거든요. 그들이 책상에 앉아 일하는 저를 대신해 크게 울고 크게 웃어주는 것 같아 저는 긴 시간 울지 않고 앉아 있어도 괜찮았습니다. 그의 가족이 아무리 평범한 교회 스타일 장례식을 차려놓았어도 찾아온 사람들이 입고 온 티셔츠에는 친구와 함께 퀴어 퍼레이드에서 외치던 문구가 쓰여 있었고, 가방에는 무지개 배지와 천사 날개를 단 성소수자 캐릭터들이 날뛰고 있었습니다. 수백 명의 조문객들이 옷, 헤어스타일, 가방, 신고 온 신발로 각자의 색깔을 뽐내고 있었기에 장례식장이 마냥 검지만은 않았습니다.
[P. 109~110]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 영화를 보면서 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석’이라는 이름의 아빠와 ‘김경형’이라는 이름의 엄마에게도 내 나이를 거친, 내가 모르는 여러 삶의 시간들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돼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 시간들을 제가 알지도 듣지도 못했고 그래서 내가 잘 모르는 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들을 한 인간으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안타까움에 많이 울었습니다. 그 영화를 본 후부터 엄마, 아빠를 조금씩 김경형과 이석이라는 개별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노력의 일환으로 핸드폰 연락처에 ‘엄마, 아빠’로 저장해놓았던 이름을 두 사람 각각의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이 저지른 실수나 폭력, 제게 남은 트라우마를 다 극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와 다른 한 사람이라는 인식은 간신히 생겼습니다. (중략)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보고 ‘이야기의 힘’을 느낀 뒤로 싫어하는 것들과 내가 피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더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니던 성격이 점점 바뀌고, ‘더 많은 곳에 가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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