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김훈)
자본과 욕망의 시대에 저만치 동떨어져 살아가는 함민복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하고 강화도에 정착한 게 10년째이니 그간에 낸 산문집 한 권을 제외하면, 이번 시집 『말랑말랑한 힘』은 그의 강화도 생활의 온전한 시적 보고서인 셈이다. 충북 충주가 고향인 그가 강화도까지 와서 10년간 삶의 둥지를 튼 것은 “우연히 놀러 왔던 마니산이 너무 좋아서”라는 낭만적인 이유도 있고, “일산에 살다가 신도시가 들어서자 문산으로 갔고, 그곳 땅값이 올라” 어쩔 수 없이 강화도로 밀려온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건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 원짜리 폐가에서 지내고 있는 함민복 시인은 이제 강화도 동막리 사람들과 한통속이다.
그는 강화도로 이사하고 처음에는 갑갑함을 견디지 못해 온종일 뻘밭을 걸어 다니거나 그도 지치면 산에 오르기도 하였다. 뻘밭에선 소라 댓 마리를 잡아다가 술안주와 한 끼의 반찬으로 삼았고,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겨울 바다에 나가서 낚싯대를 드리우기도 하였다. 그때의 함민복 시인은 누가 보아도 이방인이었고, 미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곧 마을 사람들과 친해져 정치망 배를 타고 나가 함께 고기를 잡거나, 이웃집의 대소사를 함께 하면서, 그곳 동막리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강화도 사람이 되어 지내는 동안 함민복 시인은 개펄의 부드러운 속삭임과 그 힘을 조용히 체득하게 된다. “말랑말랑한 힘이지요. 펄이 사람의 다리를 잡는 부드러운 힘이요. 문명화란 땅 속의 시멘트를 꺼내서 수직을 만드는 딱딱한 쪽으로 편향돼 있습니다. 펄은 아무것도 안 만들고, 반죽만 개고 있고요. 집이 필요하면 펄에 사는 것들은 구멍을 파고 들어갈 뿐 표면은 부드러운 수평을 유지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강화도에 정착한 뒤 눈만 뜨면 보이는 개펄에서 시인은 문명에 대한 성찰과 그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시적 서정을 발견한 것이다.
2. 온전한 마음의 길을 펼쳐내는 개펄의 상상력
첫 시집 『우울 氏의 一日』과 두 번째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에서 시인은 자본주의 혹은 수직으로 세워진 문명에 대해 비판한다. 그리고 세 번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서 함민복은 문명비평가와 우울증을 떨쳐버리고, 슬쩍슬쩍 존재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세번째 시집 출간 후 시인은 강화도로 삶의 거처를 옮긴다. 아니 밀려간다. 여기서 시인은 문명도 존재의 의문을 이전처럼 되새김하지 않는다. 대문을 열면 눈앞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먼지도 일지 않는 바닷길, 거대한 수평선은 딱딱한 땅 위에 수직의 길로 세워진 거만한 문명을 일순간에 지운다. 섬과 함께 섬처럼 떠 있는 시인의 마음도 섬으로 밀려오고 다시 밀려가는 바닷물의 흐름과 함께 가득 채워지고 또다시 비워진다. 그렇게 채워지고 비워진 지 어언 10년, 어느 사이 시인의 마음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뻘밭이 되었다. 그리고 마음의 뻘밭에선 문명 속에서 자랄 수 없는 생명의 힘이 꿈틀꿈틀 존재의 구멍을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인가, 함민복의 네 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은 잘 반죽된 부드러운 개펄에서 캐낸 펄떡이는 시어들로 가득 차 있다.
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 집들이 다 구멍이네 구멍에서 태어난 물들 모여 만든 집들도 다 구멍이네 딱딱한 모시조개 구멍 옆 게 구멍 낙지 구멍 갯지렁이 구멍 그 옆에도 또 구멍구멍구멍 딱딱한 놈들도 부드러운 놈들도 제 몸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은 놈 하나 없네 ― 「뻘밭」 전문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전문
위 시에서처럼 개펄의 상상력과 그 언어는 온전한 삶을 걸어가게 하는 길을 제시해준다. 함민복 시인은 개펄의 ‘물골’이야말로 길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육지에 난 물길은 물이 스스로 길을 내어 휘어지고 돌아가면서 강이라는 길을 만들어내지만, 펄에서는 사람들이 걸어가며 만들어낸 길과 물이 스스로의 본성으로 찾아간 길이 결합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펄의 물골이다. 하지만 시인은 물길만 보지 않는다. 살아 우는 글자를 찍으며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하늘길도 있는 것이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서 들을 만한 소리는 기러기 소리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 나가보면 수십, 수백 마리 기러기가 하늘에 글자를 쓰며 날아간다. 살아 우는 글자. 장관이다.” 의지만으로 개척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길이라면 개펄의 물골과 새들이 나는 하늘길과 같은 자연의 길은 우리가 바라보고 걸어가야 할 삶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아래의 두 시는 그러한 길에 대한 그리운 성찰이다.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나를 위로하며」 전문
길 위에 길이 가득 고여 있다 지나간 사람들이 놓고 간 길들 그 길에 젖어 또 한 사람 지나간다
길도 길을 간다 제자리걸음으로 제 몸길을 통해 더 넓고 탄탄한 길로 길이 아니었던 시절로
가다가
문득 터널 귓바퀴 세우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의 소리 듣는다 ―「길의 길」 전문
3. 수평선 위로 떠 오르는 마음
부드러운 펄 속에 구멍을 파고 살고 있는 낙지, 모시조개, 갯지렁이처럼 강화도 동막리 폐가에서 가난과 함께 몸 틀고 사는 시인의 삶은 평온하다. 수평선처럼 낮게 가라앉은 시인의 삶에는 수직으로 곧추선 욕망의 곡예가 없기 때문이다. 시인에 의하면, 수평은 자연 친화적이라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반면 수직은 욕망 지향적이고 그래서 불안하다. 인류의 문명은 유한하고 언젠가는 멸망할 운명을 타고났다. 수직으로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인간의 마음은 더욱 각박해지고 황폐해질 뿐이다.
논과 밭을 일군다는 일은 가능한 한 땅에 수평을 잡는 일 바다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수평의 삶 수천 년 걸쳐 만들어진 농토에
수직의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농촌을 모방하는 도시의 문명 엘리베이터와 계단 통로, 그 수직의 골목 ― 「김포평야」 부분
무반성적인 문명의 수직적인 욕망을 경계하고 있는 시인은, 욕망의 바벨탑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불안함을 아래처럼 기하학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신이 만든 피라미드 욕망의 샘 저 작은 거웃 속
만나고 싶은
내 거웃 이리 큰 욕망의 샘 신이 만든 피라미드 ― 「검은 역삼각형」 전문
‘만나고 싶은’ 수평의 삶을 아래위에서 동시에 찌르고 있는 수직으로 날 서 있는 두 개의 칼날, 그 위험한 삶의 모습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한 위 시는 우리 마음속에 세워진 욕망의 탑을 시각화한 것 같다. 하지만, 수평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인에게 스며든 자연은 위대한 말씀이 되고 시가 되고 사랑이 된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어디로 가는가 기러기 떼 八자 대형으로, 人자 대형으로 동학군의 혼령인 듯,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 인자 쓰며 人乃天 하늘을 自習하며 날아가는 기러기 저리 살아 우는 글자가 어디 또 있으랴 목을 턱 내밀고 날아가는 모습이 서늘하다 ― 「최제우」전문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제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었습니다 ― 「달과 설중매」 전문
함민복의 시는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강화도 개펄의 힘을 전해준다. 하지만 정작 시인은 지금도 조용히 마음의 길을 닦고 있다.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 ― 「그늘 학습」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