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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후지타 요시나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 올빼미가 운다 | 백 년이고 천 년이고 | 고양이들 | 음악 | 슬픔이 고이는 자리 | 작가가 두 사람 | 이상한 일 | 밤에 깎는 손톱 | 빛으로 변해 | 내려 쌓이는 기억 | 최후의 만찬 | 고양이의 꼬리 | 생명이 있는 것들 | 잃는다는 것 | 그날의 컵라면 | 금목서 | 각자의 슬픔 | Without You | 먼저 겪은 사람들 | 죽은 사람의 서재 | 꿀 같은 기억 |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 | 꿈의 계시 | 상실이라는 이름의 막 | 봄바람 | 가상의 죽음, 현실의 죽음 | 수난과 열정 | 설녀 | 애정 표현 | 어머니의 손, 나의 손 | 고치에 틀어박히다 | 기도 | 추모회 | 그때그때의 소꿉놀이 | 샤를 아즈나부르 | 안고 싶고, 안기고 싶다 | 후회 | 벚꽃이 필 때까지 |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 사춘기는 이어진다 | 동물 병원에서 | 무덤까지 | 내선 전화 | 이제는 괜찮아 | 남은 시간 | 죽은 자의 고요한 얼굴 | 새의 공동묘지 | 이어지지 않는 시간 | 신에게 매달리다 | 반쪽 || 연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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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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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너를 보고 싶었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 섭섭하다.”


죽기 몇 주 전,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가 아내 고이케 마리코에게 했다는 말이다. 당시 두 사람 모두 일흔을 앞둔 나이였지만 후지타의 눈에 비친 마리코는 여전히 젊은 여인이었나 보다. 추억을 입은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되기 마련이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풋풋한 시절이, 그들에게도 있었다. 37년 전 만나 사랑에 빠졌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 좁은 아파트의 더 좁은 방에서 소설가를 꿈꾸던 두 사람은 책상을 마주 놓고 질세라 쓰고 또 썼다.

“동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어느 날 아침 그가 쑥스러운 기색으로 이런 말을 꺼냈다. ‘내가 쓴 소설이 있는데, 한번 읽어 보고 솔직한 감상평을 들려주면 좋겠어.’
그는 내가 다 읽고 소감을 말해 주기 전까지 다른 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원래부터가 장난스러운 상황극 같은 걸 좋아하던 남자였다. 시간을 정해 근처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자세를 단정히 하고 그의 작품을 읽었다. 그리고 서둘러 약속 장소로 갔다. 커피를 앞에 두고 기다리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던데’ 하고 나는 말했다. 질투심이 생길 만큼 대단한 작품이거나, 너무 엉망이라 어처구니없는 작품이면 어쩌지 싶었는데, 둘 다 아니어서 기뻤다. 그 말도 숨기지 않고 전했다.
그는 진심으로 안도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천장이 높고 환한 커피숍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각자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의 회고처럼 ‘행복한 한때’였다. 고이케 마리코는 사별과 코로나를 연달아 겪으며, 소설에서 수천 번은 썼을 고독이 사실은 무엇인지 몰랐다고 고백한다. 고독을 경솔하게 써 댄 업보일 거라고도 했다. 상실이 나의 것이 될 때 사람은 변한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말기 암에 걸리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죽는 것’이 이상적인 죽음이라 입버릇처럼 말하던 후지타 요시나가는 투병 기간 동안 완전히 변했다. 살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 어느 때를 기점으로
모든 것이 무섭게 변해 버렸다.”


후지타 요시나가가 말기 암으로 여명 6개월을 진단받은 그날은, 고이케 마리코의 세계와 시간을 나누는 분기점이 됐다. 그날 이전과 그날 이후가 하나의 시간으로 연결되지 않고, 기억과 현실의 경계는 흐려진다. 외부와 나 사이에 생긴 틈은 곧 타인과 나를 가르는 막이기도 했다. 누구나 각자의 슬픔을 짊어지고 살아가지만 그는 안다. 상실의 형태와 슬픔의 양상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르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춰 죽은 남편 이야기를 꺼내거나 내 안부를 걱정스레 묻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배려 차원에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남편의 죽음이 과거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고도 건강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어떠냐 하면, 남편의 투병과 죽음을 겪는 동안 내 내면의 일상과 나를 둘러싼 외부의 일상이 미묘하게 틀어지고 말았다.
외부에 흘러가는 시간과 내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 사이에는 분명히 어긋난 부분이 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마 그 누구도 이 ‘어긋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양쪽의 세계에 걸쳐 있는 고이케 마리코를 가만가만 두드려 깨우는 건, 하루하루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창밖의 풍경 그리고 집 안팎으로 생동하는 작은 생명체들이다. 계절을 반복하며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후지타와 쌓은 크고 작은 추억들이 기척 없이 되살아난다. 슬픔 또한 모습을 바꿔 매일 찾아들 것이다. 남겨진 자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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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자 변화는 무시무시했다. 매일 낮, 매일 밤 쇠약해져 가는 게 보였다. 목소리에서 삽시간에 힘이 사라졌다. 깡마른 등의 통증을 모르핀으로 겨우 달래며, 약간이라도 상태가 좋은 날에는 이런저런 묻지도 않은 것들을 그는 내게 이야기했다. 언제 죽어도 좋아.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어. 죽는 건 두렵지 않아. 하지만 생명체로서의 나는 아직 살고 싶어 해.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렸는데, 그게 참 이상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고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 _<남편, 후지타 요시나가의 죽음을 애도하며>에서
영정 속 얼굴은 거기서 시간이 멈춘 채 영원히 변치 않는다. 이제부터는 나만 나이를 먹는다. 세월이 흘러, 아들의 영정 앞에 합장하는 노파로 보이는 날도 언젠가는 찾아오리라. 시간은 막무가내로 흘러간다. _<슬픔이 고이는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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