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 평균대에서 삐끗한 순간 새삼 - 잠잠한 마음을 새로이 이따금 - 반박음질한 새삼 불현 듯 - 번쩍 하고 빛나는 순간 사뭇 - 아주 달라 너무 좋아
4장 쓴맛의 부사 고난에 맞서는 쓰디쓴 부사
차마 - 마음과 달리 발길이 굳이 - 꼭 그래야만 했니 겨우 - 그것밖에? 그거라도! 도무지 - 숨 쉴 수 없어 차라리 - 어쩌란 말이냐
5장 물맛의 부사 만물을 보듬은 물같은 부사
모름지기 - 모르면 아니 되기 웅숭깊이 - 큰물의 테두리 고즈넉이 - 넋을 놓고 두루 - 온 땅에 평화를 고이 - 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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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부사부터 지워라! 이 말은 저자가 잡지 기자가 되고 맨 처음 받은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신입 기자 시절, 원고 양을 가늠하지 못해 툭하면 글이 넘쳐 적게는 두세 문단, 많게는 기사의 절반을 지워야 할 때, 저자의 선배는 '기사가 넘칠 땐 부사부터 지워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대선배의 가르침이었으나 저자는 차마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 수가 많지도 않은 데다 부사마다의 말맛을 생각하면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사를 문장에서 없애도 될 품사라 여긴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저자는 때로 한 문단을 통째로 지우는 선택으로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부사를 지키곤 했습니다. 부사는 힘차다! 저자가 기자 시절 배운 대로 부사는 문장에서 가장 먼저 지워야 할 힘없는 말이 아니라 깊고 너른 뜻을 품은 우리말입다. 이 책은 저자가 매료된 부사의 네 가지 힘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나, 스며드는 힘! 부사는 명사나 동사, 형용사에 비하면 그 뜻의 경계가 흐립니다. 무언가를 명확히 지시하거나 한계 짓기보다 문장 전체에 그 힘을 널리 퍼뜨립니다. 가령 '비로소'는 이전의 모든 문장을 끌어안으며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알리고, '바야흐로'는 긴 과거를 네 음절에 품은 채 내일의 문을 열고 시절을 넘어 시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둘, 덧붙이는 힘! 부사는 어떠한 상태나 상황, 또는 감정을 고조시킵니다. 부사가 수식하는 그 대상의 상태나 감정의 폭을 확장시키고, 그 의미의 깊이와 너비를 유연하게 배가시킵니다. 이를테면 '기쁘다'라는 표현만으로는 알 수 없으나 '그나마 기쁘다', '새삼 기쁘다', '마냥 기쁘다'와 같이 서술어 앞에 부사를 더하면 기쁜 감정의 정도와 빈도도 세세해집니다. 셋, 응어리진 힘! 부사는 기나긴 상황이 응축된 말이라 두서너 음절만으로 눈앞에 장대한 광경을 펼칩니다. '아스라이'를 떠올리면 머나먼 별을 올려다보는 모래밭의 작은 꽃 한 송이 그려지고, '웅숭깊이'를 떠올리면 가마솥에 끓인 숭늉 한 그릇이 개다리소반에 차려집니다. '불현듯'이라 하면 칠흑 속에 불을 켠 듯 삽시에 환해지는 영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넷, 아름다운 힘! 이 책에 소개하는 부사는 모두 우리말 단어입니다. 일부 음절이 한자이거나 아예 한자어인 경우는 제외했습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담뿍 배인 부사는 아껴 발음하면 마치 처음 듣는 단어처럼 낯설고 신비롭습니다. 그 뜻과 모양에 말의 멋과 맛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아름답습니다. '오롯이', '사뭇', '고즈넉이' 같은 단어를 되뇌면 어느덧 마음에 은하수가 흐릅니다. 부사는 맛있다! 이 책에는 네 가지 부사의 힘을 보다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음식의 다섯 가지 맛에 착안해 다섯 가지 말맛, 곧 단맛∙짠맛∙신맛∙쓴맛∙물맛에 따라 스물 다섯 개의 단어를 실었습니다. 1장 단맛의 부사에는 기꺼이∙비로소∙바야흐로∙마냥∙부디 등 음식의 단맛처럼 떠올리기만 해도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드는 부사,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졌거나 앞으로 이루어지리라는 뜻을 담은 희망찬 부사를 담았습니다. 2장 짠맛의 부사에는 어이∙이토록∙오롯이∙애달피∙아스라이 등 마음이 에일 때 절로 쏟아지는 눈물처럼 짜디짠 맛, 삶의 비애가 깃들어 물기 어린 맛, 서글프고 애달프고 안타까운 맛의 부사를 소개합니다. 3장 신맛의 부사는 레몬즙처럼 청량하고 말끔한 향기를 가진 말로 정하고, 이전의 맛을 지우고 새로운 기운을 부르는 부사, 자칫∙새삼∙이따금∙불현듯∙사뭇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4장 쓴맛의 부사에는 차마∙굳이∙겨우∙도무지∙차라리 등을 추려 담았는데, 이 다섯 부사는 모두 힘겨운 삶의 땀과 노고가 느껴지는 한편 한탄을 딛고 도약하는 말입니다. 5장 물맛의 부사는 널리 퍼지고 깊이 솟아나는 물, 만물을 살리고 보듬는 물 같은 부사로 가려 모아 모름지기∙웅숭깊이∙고즈넉이∙두루∙고이의 세계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저자는 독자가 맛난 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각 단어의 말맛을 형상화한 스물 다섯 점의 그림도 함께 그렸습니다. 부디 이 책이 오래도록 잊고 지낸 말맛, 그중에서도 부사의 깊고 너른 말맛 을 새삼 깨우치고 일상에서 그 맛을 고이 음미하도록 이끄는 기꺼운 길잡이가 되기를 바립니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2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책속에서
1장 단맛의 부사 / 기꺼이 ‘마음이 내키니 달가이’
두 팔 벌려 기꺼이 '기어이'가 주먹이라면 기꺼이는 보자기다. '흔쾌히'가 기운찬 폭소라면 기꺼이는 잔잔한 미소다. '꺼이꺼이'가 슬픔에 겨운 통곡이라면 기꺼이는 그 슬픔을 나누는 흐느낌이다. 기꺼이는 함께 웃고 같이 울자며 두 팔 벌려 다가가는 말이다. '깃들다'라는 뜻의 옛말 '깃겁다'는 흘러 흘러 기쁨이 깃든 '기껍다'가 되었는데, 이때의 기쁨은 모란 폭죽처럼 찬란한 환희보다는 화로 불돌처럼 은근한 달가움에 가깝다. 기꺼이를 뜻하는 영어의 관용어 'With Pleasure'에도 기쁨이 깃든 점은 공교롭고 흥미롭다. 기꺼이는 스스로 기쁠 때도 쓰지만 특히 외부의 요청에 응할 때 자주 쓴다. 이 글에서는 주로 응답할 때의 기꺼이를 다루기로 한다. 가령 너무 멀어 손이 닿지 않으니 식탁 끝에 놓인 깍두기 그릇을 좀 밀어달라는 동생의 눈짓이나 지나는 길이면 경복궁역 앞에 내려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기꺼이는 그러한 청을 기다렸다는 듯 순순하다. 나아가 제주행 비행기에서 창가 좌석을 양보해 달라거나 선물 받은 자전거를 주말에 빌려달라는 부탁에는 잠시 멈칫대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바다야 비행기에서 내려 실컷 보면 되고 매양 묶어만 두는 자전거 콧바람 쐬어주면 오히려 고맙지, 하는 마음에 기꺼이 응한다.
이처럼 기꺼이는 칼칼한 하루에 꿀물 한 잔처럼 다디단 말이다. 이왕이면 경쾌한 목소리로 발음해야 그 맛이 살아나고, 거기에 몸짓까지 더하면 비단에 꽃수를 더하는 격이다. 투명 쟁반을 받 쳐든듯두손바닥을하늘향해펼치고,어깨는들썩,두눈은 찡긋, 입꼬리는 한껏 올리며 '기꺼이!'라고 외치면 너나없이 기쁨에 겨워 기꺼워진다.
기어이 품은 기꺼이 영영 달 줄만 알았던 기꺼이인데 어떤 안간힘, '기어이'가 스미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때로 기꺼이는 크고 작은 희생을 동반한다. 밥 한 번 거하게 살 테니 자서전을 대신 써달라거나 수일 내로 돌려줄 테니 기천 만원만 빌려달라는 무리한 부탁에 응하는 기꺼이는 뒷발을 끌 수밖에 없다. 그 부탁이 청을 넘어 간청에 이르고, 그 간청이 진정이라 여겨지면 쇠공달린 사슬을 발목에 묶은 채 기어이 응하고 만다. '기어기'가 스민 기꺼이의 흔적은 일상의 곳곳에 자욱하다.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 공연을 강행하기로 한 해외 피아니스트의 소식을 전하는 '크리스티안 짐머만, 7일 자가 격리 기꺼이 감수'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처참한 단면을 비추는 '팔순 할머니도 기꺼이 총 들다' 등의 기사 제목에 등장하는 기꺼이에도 희생이 깃들어 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이상 어느 누가 자가 격리를 기쁘게 여기며, 저격수나 사격 선수도 아닐진대 노령의 민간인이 그저 기쁜 마음으로 기초 군사 훈련에 참여했으랴. 다만 이때의 기꺼이에는 이레의 고난을 달가이 받아들일 정도로 무대에 오르는 환희, 민방위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나라를 지키려 이 한 몸 바치리라는 사명감이 크다는 의미일 테다. 이처럼 기꺼이와 비슷한 뜻의 '즐거이'나 '흐뭇이'를 대입하면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을 마주할 때가 많다. 애초에 그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이윽고 맞이할 더 큰 기쁨을 위해 어떠한 고난이나 수고를 마뜩히 받아들이는 기꺼이에는 그리하여 숭고한 기운이 감돈다. 다만 기꺼이 감수하는 희생은 누군가의 강요나 외부의 압박에 떠밀린 마지못한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내켜서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달갑고 힘차다. 본디 검은 몸이었으나 붉은 온기를 전하 고 하얗게 사그라드는 참숯인 양 진정 원하는 바를 위해 제 한몸 불사르는 기꺼이는 쓴맛이 깃든 단맛, 달콤쌉싸름한 인생의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