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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살아 있으면 살아집니다

1장 혼자만의 아픔, 소외되는 우리
우리는 혼자라서 더 아프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픔
코로나19, 이것은 트라우마 상황이다
힘들 때, 누가 내 곁에 있어줄 것인가
갈수록 커지는 정신건강의 격차
사회가 아프니까 나도 아프다
마스크에 갇히면서 잃어버린 것
이것은 타인의 고통이 아니다
정서폭력이 난무하는 사회
억울해서 병난다, 울분 넘치는 사람들
고통에는 소멸시효가 없다
아픔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의 수준
사람의 생명에도 값이 있을까?
고통의 곁에 선다는 것

2장 존중받지 못한 아픔들
고통이 몸과 마음에 남긴 흔적
트라우마, 마음의 화상을 입다
고통을 기억하는 몸
즐거움과 친밀감을 잃어버리면
상처를 부추기는 것들 : 편견, 혐오, 무지, 막말
고통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나쁜 기억은 더 강화된다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참혹한 현장을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고통 : 소방관의 트라우마
수치심과 맞닥뜨려야 하는 고통 : 성매매 경험자의 트라우마
끔찍한 순간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통 : 지하철 기관사의 트라우마
목숨을 걸고 위험과 마주해야 하는 고통 : 산업재해와 트라우마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회적 트라우마
내가 안전하지 않다는 항시적 불안감 : 성수대교 붕괴 참사
전쟁 이후 가장 많은 생명을 잃은 날 :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한 번의 방어막이라도 작동했더라면 :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 사는 고통 : 천안함 피격 참사
우리 모두가 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날 : 세월호 침몰 참사

3장 ‘우리’라는 빛을 찾아서

- 과거에서 빠져나와 현재를 살아가려면
- 고립은 병을 부른다
-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인다
- 죽었던 마음이 다시 살아날 때
- 애착, 모든 것의 원인이자 해결점
- 이제는 심리자본을 쌓아야 할 때
- 우리가 함께 울면 아픔도 힘이 된다
- 아픔이 아픔을 위로한다
- 돌봄이란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것
- 외상 후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다
- 건강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인 것
- 우리가 연결될 때, 삶은 더 단단해진다
- 고통의 곁에 우리로 살기 위하여

에필로그 ‘빛’은 어둠을 살린다
특별대담 함께의 삶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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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 재난 트라우마의 현장에서 사회적 지지와 연결을 생각하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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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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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태원 참사, 재난 …
고통은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는가
“트라우마는 일상의 모든 연결을 끊어놓는다.”

최근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트라우마는 어원이 ‘뚫다’ ‘뚫리다’의 의미로 마음에 구멍이 뚫릴 만큼 극심한 고통을 말한다. 흔히 죽음이나 죽을 뻔한 위협, 심한 부상, 성폭행 등을 겪으며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창립회장인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는 힘들어도 원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많지만, 트라우마는 여기에 너무 압도되기 때문에 사건 이후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정신건강 분야의 유명한 역학연구 '미국공존질환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성의 60.7%, 여성의 51.2%가 살면서 한 번 이상의 트라우마를 겪는다. 이제는 누구라도 트라우마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채정호 교수는 지난 37년간 성수대교 붕괴, 천안함 피격,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등 숱한 사회적 재난을 지켜보며 트라우마의 고통이 우리사회에 번져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유행 시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노출될 수 있으며, 따라서 심리방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연구를 통해 감염병이 정신적 문제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63명을 2년간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이 병을 앓고 나서 만성피로를 느꼈던 사람은 자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채정호 교수는 코로나19가 트라우마로 다가온 이유를 ‘안전감의 상실’에서 찾는다. 실제로 코로나19 동안 대부분의 사람은 안전감이 크게 위축되면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주의해야 했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긴장 수준을 높이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렸다. 즉,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상생활을 제한하고, 사람과의 만남도 꺼리면서 사회에서 자신을 고립시켰다. 채정호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고립은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증)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확산시키며 개인의 인지, 행동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울분이 많은 이유
“자신의 고통이 존중받지 못할 때, 인간은 무너진다”

1960년대 베트남전 참전을 놓고 한국군인과 미국군인의 처지는 극명하게 달랐다. 미국은 참전 이후,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군인들이 많았다.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에 빠지거나 자살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우리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군인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가 미국과 사뭇 다르게 약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채정호 교수는 트라우마는 사회적 맥락의 차이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파병군인에게 국가차원에서 장려하며 애국자로 추켜세웠다. 그러나 미국은 반전 분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군인들은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려야 했다. 채정호 교수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 의미를 갖지 못하면 트라우마는 더 깊어진다고 말한다. 즉 주변 사람들과 그 사회가 공감하지 못하면 트라우마의 고통은 더 악화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라우마 경험자들의 고통에 어떻게 다가갔을까? 트라우마 전문가로서 채정호 교수가 바라본 우리사회는 정서적으로 아직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가정과 학교, 직장 등 사회 곳곳에서 트라우마 유발 요인이 너무 많고, 또 트라우마에 대한 감수성도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수많은 트라우마의 고통을 접한다. 지난 참사를 비롯하여 산업재해 생존자, 소방공무원, 지하철 기관사, 성매매 종사자 등이 겪는 고통, 그리고 온•오프상에서 횡행하는 정서폭력 등은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잘 보여준다. 채정호 교수는 이렇게 존중받지 못한 고통은 울분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실 울분은 우리에게 낯선 정서가 아니다. 부당함이나 불공정함으로 인해 울분을 겪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채정호 교수는 “울분은 단순한 화나 분노가 아니며, 대개 인격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사건, 너무 부당한 일을 겪으면 외상후울분장애(PTED)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채정호 교수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나타난 특이점으로 울분의 정서를 꼽는다. 보통의 트라우마 사건은 공포나 두려움이 선명하게 부상하는데,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울분'이라는 정서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갑작스런 죽음을 두고 왜 이런 울분을 느끼게 되었을까? 채정호 교수는 세월호 참사 당시, 마땅히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면 되는데, 우리사회는 그 아픔을 품어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자와 유가족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트라우마 자체도 힘들지만 이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서 내뱉는 '막말'과 '혐오'였다. 일부 정치인이 생각 없이 하는 한마디, 언론의 왜곡된 보도,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유언비어 등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의 상처를 후벼 파며 울분을 자극했다. 트라우마는 그 사회가 고통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채정호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사회가 외면했던 트라우마를 살펴보고, 그 고통이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지를 연구결과와 함께 보여주며 자성을 촉구한다.

우리는 고통의 곁에 있는가
재난 코호트 연구가 전하는 사회적 고통의 해법
“트라우마 치유의 최종 종착지는 사회적 지지와 연결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개월 후, 네덜란드에 예기치 못한 참사가 일어났다. 암스테르담을 떠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여객기 MH17편이 미사일에 격추당하면서 승객과 승무원 등 298명이 숨졌고, 이 가운데 네덜란드 국적을 가진 사람이 193명으로 가장 많았다. 네덜란드 정부의 대응은 신속했다. 희생자 시신을 수습한 첫 비행기가 네덜란드에 도착했을 당시, 공항에는 최고통치자를 비롯하여 국왕 내외와 정부의 모든 부처 각료가 마중을 나가서 유가족과 함께 슬픔을 애도했다. 네덜란드 정부와 국민이 전심으로 애도하는 모습을 보며 채정호 교수는 우리사회가 그동안 사회적 고통에 어떻게 대했는지를 묻는다.
트라우마는 전염성이 높다.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의 고통은 개인과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 사람의 트라우마는 집안 전체, 나아가 그가 속한 모든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의 대물림은 확인된 사실이다. 채정호 교수의 연구실이 캄보디아 킬링필드 경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이 끔찍한 사건에서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심지어 킬링필드를 경험하지 못한 청년층에도 간접 효과가 남아 있었다. 채정호 교수는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 고통의 기억을 강조한다. 고통을 기억하지 않으면 고통에서 배울 수 없다. 이 책에서 그는 독일 사회가 고통을 기억하는 모습을 전한다. 독일 베를린 거리 곳곳에는 ‘걸려 넘어지는 돌’(슈톨퍼슈타인 , Stolpersteine)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동판을 볼 수 있다. 동판의 이름은 걸림돌이지만 지난 고통을 되새기며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게 않아야 한다는 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다. 채정호 교수는 과거의 고통이 독일사회의 디딤돌이 되어서 외상 후 성장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
트라우마는 혼자서 극복할 수 없는 심리적 재난 상태다. 즉 외부의 자원 없이 트라우마의 회복과 치유를 기대할 수 없다. 세월호 재난 코호트 연구는 이를 증명한다. 세월호 생존 학생 48명을 대상으로 '고통의 시간을 잘 견디게 해준 요인'에 대해 조사한 결과, 가장 큰 요인으로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회에서 누군가 나를 돕고 지지한다는 감각이 있으면, 어떤 끔찍한 사건을 경험하고도 견딜 수 있다. 채정호 교수는 ‘고통의 곁’을 강조한다. 너무나 아프고 힘들 때, 손 내밀어 잡을 수 있는 곁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위로로 다가온다. 따라서 이 책에서 ‘곁’은 사회적 지지와 연결이며, 또한 ‘우리’라는 정서 공동체의 회복을 의미한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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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0]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확연히 다릅니다. 스트레스는 자신의 자원으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보호막이 깨진 상태로 혼자의 힘으로는 벗어나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전에는 조심스레 잘 담아두었던 아픔도 트라우마 이후에는 불쑥 터져 나올 정도로 사소한 자극에도 예민해집니다. 몸을 보호하는 피부가 화상을 입으면 보호막이 깨져서 아픔이 몰려옵니다.
[P. 139] 저희 연구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코호트 연구(대상자를 선정하여 일정 기간 동안 시간 경과에 따라 추적· 관찰하는 연구)를 지속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트라우마 자체도 힘들지만 생존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서 내뱉는 ‘막말’과 ‘혐오’였습니다. 일부 정치인이 생각 없이 하는 말 한마디, 언론의 왜곡된 보도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트라우마 생존자와 유가족의 상처를 후벼 팠습니다. 참사 희생자들을 물고기밥 취급했던 이른바 ‘어묵 사건’, 4월이면 온라인 등을 통해 쏟아지는 “시체 팔이 그만해라” “돈 받았으면 적당히 해라” 등과 같은 악랄한 혐오 표현들,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투쟁을 벌였을 때 그 앞에서 피자, 치킨 등을 폭식한 패륜 행위, 4·16 생명안전공원과 기억교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대 등이 트라우마의 고통을 더 부추겼습니다.
[P. 215]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나아지지 않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 4년이 지난 1999년 10월, 참사 당시 아내와 아들을 잃은 40대 남성이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비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로 사망한 딸의 위령비 앞에서 목숨을 끊은 아버지와 판박이였습니다. 재난과 재해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유가족 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심각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재난은 경험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유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고통과 아픔도 조금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재난을 겪은 분들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예민해야 합니다. 당장이라도 내가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휴대폰에 있는 아들 사진을 보며 눈물을 펑펑 흘리던 어느 어머님이 있었습니다. 허망하게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30년 넘게 정신과 의사로 살면서 정신적 고통으로 힘든 분들을 수없이 만나 치료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저 자신이 참 무력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잊지 않고 싶었습니다, ‘유가족 곁에 끝까지 함께 있겠다!’ 고통의 현장에서 그분들의 피눈물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다짐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모두가 힘들고 아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