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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시조와의 담론을 전개하며

제1부
작품을 분석하는 논증의 가면 그리고 시대정신이란 허구
'대상'과 '진술' 간의 등식 관계 또는 그 텍스트와 교접하며
새로운 요구들, 대상과 화자의 페어플레이와 연시조의 접근 방식
미세함의 존재가치를 말하는 그대에게
서정의 파워와 운율의 룰 그 상상과 성장
시의 '기표'[시]가 '기의'[이해]를 향해 낯설게 열어놓기
시조의 표층ㆍ중층ㆍ심층 구조와 체계적인 시조문학사를 위하여

제2부
꼿꼿이 핀 꽃, 그를 꼬누는 시샘, 그에 박힌 최후의 시
우는 가슴을 가진 자는 책이 망가지도록 읽는다
시의 재미와 구성, 그리고 깊이를 위하여
생의 대해(大海)로 나아가기 위한 지류와 골목들의 재치 또는 그 풍자들
겨울 바닥에 흘린 눈물이 봄날의 잎을 틔운다
즐거운 곳에선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시조집 그 집뿐이네
원초적인 자유 그 조르바식 질문을 읽어내는 순간들
금속성(金屬聲)의 단말마가 아닌 목제(木製) 소네트의 미학

제3부
화자와 함께 걷는 유유함, 그 자동기술을 따라가다
시의 뮤즈가 나타날 간구()의 글쓰기
대구ㆍ대응을 싣고 운율의 바퀴를 굴리며 호응하는 시조의 몸짓들
생명의 존엄성에 이입하며 공감하기 또는 그에 동화되기
어떤 글의 횡포들, 그러니까 예쁘고 아름다운 시가 몰려드는 진절머리
체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시조, 그 입구와 출구를 따라가다
인문학적 시, 그 '말'과의 쟁투, 황야의 독자

제4부
한국 신진 시조시인 작품의 경향성에 대한 논의
현대시조에 나타난 남도의 풍미와 기질에 대한 형상화 고찰

■ 참고문헌
■ 시인과 작품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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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의 가면과 정신의 허구 = The mask of argumentation and the fiction of mentality : 노창수 시조평론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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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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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시대의 산물이자 메시지의 형식이며 상황에 대한 담화로서, 유한한 시대를 사는 시인은 그 시대상을 시조로 반영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시조라는 그릇에 담아내어 시대인들의 정신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 시대의 문학과 서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이 책에서 톺아본다. 진정한 작품의 생명체가 논증적인 비평의 수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노창수 교수의 문학론은 시대의 담 안에 꽃피어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시조를 감상하는 기쁨을 일깨워준다.
『나래시조』에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게재한 평설들을 한 권으로 모은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는 현대 시인들이 발표한 시조를 살펴보며 작품을 분석하는 논증의 가면 그리고 시대정신의 허구, 대상과 진술 간의 등식 관계 등을 논의한다. 나아가 단단한 구조의 시조 작품, 그리고 체계화된 시조문학사 구축을 위한 방편을 짚어본다. 2부에서는 시의 재미와 구성에 관한 논의, 소네트의 미학을 통한 시조의 깊이 등을 고찰했다. 3부에서는 자동기술의 세계, 생명의 존엄성 등을 노래한 작품을 살펴보았다. 제4부는 한국 신진 시조시인 작품의 경향성과 시조문학사의 위상, 현대시조에 나타난 남도의 풍미과 기질에 대해 분석했다.
오늘날 시조가 소외당하고 있다지만, 현대시조는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 시조의 흐름은 보다 융성해지고 그 깊이도 심화되고 있다. 여러 시조 문예지와 시조집 발간이 활황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이 책의 저자는 ‘시조의 중흥시대’로 보고 있다. 현대시조 문학사의 흐름을 짚어본 이 책은 장르의 저변을 확장하고 현대시조 연구에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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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5~16] 작가·시인으로부터 생산되는 문학작품이란 비평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평은 문학작품을 전제로 하며, 심지어 그것을 먹이로 하여 생존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심하게 말한다면 문학비평은 작품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학작품은 비평가의 해석과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비평은 다만 비평자의 몫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은 비평으로부터 독립적 관계에 놓인다. 비평이 간섭을 하건, 하지 않건 작품은 하나의 ‘격(格)’을 갖추고 지상(紙上)에 존재하는 이유에서이다. 이에 반해, 비평은 작품에 대해 지극히 의존적이다. 작품이 아니고선 ‘비평’이란 장르를 부지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비평을 위한 비평도 있지만, 그것도 작품 비평이 이루어진 이후에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지, 비평의 조건이 독단으로 성립하는 건 아니다. 한 작품이 비평에게 객체화되고 텍스트로서의 희생을 용인했을 때 비평은 바야흐로 논증을 진행할 수 있다.
[P. 166] 비유하여 설정컨대 ‘황금물고기’는 억압받고 가난한 시인이다. 시인으로 그런 의미를 되새긴다면, 농경 시대를 억세게 산 우리들의 어머니, 그들의 울음과 한의 노래가 그랬고, 일제 식민지 시대를 모질게 살아온 조상들의 삼킨 분노가 그랬다. 항쟁에 앞장선 극복자들이 겪은 암울한 민주주의의 피, 그리고 나라의 생태를 파괴한 대통령들 앞에서 촛불을 들던 시민이 그랬다. 이제, 우리의 상처투성이 ‘황금물고기’는 강과 바다에 이르러 평화의 공존 시대를 운위한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나라[國家]다운, 문단(文壇)다운 시(詩)다운, 시조(時調)다운 치유의 물을 마시게 될 것인가. 천년을 구릿빛으로 견뎌 노래하는 황금물고기, 그래, 누가 뭐래도 희망은 힘차다! 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