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은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을 주도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제적 부를 창출하고,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직업병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환경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유해성과 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특이성 질환과 비특이성 질환, 희귀성 질환과 같은 업무상 질병에 대한 심각성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 반도체산업이 만들어 내는 위험한 작업환경과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에의 위협 등과 같은 문제는 전 세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업무상 질병에 대하여 피용자는 해당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는 법적 구성에는 민법상 귀책 근거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 피해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하거나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 또는 보호의무 위반을 근거로 채무불이행책임을 소구할 수 있다.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사용자의 고의 또는 과실, 사용자의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 손해의 범위 등에 관하여 소정의 증명을 하여야 하는 부담이 있다. 업무상 질병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로서는 조속한 피해구제를 희망하여 민사상 구제 보다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급여 청구에 관심을 두게 되고 실제 소송도 그러한 내용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피용자 구제범위에 관하여는 민사상의 구제와 특별법상의 구제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최근 삼성 그룹에서 백혈병 피용자 또는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조정안을 받아들였는데, 그 내용은 위의 급여 청구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할 것이다. 민사상의 구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가 이유이다.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피해자들에게 발병된 암이나 희귀질환에 대하여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유독물질의 노출로 장기간의 잠복기를 거쳐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 원고는 상당히 오랜 과거의 시점에 이루어진 유독물질의 노출 시기 및 정도를 어떻게 증명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유독물질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어떻게 증명 하는지가 문제 된다.
백혈병 사건이 발생한 지 10여 년 동안 반도체 제조과정에 관한 정보가 피해자를 비롯한 외부에 알려지거나, 위 정보공개에 관한 사용자의 협조 거부 내지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을 간접사실로 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판결례 나오기는 하지만 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 또는 증명도에 관한 대법원의 입장은 여전히 상당인과관계를 취하고 있다. 유독물질에 의한 업무상 질병은 주로 만성적인 질병임에 착안하여 역학적 인과관계에 의한 증명 등을 활용하여 다른 원인의 존재 가능성이 없음을 피해자가 보다 용이하게 증명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하는 것이다.
역학적 증거에 의한 인과관계의 증명, 전문가 증언 제도는 인과관계 증명 부담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위와 같이 반도체 산업 피해자들이 유해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업무상 질병이 발생하였을 경우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시하였다. ① 개연성이론에 따른 증명책임의 완화, ② 특수질병에 대한 역학적 인과관계의 정립, ③ 보건·의료 전문가 증언 제도 채택, ④ 업무상 질병 발병 이전의 의료비 및 위자료 청구, ⑤ 특수질병에 대한 시효 배제, ⑥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따른 구제방법으로 이행청구권, 작업거절권, 금지청구권의 실행, ⑥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⑦ 반도체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 ⑧ 노동법원 도입을 통한 피해자 보호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