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유력 후보, 2011 퓰리처상 후보작, 2011 데이턴 문예평화상 수상작 한국계 미국 작가 이창래의 전쟁과 인간,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대한 뜨거운 메시지 프로필 상으로는 1965년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이창래는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해 현재까지 미국에서 활동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한국계 미국 작가다. 예일대와 오리건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가의 주식분석가로 일하다가 1995년 《영원한 이방인 Native Speaker》을 통해 화려하게 데뷔한 이창래는 미국 문단이 수여하는 각종 문학상들을 받으며 탄탄한 신인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생존자 The Surrendered》는 1999년 《제스처 라이프 A Gesture Life》, 2004년 《가족 Aloft》을 발표하며 언론의 극찬과 탄탄한 판매고를 자랑하는 순문학 작가로서 입지를 굳힌 이창래가 2010년 발표한 그의 가장 신작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1995년 데뷔하여 약 4~5년에 한 편씩, 현재까지 총 네 편이라는 결코 많지 않은 작품들을 발표하면서도 문단과 독자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이창래의 작품들은 모두가 역사적, 사회적 이유로 거대한 미국 사회에 내던져진 한국인의 삶을 그렸다.
《생존자》는 6·25 전쟁 당시 한 산골에 세워진 고아원과 그로부터 35년여 후인 1986년 미국을 배경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쟁으로 인해 뒤얽힌 세 남녀의 비극적인 삶과 슬픔, 그리고 나아가 인간의 가치를 말살하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작품이다. 《생존자》는 2011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동년 데이턴 문예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그의 여느 작품과 다름없이 고른 작품성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2011년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를 수상자로 배출했던 노벨문학상 후보군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려 세계적인 입지를 가진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잡초처럼 피어나는 인간의 오욕칠정, 그 아래 숨겨진 숭고한 희생 전쟁 고아 준, 미군 병사 헥터, 선교사 아내 실비, 전쟁에 희생된 세 영혼에 대한 특별한 연대기 전쟁 고아 준 : 1950년 쌍둥이 동생 둘과 함께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민 기차에 겨우 몸을 실은 어린 소녀 준은 피난 전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피난 도중 어머니와 언니를 비참하게 잃고 충격을 받은 상태지만 동생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텨나간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동생들마저 잃고 살아 있는 동안 잔혹한 세상과 완벽한 담을 쌓기로 한 준. 발길 가는 대로 흘러 도착한 고아원에서 뜻하지 않은 인연들을 만난다.
미군 병사 헥터 : 전쟁을 경멸하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뒤섞였던 가운데 자신의 부재 때 일어난 사고로 아버지가 죽자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타고난 군인으로서의 자신의 자질을 발견하지만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마지막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죽은 이를 대하는 전사자 처리부대로 자리를 옮긴 헥터. 그러나 그 자리마저 지키지 못한 그는 언제나 번민과 고뇌에 휩싸인 자신을 가만히 놓아둘 수 없어 전쟁 고아들이 가득한 고아원에 둥지를 틀고 일하기로 결심한다.
선교사의 아내 실비 :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세계를 누비며 선교 활동을 해온 실비는 부모님의 희생정신과 용기를 그대로 물려받아 자신도 부모님과 같은 사람이 되겠노라 맹세한다. 하지만 만주사변 당시 현장에서 자신이 가졌던 세계관에 반(反)하는 방식으로, 그야말로 비참하게 부모님과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실비는 그 충격에 인생의 한 자락을 놓는다. 다행히 선교사의 아내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과거를 잊는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지만 가슴속 깊은 상처는 계속 발목을 움켜잡는다.
《생존자》는 6·25 당시 한국의 한 고아원을 배경으로 만난 상처투성이 세 영혼들의 짧은 교감과 긴 비극, 그리고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의 참상을 다룬다. 전작에서 철학적인 문장과 무거운 주제로 독자의 마음을 깊은 인식의 굴레로 인도한 작가 이창래는 이 작품에서 전작들보다 편안하고 짧아진 문장과 서술을 선택한 대신, 전쟁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주인공들의 내면이라는 더욱 어두운 주제로 천착한다. 인간의 모든 인간다움을 말살하는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자의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뜯기고 상처입고 버려진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결코 읽어내기 쉬운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그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결코 책장을 덮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작가 이창래의 힘이다. 참혹하고 절망적이며 여과 없는 묘사 속에 담긴 힘은 독자에게 눈물과 감동, 그리고 슬픈 진실을 동시에 선사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또한 손쉬운 ‘구원’이라는 결말로 작품을 끝내지 않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이 작품의 깊이감을 더욱 더한다.
1950년~1953년 한국전쟁 당시 과거와 1986년 미국을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지금은 중년이 된 준이 엉켜 버린 과거의 매듭을 풀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작가는 무거운 주제와 전쟁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작품에 담으면서도 소설적 이야기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으려는 듯 준이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고 되돌리려는 방식을 뜻밖의 미스터리적 구성으로 담기도 한다. 한 번도 현실 장면에서는 등장하지 않은 준의 기억 속 아들은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 존재하지 않는 인물일까. 그리고 그녀가 가슴 깊이 묻어둔 타인에 대한 죄책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이 모든 의문의 해답이 마지막 페이지에 다가갈수록 서서히 풀리는 순간, 독자는 소설적 카타르시스와 함께 작가가 숨겨둔 또 다른 메시지를 발견하고 깊은 감동과 여운을 함께 느끼게 된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 엉망이 된 세 주인공의 청춘, 엉킨 과거의 매듭을 풀려는 준의 새로운 여행,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반복되는 깊은 울림의 소설 《생존자》는 전쟁과 구원, 사랑과 용서, 숭고한 희생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보기 드문 걸작이며 작가 이창래의 명실 공한 대표작이 될 것이다.
책속에서
준은 달리면서 절단된 동생의 다리 부위를 꽉 움켜쥐었지만 한 손으로는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멈추어 서서 동생을 땅바닥에 눕힌 다음 양손으로 절단 부위를 꽉 움켜쥐었다. 기차는 천천히 남매를 스치고 남쪽으로 굴러갔다. 이제 그들의 뒤로는 기차의 3분의 1만 남아 있었다. “왜 멈췄어.” 지영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어.” “아.” 얼굴의 핏기가 빠져나가며 지영은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를 찾으러 돌아올 거야?”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는 거지?” 준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돌아오지 않아도 돼.” 그녀는 온기가 남아 있는 지영의 손을 내려놓고 역시 온기가 남아 있는 동생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 나서 동생의 곁을 가능한 한 오래 지켰다. 하지만 마지막 객차가 스치고 지나갈 때, 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의 중심을 잡은 다음 오직 살아남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불쌍한 아버지의 판단은 옳았다. 그는 전쟁에 나가서는 안 되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오랫동안 어머니는 그날 밤에 아버지를 그렇게 남겨두고 혼자 술집을 나섰다는 이유로 심지어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어머니는 헥터에게 애정을 보여주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그때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서울이라는 도시에 공산주의자들이 기습 공격을 감행할 때까지의 잠잠했던 몇 년 동안이었다. 헥터는 또 다른 전쟁이 터지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처벌하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로 전쟁을 갈구했다.
만약 북한이 동족인 남한을 침공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레밍턴 총기회사에 들어가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직접 무기를 만들지는 않더라도 타자기나 계산기를 두드리든가 무언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쟁만 터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평범한 가정의 남편과 아빠가 되었을 것이고 일요일이면 친한 친구들과 야구를 즐겼을 것이다. (중략)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헥터는 충분히 넓고 어둡고 깊은 세상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흔히 말하는 돌연한 자각이 아니었다. 그는 장차 영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군인으로서 그는 자신을 구원자나 어떤 살인 기계가 아니라 전쟁터에 나간 무수한 병사들 중 하나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