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피곤이 밀푀유 나베처럼 차곡차곡 쌓인 저녁 8시, 나는 목욕탕에 간다 아무튼 시리즈 서른여섯 번째 이야기는 각막에 초미세먼지가 낀 것처럼 눈앞이 흐릿한 날, 어깨는 묵직하고 목은 뻑뻑한 병마개처럼 굳은 날, 온종일 종종거리며 이런저런 일에 치인 날, 결국엔 얼었다 녹은 오징어처럼 몸이 축 처지는 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목욕탕을 찾아 온탕 깊이 몸을 담가온 목욕탕 애호가의 이야기, 『아무튼, 목욕탕』이다. 피곤이 밀푀유 나베처럼 차곡차곡 쌓인 저녁 8시에 목욕탕에 갔다 오면 침침한 눈이 순정만화 주인공의 다이아몬드 박힌 눈망울로 바뀐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목욕탕은 오랜 세월 몸도 마음도 뽀드득한 뿌듯함으로 기분 좋게 채워준 곳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작고 깨끗하고 환한’ 목욕탕과 목욕 후 마시는 흰 우유를 좋아했던 그가 들려주는 목욕탕 훈김처럼 따뜻하고 촉촉한 이야기는 사람 말소리가 끊어진 목욕탕에 앉았을 때처럼 뜻밖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들을 안겨줄 것이다.
_마음의 부드러운 결을 되찾을 때까지 나를 씻긴다 집에서 물 받아 씻으면 되지 굳이 목욕탕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구심이 든다면 다음을 읽어보자.
“유리문을 열면 온몸이 따뜻한 기운에 휩싸인다. 각종 비누와 보디클렌저, 샴푸 향이 살냄새, 물 내음과 뒤섞여 콧속으로 밀려든다. 목욕탕에 들어와 겨우 숨 한 번 들이쉬었을 뿐인데 몸과 마음이 반은 녹은 것 같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타일 벽과 바닥에 부딪혀 부서지고 울리다가 물소리와 합쳐져 귓가에 번진다. 명확하게 인식되는 소리가 없어서 오히려 안심이 된다. 알아들어야 할 말, 듣는 순간 반응해야 하는 말에 치였던 귀가 비로소 쉴 수 있다.”
아니면, 이런 건 어떤가.
“온탕에 푹 들어가 앉으면 물이 턱밑에서 찰랑거린다. 적당하게 따뜻한 물에 목만 내놓고 앉는다. 평소에 의자 없이 바닥에 앉는 일이 별로 없고 그런 자세로 오래 앉아 있기도 쉽지 않은데 온탕에서만은 예외다. 참선이나 명상을 하듯 마음의 요동 없이 차분히 몇 분간 머무른다. 몸에 온기를 채우는 것, 오직 그것에만 집중한다. 이 자세로는 심장이 압박을 받기 때문에 따뜻한 충만감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 물에서 일어나 온탕 턱에 걸터앉았다가 다시 푹 앉기를 반복하고, 탕 안에 사람이 적을 때는 온탕 턱에 팔을 걸치고 엎드리기도 하면서 십여 분을 보내면 입 가장자리에 찝찔한 땀방울 맛이 느껴진다.”
목욕탕은 평화와 안식의 공간이다. 핸드폰 배터리 마지막 칸이 깜박이듯 기운이 사라져가는 날, 우울과 꼼짝하기 싫은 기분이 발목을 꽁꽁 싸매는 날, 기운을 급속 충전 시켜주는 곳이다. 때수건으로 손발을 밀고 발바닥 각질을 제거하면서 몸 구석구석에 달라붙은 피로와 근심, 질척하고 음습한 기분을 떨쳐내면서 깨끗한 몸과 새로운 기분으로 생의 의지를 다져본다. 온탕에 눈을 감고 앉으면 오늘 남이 내게 던진 가슴을 후벼 파는 말들이 땀과 함께 흘러 사라진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 그렇게 마음의 부드러운 결을 되찾을 때까지 나를 씻긴다.
_다음 목욕을 생각만 해도 힘이 난다 이제 아무 근심 없이 목욕탕을 오가던 날들은 욕객들의 몸을 씻기고 하수구로 흘러들어간 물처럼 모두 지난 일이 된 것일까. 저자는 여러 목욕관리사님들의 손길을 느끼며 덤으로 전해 듣고 건너다보았던 인생사들, 찰방찰방 까르르 물장구치는 예닐곱 살 아이들의 생명력, 목욕탕에서 열심히 자기 몸을 돌보는 사람들이 내뿜는 만만치 않은 내공들, 혼자 오고 싶었지만 굳이 따라온 딸아이와 뜻하지 않게 나누었던 속내 이야기를 추억한다. 목욕탕에서 몸의 활력을 얻고 생의 의지를 다져온 많은 사람들에게 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야말로 ‘빼앗긴 일상’일지 모른다. 저자는 다시 목욕탕에 갈 날을 꿈꾼다. 목욕탕에서 한때 우울과 무기력을 다스리기도 했던 자신처럼 마음이 아픈 이들이 목욕탕에서 삶을 되찾기를 기도하며 거리낌 없이 유리문을 밀어젖힐 날을 기다린다.
책속에서
[P.8] 하루의 과업을 무사히 마쳤으니 뿌듯할 것 같은데 몸은 천근만근이고 마음은 우중충하다. 잠자리에 들기는 일러 텔레비전 앞에서 뉴스를 본다. 어느 순간 졸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한밤중이거나 다음 날 아침이다. 자고 났는데도 피로는 여전히 눈과 어깨, 목에 매달려 있다. 후회막급이다. 목욕탕에 갔어야 했는데.
[P. 18] 탕에 들어가기 직전,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야심한 밤, 꼬들꼬들한 라면을 젓가락으로 막 집어 들 때와 견줄 만한 순간. 발가락이 물에 닿으며 짜르르한 기분을 느끼는 건 겨우 1초다. 행복은 그렇게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바로 그 찰나를 위해 기꺼이 눈바람을 맞으며 빙판 위를 살살 디뎌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는가. 희뿌연 먼지를 마시며 때에 절어 살면서도 그 1초 때문에 발목에 또 힘을 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P. 30~31] 그곳에서 난생처음 열탕에 들어갔다. 열탕은 어른들의 탕이다. 열탕에 ‘어린이는 못 들어갑니다’라고 적혀 있진 않지만 어린이가 앉아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가던 시절에는 도저히 열탕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열탕은 목욕 연차가 내 나이를 훌쩍 뛰어넘는 아줌마, 할머니의 공간이었다. 열탕에 손끝을 넣어보면 화끈거렸다. 그런 물에 들어가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어른들이 어린 내 눈에는 무척 신비로워 보였다. (…) 탕 끝에 살짝 앉아 발 하나 담갔다가 빼고 넣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몸을 담근 순간, 온몸을 꼬집는 듯한 느낌이 전신에 퍼졌다. 나 죽었다 싶은 찰나에 온탕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시원한 느낌이 밀려들었다.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