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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 우리나라 가장 먼저 사제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BC00002049 아동3 920 ㄱ572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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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한국인 최초 가톨릭 사제로 평등사상과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조선전도’ 지도를 제작해 유럽 사회에 조선을 알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부록으로 김대건 신부의 연보와 생가, 라틴어 친필 편지,
‘조선전도’ 지도와 초상화 이미지 수록

★ 이 책은 12월 17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교회인가'를 받았습니다.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으로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순교자 103위의 성인품 시성식이 열렸습니다. 성인품에 오른 김대건 신부는 1836년 최방제 프란치스코, 최양업 토마스와 함께 한국인으로는 맨 처음 신학생이 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납니다. 마카오신학교에서 신학과 서양 학문을 배우고 우리나라 첫 번째 가톨릭(천주교) 사제가 됩니다.
김대건 신부는 죽음 앞에서도 순교의 삶을 통해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놓지 않았으며, 계급사회였던 조선에서 평등사상과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조선전도’ 지도를 제작해 유럽 사회에 조선을 알린 종교인이자 지식인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물입니다.
2019년 유네스코는 김대건 신부의 평등사상,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순교자의 삶과 조선전도를 만든 점을 기려, 2021년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2021년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여, 세계 기념 인물 선정은 그 의미를 더 해 주고 있습니다.
책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마카오에서 보낸 신학생과 유학생 시절과 우리나라 첫 사제가 되어 사목활동을 하고 순교하기까지 삶을 담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세상에 나누고자 했던 김대건 신부의 삶을 따뜻하지만 생생한 입말체 글과 파스텔 느낌의 그림으로 풀어낸 어린이와 어른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인물 이야기입니다.
책에는 부록으로 김대건 신부의 연보와 생가, 라틴어 친필과 조선전도 사진을 실어 김대건 신부의 삶과 생애를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서양 문물과 사상을 접한 세계인이자 지식인으로
자신의 신앙과 신념, 앎을 끝까지 실천한 김대건 신부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맨 처음 신학생, 유학생으로 서양 문물을 접하고 배운 종교인이자 지식인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청나라에서 서학(천주학)과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격변기에 접어든 1800년대 천주학(천주교)을 받아들인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집안 어른을 통해 어릴 때부터 천주학을 통해 천주교 신앙과 평등정신과 박애주의를 알고 배웁니다. 또한 자연스레 서양 문물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는 16살이 되는 1836년 사제가 되기 위한 신학 공부를 위해 마카오로 유학을 떠납니다.
김대건 신부는 마카오신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비롯해 라틴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서양 학문과 지식을 배웁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베이징, 마카오, 필리핀, 상하이, 훈춘, 랴오둥(요동) 지역 등 2만 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을 하면서 세계사에 남을 역사 순간을 목격하였고, 그 지역의 문화와 특이한 점들을 기록과 편지로 남깁니다. 이처럼 김대건 신부는 다양한 경험을 한 세계인자 여행자,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보좌 신부가 되는 부제서품을 받고 조선에 들어와 잠시 한성에 머물 때, 천연두로 아이들이 죽거나 얼굴에 남은 흉터에 힘들어하자 프랑스 신부에게 천연두 예방과 치료약을 요청해 아이들을 치료하고,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도움을 줍니다. 이는 김대건 신부가 발전한 서양 의학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대건 신부는 지도 ‘조선전도’를 만들어, 조선을 유럽 세계에 알렸습니다. 조선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도 16년 먼저 만들었으며, 외국인들도 알아볼 수 있게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하였습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를 그려 넣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지도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어릴 때부터 천주학을 통해 모두가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같은 동네 동무들에게 작은 것도 나누어 주려고 했고, 노비나 상민들에게도 하대하지 않고 똑같이 대했습니다. 계급사회와 차별이 심했던 조선 사회에서 ‘평등’이라는 가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는 옥에서 작성한 ‘회유문’ 말머리에 나오는 ‘우리 벗님들!’라는 문구에서 잘 드러납니다. ‘벗’이라는 말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차별과 계급사회인 조선에서 하느님 신앙을 통해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말하며 있으며, 이는 오늘날 평등사상과도 이어집니다.
김대건 신부는 자신이 배운 서양 지식과 천주교 신앙을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놓지 않고 실천하였습니다. 순교한 뒤에 성인으로 시성 되었습니다.
이런 실천적인 삶을 살다간 성 김대건 신부는 오늘 우리 어린이에게, 어른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인물입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순교자의 삶과 신념을 실천하고,
앎을 함께 나누려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는 김대건 신부


김대건 선부는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김가항(金家巷)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으로 돌아와 1년 1개월 동안 사목활동을 합니다. 이 시기 조선은 외세 문물을 막고 있었으며, 천주교(천주학)를 박해하고 탄압했던 엄혹한 시기입니다.
김대건 신부가 프랑스 신부들이 조선에 들어오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제작한 지도 ‘조선전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6년 앞서 만들었습니다. 지명을 로마자로 표기하였고, 무엇보다 독도를 ‘Ousan’으로 표기하여 조선의 영토로 표시하였습니다. 조선전도는 프랑스 신부들을 통해 조선이 유럽에 알려지는 계기도 된 지도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어릴 시절을 보낸 은이마을을 중심으로 사목활동을 하다, 인천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1846년 9월 17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를 합니다. 체포되어 옥에서 모진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주변에 천주교를 알리고, 세례를 주며 자신의 신앙심과 신념을 놓지 않고 순교자의 삶과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을 끝까지 실천하였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한국인이자 우리나라 가톨릭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에 맞춰 펴내는 김대건 신부의 삶을 담은 인물 이야기입니다.
김대건 신부는 평등사상과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조선전도’를 제작해 유럽 사회에 조선을 알렸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삶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입말체의 글과 파스텔 느낌의 잔잔한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책 뒤에는 부록으로 김대건 신부의 연보와 생가, 라틴어 친필과 조선전도 사진을 김대건 신부의 삶과 생애를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어른 누구나 함께 보며 이야기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인물 이야기책입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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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0~11] 김대건은 1821년 8월 21일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솔뫼마을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
서 태어났어. 어머니가 몸이 약해서 걱정이 많았대. 아기 낳는
진통이 시작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는 천주님께
아기를 위한 기도를 드리느라 눈을 꼭 감고 있었지.
온 가족의 축복 속에 태어난 대건은 어릴 때 이름은 재복(再福)이고,
대건(大健)은 신학생 때 개명한 이름이야.
김해 김씨 안경공파인 김대건은 1814년에 순교한 증조할아버지 김진후와
1816년에 순교한 작은할아버지 김종한이 있는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어.
[P. 34] 모방 신부는 재복을 보고 놀랐어. 침착하고 의젓한 데다 키도 훤칠하고 멋지고,
천주교 교리도 잘 알고 있어서 말이야.
재복은 은이공소 마당에 무릎을 꿇었어.
모방 신부가 물었어.
“참 영특한 아이로다. 세례명은 생각한 것이 있느냐?”
“‘안드레아 ’ 란 세례명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 세례명이 안드레아셨습니다.”
모방 신부는 놀라며, 유진길 역관을 통해 재복에게 물었어.
“혹시, 사제가 될 생각이 있느냐?”
모방 신부의 말에 재복과 아버지는 깜짝 놀라서 서로 마주 보았어.
사제가 되려면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 공부도 해야 하고, 또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뜻이니 말이야.
아버지 김제준은 아들이 사제가 되는 것을 누구보다 바랐지만,
목숨을 바치는 성직자의 길을 환영만 할 수는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