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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_ 산사로 들어서며

· 서울 북한산 승가사︱『동국여지승람』의 5대 명산 북한산의 기운이 깃든 기도 도량
북한산 보현산신각︱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작동되는 기도처
· 하동 지리산 칠불사︱49일간 온기가 남았던 전설의 아자방과 개운 조사의 금강굴 이야기
지리산 산천재︱지리산 천왕봉의 정기를 머금은 마음의 쉼터
· 서산 연암산 천장사︱경허 선사의 발자취를 따라, 번뇌를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다
· 진안 마이산 고금당︱경허 선사와 녹두장군 전봉준의 애틋한 사연
· 평창 오대산 상원사︱앉은 채로 육신을 벗은 한암 선사의 발자취를 따라
한암의 제자들︱일본 침몰 예언한 탄허 스님 이야기
· 부안 변산 불사의방︱변산의 아득한 절벽 위에서 발원한 한국의 미륵 신앙
· 김제 모악산 금산사︱역대 왕조의 흥망성쇠와 함께해온 한국 미륵 신앙의 본거지
· 고창 선운산 선운사︱도솔암 마애불 배꼽에서 꺼낸 비결과 비운의 동학혁명 이야기
· 익산 미륵산 미륵사︱용과 부처의 극적인 융합을 이뤄낸 한국 불교 이야기
· 미륵산 사자사︱백제 무왕과 선화 공주의 애틋한 불심
· 정읍 두승산 유선사︱백제 유민의 원한을 달래고 국민 통합을 염원한 의상 대사 이야기
유선사 산신각︱호남을 지키는 산신과 호랑이 이야기 198
· 김제 승가산 흥복사︱고구려 승려인 보덕 화상이 백제로 망명해 창건한 사연 깊은 절
· 완주 서방산 봉서사︱민중의 삶 속으로 뛰어든 진묵 대사의 이유 있는 선택
· 순창 영구산 구암사︱개화기 선각자들을 키워낸 교학의 중심지, 구암사 이야기
· 김천 불령산 청암사︱도선 국사를 덩실덩실 춤추게 한 천하의 명당
· 완주 대둔산 안심사︱날카로운 산세를 가진 산에는 힘이 센 산신이 산다
· 완주 수봉산 홍련암︱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법력 높은 선승의 매력
도봉산 망월사︱칼 대신 육두문자의 초식을 휘두른 춘성 스님
· 김제 망해사와 변산 월명암︱지는 노을에 번뇌를 던지니 바람도 불경이 되는 곳
· 기장 임랑리 묘관음사︱파도 소리에 몸을 맡겨 일체 잡념을 버리는 관음 수행처
지리산 유가대︱물소리와 더불어 깨우침을 얻는 곳
· 곡성 동리산 태안사︱발아래로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보다 깨달음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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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산사로 가는 길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062212 294.5551 -24-1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0003062213 294.5551 -24-1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B000094653 294.5551 -24-1 부산관 종합자료실(1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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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天地人)의 합일로 읽어낸 우리 정신문화의 전경
우리의 산과 사찰은 수천 년의 유구한 전통 속에서 역사의 갖은 풍랑을 이겨내며 여전히 우리의 수행처이자 쉼터이자 배움의 공간으로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저자는 우선 그 유구함의 배후에 숨겨진 다양한 인과관계에 주목한다. 이어 시간과 공간과 인물이 한 사찰을 중심으로 얽히고 풀어지는 관계망을 밝혀내 의미화한다. 유구한 불교문화를 구심점으로 하여 유불선이 토착화되고 현지화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함께 작동해온 풍수 등 민속 신앙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현재까지도 우리 삶의 깊은 곳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 내면의 정신세계를 입체적으로 파악해내고 있다.

명산에는 명찰이 있다. 천오백 년 불교 전통을 구심점으로 하여, 우리는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유구한 문화를 꽃피웠다. 우리 민족 공동체의 중핵엔 산과 사찰이 있다. 민속 신앙과 유불선의 통합이 산과 절을 통해 이뤄졌는가 하면, 수많은 고승의 깨달음과 가르침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또한 산과 절이 우리 곁에 있기에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산과 사찰이 과학 문명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조차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쉼터이자 수행처이자 치유의 장소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산사를 찾아가는 진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백 가지 풀들이 모두 부처의 어머니이다.”
사찰은 번뇌를 없애기 위한 장소이다. 거기에는 불교 사상이 있다. 한국의 절에는 영험이 서려 있다. 절에는 그 배면에 풍수가 있다. 땅과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교감했는가는 절에 가보면 안다. 영험이 어려 있는 사찰은 지령이 깃들어 있다. 절에는 수천 년 넘게 이어온 우리 조상들의 민속 신앙이 숨어 있다. 산신이 있고, 칠성이 있고, 용왕이 있다. 절에는 문화와 역사가 있다. 천년 고찰에는 그 절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가 온축되어 있다. 그뿐인가. 절에는 이름 난 고승들의 행적이 배어 있다. 그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의 삶은 풍족해진다.

“쉬고 또 쉬면 쇠 나무에서도 꽃이 핀다.”
고도의 정보화 시대에 현대인은 빠르게 소진되는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성찰의 기회조차 잃은 채 쫓겨 다니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절벽 끝이거나 아니면 망망대해의 조각배 위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은 우리의 퍽퍽한 삶에 하나의 힌트를 제공한다. 사진을 찍고 인증을 남기느라 여행도 일이 되는 세태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머무를 수 있는 곳, 그렇게 머물며 걱정과 근심을 비워낼 수 있는 곳, 비워내고 다시 ‘나’를 찾을 수 있는 곳, 바로 우리의 산과 절이라서 가능한, 선물과도 같은 정신문화유산이 우리에겐 있다는 것.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천변만화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보다 잘 쉬어야 한다. “쉬고 또 쉬면 쇠 나무에서도 꽃이 핀다”는 임제 선사의 가르침은 무위의 가치와 효용을 말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버스 요금만 가지고도 언제든 마음을 비우고 쉼을 얻을 명산과 명찰을 가까이 두고 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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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3] 구한말, 경허 선사는 18세 여자아이를 데리고 마이산 고금당으로 숨어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전옥련, 바로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의 친딸이다. 그런데 이 전옥련은 경허의 조카딸이기도 했다. 경허의 여동생이 전봉준의 부인이었다. 여동생의 딸이었던 전옥련을 외숙이었던 경허가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당시에 가장 오지이고 비밀스러운 장소였던 마이산으로 피신시킨 것이다. 어떻게 해서 경허가 동학군 대장 전봉준과 인척이 된단 말인가? 굉장한 사건이자 이야기이다.
- 마이산 고금당
[P. 52] 젊어서는 산이 좋고 나이 들면 도시가 좋다. 이게 일반적인 공식이지만 조선 중기의 남명 조식 선생은 반대로 실행했다. 60세가 되던 1561년에 경남 산청군 덕산면 지리산 천왕봉 밑으로 들어왔다. 환갑에 입산한 셈이다. 그것도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을 택해서 들어왔다. 여기에다 강학 공간을 세웠으니 그 이름이 산천재다. 죽음 맞이할 때까지 꼭 11년을 산천재에 머물렀다. 인생의 대미를 여기서 장식한 것이다. 산천재에 머문 11년 동안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키웠다. 터가 명당이라서 그런 것일까? 산천재는 천왕봉에 내리치는 천둥 번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에너지를 받아서 최영경·정인홍·곽재우 같은 걸출한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결국 남명학파 사단은 임진왜란에서 왜적들과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 지리산 산천재
[P. 85] 한암 선사는 입적할 때 사진 한 장을 남기고 가셨다. 백 마디의 법문보다 더 무게가 느껴지는 사진을 남기고 가셨다. 선사의 좌탈입망의 생생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앉은 채로 턱을 약간 뒤로 젖히고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모습이다. 좌탈입망은 앉은 채로 육신을 벗고 고요의 세계로 들어감을 뜻한다. 그야말로 고도의 경지이다. 이 사진은 6·25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동하던 선우휘 씨가 우연히 상원사에 들렀다가 선사께서 홀로 입적해 계신 모습을 포착해 찍은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수도의 세계가 관념이 아닌 실존의 세계라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 오대산 상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