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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에 붙이는 머리말
머리말

1부 어느 유별난 종의 개념적 문제

1장 우리에게 본성이 있을까?
동기 이해하기 | 우리가 가진 개념에 대해 할 수 있는 질문 | 사람이 백지가 될 수 있을까?

2장 동물과 악의 문제
전통과 현실 | 내면의 짐승 |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짐승

3장 본능, 본성, 목적
닫힌 본능과 열린 본능 | 종의 본성이란 무엇일까? | ‘생물학적 결정론’의 의미 | 목적에서 출발하는 추론

2부 심리학에서 기예와 과학

4장 지휘자 없는 지휘
과학적이라는 것 | 유전자 떠받들기 | 장기적 시각의 필요성 | 개인을 잊는 어리석음

5장 동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행동에는 동기가 포함된다 | 묘사라는 것 | 소통과 의식

6장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이기심의 다양한 관념 | 이기주의의 용도와 오용 | 이타주의를 오해하는 방법 | 불가사의한 무의식적 이타주의자 | 동기 연구 전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법

3부 이정표

7장 위와 아래
진화의 사다리라는 것이 있을까? | 생존만으로는 불충분하다 | 높이라는 은유 이해하기

8장 진화와 실천적 사고
진화가 타당한 자리 | 신경학이 도덕철학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

9장 사실과 가치
좋음과 바람 | 지식 활용에 관하여 | 본성은 하나의 전체다 | 우리는 이곳의 여행객이 아니다

4부 인간의 표식

10장 말을 비롯한 인간의 뛰어난 특징
단순한 구분의 유혹 | 데카르트-이성과 언어 | 언어와 도덕 | 언어는 무엇일까? 그 밖의 구조적 속성 | 기계 모델이 통할 수 없는 이유 | 언어의 기능 이해하기 | 표현 동작의 기능 이해하기

11장 합리적인 동시에 동물적임에 관하여
본성의 통일성 | 충돌과 통합 | 자기 통제-인간의 해법 | 공통의 해법

12장 문화가 필요한 이유
문화는 본성적이다 | 언어로 본 문화 | 습성과 상징 속에 있는 인류 이전 문화의 뿌리 | 관습적 상징의 자리

5부 공통의 유산

13장 삶의 통일성
감정적 구성 | 가족과 자유 | 지성이 본능을 대체하지 않는 이유 | 의인화는 무엇일까? | 이기주의자의 막다른 골목 | 세계 전체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감사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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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유전적 결정론과 환원주의적 세계관에 맞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통해 인간 본성의 근원을 탐구한
우리 시대의 시작에 있는 철학자,
메리 미즐리의 대표작이자 도덕철학의 기념비적 고전

『짐승과 인간』은 매우 중요한 책이다. 과학이나 철학의 전문용어를 동원하지 않으면서 그 실체를 꼼꼼하게 다룬 이 두꺼운 책은 생생한 논의를 광범위하게 제시하고 있으며, 과학자에게도 철학자에게도, 전문가에게도 일반인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개념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철학적 문제를 짚어가면서 미즐리는 과학과 철학 사이에 시급히 요구되는 다리를 놓았다.
_아이리스 머독(철학자, 소설가)

『짐승과 인간』은 철학자 메리 미즐리의 첫 저서이자 대표작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탐구한 이 책은 철학, 윤리, 심지어 과학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그의 주요 주제와 사상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이 다른 종들과 구별되는 성질에 집중했다. 미즐리는 철학의 장에 동물행동학 연구를 가져와 인간과 다른 종의 유사성을 탐구한다. ‘인간 행동의 동기는 무엇일까?’ 미즐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넓은 관점에서 볼 때 인간 또한 늑대와 곰과 코끼리와 같은 동기로 행동한다고 말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동물 쪽을 간과하면 인간 행동의 풍부하고 복잡한 면모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요지이다.

그는 콘라트 로렌츠, 니코 틴베르헌, 제인 구달을 비롯한 동물학자들의 동물행동 연구를 언급함으로써, 플라톤에서 실존주의에 이르는 전통 철학이 동물 본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고,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왜곡했는지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 같은 과학자들의 유전적 결정론을 기초로 한 환원주의적인 세계관을 비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 과학과 윤리의 관계,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과학과 진화론의 발전이 갖는 의미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통합적인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다. 첫 출간 20년 후 개정판이 나오고 21세기의 생명윤리학적 논쟁에 더욱 타당하다고 인정받으며 출간 시점보다 더 유효하게 읽히는 지금의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 『이기적 유전자』 vs 『짐승과 인간』


“이기적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상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 ‘신중하다, 자신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뜻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다’, 또는 사전에 표현된 대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제하고 자신의 이익에 전념하거나 관심을 갖는다’를 의미합니다. […] 모든 것이 흰색이라면 흰색이라는 단어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항상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이라는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기심은 보편적인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__『가디언』 인터뷰에서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었다.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이고, 유기체는 유전자의 ‘수단’으로 볼 수 있으며, 유전자는 이기적 복제를 통해 진화를 주도한다고 주장하면서, 출간 당시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진화생물학의 최신 이론을 접목해 주목을 받았다.

1978년, 메리 미즐리의 『짐승과 인간』이 출간되었다. 동물과 인간의 닮은 점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재고하는 이 책은 출간 당시 많은 주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진화생물학, 사회생물학이 주목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영장류에서 진화한) 인간의 영광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었다. 진화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같단 말인가!

1979년, 마침내 리처드 도킨스와 메리 미즐리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유전자 저글링(gene juggling)’. 유전자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진화론, 인간 본성, 인간 행동에 대해 신랄한 논쟁이 벌어졌다(이 철학적 논쟁은 세 편의 글에 걸쳐 벌어졌다). 떠오르는 신성 도킨스와 첫 저서로 남성 철학자 일변의 철학계를 뒤집어버린 미즐리. 시대의 큰 조류가 도킨스를 밀고 있었지만 메리 미즐리가 호락호락 물러설 인물은 아니었다. 미즐리는 도킨스가 다윈주의의 불편한 부분을 무시하면서 과도하게 단순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가 언어와 내용에서 19세기 사회다윈주의와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그것이 경제적, 사회적 정책에서 약자들을 버리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미즐리는 인간이 유전자의 조종을 받는 유기체가 아닐뿐더러, 행동의 동기에 있어 동물과 다르지 않으며, 알 수 없는 것에 둘러싸인 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그 운명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인간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몇 년간 서로 간접적으로 공격을 주고받았고, 미즐리는 도킨스의 작업을 “생물학적 대처리즘(biological Thatcherism)”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도킨스는 그의 비판을 “이해할 수 없는 초인적인 오해”라고 표현했다.

미즐리는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과 DNA 공동 발견자인 프랜시스 크릭 등 20세기 과학의 거물들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하지만 미즐리의 진정한 목표는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찰스 다윈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세계에서 인간의 위치는 진화의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철학은 과학적 사고를 설명하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망칠 수 있는 잘못된 (과학적) 아이디어에 대한 필수적인 치료법이었다. 그리고 그 다리의 첫걸음이 『짐승과 인간』이다.

● ‘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지구는] 목적으로 가득 차 있으며 […] 유기체로 가득 차 있고, 모두 각자의 특징적인 삶의 방식을 꾸준히 추구하는 존재, 각자가 되고자 하는 독특한 존재를 파악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_메리 미즐리

2025년 현재, 『이기적 유전자』가 설명하는 진화생물학은 이제 많은 부분 구식이 되었다. 자연선택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유전자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생명체는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수단’으로 단순화한 나머지 적잖은 오독을 불러오고 있다. 그럼에도 도킨스의 유전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신 유전학에서는 도킨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찾아보기도 어렵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 처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적인’ 사람(유전자)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백인은 흑인보다, 남자는 여자보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누군가는 유전자를 슬쩍 들먹인다(내가 그런 게 아니라 유전자 때문에 그런 거야).

‘트루스니스(truthiness)’.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는 증거와는 무관하게 직관으로 파악하는 진실을 가리키기 위해 이 단어를 만들었다.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그렇게 쉬운 진실이 유통되고 있다. 그렇지만 문득, 초겨울 저녁 기러기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갈 때… ‘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진짜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짐승과 인간』에 있다.

● 책의 구성


“한쪽에는 사회과학자들과 실존주의자들처럼 인간 본성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데스먼드 모리스처럼 인간 본성은 분명 존재하며 잔인하고 저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고 둘 사이의 중간쯤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은 그렇게 ‘야수적’이지 않고 그런 면에서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_『가디언』 인터뷰에서

애초에 미즐리는 진화 생물학자들과 싸우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의 목표는 ‘백지 이론(blank paper)’―인간 본성이 유전되지 않으며 양육과 문화가 모든 것을 형성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었다. 그는 이에 관해 완성된 원고를 코넬 대학교에 보냈고, 당시 획기적인 저서였던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1975)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추가 작업을 거쳐 1978년 드디어 『짐승과 인간』을 출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9세였다.

『짐승과 인간』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어느 유별난 종의 개념적 문제」에서는 인간은 다른 종과는 너무나 달라 본성이 전혀 없다고 하는 의견을 고찰해본다. 이런 견해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묻고, 종의 장벽을 객관적으로 생각할 때의 어려움을 평가하고, 본능, 목적, 본성 같은 난감한 개념을 정리하려고 시도한다.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에게 본성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미즐리의 결론이다.

2부 「심리학에서 기예와 과학」과 3부 「이정표」에서는 이 본성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 묻는다. 여기서 미즐리는 윌슨을 비롯한 생물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분석하면서 “과학을 제대로 해내려면 필요하지만 과학의 일부는 아닌, 그럼에도 그 자체로 엄정하고 체계적이며 적절하다는 뜻에서 ‘과학적’인 배경사고”가 얼마만큼 유용한지 고찰해본다. 그런 다음 ‘이기적 유전자’나 ‘포괄적 유전적 적합성’ 등 진화 생물학자들의 오류의 핵심이자 진화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방해하는 뒤엉킨 개념들을 걷어내고 정리한다. 아울러 본성에 대한 이해가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여기서 미즐리는 진화는 가치관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가치관은 욕구를 반영한다. 우리는 육체를 벗어난 지성체도 아니고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명확한 종에 속하는 동물이며, 이 사실이 우리의 가치관을 형성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4부 「인간의 표식」에서는 우리에게 본성이 있다는 관념이 정당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간주한 상태에서 우리 본성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의 관계를 살펴본다. 말, 합리성, 문화 등 전통적으로 인간과 결부되는 특징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다른 종들과 매우 비슷한 감정 구조를 배타적이거나 적대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성장해 그것을 완성해가는 입장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5부 「공통의 유산」은 간략한 결론으로서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미즐리는 생물권에 속해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가로막아온 담장을 살펴보고, 인간을 나머지 생물권으로부터 철저하게 분리하기를 고집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뿐 아니라 진정한 존엄성에까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은 혼자서는 이해될 수도 구원될 수도 없다”는 것이 미즐리의 결론이다.

『짐승과 인간』에서 미즐리는 백지 이론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이성과 진화라는, 얼핏 상반돼 보이는 듯한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는 어떤 이들은 이성이 초자연적인 지도자라고 주장하지만, 이성은 고유한 진화적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우리의 감정과 상상력이 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성적(합리적)’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사람이 똑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상충하기도 하는 자연적인 욕구와 필요를 이 복잡한 세상에서 일관성 있게 전체로 조직했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또한 세상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 (과학주의의) 분열된 시각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전문화가 우리 자신에 대한 감각을 분열시키고, 인간 지식을 폐쇄적으로 고립시킨다고 경고한다. 분열된 세계관은 환상이며, 이는 인간의 잠재력과 자연 세계의 파괴를 초래한다. 나아가 진실하고 건강한 시각은 우리 자신의 모든 측면이 온전한 인간을 이루는 구성요소이고, 우리는 분리될 수 없는 사회의 일부이자 우리를 한없이 작게 느끼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고향으로 느끼는, 살아 있는 광활한 세계의 일부라는 것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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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이 사자는 자신의 유전자를 더 널리 퍼트리려 하고 있습니다.”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동물 다큐멘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이다. 그렇지, 결국 생명체의 목적이라는 게 생존과 번식이지. 뇌 호르몬이 기분을 좌지우지하고, 본능(유전자)에 따라 누군가에게 끌리고, 일단은 수컷이니까 조금 더 과감해야 하고… 그런데, 그렇다면, 이 삶의 주어는 누구인가? “불멸의 유전자”의 보이지 않는 명령을 열심히 (이기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그것이 내 삶이 되는 건가. 메리 미즐리는 이런 상황에 유머스럽지만 단호하게 일침을 놓는다(기막힌 비유와 독설이 이분의 특기이다).

“경주마 이클립스의 왼쪽 무릎이 더비 경마에서 이겼다고 주장한다면, 만일 나의 작은창자가 내 점심을 소화했다고 말한다면 […] 루비콘강을 건넌 것은 카이사르의 뇌가 아니라 카이사르였다. 그리고 강을 건너기로 결정한 것 역시 카이사르의 시상하부-둘레계통 복합체나 대뇌겉질이 아니라 카이사르였다.”

그래, 우리 삶의 주어는 카이사르라고!

『이기적 유전자』 vs 『짐승과 인간』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었다. 출간 당시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진화생물학의 최신 이론을 접목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이 설명하는 진화생물학은 이제 많은 부분 구식이 되었다. 자연선택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유전자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생명체는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존재로 단순화한 나머지 적잖은 오독을 불러오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이기적 유전자』는 여전히 진화생물학을 대표하는 책인 것이 현실이다. 최신 유전학에서는 도킨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찾아보기도 어렵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의혹을 품고 있다. 이 책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이런 처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기적인’ 사람(유전자)이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1978년, 메리 미즐리의 『짐승과 인간』이 출간되었다. 동물과 인간의 닮은 점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재고하는 이 책은 출간 당시 많은 주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진화생물학, 사회생물학이 뜨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영장류에서 진화한) 인간의 영광에 찬물을 끼얹는 형국이었다. 진화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같단 말인가!

1979년, 마침내 리처드 도킨스와 메리 미즐리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른바 ‘유전자 저글링(gene juggling)’. 유전자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진화론, 인간 본성, 인간 행동에 대해 신랄한 논쟁이 벌어졌다. 떠오르는 신성 도킨스와 첫 저서로 남성 철학자 일변의 철학계를 뒤짚어 엎어버린 미즐리. 시대의 큰 조류가 도킨스를 밀고 있었지만 메리 미즐리가 호락호락 물러설 인물은 아니었다(평소 논쟁을 즐기심). 그는 인간이 유전자의 조종을 받는 유기체가 아닐뿐더러, 행동의 동기에 있어 동물과 다르지 않으며, 알 수 없는 것에 둘러싸인 것이 인간의 운명이고, 그 운명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인간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있는 힘껏.

‘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2024년 현재, 도킨스의 유전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도킨스는 헤비 트위터리언). 백인은 흑인보다, 남자는 여자보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누군가는 유전자를 슬쩍 들먹인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유전자 때문에 그런 거야.
트루스니스(truthiness).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는 증거와는 무관하게 직관으로 파악하는 진실을 가리키기 위해 이 단어를 만들었다.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그렇게 쉬운 진실이 유통되고 있다. 그렇지만 문득, 초겨울 저녁 기러기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갈 때… ‘진짜 세계’에 대한 목마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진짜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짐승과 인간』에 있다.

너는 흰 눈을 저장해둔 곳에 가본 일이 있으며, 우박 창고에 들어가본 일이 있느냐? […]
소나기가 타고 올 길을 누가 텄는지 […] 너는 아느냐?
사람이란 얼씬도 하지 않는 곳, 인종이란 있어본 적도 없는 광야에 비가 쏟아져
거친 들을 흠뻑 적시고 메말랐던 땅에 푸성귀가 돋아나게 하는 것이 누구냐? […]
네가 북두칠성에 굴레를 씌우고 오리온 성좌의 사슬을 풀어주기라도 한단 말이냐? […]
너는 낚시로 레비아단을 낚을 수 있느냐? […]
그가 … 너와 계약을 맺고 종신토록 너의 종이 될 듯싶으냐? […]
그는 … 쇠를 지푸라기인 양 부러뜨리고 청동을 썩은 나무인 양 비벼버린다. […]
깊은 물웅덩이를 솥처럼 끓게 하고 바닷물을 기름 가마처럼 부글거리게 하는구나.
번쩍 길을 내며 지나가는 저 모습, 흰 머리를 휘날리며 물귀신같이 지나간다.
지상의 그 누가 그와 겨루랴. 생겨날 때부터 도무지 두려움을 모르는구나.
모든 권력가가 그 앞에서 쩔쩔매니, 모든 거만한 것들의 왕이 여기에 있다.
(욥기 38, 40, 41장)

이것이 찰스 다윈이 물리적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이며, 내가 틀린 게 아니라면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바라본다. 이것이 우리 본성이 살아가도록 적응한 우주이다. 이 우주는 우리에게 이질적이고 하찮게 여겨지는, 우리가 분리되어야 하는 곳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인본주의가 담고 있는 메시지다. 인본주의가 신을 파괴한다는 뜻일 수만은 없다. 그 주요 임무는 인간을 이해하고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서는 이해될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다.
_『짐승과 인간』 본문에서
[P. 13] 논쟁 당사자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으려 애쓰는 동안 양측 모두로부터 계속해서 화살이 날아든다면 굳이 그럴 가치가 있을까? 『짐승과 인간』(Beast and Man)이 처음 출간된 1978년 이후 내가 해온 일이 그랬다.
내 책이 세상을 바꿔놓지 못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편을 갈라 대립하며 논쟁을 벌이는 것은 인간의 매우 깊은 습성이며, 화해를 위한 노력이 잘 먹혀들지 않는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반목의 골이 너무나 깊기 때문에 다리를 놓는다는 관념은 완전히 버리고 논쟁을 벌이는 양극단 중 해를 덜 끼칠 쪽을 지지함으로써 균형이나 잡으려 노력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체념한 듯)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반목이 더할 나위 없이 지독한 와중에도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격렬한 논란이 한동안 이어져 양측이 터무니없이 극단적 입장으로 치닫고 나면 피로와 환멸이 찾아오는데, 이럴 때 이따금 화해 시도가 반가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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