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수자에 속했다는 이유로 사회와 제도가 가져다주는 ‘차별 이익’의 수혜자가 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하진 않지만, 차별이 주는 이득과 평온은 누린다
의도적으로 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대체로 타인에게 선하고 친절하게 보이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문제는 ‘차별’이 생각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반면,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온은 그 차별 없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오늘날 우리의 밥상에 오를 채소 상당수는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손에서 수확된다. 아이들은 싼값으로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외국인 보모의 손에서 자라고, 죽음의 자리엔 24시간 내내 상주하는 조선족 간병인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의식적으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차별로 이득 보는 사회’ 속에서 이들은 희생되고, 우리는 그 희생 위에서 평온한 일상을 유지한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차별의 구조 위에서 유지되고 반복되어 왔는지를 여섯 쌍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조선족 간병인과 파독 간호사, 동남아 이주노동자와 하와이의 조선인, 형제복지원 원생과 유럽의 집시, 배화사건의 화교와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한센병 환자와 에이즈 감염인, 여성혐오와 마녀사냥이라는 쌍들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지만, 놀라운 유사성을 지닌다. 이 책이 말하는 차별은 단순한 혐오 감정이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고 제도가 유지해온 시스템이다. 이렇듯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차별’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일상의 권력 구조를 해부하며, 그 구조 속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되묻는다.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한국인을 통해 본 시대·공간·인종을 넘어 반복되는 ‘차별 이득 사회’라는 시스템
부자 나라는 가난한 나라에 자신들이 기피하는 노동을 외주화한다. 21세기 한국인은 부자 나라의 시민으로서 이주노동자를 저임금으로 고용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인은 선진국의 힘든 일을 도맡는 가난한 나라의 이주노동자였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이 과거와 현재의 위치를 짝지어 보여주는 구성이다. 각 장마다 한쪽에는 과거 한국인이 겪었던 차별의 기억을, 다른 한쪽에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동일하게 재현하는 차별의 구조를 병치하여 제시한다. 예컨대 1960년대 독일로 파견된 파독 간호사는, 지금도 종종 파독 광부들과 함께 외화를 벌어온 애국자로 칭송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병원과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조선족 간병인과 1960년대 한국의 파독 간호사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경우는 잘 없다. 실상 두 존재는 시기와 배경만 다를 뿐, ‘차별 이득 사회’에서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는 같은 처지의 희생자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자국 여성의 돌봄 노동을 외주화하기 위해 제3세계 여성을 싼값에 수입하는 것처럼, 과거 독일도 내국인이 기피하는 돌봄 노동을 이주 여성에게 맡겼다. 현재의 한국과 과거의 독일 모두 ‘돌봄의 외주화’를 통해 ‘차별 이득’의 수혜를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책은 과거의 피해자였던 우리가, 오늘날 가해자가 되어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차별의 모습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차별이 단순한 감정이나 편견이 아니라, 국가와 시대 그리고 인종을 넘어 반복되는 시스템임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역사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은 한국인의 가해 서사 잊힌 진실로 오늘의 차별을 다시 읽는다
한국인 중 상당수는 화교를 혐오하거나 두려워한다. 우리는 그들을 영화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온갖 근거 없는 괴담과 이미지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썰에 등장하는 외국인 범죄자 중 상당수는 화교이고, 한국의 특정 동네는 화교가 모여 산다는 이유로 범죄의 온상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1931년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화교를 집단 학살한 ‘배화사건’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저자는 이 책의 한 챕터(3장)를 할애해, 지금껏 한국 사회가 외면해왔던 이 사건을 조명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수백 명의 조선인들이 톈진과 상하이 일대의 화교를 공격해 살해했던 이 사건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피해 서사와는 전혀 다른 ‘가해자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이 책은 ‘차별로 이득을 보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되었지만 지금껏 외면당했던 소수자 집단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잊혔던 진실을 들춘다. “나는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기 전에 한센병에 걸려서 소록도 병원에서 15년을 살았어. (…) 여자들은 임신이 되면 강제중절하고, 나도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강제로 중절당했고, 아이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5장, 168쪽) 한국 사회가 외면했던 한센병 환자, 형제복지원 원생 등 익숙한 듯 낯선 사건들을 조명하며, 이 책은 차별이 어떻게 제도화되고, 사회가 그것을 얼마나 무관심하게 소비하는지 실감하게 한다. 결국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기억되지 않은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현실’을 복원함으로써, 독자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평온한 일상은,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가?’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서술 방식 저자 스스로를 드러내며 독자에게 함께 고민할 질문을 건넨다
‘차별하지 말자’는 단순한 도덕적 외침은 이 책에 없다. 대신 ‘차별로 이득 보는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이 비판적이면서도 무겁지 않게 읽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 정회옥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차별의 사례들을 보여주면서도,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판단하길 권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저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이 거대한 구조적 폭력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함께 고민해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이 책의 서술 방식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저자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상당수의 생활인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가령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시민 사이에 흔히 일어나는 ‘돌봄의 외주화’라는 현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가 처음 언급하는 사례는 갓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조선족 이모님에게 맡겼던 경험이다. “박사 학위를 받는 중간에 태어났던 아이는 내 인생 최고의 축복임과 동시에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계속할 수 없을지도 (…) 모른다는 불안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이모님은 (…) 돌봄노동을 제공해줌으로써 내가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커리어를 이어가게 도와준 일등 공신이었다”(16쪽) 등의 서술에서 보이듯 저자는 해당 장의 제목인 ‘돌봄으로 이득 보는 사회’의 수혜 당사자가 본인이었음을 드러내며 글을 시작한다. 책을 쓰는 본인도 ‘차별로 이득 보는 사회’라는 구조적 폭력 앞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스스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차별의 구조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일깨운다.
책속에서
[P.13] 이 책의 목적은 차별로 이득 보는 사람들을 가해자로 지목해서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구조와 제도가 아니라, 개인에 주목하는 것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수자에 속했다는 이유로 사회와 제도가 가져다주는 '차별 이익'의 수혜자가 된다. 우리나라 사례든지, 외국 사례든지 공통적으로 이득 보는 집단이 존재한다. 국가와 사회구조 그리고 권력을 잡은 자들은 차별의 대가로 평온하게 일상을 이어가며,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얻는다. _1장 돌봄으로 이득 보는 사회
[P. 24] 우리 사회는 서서히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증가하고, 돌봄을 수행할 사람은 줄어든, 돌봄 결핍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이제 가족 내 여성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돌봄은 더 이상 작동하기 힘들며, 돌봄을 수행할 대체 노동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중략)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조선족 여성 이주노동자는 어느새 가장 중요한 돌봄노동자 집단이 되었다. _1장 돌봄으로 이득 보는 사회
[P. 53] 우리는 한국전쟁 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노동력을 밖으로 보내던 국가였다. 그러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외국으로부터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이입국이 되었다. 돌봄노동 역시, 불과 반세기 전에는 우리가 차별받는 돌봄노동자였다면, 이제는 중국동포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를 대신하고 있다. 파독 간호사 차별로 독일인들이 챙긴 이득을, 이제는 우리가 조선족 간병인을 차별하며 챙기고 있다. _2장 이주노동자로 이득 보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