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가 지난 1천 년간 최고의 작가로 꼽는 조지 오웰의《1984》가 ‘징검다리 클래식’ 45권으로 출간되었다. 《1984》는 극단적인 감시와 통제 사회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개인의 처절한 노력과 파멸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전체주의를 비판한 정치 소설이자,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권력 독재와 감시 사회를 예견한 미래 소설로, 오웰은 이 작품으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청소년의 문해력과 사고력을 높이는 맞춤형 세계 명작 시리즈 ‘징검다리 클래식’은 원서에 대한 충실한 번역과 눈이 편안한 편집, 현직 국어 교사의 친절한 작품 해설로 고전 읽기의 장벽을 낮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가와 작품, 시대상을 현재 시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 해설을 접하고 나면, 읽는 재미를 넘어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더욱 주목받는 고전 감시와 노출 사회의 이면을 비춘, 디지털 시대의 나침반 같은 책
《1984》는 전 세계 65개 언어로 번역되어,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고전 중 하나다. 이 책이 출간된 20세기에는 동시대를 예리하게 그려낸 소설, 21세기에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를 내다보는 ‘미래 소설’이라고 평가받는다. 실제 정부의 감시, 정보 조작과 왜곡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이 책은 새롭게 해석되고 주목받는다. 미국에서는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대규모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했을 때《1984》의 판매량이 약 60배,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에는 약 95배 급증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인 긴장이 높아지는 지금과 같은 시기, 《1984》의 인기는 사그라들 틈이 없다. 그런 점에서《1984》는 현실 세계와 가장 가까운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언론을 주관하는 진실부 기록실 직원 윈스턴 스미스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배경은 ‘빅 브라더’가 지배하고 영국 사회주의(영사)를 통치 이념으로 당이 지배하는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다. 오세아니아의 통치 이념은 당이 내건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다. 이 통치 이념을 영속시키기 위해 당은 끊임없이 ‘늘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당이 국민을 보호하기에 평화가 유지된다’고 선전한다. ‘무지는 힘’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신문 기사를 조작한다. 또한 사람들의 생각을 단순화·획일화하기 위해 ‘새말’을 만들어 보급한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오웰은 감시 사회를 예견한 작가다.《1984》가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이유는 소설 속 ‘빅 브라더’가 데이터 감시와 국가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이 감시 체계로 작동한다. 24시간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은 자의적으로 종료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사상경찰이 염탐하고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징검다리 클래식《1984》의 해설에서는 개인의 사생활과 감시 사회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이 작품이 디지털 기술에 일상이 노출되고 있는 지금 시대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말한다. 정보를 독점하고 조작, 감시, 처벌로 체제를 유지하거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민을 감시하는 국가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CCTV가 일상화되고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기업이 개인정보를 독점하고 유출하며,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신상정보를 넘어 ‘취향’까지 수집한다. 오웰은 이 작품을 통해 감시 사회에 대한 경계를 말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 감시와 국가 감시가 벌어지는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과 해설을 읽으며 질문의 답을 찾아가 보자.
“2+2=4일까, 5일까?” 생각의 자유마저 빼앗긴 개인, 자유와 행복 사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윈스턴은 작품에서 자유를 열렬히 갈망하는 인물로 나온다. “2 더하기 2는 4가 아니라 5”라는 당의 강요 앞에서 ‘4’라 투쟁하고, 당이 국가 정복을 노리는 악의 집단으로 상정한 ‘형제단’을 마음속으로 추종하며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고 일기에 쓴다. 그리고 성적 욕망을 철저히 통제하는 당의 지침에 반해 몰래 줄리아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윈스턴이 목숨을 내걸 정도로 이토록 자유를 갈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4》에서는 개인의 일상뿐 아니라 ‘생각할 자유’마저 강력하게 억압한다. 당원들은 어린 시절부터 당에 해로운 사고는 무조건 무시하고 반박하는 법을 배우고, 당이 요구한다면 흑을 백이라고 말하는 충성심을 쌓는다. 결국 이전에 다르게 알았던 사실마저 잊어버리는 ‘이중사고’가 이들의 생각을 지배하게 된다. 사랑할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심지어 생각할 자유마저 빼앗겼지만, 당의 방침을 어기면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1984》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다. 조지 오웰은 자유 없이 행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행복은 시작된다 글과 삶이 일치한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희망의 메시지
조지 오웰만큼 글과 삶이 일치한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스페인 내전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1949년 전체주의의 종말을 묘사한 《1984》를 펴냈고, 그다음 해인 1950년 세상을 떠났다. 온몸으로 글을 써내려간 오웰은 에세이《나는 왜 쓰는가》에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글 쓰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세계질서가 재편되던 20세기 중반, 조지 오웰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1984》에서 윈스턴이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 계급에게 있다”고 한 것처럼 오웰은 일하는 사람,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 즉 ‘달걀로 바위를 치며 희망의 끝을 붙잡은 사람들’이 사회 개혁의 주역이라고 믿었다. 소설의 책장을 덮고 나서, 어두운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희망을 붙잡고 실천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기획위원 소개 강혜원 : 이화여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전 서울 상암고등학교 국어 교사 전종옥 :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현재 서울 양서중학교 교장 송수진 :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현재 경기 호평중학교 국어 교사
책속에서
[P. 11]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주요 위치마다 검은 콧수염 얼굴이 어김없이 붙어 있었다. 바로 맞은편 집 벽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 시커먼 눈동자.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저 아래 길가에 붙은 포스터의 찢어진 귀퉁이가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였다. 그때마다 ‘영사’(‘영국 사회주의’의 약자.)라는 단어가 보이다 안 보이다 했다.
[P. 15]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런 마음을 먹게 해 준 것은 서랍에서 방금 꺼낸 이 공책이었다. 정말이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공책이었다. 세월이 흘러 약간 누렇게 바래긴 했지만 아직 만질만질한 이 크림색 종이는 적어도 지난 사십 년간 생산된 적이 없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공책은 사십 년도 훨씬 더 된 물건인 셈이었다. 지금은 어느 구역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빈민가의 누추한 고물상 진열창에서 이 공책을 처음 본 순간 곧바로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