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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논문개요 13

Ⅰ. 서론 15

1. 연구목적 및 의의 15

2. 연구범위 및 방법 16

Ⅱ. 일반적 고찰 18

1. 용어 정의 18

2. 20세기 초·중기 시대적 배경 22

1) 한국의 시대적 상황 22

2) 일본의 시대적 상황 26

3. 신여성의 출현배경 31

1) 여성교육의 근대화 31

2) 매스미디어의 발달 32

3) 여성의 사회참여 34

Ⅲ. 한국 신여성 복식의 특성 36

1. 패션스타일과 아이템 36

1) 한복 스타일 36

2) 교복의 출현과 애용 38

3) 양장 스타일 44

2. 신발 및 장신구 53

3. 헤어스타일 61

4. 메이크업 67

Ⅳ. 일본 신여성 복식의 특성 71

1. 패션스타일과 아이템 71

1) 기모노 스타일 71

2) 교복의 출현과 애용 73

3) 양장 스타일 77

2. 신발 및 장신구 87

3. 헤어스타일 92

4. 메이크업 97

Ⅴ. 한국과 일본의 신여성복식 특성비교 100

1. 패션스타일의 모던화 102

2. 신발 및 장신구의 토탈 코디네이션 111

3. 헤어스타일의 서구화 116

4. 메이크업의 트렌드화 118

Ⅵ. 결론 122

참고문헌 125

ABSTRACT 128

표목차

〈표 1〉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사건 연표 30

〈표 2〉 한국 신여성의 메이크업 69

〈표 3〉 일본 신여성의 메이크업 99

〈표 4〉 학생복 비교 107

〈표 5〉 양장 비교 108

〈표 6〉 양장 실루엣 비교 109

〈표 7〉 신여성복식의 아이템별 특징 110

〈표 8〉 모자의 비교 114

〈표 9〉 1920~1930년대 신여성 구두비교 115

〈표 10〉 장신구의 비교 115

〈표 11〉 헤어스타일의 비교 118

〈표 12〉 눈썹화장의 비교 121

〈표 13〉 입술화장의 비교 121

그림목차

〈그림 1〉 김활란 박사, 1920년대, 이대 시청각교육연구원 소장 38

〈그림 2〉 김하, 1931 《한국여성문화사》 38

〈그림 3〉 김활란 박사, 1920년대, http://new woman.culturecontent.com 38

〈그림 4〉 이화학당 학생들, 1900년대 《우리생활 100년·옷》 39

〈그림 5〉 숙명여학교 최초의 양장교복, 1907 《한국여성문화사》 39

〈그림 6〉 숙명여학교 1회 졸업사진, 1910,《한국여성정치사회사》 41

〈그림 7〉 이화학당의 체육시간, 1911 《우리생활100년·옷》 41

〈그림 8〉 개량저고리와 검정 통치마, 1920년대《한국여성문화사》 41

〈그림 9〉 스케이팅하는 여학생, 1927.12.20, 동아일보 41

〈그림 10〉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여학생들, 1927.2.6, 동아일보 42

〈그림 11〉 양장교복, 1933 《한국의 복사》 42

〈그림 12〉 동복 스웨터차림, 1930《한국의 복사》 44

〈그림 13〉 이화여전 학생들, 1933《한국생활문화100년》 44

〈그림 14〉 사범학교 여학생, 1940 《한국의 복사》 44

〈그림 15〉 박에스더, 1900 《한국여성문화사》 44

〈그림 16〉 하란사, 1900년《이화칠십년사》 44

〈그림 17〉 하란사, 1900년대, http://iwoman.iansan.net/ sub05/01_1900_08.asp 44

〈그림 18〉 양장, 1918, 국제패션디자인 연구원 소장 45

〈그림 19〉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여사 ,1915,《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바람》 45

〈그림 20〉 지고슬리브 원피스드레스,1910년대, 이대시청각교육연구원소장 45

〈그림 21〉 나혜석의 양장 차림, 1927 《우리생활100년·옷》 46

〈그림 22〉 구여성과 신여성의 한복차림 비교, 1924.6.15, 동아일보 46

〈그림 23〉 신구의 대조 장옷과 안경, 1924.6.11, 동아일보 46

〈그림 24〉 비치는 옷의 유행, 1924.7.8《신여성》 47

〈그림 25〉 속이 비치는 옷차림 풍자, 1933.8,《신여성》 47

〈그림 26〉 코트, 1927.12.26, 동아일보 48

〈그림 27〉 케이프, 1928.10.4, 동아일보 48

〈그림 28〉 윤심덕, 1920 년대, http://newwoman.cul turecontent.com 48

〈그림 29〉 1920년대 패션, 1928. 5.《별건곤》 49

〈그림 30〉 꽃보다 다리구경, 1934.5.3, 조선일보 50

〈그림 31〉 최신유행 의복풍경, 1932. 11,《동광 50

〈그림 32〉 어디서 그 돈이 생길까, 1930.4.8, 조선일보 50

〈그림 33〉 백화점에 열광하는 여학생들, 1930.7.19, 조선일보 50

〈그림 34〉 최영숙, 1930년대, http;//www.donga.com/docs/ magazine/2006/05/16 51

〈그림 35〉 모던걸, 1930년대 《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바람》 51

〈그림 36〉 코트, 1939 《한국생활문화100년 51

〈그림 37〉 숙명여고동창생들과 최승희, 1937, http://arirangworld. org 52

〈그림 38〉 ‘첨단여성의 모던한 표정술‘, 1932.4,《신여성》 52

〈그림 39〉 원피스, 1940, 《한국여성양장변천사》 52

〈그림 40〉 몸뻬 착용, 1944 《한국여성양장변천사》 53

〈그림 41〉 옥스포드 슈즈, 1920.6.22, 동아일보 55

〈그림 42〉 양산, 일제시대 1910∼1945, 《한국 신문광고 100년》 56

〈그림 43〉 중앙당 시계광고, 1926.5.28, 중앙일보 56

〈그림 44〉 숄, 1933 《한국여성양장변천사》 58

〈그림 45〉 담요 같은 목도리, 1924.3.8, 동아일보 58

〈그림 46〉 가두풍경, 1932.11.24, 중앙일보 58

〈그림 47〉 모던 걸의 장신운동, 1927.6, 신문춘추 59

〈그림 48〉 모껄 제삼기, 1932.1.20, 조선일보 59

〈그림 49〉 고순영여사, 1905《한국의 복식》 61

〈그림 50〉 클로쉐, http://newwoman.cul turecontent.com 61

〈그림 51〉 카플린, 1937.7《신여성》 61

〈그림 52〉 베레모, 1940.8, 《여성》 61

〈그림 53〉 과장된 핸드백과 파라솔, 1929.9.15, 조선일보 61

〈그림 54〉 검정가죽 핸드백, 1937, http://arirangworld. org 61

〈그림 55〉 팜프도어 스타일, 1910년대 《한국생활문화100년》 63

〈그림 56〉 트레머리 《한국여성양장변천사 63

〈그림 57〉 신여성의 단발, 1924.3.27, 동아일보 64

〈그림 58〉 최초의 단발, 《한국여성문화사》 65

〈그림 59〉 김활란 상고단발, 1922, 조선일보조사부소장 65

〈그림 60〉 최승희의 보브단발, 65

〈그림 61〉 유행하는 전발(電髮), 1939.12,《조광》 67

〈그림 62〉 퍼머넌트 웨이브, 1939.10,《여성》 67

〈그림 63〉 동경의여학생, 1904, 《일본복식사》 74

〈그림 64〉 여자 대학생들, 1915, https://photobank.mainichi.co.jp 74

〈그림 65〉 여자고등학교 생도, 1919, https://photobank.mainichi. co.jp. 75

〈그림 66〉 양장교복, 1919, https://photobank.mainichi .co.jp. 75

〈그림 67〉 야마와키여고의 양장교복, 1919, https://photobank.mainichi. co.jp. 75

〈그림 68〉 여학생(1), 1935, http://www.soccerline .co.kr 76

〈그림 69〉 여학생(2), 1935, http://www. soccerline.co.kr 76

〈그림 70〉 여학생(3), 1932, https://phorobank. maibichi.co.jp 76

〈그림 71〉 여학생의 교복, 1944, https://photobank.mainichi.co.jp 77

〈그림 72〉 여학생의 국민복, 1941, https://photobank.mainichi.co.jp 77

〈그림 73〉 양장여인, 1909,《미인첩》 79

〈그림 74〉 장곡천시우, 여류작가,1913《미인첩》 79

〈그림 75〉 대정초기 양장차림여성, 1912∼1916 《미인첩》 79

〈그림 76〉 양장착용여성, 1924, https://photobank. mainichi.co.jp 80

〈그림 77〉 모던 걸, 1924, https://photobank. mainichi.co.jp 80

〈그림 78〉 모던 걸, 1925, https://photobank. mainichi.co.jp 80

〈그림 79〉 모던 걸, 1925 《미인첩》 81

〈그림 80〉 대정말기 마린걸, 1924∼1926 《미인첩》 81

〈그림 81〉 쇼와3년 양장, 1928 《미인첩》 81

〈그림 82〉 고급 스포츠의 보급, 1917, https://photobank.mainichi.co.jp 81

〈그림 83〉 승마하는 여성, 1921 《미인첩》 81

〈그림 84〉 모던 걸, 1928 《일본목식사와 생활문화사》 82

〈그림 85〉 모던 걸과 모던보이 풍자화, 1928 《일본목식사와 생활문화사》 82

〈그림 86〉 모던 걸, 1931 ,https://photobank. mainichi.co.jp 84

〈그림 87〉 모던 걸, 1935, https://photobank. mainichi.co.jp 84

〈그림 88〉 모던 걸, 1933, https://photobank. mainichi.co.jp 84

〈그림 89〉 코트, 1936, https://photobank. mainichi.co.jp 84

〈그림 90〉 모던 걸, 1938, https://photoba 84

〈그림 91〉 원피스, 1938, https://photobank. mainichi.co.jp 84

〈그림 92〉 갱생복, 1938.9, 《소오엔》, 기모노를 고쳐서 洋裝을 만듦 86

〈그림 93〉 몸뻬 차림, 1941∼1945 《調べて學ぶ日本衣食住》 86

〈그림 94〉 여성복, 1944, 《わたしの呼び名は‘まあもちゃん’》 86

〈그림 95〉 구두, 1901 《일본목식사》 89

〈그림 96〉 숄, 1905.3.5, 곳케이신문 89

〈그림 97〉 숄, 메이지후기∼다이쇼 《미인첩》 89

〈그림 98〉 숄의 유행, 1912.1.23, 도쿄마이니치신문 89

〈그림 99〉 우산, 1921, https://photobank. mainichi.co.jp 90

〈그림 100〉 우산, 1931 ,https://photobank. mainichi.co.jp 90

〈그림 101〉 다양한가방, 1901, 도쿄 풍속지 중권 90

〈그림 102〉 클러치 백, 1935, http://www soccerline.co.kr 90

〈그림 103〉 클로쉐, 1925, https://photo bank.mainichi.co.jp 90

〈그림 104〉 클로쉐, 1925, https://photobank.mainichi.co.jp 90

〈그림 105〉 베레모, 1940, https://photobank. mainichi.co.jp 90

〈그림 106〉 모피, 1936, https://photobank.mainichi.co.jp 91

〈그림 107〉 여우 목도리,https://photo bank.mainichi.co.jp 91

〈그림 108〉 코사지, 메이지후기∼다이쇼 《미인첩》 91

〈그림 109〉 다양한 속발, 1906, 도쿄 퍽 92

〈그림 110〉 히사시가미(비발), 《우리생활100년·옷》 93

〈그림 111〉 히사시가미 《미인첩》 93

〈그림 112〉 야카이마키 양발과 일본발의 중간단계, 《미인첩》 93

〈그림 113〉 조유마게 (녀우곡),《미인첩》 95

〈그림 114〉 미미가쿠시, https://photobank.mainich i.co.jp 95

〈그림 115〉 미미가쿠시(이은), https://photobank. mainichi.co.jp 95

초록보기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한국과 일본의 개항과 함께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 · 천주교와 같은 외래종교와 서구 열강의 침략 위협은 서양문물의 유입을 가속화 시켰고, 근대화를 촉진시켰다. 교리를 전파하기 위한 선교사들과 교육을 통한 계몽만이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 지식인들의 노력은 여성들의 배움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주었고 신여성이라는 새로운 여성 집단을 출현시키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본 논문은 근대사회로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근대적 표상으로 등장한 신여성복식의 특성을 고찰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신여성을 함께 다룬 것은 한국에서 형성된 신여성들의 외적 특성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이 많았고, 일본의 한국 강제점령으로 인한 연관성에서 기인하였다.

신여성이란 용어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사용하기 시작해서 일본을 거쳐 한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여성은 근대적 학교교육의 수혜자였으며, 신지식을 익힌 새로운 여성들이었다. 초기의 신여성들은 구여성(舊女性)상에서 탈피하여 남녀평등, 여성해방, 자유연애를 주장함으로써 여성해방운동을 전개해 간 장본인들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를 전후로 신여성을 여성해방운동과 관련시키기 보다는 넓은 의미로 근대적 지식의 소유여부와 서구적 외모를 추구한 새로운 여성 집단을 아우르는 의미로 논의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제도적 학교교육을 받은 여학생 집단의 복식과 신여성의 상징적 코드로 인식되었던 양장(洋裝)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신여성이 구여성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외양에서 오는 차이였다. 전통복식에 실용성을 접목하여 개량하여 입었고,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양장(洋裝)을 착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한 · 일 양국의 신여성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가정을 벗어나 외부활동을 함에 있어서, 기존의 전통복식인 한복(韓服)과 화복(和服)은 불편함이 지적되어 개량화가 진행되었다. 또한 복식의 양장화는 곧 근대화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신여성의 패션 모드는 여성들의 동경과 찬미의 대상이기도 했다. 당시 신여성의 양장을 살펴보면, 1900년대부터 1910년대 까지는 S자 실루엣의 드레스가 유행하였고, 191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는 S자 실루엣의 변형으로 웨이스트라인의 변화와 A라인의 스커트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1920년대 이후 실용주의와 결합한 가르손느 룩의 유행은 여성들의 스커트 길이에도 영향을 주었고 단발과 모자(클로쉐와 카플린 등)의 유행을 가져왔고, 의복뿐만 아니라 장신구와 헤어스타일 화장법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신여성들의 이러한 변화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신여성의 단발(斷髮)과 지나친 서구에 대한 모방은 전통에 대한 거부와 사치와 허영으로 비춰지면서 부정적인 담론들을 쏟아냈다. 1930년대를 거치면서 모던(modern)에 대한 찬미가 극에 달했다. 그러나 1930년대 말 일본의 파시즘이 침략전쟁으로 이어지면서 한 · 일 모두 전시체제로 전환되었고, 근대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구적인 것은 ‘악’으로 규정되었고, 사치라는 이유로 여성들의 복식은 제약을 받았다.

서양문물과의 접촉과 여성교육으로 생겨난 한국과 일본의 ‘신여성’ 계층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당시 신여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교차하는 수많은 담론들은 보수적인 전통사회에서도 신여성의 존재가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신여성들이 추구했던 외적 모던함은 복식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또한 신여성들의 출현으로 인한 변화는 근대화에 편입하기 위한 필연적인 것이었고, 이러한 변화는 현대 복식문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