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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국문요지 5
Ⅰ. 서론 7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7
2. 연구의 범위와 방법 12
3. 연구사 검토 14
Ⅱ. 관객 수용적 전통 16
1. 영화 관객의 전통성 16
2. 참여자로서의 관객적 전통 21
3. 전통에 대한 관객의 애정 24
Ⅲ. 연희적 전통 29
1. 연희로서의 영화 상영 29
2. 상영과 연희적 전통 32
3. 변사(辯士)에게서 발견되는 연희적 전통 35
(1) 전기수(傳奇수) 전통 36
(2) 광대(廣大) 전통 39
Ⅳ. 서사적 전통 45
1. 고전 소설의 영화화 45
2. 서사적 전통의 유래와 후대에의 계승 52
Ⅴ. 정서적 전통 62
1. 신파와 정서적 전통 62
2. 영화 〈아리랑〉과 정서적 전통 68
Ⅵ/Ⅲ. 결론 73
Ⅶ/Ⅳ. 참고자료 77
ABSTRACT 81
기존의 한국 영화사 연구는 초기 한국 영화에서 외래의 영향 혹은 당대 현실의 모습만을 기술하였다. 이는 역사 기술에 있어 사실의 기록에 치우친 면모라 할 수 있다.이에 필자는 역사 기술에서 중요한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의미 기술에 주목할 때수많은 사실들이 역사적으로 제 위치를 잡고, 영향 관계와 인과 관계를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초기 한국 영화에 있어 이전 시기부터 있어 왔던 전통성이끼친 영향은 중요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경우 유럽 혹은 미국과 달리 영화 초기의 역사는 작품 혹은 제작의 역사가 아니라 전래와 수용,도입과 관람을 통한 정착의 역사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이 때 전래되고 도입되며 수용, 정착된 상황, 풍토, 혹은 자리가 바로 전통성이라고 본다. 이 같은 시각에서 한국에 영화가 전래되었다는 면과 동시에 한국인들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 다는 면이 성립될 수 있다.
관람과 수용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영화는 관객의 전통성을 바탕으로 정착하였다.관객들에게 영화는 초창기부터 구경거리였다. 비일상적인 시각 체험으로서의 구경거리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관객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상업경제의 성장과 민중계층의 대두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판소리, 오광대놀이, 탈춤 등의 연희와 판소리계소설의 상업적 출판 등은 이러한 민중 관객 계층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양반 중심의 조선 전기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으며, 영화는 이렇게 형성된민중 계층의 관객을 기반으로 도입되고 정착되었다.
초기 무성 영화의 상영은 후대 유성영화의 상영과 확연히 구별된다. 스크린과 객석,영사와 관람의 상영 방식은 영화 전래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난 후대의 일이었다. 초기한국의 영화는 연희의 일종으로 취급되었다. 그것은 전통 연희 프로그램의 일부분으로 상영되었고, 변사와 악단이 어우러졌다. 이 같은 초기 영화 상영 방식은 상당 부분연희적 전통에 기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변사는 일본으로부터 온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일본의 영향 뿐 아니라 오히려 이야기 구전의 전통이 크게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변사가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은 이전 시기와 당대에 활약했던 판소리 광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한국 영화 작품 초기에 고전 소설을 각색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 고전 소설의 영화화는 분명히 초기 한국 영화가 서사적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들 서사적 전통의 뿌리는 대단히 깊어서 ‘설화-무가-판소리-판소리계소설-신소설-영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에게 절실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로 볼 때 영화가 서사적 재료를 이들 전통에서 취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러한 생명력 강한 서사적 전통이 또 하나의 표현 매체로 영화를 선택했다고 파악할 수도 있다.
한국 영화는 초기부터 기반을 대중들에게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대중들의 정서와취향에 맞는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이들 초기 한국 영화에는 정서적 전통이 자리하고있다. 신파라 불리는 슬픔과 눈물의 정서가 반드시 일본의 신파극으로부터만 비롯된것이 아니고, 한국 사회의 전통적 가부장제와 여성 소외적 상황 속에서 발현된 것이며, 이는 <춘향전>, <장화홍련전>, <심청전> 등에서 드러났던 여성들의 정서와 맞물리고 있다. 또한 초기 한국 영화의 걸작 나운규의 <아리랑>(1926)은 이제까지 주로민족주의적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으로 여겨 당대적 현실의 문제를 다룬 영화로 다루어져 왔지만 제목과 주제가, 신문 광고 등을 살필 때, 관객들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하고 있으며, 그 정서적 호소에 민중들의 삶과 노동의 현장에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있는 민요적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통에 대한 이러한 관점과 고찰을 통해 초기 한국 영화를 외래적 영향으로만 보는수동적 태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도래는 비록 외래적인 것이 틀림없지만 정착과 지속, 발전은 결코 외래적 영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전 시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의 영향이 초기부터 한국 영화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초기 한국 영화에서 전통성과 영화는 서로 긴밀하게 교섭하였다고 할 수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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