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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요약 6

1. 서론 9

2. 1910년대 총독부의 산업정책(산업전책) 방향과 재조일본인기업가 12

1) 사내정의 총독의 '재정독립5개년계획'과 농업정책 방향 12

2) 재조일본인기업가의 산업기반과 공업진흥론 18

3. 재등실 총독 부임초기의 산업정책과 재조일본인기업가의 대응 25

1) 산업정책의 기본방침과 산미증식계획의 본격화 25

2) 재조일본인기업가의 정책수정 요구와 진정활동 29

4. 1920년대 전반 산업정책 방침을 둘러싼 논의의 고조와 그 귀결 38

1) 1921년 조선산업조사위원회와 재조일본인기업가의 입장 38

2) 1924년 하강충치 정무총감의 부임과 산업정책의 수정 47

5. 결론 54

부록 57

〈부록1〉 1914년 조선철도망과 1927년 '조선철도12년계획'에서 건설이 예정된 선로 57

〈부록2〉 1910~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재정상황 (세입) 57

〈부록3〉 조선산업조사위원회 위원 명단 58

참고문헌 60

Abstract 69

표 차례

〈표1〉 도시별 재조일본인수 추이 19

〈표2〉 1910년대 재조일본인의 주요 공업 분야 21

〈표3〉 전선상업회의소연합회 결의사항 (1918~1921) 31

〈표4〉 전선상업회의소연합회 결의사항 (1921~1926) 44

초록보기

본고는 총독부 산업정책의 변화과정에 영향을 미친 여러 계기 가운데 특히 재조일본인의 당국에 대한 정책 개입에 주목하여 1920년대 총독부의 산업정책이 수립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통치정책의 전환에 따라 경제정책도 변화했다. 식민지지배정책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지나치게 일반적으로 지배계층을 단일한 집단이라 이해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일제시기 조선에서 이루어진 정책의 수립과정에는 본국 일본의 정치세력과 조선총독부, 그리고 민간세력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주지한 바와 같이 조선에서는 1920년대에 접어들어 지배정책이 무단통치부터 문화정치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산업정책은 일본 식량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일본정부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그리고 일제 조선 지배체제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서 産米增殖計劃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정책 수립과정에서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복잡한 내부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있었으며 일정한 변화사정이 있었다. 당시 산업정책의 수립을 둘러싸고도 농업만을 중시하는 산업정책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배세력 내부에서 공업의 필요성을 중시하는 일부 세력이 있었으며 이들의 의견이 총독부 정책에 어느 정도 수용되어 있었다.

1910년대 寺內正毅 총독은 財政5個年計劃에 의한 보충금 삭감에 대응하기 위해 수출상품으로서 농산물 생산을 장려하며 농업중심의 산업방침을 취하였다. 한편 조선의 상공업분야에 집중적으로 진출하여 부를 축적한 민간일본인 특히 在朝日本人企業家들은 농업에 비중을 둔 총독부의 산업방침을 비판하여 농업과 관련된 공업 분야의 장려와 이에 의한 상업 촉진을 주장하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사회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일본의 原敬 내각은 새로운 총독에 齋藤實을, 정무총감에 水野練太郞을 임명하였다. 총독부 지배정책은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이행되며 水野練太郞 정무총감은 朝鮮統治5大政策을 내세워 다양한 개혁에 나섰다. 그는 이 가운데 본국 일본정부의 식량문제 해결에 대응하겠다며 그리고 이를 통해 조선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겠다며 조선 산업을 농업을 중심으로 설정하여 산미증식계획의 실행에 나섰다.

한편 재조일본인기업가들은 1910년대부터 이어지는 총독부의 농업 중심적 산업방침에 대해 상공업 부문에도 주력하도록 全鮮商業會議所聯合會를 통해서 적극적인 요구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齋藤實과 水野練太郞의 부임과 함께 총독부 산업정책이 산미증식계획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정책으로 향하자 이러한 총독부의 기본방침에 대해 재조일본인기업가들은 산업에 관한 정책을 심의하기 위한 조사회 설치를 요구하여 이로써 1921년 朝鮮産業調査委員會가 열렸다.

조사회에서는 조선 산업에 관련하는 일본 정부과료와 총독부관료, 그리고 재조일본인기업가를 비롯한 민간인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조선의 산업정책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조선 공업화에 소극적이었으며, 조선을 단지 식량공급지로서만 파악하는 태도를 보였다. 식민지 조선은 내지연장주의에 입각한 일본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총독부 또한 산미증식계획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기타 산업의 개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공업의 발전에 보다 주력하여 상업을 활성화시키자는 재조일본인기업가들의 의견은 조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총독부의 산업정책은 1924년 정무총감에 下岡忠治가 부임한 즈음부터 새로운 측면을 보이게 되었다. 下岡忠治는 일본정부의 긴축재정의 영향을 받아 조선에서도 세제개혁과 행정개혁을 단행하여 産業第一主義를 내세우고 산업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재조일본인기업가들의 상업회의소를 통한 적극적 진정활동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가운데 농업을 중심으로 한 이전까지의 산업정책과 함께 공업에도 주목하여 이로 인해 조선 산업을 개발하여 조선사회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下岡忠治이 부임하여 농업정책과 함께 공업에도 주목하게 되자 재조일본인기업가들과의 거리가 줄어들었고 특히 조선의 철도정책에 대한 입장이 일치하여 함께 그 증설을 일본정부에 요구하게 되었다. 이는 전개된 철도증설에 대한 관민일치의 진정활동을 가능하게 하여 조선철도를 둘러싼 정책은 1927년에 ‘조선철도12년계획’을 성립함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1920년대 전반 산미증식계획을 중심으로 하는 총독부 산업정책의 수립과정에는 본국 일본정부의 정치세력과 조선총독부내부, 그리고 조선의 민간세력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재조일본인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 정책과정에 적극 개입하였으며 이것이 조선 산업정책의 수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