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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논문요약 3
I. 緖論 5
1. 연구의 의의 5
2. 연구의 범위와 구성 7
II. 世孫 李算의 성장배경 9
1. 18世紀의 조선사회 9
2. 世孫 李算의 왕실환경 11
1) 왕실의 세보(世譜) 11
2) 사도세자의 죽음 12
III. 世孫 李算의 왕세자교육(이미지참조) 15
1. 조선의 왕세자교육 15
1) 교육목표 15
2) 학습방법 17
3) 단계별 과정 21
4) 왕세자 통과의례 25
2. 世孫 李算의 立志 29
3. 世孫 李算의 왕세자교육 내용 37
IV. 世孫 李算의 聖君 실현을 위한 德目 44
1. 修己 44
1) 정신수양 45
2) 몸가짐(起居動作) 47
3) 事親(孝) 51
4) 검박 53
2. 安人 55
1) 애민관(愛民觀) 56
2) 학문관(學問觀) 57
3) 백성과 신료에 대한 배려 59
4) 교화(敎化) 61
V. 結論 65
參考文獻 68
Abstract 71
본 연구는 性理學에 기반을 둔 朝鮮王朝에서 한 나라의 統治者로서 갖추어야 할 德目과 資質의 함양을 위해 실시되었던 조선시대의 왕세자교육을 통해, 지도자의 능력배양의 해법을 溫故而知新·法古創新의 관점에서 聖君으로 불리는 정조의 세손시절 왕세자교육을 중심으로 찾아보았다.
조선의 국왕은 聖人이 곧 군주였던 하·은·주 三代를 이상적인 시대로 생각하고 국왕 자신이 교육과 수련을 통해 聖人이 되어 국가를 다스리는 聖王을 꿈꾸었다. 그렇기에 다음 왕위를 계승할 後繼者로 인정되는 순간부터는 철저한 關心과 支援 속에 왕세자교육이 이뤄졌다. 조선시대의 서연제도를 통해 철저히 실행된 왕세자교육에 대한 내용을 『조선왕조실록』·『시강원일기』·『국조오례의』등을 중심으로 고찰하였고, 또한 22대 임금인 정조의 개인적 특성을 살피기 위해 『홍재전서』·『춘저록』·『계방일기』를 주요 문헌으로 고찰하였다.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국학으로 삼아 그 이념을 국가사회에 실현한 성리학적 명분사회였다. 왕도정치를 지향하여 교화를 통한 德治를 우선시하고, 修己治人을 이상으로 하여 修己의 단계에서 인격과 학문을 닦아 全人的 인간이 되어야 治人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학문연마와 인격 수양은 최고통치권자인 왕에게는 더욱 높게 요구되었고 왕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한 지도자 교육을 중요시한 것이다. 그 결과 정조처럼 학문적 능력과 군주의 자질을 겸비한 이상적인 학자군주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18세기의 조선사회에서는 한국사에서 르네상스의 시대라 할 만큼 문화가 크게 발전한 변혁의 시대였으며, 당쟁에 희생된 사도세자의 아들 李산을, 宗統을 세운다는 영조의 명에 의해 일찍 죽은 큰 아들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하여 왕세손으로 책봉하였다. 왕실에서는 다음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가 결정되는 순간부터 철저한 關心과 支援 속에 왕세자교육이 시행되었다. 李산 역시 영조의 지극한 관심 속에서 왕세자교육을 통하여 君師로서의 자질을 함양하였고, 이 과정을 통해 三代의 學問을 자신이 이어 聖君이 되겠다는 立志를 세우게 된 것이다.
정조는 "三代 이후로는 三代의 學問이 전해지지 않았고, 본인이 비록 德이 없다 하더라도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三代의 學問을 자신이 잇겠다"는 강한 意志를 표현하였으며, 聖王의 治世를 구현하여 위로는 끊어진 三代 以後의 太平시대를 열고, 아래로는 後世의 模範이 되는 安民정치를 열고자 하였다. 정조는"임금의 職分은 하늘을 恭敬하고 百姓을 돌보는 데에 있고, 그 다음이 어진 이를 尊崇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였다. 仁에서 恕까지 끊임없는 노력으로 왕의 자질을 함양하고, 스스로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 백성들의 敎化에 이르기까지 성군의 德이 미치기를 바랐다. 조선의 역사에서 文化와 學問이 빛을 발한 르네상스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정치적 위기가 팽배했던 상황 속에서, 조선의 왕세자교육과 함께 한 李산의 학문에 대한 강한 열의는 후세에 聖君으로 불리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을 거라 여겨진다.
학문의 목표를 유가에서는 聖人됨에 두고 임금은 이것을 확충하여 聖君됨에 두는데, 정조는 立志의 중요성에 대해『春邸錄』에서 "뜻을 세우는 것〔立志〕은 곧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에 도달〔仁을 성취하는 것〕하는 근본"이라고 말하였다. 李산은 왕세자 교육과정을 통하여 聖君을 목표로 한 立志를 세우고 학문의 습득과 함께 "修己以安人"이라는 유학의 德目들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며 결코 순탄치 않았던 환경과 고난을 꿋꿋이 이겨내고 성군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상의 연구 성과로는 왕세손 시절의 왕세자교육이 미래의 君主의 자질형성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훗날 統治의 根本 틀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은 엄격하게 짜인 교육제도에 의해서 시행되었지만, 그것을 적용하여 현실 정치에 구현하는 것은 순전히 군주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좌우된다 할 것이다. 世孫 李산은 타고난 성품도 훌륭했지만 끊임없는 努力과 忍耐, 원대한 計劃의 대강을 세손시절에 이루었다고 보여 진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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