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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I. 머리말 4

II. 19세기 시대적 상황과 불화조성 배경 6

1. 시대적 상황 6

2. 불화조성 배경 10

III. 경선당 응석의 활동범위와 畵派관계 14

1. 활동범위 14

1) 지역적 활동영역 14

2) 시기적 활동범위 및 불화의 주제 27

2. 화파관계 29

1) 비문 및 현판에 나타난 사승관계 30

2) 수화승 이전의 화파관계 33

3) 수화승 시기의 화파관계 35

IV. 경선당 응석 불화의 형식과 특징 40

1. 불화의 형식 40

1) 후불화 41

2) 보살도 44

3) 팔상도 49

5) 신중도 53

6) 감로왕도 57

7) 현왕도 58

8) 나한·독성도 59

9) 도량장엄번 61

10) 괘불화 61

2. 불화의 특징 64

1) 다양한 구도의 채용 64

2) 한국적 상호 표현 66

3) 신중도의 새로운 구성 68

4) 칠성도에 나타나는 정면향의 소 69

5) 난색의 주된 사용과 양청색 사용의 자제 70

V. 경선당 응석 불화의 양식적 특징과 편년 72

1. 양식적 특징 72

1) 구도 72

2) 형태 75

3) 색채 78

4) 문양 79

2. 편년 80

1) 제1기: ~1865년 80

2) 제2기: 1866년 ~1890년 80

3) 제3기: 1891년~1900년 81

4) 제4기: 1901년~1912년 81

VI. 경선당 응석 불화의 불교회화사적 의의 83

VII. 맺음말 85

참고문헌 87

1. 경전·사지·사서류 87

2. 도록·보고서·사전류 87

3. 단행본 88

4. 논문 89

ABSTRACT 128

〈표 1〉 慶船堂 應釋의 作例(현존작 및 추정작) 21

〈표 2〉 慶船堂 應釋의 畵跡(소재불명) 25

〈표 3〉 응석작 불화의 시기별 작품 수량 28

〈표 4〉 응석작 불화의 주제별 수량 및 비율(개금, 불상, 불화초 제작은 제외함) 28

〈표 5〉 비문을 통해 본 계보 및 화승관계 39

〈표 6〉 보문사 지장시왕도 계열 48

〈표 7〉 개운사 지장시왕도 계열 48

〈표 8〉 미타사 칠성도 계열 52

〈표 9〉 보덕사 칠성도 계열 52

〈표 10〉 보문사 신중도 계열 54

〈표 11〉 흥국사 대웅보전 신중도 계열 57

〈표 12〉 시기별 작례표 82

〈삽도 1〉 미타사 지장시장도 상호비교 47

〈삽도 2〉 미타사 지장시왕도 표현기법비교 47

〈삽도 3〉 응석 불화의 구도 65

〈삽도 4〉 화면 분할방식의 예(남양주 불암사 16나한도, 1897) 66

〈삽도 5〉 후불화 계열 불화의 상호 표현 67

〈삽도 6〉 지장보살도의 상호 표현 68

〈삽도 7〉 신중도의 상호 표현 68

〈삽도 8〉 보광사 석가모니불도와 신륵사 아미타불도 상호비교 77

도1. 봉녕사 아미타불도, 1853년, 206.4×228.3㎝, 남양주 봉녕사 소장 98

도2. 보문사 신중도, 1855년, 170.6×159.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98

도3. 흥국사 설법전 괘불화, 1858년, 544×306㎝, 남양주 흥국사 소장 98

도4. 문경 대승사 반야암 신중도, 1859년, 127×106.5㎝, 소재불명 98

도5. 서울 화계사 극락보전 아미타불도, 1861년, 162×210.5㎝, 수덕사 소장 99

도6. 보문사 대웅전 석가모니불도, 1867년, 191×140㎝, 서울 보문사 소장 99

도7. 보문사 묘승전 지장시왕도, 1867년, 181×143㎝, 서울 보문사 소장 99

도8. 보문사 대웅전 신중도, 1867년, 140×200㎝, 서울 보문사 소장 99

도9. 보문사 묘승전 현왕도, 1867년, 103×140㎝, 서울 보문사 소장 100

도10. 용문사 보광명전 봉인사 부도암 신중도, 1867년, 136×311㎝, 예천 용문사 소장 100

도11. 흥국사 대웅보전 신중도, 1868년, 170.7×188.6㎝,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0

도12-1. 흥국사 팔상도 (도솔래의상) 1869년, 208.5×110㎝,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1

도12-2. 흥국사 팔상도 (비람강생상) 1869년, 208.5×110㎝, 남양주흥국사 소장 101

도12-3. 흥국사 팔상도 (사문유관상) 1869년, 208.5×110㎝, 남양주흥국사 소장 101

도12-4. 흥국사 팔상도 (유성출가상) 1869년, 208.3×110㎝,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1

도12-5. 흥국사 팔상도 (설산수도상) 1869년, 208.5×110㎝, 남양주흥국사 소장 101

도12-6. 흥국사 팔상도 (수하항마상) 1869년, 208.5×110㎝, 남양주흥국사 소장 101

도12-7. 흥국사 팔상도 (녹원전법상) 1869년, 208.5×110㎝,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1

도12-8. 흥국사 팔상도 (쌍림열반상) 1869년, 208.5×110㎝,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1

도13. 개운사 대웅전 지장시왕도, 1870년, 149×185㎝, 서울 개운사 소장 102

도14. 개운사 명부전 현왕도, 1870년, 139.3×126㎝, 서울 개운사 소장 102

도15. 개운사 대웅전 신중도, 1870, 156×190.6㎝, 서울 개운사 소장 102

도16. 만수사 신중도, 1871년, 175.2×173.8㎝, 서울 청량사 소장 102

도17. 미타사 대웅전 지장시왕도, 1873년, 143.6×184.3㎝, 서울 미타사 소장 103

도18. 미타사 대웅전 신중도, 1873년, 140.4×192㎝, 서울 미타사 소장 103

도19. 미타사 삼성각 칠성도, 1874년, 155×218.4㎝, 서울 미타사 소장 103

도20. 보덕사 칠성도, 1876년, 129×213.5㎝, 평창 월정사성보박물관 소장 103

도21. 개운사 괘불화, 1879년, 694×356.5㎝, 서울 개운사 소장 104

도22. 흥국사 신중도, 1883년, 158.5×197㎝, 서울 회룡사 소장 104

도23. 봉은사 판전 비로자나불도, 1886년, 302.3×236㎝, 서울 봉은사 소장 104

도24. 봉은사 북극보전 칠성도, 1886년, 155×229.8㎝, 서울 봉은사 소장 104

도25. 천축사 삼신불도, 1891년, 217.5×257㎝, 서울 천축사 소장 105

도26. 천축사 신중도, 1891년, 189×238㎝, 서울 천축사 소장 105

도27. 흥국사 영산전 석가모니불도, 1892년, 137.4×219.7㎝,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5

도28. 흥국사 만월보전 약사불도, 1892년, 185×210.2㎝, 남양주 흥국사 105

도29-1. 흥국사 영산전 십육나한도, 1892년, 123×209㎝,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6

도29-2. 흥국사 영산전 십육나한도, 1892년, 123×209㎝,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6

도29-3. 흥국사 영산전 십육나한도, 1892년, 123×209㎝,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7

도29-4. 흥국사 영산전 십육나한도, 1892년, 123×209㎝,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7

도30. 흥국사 대방 신중도, 1892년, 169.7×209㎝,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8

도31. 흥국사 영산전 사자도, 1892년, 106.5×106.8㎝, 남양주 흥국사 소장 108

도32-01. 봉은사 영산전 십육나한도, 1895년, 118×213㎝, 서울 봉은사 소장 108

도32-02. 봉은사 영산전 십육나한도, 1895년, 118×213㎝, 서울 봉은사 소장 109

도32-03. 봉은사 영산전 십육나한도, 1895년, 118×213㎝, 서울 봉은사 소장 109

도32-04. 봉은사 영산전 십육나한도, 1895년, 118×213㎝, 서울 봉은사 소장 109

도33. 불암사 괘불화, 1895년, 574×347㎝, 남양주 불암사 소장 110

도34. 불암사 십육나한도, 1897년, 179×235.5㎝, 남양주 불암사 소장 110

도35. 보광사 대웅전 석가모니불도, 1898년, 304×284c㎝, 파주 보광사 소장 110

도36. 보광사 대웅전 삼장보살도, 1898년, 188.4×261㎝, 파주 보광사 110

도37. 보광사 대웅전 칠성도, 1898년, 166.2×257.5㎝, 파주 보광사 소장 111

도38. 보광사 대웅전 감로왕도, 1898년, 187.7×252.8㎝, 파주 보광사 소장 111

도39. 보광사 대웅전 현왕도, 1898년, 190×213.8㎝, 파주 보광사 소장 111

도40. 보광사 대웅전 독성도, 1898년, 156.2×150.4㎝, 파주 보광사 소장 111

도41. 대흥사 대웅보전 삼세불도, (약사여래) 1901년, 377×232.7㎝, 해남 대흥사 소장 112

도42. 대흥사 명부전 지장보살도, 1901년, 191.5×243.5㎝, 해남 대흥사 소장 112

도43. 흥국사 괘불화 1902년, 597×360.5㎝, 고양 흥국사 소장 112

도44-1. 2 법주사 여래번, 1905년, 151×98 좌우, 보은 법주사 소장 113

도45-1. 2 법주사 오여래번, 1905년, 146×100, 좌우, 보온 법주사 소장 113

도45-3. 법주사 오여래번 1905년, 146×100, 보은 법주사 소장 113

도45-4. 법주사 오여래번, 1905년, 146×100, 보은 법주사 소장 113

도45-5. 법주사 오여래번, 1905년, 146×100, 보은 법주사 소장 113

도46. 법주사 사보살번(4폭), 1905년, 150.5×99前後, 보은 법주사 소장 114

도47. 법주사 십대명왕번(10폭), 1905년, 149.5×102.2 前後, 보은 법주사 소장 114

도48. 법주사 팔금강번(백정 수금강), 1905년, 151×99.5㎝, 보은 법주사 소장 114

도49. 진관사 독성각 독성도, 1907년, 75.3×220㎝, 서울 진관사 소장 114

도50. 흥국사 삼성각 칠성목탱 1907년, 216×60㎝, 고양 흥국사 소장 115

도51. 삼성암 칠성도, 1909년, 105×220㎝, 서울 삼성암 소장 115

도52. 안양암 대웅전 감로왕도, 1909년, 162×156.5㎝, 서울 안양암 소장 115

도53. 삼척 영은사 지장시왕도, 1811년 115

도54. 현등사 지장시왕도, 1830년, 151.5×182.3㎝, 가평 현등사 소장 116

도55. 흥국사 대웅보전 지장시왕도, 1868년, 170.3×199.4㎝, 남양주 흥국사 소장 116

도56. 청룡사 대웅전 지장시왕도, 1868년, 149.2×180.6㎝, 서울 청룡사 소장 116

도57. 칠장사 명부전 지장시왕도, 1888년, 156.5×179.5㎝, 안성 칠장사 소장 116

도58. 연화사 지장시왕도, 1901년, 166×213.2㎝, 서울 연화사 소장 117

도59. 불암사 칠성도, 1855년, 191.5×192㎝, 남양주 불암사 소장 117

도60. 서울 화계사 칠성도, 1861년, 수덕사박물관 소장 117

도61. 청룡사 대웅전 칠성도 1868년, 122.5×150.5㎝, 서울 청룡사 소장 117

도62. 정수사 법당 칠성도, 1878년, 153.5×204.3㎝, 강화 정수사 소장 118

도63. 미타사 극락전 칠성도, 1887년, 140.5×219.8c㎝,서울 미타사 소장 118

도64. 고운사 대용보전 쌍수암 칠성도, 1892년, 비단, 145×211.5㎝, 의성 고운사 소장 118

도65. 직지사 대웅전 칠성도 1911년, 154×214.5㎝, 김천 직지사 소장 118

도66. 운암사 삼성각 칠성도, 1939년, 142.2×182.5㎝, 김천 운암사 소장 119

도67. 흥국사 대웅보전 칠성도, 1868년, 170.7×188.6㎝, 남양주 흥국사 소장 119

도68. 칠장사 대웅전 칠성도, 1888년, 156×189.7㎝, 안성 칠장사 소장 119

도69. 영랑사 칠성도, 1891년, 186.5×220㎝, 당진 영랑사 소장 119

도70. 흥왕사 칠성도, 1905년, 109.5×148c㎝, 고양 흥왕사 소장 120

도71. 청암사 칠성도, 1914년, 132.5×207.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20

도72. 영은사 칠성도, 1923년, 131×196㎝, 삼척 영은사 소장 120

도73. 칠성도, 20세기, 117.5×189.7㎝,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120

도74. 용문사 대장전 신중도, 1884년, 158×196.5㎝, 예천 용문사 소장 121

도75. 동화사 대웅전 신중도, 1887년, 213.5×168㎝, 대구 동화사 소장 121

도76. 경국사 극락보전 신중도, 1887년, 169×161.5㎝, 서울 경국사 소장 121

도77. 미타사 극락전 칠성도, 1887년, 140.5×219.8㎝, 서울 미타사 소장 121

도78. 보광사 대웅전 신중도, 1890년, 161.3×187.8㎝, 서울 보광사 소장 122

도79. 남장사 관음암 신중도, 1897년, 136×117.4㎝, 상주 남장사 관음암 소장 122

도80. 연화사 신중도, 1901년, 154.2×208㎝, 서울 연화사 소장 122

도81. 청암사 극락전 신중도, 1914년, 132×196㎝, 김천 청암사 소장 122

도82. 표충사 대원암 신중도, 1933년, 150.5×124.5㎝, 밀양 표충사 소장 123

도83. 지장암 신중도, 20세기초, 158×193㎝, 화성 지장암 소장 123

도84. 현등사 지장암 신중도, 1790년, 111×115.7㎝, 서울 연화사 소장 123

도85. 청암사 수도암 관음전 신중도, 1832년, 150×149.7㎝, 김천 청암사 소장 123

도86. 봉은사 대웅보전 신중도, 1884년, 200.5×245㎝, 서울 봉은사 소장 124

도87. 대승사 대승선원 신중도, 1876년, 160.5×176㎝, 문경 대승사 소장 124

도88. 대흥사 대웅보전 신중도, 1901년, 215.6×182.7㎝, 해남 대흥사 소장 124

도89. 신륵사 신중도, 1906년, 183.5×275㎝, 여주 신륵사 소장 124

도90. 청암사 대웅전 신중도, 1914년, 132.5×207.3㎝, 김천 청암사 소장 125

도91. 해인사 신중도, 조선후기, 167×160㎝, 합천 해인사 소장 125

도92. 백련사 괘불화, 1868년, 서울 백련사 소장 125

도93. 내원암 괘불화, 1885년, 548×353.5㎝, 남양주 내원암 소장 125

도94. 화계사 괘불화, 1886년, 685×390㎝, 서울 화계사 소장 126

도95. 석남사 지장보살도, 1803년, 162×195.5㎝, 울산 석남사 소장 126

도96. 봉은사 영산전 신중도, 1895년, 149×197.5㎝, 서울 봉은사 소장 126

도97. 신륵사 극락보전 석가모니불도, 1900년, 348×308㎝, 여주 신륵사 소장 126

도98. 봉국사 명부전 지장시왕도, 1885년, 168.5×217㎝, 성남 봉국사 소장 127

도99. 미타사 신중도, 1887년, 141.7×228.8㎝, 서울 약수동 미타사 소장 127

도100. 흥국사 감로왕도, 1868년, 173×191.5㎝, 남양주 흥국사 소장 127

도101. 봉은사 감로왕도, 1892년, 200×316.5㎝, 서울 봉은사 소장 127

초록보기

 Gyeongseondang Eung-seok(慶船堂 應釋) is a painter monk, who was actively engaged in painting work in such areas as Seoul-Gyeonggi and Gangwon from the mid 19th to the early 20th century, leaving numerous Buddhist paintings.

The Buddhist painter monks in this period are divided into two painter (Hwasa, 畵師) groups: one group whose members inherited and developed the traditional Buddhist painting techniques; and the other group whose members introduced Western painting styles. Eungseok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Hwasa's in the former group. On the other hand, in this period, while its door was opened by the Imperialist Japan and other Western Powers, Korea lost her sovereignty under theeconomic spoliation by the foreign powers and the political chaos. The fact that there were strikingly many Buddhist paintings initiated by the Royal family in the period suggests that the Royal family's desperate intention to resolve the national difficulty with the Buddhist merit was a factor. There were many Royal family related Buddhist paintings by Eung-seok among others, which seems to mean that he was a brilliant painter who represented the times.

When considering the forms, icons, and modes of the Buddhist paintings by Eng-seok, we can see that he inherited the existing Buddhist paintings to produce more developed paintings and that his painting style had much influence on contemporary, as well as later, Buddhist paintings. His work can be divided into 4 periods based on its modes: in the second period (1866~1890), he established his unique painting style by presenting his own novel folk-customary Buddhist paintings and using unique colors; in the third period (1891~1900), he left many excellent works while working in association with other famous Buddhist painter monks at that time.

Given the works left by him, we can find out that Eung-seok enjoyed the most active engagement in his work in Seoul-Geyoggi, while, from his works shown around Gangwon and Mt. Geumgang areas, we can tell that he was a Buddhist painter monk of distinction at that time.

Eung-seok was engaged in painting work for an about half-century long period, and left excellent works. Contrastively, the number of his works that have been investigated was too small. Given the frequent gaps in the chronicle of Eung-seok's work, we can conjecture that there might be a considerable number of works remaining undiscovered at present. Thus, I believe that some investigation of temples in the North Korean areas as well as a full-fledged search of the temples in the Seoul-Gyeonggi areas should be carried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