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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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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요약 7
1. 서론 12
2. 한말 친일정치운동 세력의 형성과 일제지배 수용론 23
1) 일제의 보호통치와 친일정치운동세력의 형성 23
(1) 일제의 보호통치구상과 지배전략 23
(2) '대한제국 비판세력'의 동향과 정치적 재편 34
2) 대한협회 주도층의 정당정치운동과 보호국유지론 54
(1) 현실인식과 정당정치운동 54
(2) 보호국유지론과 국가체제구상 60
3) 일진회의 합방운동과 합방론 68
(1) 현실인식과 합방운동 68
(2) 합방론의 구조와 국가체제구상 74
3. 1910-1920년대 전반 친일정치운동의 전개와 국가체제구상 93
1) 1910-20년대 초반 일제의 지배정책과 친일정치운동의 등장 93
(1) 일제의 무단통치와 조선통치전략 93
(2) '내지연장주의'로의 전환과 조선사회 포섭전략 106
(3) 친일세력의 동향과 정치활동의 재개 120
2) 계몽운동 잔존세력의 자치청원운동과 '속령자치론 129
(1) 유민회의 자치청원운동과 총독중심자치론 129
(2) 동광회 조선총지부의 내정독립운동과 총독정치폐지론 139
3) 국민협회의 참정권청원운동과 '이민족일국가론 155
(1) 조직과정과 참정권청원운동 155
(2) 신일본주의와 참정권청원의 논리 164
4. 1920년대 중후반 일제지배정책의 동요와 친일 정치운동의 다변화 179
1) 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자치주의 모색과 지배정책의 동요 179
2) 참정권청원운동의 확대와 총독부와의 갈등 194
(1) 자치청원운동의 쇠퇴와 참정권청원운동의 확대 194
(2) 조선총독부의 참정권청원운동비판과 국민협회의 반발 207
3) 친일정치운동세력의 재편과 운동노선의 분화 217
(1) 갑자구락부의 부상과 제한적 참정권청원운동 217
(2) 척식성관제 반대운동과 자치론의 재기 229
5. 1930년대 일제의 포섭정책과 친일정치운동의 제도적 편입 244
1) 제2차 지방제도개정과 조선총독부의 포섭정책 244
(1) 조선총독부의 제2차 지방제도개정안 제기과정과 그 의의 244
(2) 민족운동의 침체와 조선사회의 개량화 254
2) 친일정치운동세력의 대응과 제도적 편입 264
(1) 친일정치운동세력의 동향과 정치활동의 쇠퇴 264
(2) 내선융화운동의 전개와 제도적 편입 279
6. 결론 294
참고문헌 301
Abstract 316
본 논문은 일제하 자치·참정권 청원운동을 통해 전개된 친일정치운동을 소재로 일제하 친일세력의 논리와 활동과정, 그리고 근대국민국가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제하 친일정치운동세력은 직접적으로는 일제하에 형성, 활동하였지만, 그 인적, 사상적 기원은 이미 한말에서 시작되었다. 근대화가 개화관료, 지식인 중심의 정권장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급진적 정치운동세력과 지배체제 전반에 도전했던 동학세력 일부가 그 뿌리였다. 이들은 일제의 침략을 정치적 재기와 정권장악의 호기로 생각하고 일제의 침략을 용인, 혹은 적극적으로 환영하며 보호국체제하의 정권장악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군주와 인민 모두를 근대화과정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개화세력 중심이 된 '민당'의 권력장악만이 근대화의 첩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제의 침략, '보호통치'를 용인했던 세력들은 크게 두 개의 흐름으로 분립하며 상호경쟁, 투쟁하였다. 대표적 계몽운동단체인 대한협회 지도부를 장악하고 보호통치 하의 정권장악운동을 전개했던 세력과 일본과 직접 결합하여 합방운동을 전개한 일진회세력이었다. 전자는 정권장악운동의 논리하에 보호국체제하의 내각장악 운동을 전개하였고, 후자는 합병에 의한 일제지배체제의 전면화를 추구하였다. 전자는 한국사회의 신주류집단인 신흥지주, 자산계층, 요컨대 유지, 신사층을 중심으로 일제지배와 일면 타협하며 권력을 장악하려 한 것이었다. 반면 후자는 노골적 친일활동, 비주류세력으로서의 한계에 따라 정치, 사회적 고립화가 심화되자, 일본 국민으로서 지배권력의 일원이 되는 합방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이었다. 전자는 일제하 자치청원운동으로 후자는 참정권청원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일제하 친일정치운동이 본격화된 계기는 1919년 3.1운동이 계기가 된 지배정책의 변화였다. 3.1운동으로 조선통치의 한계를 절감한 일제가 '내선융화'의 첨병이 될 세력으로 친일정치운동세력을 후원했기 때문이었다. 친일정치운동은 크게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유민회, 동광회 조선총지부의 자치청원운동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속령자치론이었다 일제의 영속적 지배를 전제로 내정의 독자화를 추진하여 조선사회에서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국민협회의 참정권청원운동이었다. 민족구분 없는 국민화를 통해 일본과 조선을 완전히 통합하고, 조선인이 일본제국의회에 진출하여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자는 것이었다. 두 운동은 일제의 지배를 영구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졌다. 그러나 전자가 조선인 상층부의 결속을 통해 조선통치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한 것이라면, 후자는 조선과 일본의 정치적 통합을 주도하여 새롭게 지배체제의 중심이 되려 한 것이었다. 때문에 전자는 지주, 자본가계층의 실질적 이익확보, 내정독립, 조선인본위와 같은 문제를 중시하였고, 후자는 내지연장주의의 확대와 중의원 참정권 획득에 주력하였다.
하지만 자치청원운동은 1920년대 초반 곧 쇠퇴하게 되었다. 부르주아세력을 규합하여,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려 하였지만, 내지연장주의의 확대 속에 정치적 규합의 근거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1920년대 전반 친일정치운동의 주도권을 확보한 것은 국민협회였다. 1920년 1월 창립된 국민협회는 한말정치운동에 참여하였던 인물들과 1910년대 총독부의 관리였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단체였다. 특히 핵심인물인 민원식, 김환, 김명준 등은 일진회 참여자였다. 내지연장주의에 호응한 국민협회는 총독부의 지원 속에 지방지부를 건설하며 세를 불려갔다. 국민협회의 핵심논리는 병합의 의의가 조선과 일본의 국가적 통합에 의한 대국가로의 재탄생에 있으므로 신일본국민으로의 정체성 전환에 의해 병합이 완성된다는 신일본주의였다. 민족은 동화되기 힘든 자연적 조건이지만, 국가는 민족과 별개로 성립할 수 있는 인위적 결합체라는 것이었다. 참정권부여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조건이었다.
국민협회는 1923년 일본 내에서 보통선거실시가 예정되자,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활발한 참정권청원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국민협회 중심의 친일정치운동은 1924년 정우회내각이 헌정회내각으로 바뀌며 위기를 맞게 되었다. 본국내각의 입장을 반영한 정무총감들은 총독부의 예산을 축소하였고, 그 과정에서 기존 친일정치운동세력들에 대한 지원도 축소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조선총독부 역시 조선 통치의 독자화를 위해 자치제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내지연장주의에 입각한 친일정치운동세력들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입지위축에 대해 국민협회는 강력히 반발하였다. 국민협회는 총독부의 지배정책과 정책당국자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참정권부여 없는 조선통치는 노예의 통치라고 주장하였다. 총독부는 이에 대해 친일정치운동의 무능함을 비판하며 검열과 취체로 대응하였고 양자의 관계는 갈등관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에 제한적 참정권획득을 주장하는 갑자구락부가 참정권청원운동의 전면에 부각되었다.
이상의 친일정치운동의 전개양상은 각 정치주체가 추구한 목표의 차이, 정치사회적 조건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조선총독부에게 친일정치운동의 존재이유는 조선사회 포섭도구였다. 때문에 1920년대 이래의 민족운동의 발흥, 그로 인한 지배체제의 동요는 친일정치운동의 효용가치를 재고하게 하였다. 또 정당내각의 경우 내지연장주의를 식민지통치체제에 대한 영향력 강화논리로 활용하려 하였다. 따라서 내지연장주의를 정치적 권리의 동일화문제로 부각시키는 참정권청원운동은 부담이었다. 반면 참정권청원운동세력에게 조선인이 차별 없는 일본국민으로 재탄생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정치활동의 근거였다. 따라서 참정권 부여에 대한 일제의 소극적 태도는 그런 정치적 전망을 허구화시키는 것이었다.
한편 1929년 척식성관제개정을 둘러싼 논란은 참정권청원운동세력에게 더 큰 충격을 가하였다. 척식성 설치는 식민지 관할부서인 척식성이 조선 역시 관장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조선이 식민지임을 제도적으로 분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내지연장주의를 조선인의 일본국민화, 권리의 동등화로 이해하고 선전하였던 참정권청원운동세력의 존재기반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갑자구락부, 국민협회 등 친일정치세력은 격렬히 저항하며 반발하였다. 그러나 척식성이 척무성으로 명칭만 바뀐 채 척무성에 의한 조선통치 개입이 가능하게 되자 참정권청원 운동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결국 점차 약체화되던 친일정치운동은 1931년 제2차 지방제도개정을 계기로 활동이 쇠퇴하게 되었다. 지방자문기관의 의결기관화가 결정되자, 지지기반의 인물들이 실질적 이익확보를 위해 지방자치제 참여로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또 운동단체의 간부들도 중추원 등에 자리를 확보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친일정치운동세력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에는 중추원 등 지배체제 내 제도기구에 적극 편입하거나, 지배정책을 선전, 협조하는 선전기관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요컨대 친일정치운동은 세계적 생존경쟁 속에 대제국, 대국가의 일원이 되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패권적 세계인식과 조선인민의 자립적 근대주체화는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착종되는 가운데 체제협력적 조선인이 지배체제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일본제국의 실현을 통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 한 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의 현실화 속에서 조선인 지배층의 조선통치에 대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보하려 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청원이란 운동방식에서 보이듯 그들 자신이 수동적 존재였다. 일제가 이들의 논리에 합당한 지배정책을 내놓지 않을 때, 독자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때문에 일제의 정책변화에 따라 부침이 심하였고, 운동 역시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했던 대제국국민화의 환상과 식민지배를 그 과정으로 보는 논리는 1930년대 이후 전향한 민족운동세력의 '내선일체론'에 이어졌다. 1937년 이후 전향자들이 주장한 '동아협동체', '동아연맹' 등은 '조선민족의 자립'은 불가능하며, 일본이 주도하는 대연방국가의 일원이 되는 것만이 세계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논리는 일진회까지 소급되는 친일정치운동세력의 국가와 사회, 그리고 민족에 대한 인식의 연속선상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일진회 이래 친일정치운동세력이 조선인, 조선민족의 자립적 주체화를 의문시 하고, 경쟁이 치열한 근대세계에서 근대인으로서의 존립을 제국국민으로의 편입으로 치환시킨 것과 기본발상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일제의 강점을 대국가국민으로의 재탄생이라고 생각했던 친일정치운동세력과 마찬가지로 1930년대 이후 일본의 대륙침략과 민족운동의 쇠퇴 속에 조선사회의 자립성을 회의하게 된 지식인들은 '민족의 국가적 자립'을 포기하고 일본제국으로의 편입하는 것을 조선인의 탈출구로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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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朝鮮日報 | 미소장 |
2 | 東亞日報 | 미소장 |
3 | 京城日報 | 미소장 |
4 | 每日申報 | 미소장 |
5 | 大阪朝日新聞 | 미소장 |
6 | 大韓每日申報 | 미소장 |
7 | 皇城新聞 | 미소장 |
8 | 朝鮮申報 | 미소장 |
9 | 新韓民報 | 미소장 |
10 | 時代日報 | 미소장 |
11 | 中外日報 | 미소장 |
12 | 獨立新聞 | 미소장 |
13 | 大韓民報 | 미소장 |
14 | 萬歲報 | 미소장 |
15 | 國民新報 | 미소장 |
16 | 亞細亞時論 | 미소장 |
17 | 朝鮮 | 미소장 |
18 | 朝鮮公論 | 미소장 |
19 | 朝鮮之光 | 미소장 |
20 | 開闢 | 미소장 |
21 | 現代評論 | 미소장 |
22 | 朝鮮及滿洲 | 미소장 |
23 | 三千里 | 미소장 |
24 | 時事評論 | 미소장 |
25 | 外交時報 | 미소장 |
26 | 太陽 | 미소장 |
27 | 半島時論 | 미소장 |
28 | 一進會會報 | 미소장 |
29 | 大韓協會會報 | 미소장 |
30 | 大韓自强會月報 | 미소장 |
31 | 西北學會月報 | 미소장 |
32 | 西友 | 미소장 |
33 | 中央公論 | 미소장 |
34 | 日誌(天道敎) | 미소장 |
35 | 太極學報 | 미소장 |
36 | 侍天敎月報 | 미소장 |
37 | 龜岳宗報 | 미소장 |
38 | 金融と經濟 | 미소장 |
39 | 東光 | 미소장 |
40 | 別乾坤 | 미소장 |
41 | 黨聲 | 미소장 |
42 | 統監府文書 | 미소장 |
43 | 日本外交文書 | 미소장 |
44 | 駐韓日本公使館記錄 | 미소장 |
45 | 日本外交年表竝主要文書 | 미소장 |
46 | 尹致昊日記 | 미소장 |
47 | 大韓季年史 | 미소장 |
48 | 齋藤實文書 | 미소장 |
49 | 原敬日記 | 미소장 |
50 | 寺內正毅關係文書 | 미소장 |
51 | 寺內正毅日記 | 미소장 |
52 | 湯淺倉平 | 미소장 |
53 | 三峰下岡忠治傳 | 미소장 |
54 | 國際公法, 修文書館, 1909. | 미소장 |
55 | 韓國內部警務局編, 顧問警察小誌, 1910. | 미소장 |
56 | 京城憲兵分隊纂, 一進會略史, 1910. | 미소장 |
57 | 元韓國一進會歷史, 文明社, 1911. | 미소장 |
58 | 朝鮮紳士寶鑑, 1913 | 미소장 |
59 | 朝鮮銀行編, 鮮滿經濟十年史, 1919 | 미소장 |
60 | 黑龍會編, 朝鮮統治問題, 1920. | 미소장 |
61 | 朝鮮倂合之裏面, 中外新論社, 1920. | 미소장 |
62 | 朝鮮統治問題に就て先輩竝に知友各位に訴ふ, 1920.11 | 미소장 |
63 | 朝鮮總督府, 産業調査委員會會議錄, 1921. | 미소장 |
64 | 朝鮮總督府, 朝鮮に於ける新施政, 1921. | 미소장 |
65 | 産業調査委員會議事速記錄, 1922. | 미소장 |
66 | 同光會本部, 朝鮮民情視察報告, 1923 | 미소장 |
67 | 警務局, 朝鮮人抗日運動調査記錄, 1925 | 미소장 |
68 | 朝鮮統治論, 1926 | 미소장 |
69 | 朝鮮倂合史, 朝鮮及滿洲社, 1926. | 미소장 |
70 | 朝鮮史話と史蹟, 1927. | 미소장 |
71 | 居留民之昔物語, 朝鮮二昔會事務所, 1927. | 미소장 |
72 | 一堂紀事, 一堂紀事出版所, 1927 | 미소장 |
73 | 警務局保安課, 治安狀況, 1927. | 미소장 |
74 | 明石元二郞, 臺灣日日新聞社, 1928. | 미소장 |
75 | 五十年の回顧, 1929. | 미소장 |
76 | 朝鮮總督府警務局, 高等警察關係年表, 1930. | 미소장 |
77 | 朝鮮總督府警務局, 治安狀況, 1930. | 미소장 |
78 | 朝鮮ニ衆議院議員選擧法施行ノ請願ノ件(1933) | 미소장 |
79 | 朝鮮總督府警務局, 最近に於ける朝鮮治安狀況, 1933. | 미소장 |
80 |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1934. | 미소장 |
81 | 朝鮮統治の回顧と批判, 朝鮮新聞社, 1936 | 미소장 |
82 | 朝鮮總督府編, 朝鮮統治秘話, 1937 | 미소장 |
83 | 京畿道警察部, 治安情況, 1938 | 미소장 |
84 | 朝鮮軍參謀部, 昭和13年後半期朝鮮思想運動槪況, 1939. | 미소장 |
85 | 朝鮮軍參謀部, 昭和15年前半期朝鮮思想運動槪況, 1940. | 미소장 |
86 | 春畝公追頌會, 伊藤博文傳, 1940. | 미소장 |
87 | 韓相龍君を語ける, 1941 (한익교 정리, 김명수 옮김, 한상룡을 말한다, 2007, 혜안) | 미소장 |
88 | 安島山全書, 삼중당, 1963 | 미소장 |
89 | 黑龍會編, 日韓合邦秘史, 原書房, 1966 | 미소장 |
90 | 万才騷擾事件, 巖南堂書店, 1964 | 미소장 |
91 | 韓國歷史硏究會, 日帝下社會運動史資料叢書, 高麗書林, 1992 | 미소장 |
92 | 朝鮮統治資料, 韓國史料硏究所, 1971. | 미소장 |
93 | 日本外務省特殊調査文書, 高麗書林, 1989 | 미소장 |
94 | 朝鮮問題資料叢書, 1983 | 미소장 |
95 | 韓國民族解放運動史資料叢書, 경인문화사, 1988 | 미소장 |
96 | 朝鮮總督府資料選集- 齋藤總督の文化政治, 友邦協會, 1970. | 미소장 |
97 | 朝鮮統治史料, 韓國史料硏究所, 1970 | 미소장 |
98 | 日韓外交資料集成, 原書房, 1981. | 미소장 |
99 | 韓國倂合史料, 原書房, 1978 | 미소장 |
100 | 伊藤博文關係文書硏究會, 伊藤博文關係文書, 塙書房, 1978. | 미소장 |
101 | 宮內廳, 明治天皇紀, 吉川弘文館, 1975. | 미소장 |
102 | 現代史資料 25, 1966 | 미소장 |
103 | 식민통치의 허상과 실상 - 조선총독부 고위관리의 육성증언, 혜안, 2002 | 미소장 |
104 |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사, 한길사, 1980. | 미소장 |
105 | 조선통감부연구2, 국학자료원, 1994. | 미소장 |
106 | 한국국제관계사연구-일제시기 한반도와 국제관계, 역사비평사, 1995. | 미소장 |
107 | 1910․20年代東亞日報主導層의 政治經濟思想硏究, 연세대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1999. | 미소장 |
108 | 大韓帝國期의 政治思想硏究, 지식산업사, 1994. | 미소장 |
109 | 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 :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제국주의와 조선인의 정치운동, 경인문화사, 2002. | 미소장 |
110 | 한국근대농업사연구, 일조각, 1975. | 미소장 |
111 | 한국근현대농업사연구, 일조각, 1992. | 미소장 |
112 | 일본제국주의의 한국통치(개정판), 박영사, 1998. | 미소장 |
113 | 천도교 근대 민족운동연구, 한울, 2009. | 미소장 |
114 | 대한제국 말기(1904-1910년) 일진회 연구 | 소장 |
115 | 한국공산주의운동사1-3, 청계연구소, 1986. | 미소장 |
116 | 일제하 조선인 도평의회․도회의원연구 ,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6. | 미소장 |
117 |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 나남, 1990. | 미소장 |
118 |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지배, 청아, 1986. | 미소장 |
119 | 국가, 주권, 소화, 2008. | 미소장 |
120 | 韓末-日帝下社會進化論硏究, 韓國精神文化硏究院博士學位論文, 1999 | 미소장 |
121 | 독일연방정부론, 2001. | 미소장 |
122 | 제국주의-신화와 현실,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 미소장 |
123 |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민족주의우파의 실력양성운동론, 역사비평사, 1992. | 미소장 |
124 | 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1930․40년대 백남운의 학문과 정치경제사상, 역사비평사, 1992. | 미소장 |
125 | 광무정권의 국정운영과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한 대응,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 미소장 |
126 | 대한제국 정치사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 미소장 |
127 | 한국근현대사의 민족문제연구, 지식산업사, 1989. | 미소장 |
128 | 韓國地方制度自治史硏究上: 甲午更張∼日帝强占期, 一志社, 1992. | 미소장 |
129 | 독립협회연구, 일조각, 1981. | 미소장 |
130 | 韓國行政史硏究1, 1993. | 미소장 |
131 | 한국근대자본가연구, 한울, 2002. | 미소장 |
132 |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한길사, 1985. | 미소장 |
133 | 韓國近代金融史硏究, 世經社, 1996. | 미소장 |
134 | 식민지의 회색지대, 역사비평사, 2003. | 미소장 |
135 | 한국개화사상연구, 일조각, 1979. | 미소장 |
136 | 신간회연구, 역사비평사, 1993. | 미소장 |
137 | 한국과 이토 히로부미, 선인, 2009 | 미소장 |
138 | 한국근대문화사상사연구, 혜안, 2007. | 미소장 |
139 | 한국 사회주의 세력의 형성: 1919~1923, 일조각, 2003. | 미소장 |
140 | 친일논설선집, 실천문학사, 1987. | 미소장 |
141 | 일제침략과 친일파, 청사, 1982. | 미소장 |
142 | 19-20世紀初韓人會社硏究,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1997. | 미소장 |
143 | 증보 정치학대사전, 1975. | 미소장 |
144 | 정치학대사전편찬위원회,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아카데미아리서치, 2002. | 미소장 |
145 | 一進會 硏究 ![]() |
미소장 |
146 | 安島山傳, 삼중당, 1975 | 미소장 |
147 | 한국근대계몽운동연구, 일조각, 1997. | 미소장 |
148 | 일제의 동화이데올로기의 창출, 경서문화사, 1997. | 미소장 |
149 | 근대일본사, 역민사, 1992 | 미소장 |
150 | 한말한일합방론연구, 국학자료원, 2002. | 미소장 |
151 | 제국의 시선-일본의 자유주의 지식인 요시노 사쿠조와 조선문제, 새물결, 2004. | 미소장 |
152 | 대한제국은 근대국가인가, 푸른역사, 2006. | 미소장 |
153 | 일본인의 한국관, 일조각, 1983. | 미소장 |
154 | 일본우익사상의 기원과 종언, 문학과 지성사, 2009. | 미소장 |
155 | 일제시기 참정권문제와 조선인, 국학자료원, 2004. | 미소장 |
156 | 근대한일관계사연구-조선식민지화와 국제관계, 현음사, 1997. | 미소장 |
157 |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 분석-조선과 만주, 대만을 중심으로, J&C, 2002. | 미소장 |
158 | 충성과 반역, 나남출판, 1998 | 미소장 |
159 | 천황제국가의 지배원리, 논형, 2009. | 미소장 |
160 | 日本言論界と朝鮮1910~1945, 法政大學出版局, 1984. | 미소장 |
161 | 植民地官僚の政治史, 三元社, 2008. | 미소장 |
162 | 植民地帝國日本の文化統合, 岩波書店, 1996. | 미소장 |
163 | 右翼辭典, 三嶺書房, 1991. | 미소장 |
164 | 中國, 朝鮮論 平凡社, 1970 | 미소장 |
165 | 李容九の生涯, 時事通信社, 1960. | 미소장 |
166 | 日本陸軍と大陸政策, 東京大學出版會, 1978. | 미소장 |
167 | 外地統治機構の硏究, 高山書院, 1943. | 미소장 |
168 | 日韓倂合小史, 岩波書店, 1966. | 미소장 |
169 | 日本植民地經濟史硏究, 名古屋大學出版會, 1992. | 미소장 |
170 | 李容九小傳, 葦書房, 1978. | 미소장 |
171 | <日本人>の境界- 沖縄․アイヌ․臺灣․朝鮮植民地支配から復歸運動まで, 新曜社, 1998. | 미소장 |
172 | 近代日本政治思想史, 有斐閣, 1971 | 미소장 |
173 | 臺灣抗日運動史硏究, 硏文出版, 1983. | 미소장 |
174 | 朝鮮植民地統治法の硏究-治安法下の皇民化敎育, 北海道大學圖書刊行會, 1989. | 미소장 |
175 | 李王垠傳記刊行會, 英親王李垠傳, 共榮書房, 1988. | 미소장 |
176 | 戰間期國際政治史, 岩波書店, 1978. | 미소장 |
177 | 朝鮮民族運動と副島道正, 硏文出版, 1998. | 미소장 |
178 | 傳統的右翼內田良平の硏究, 九州大學出版會, 1980. | 미소장 |
179 | 日本植民地主義の政治的展開(1895-1934), アシア政經學會, 1980. | 미소장 |
180 | 日本植民地硏究史論, 未來社, 1990. | 미소장 |
181 | 일제초 구지식인의 문예활동과 그 친일적 성격 | 소장 |
182 | 1920년대 초반 동아일보에나타난 자치에 관한 인식 , 역사와 현실 41, 2001. | 미소장 |
183 | 태평양문제연구회 조선지회와 조선사정연구회 | 소장 |
184 | 1910년대 일제 식민통치의 기조 한국사연구 124, 2001. | 미소장 |
185 | 日帝侵略初期(1905~1919)親日勢力의 政治論 硏究 | 소장 |
186 | 한말 개화파 지식인의 근대성과 근대적 변혁 | 소장 |
187 | 일본제국주의의 정치이론 , 일본학보 43, 1999. | 미소장 |
188 | A Study on the logic and development of the 'assimilation-collaboration movement type' under Japanese rule ![]() |
미소장 |
189 | 19세기말 근대국가 건설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균열 :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을 중심으로 | 소장 |
190 | 獨立協會의 中樞院 改編運動과 그 性格 | 소장 |
191 | 1910-1925年間天道敎勢力의 動向과 民族運動韓國史論 32, 1994. | 미소장 |
192 | 대한제국기․일제강점기 시천교의 존재양태와 활동 국사관논총 103, 2003. | 미소장 |
193 | 進步會·一進支會의 활동과 향촌사회의 동향 韓國史論 48, 2002. | 미소장 |
194 | A Study for the foundation of the Bominhoi(保民會) of Manchuria and the Unification of Chosun and Manchuria. | 소장 |
195 | 1919~1921년 한국 지식인들의 ‘改造論’에 대한 인식과 수용에 대하여 , 충남사학 11, 1999. | 미소장 |
196 | 일제하 민립대학설립운동 , 중앙사론 1, 1972. | 미소장 |
197 | 民立大學 設立運動 硏究 | 소장 |
198 | 정치사적 측면에서 본 대한제국의 역사적 성격 역사와 현실 19, 1996. | 미소장 |
199 | 황제권 중심 국민국가체제의 수립과 좌절, 1895~1904 | 소장 |
200 | 동광회의 조직과 성격에 관한 연구 | 소장 |
201 | 1910~20년대 일본유학 출신 지식인의 국제정세 및 일본인식 , 韓國史學報 7, 1999. | 미소장 |
202 | 일제 초기 ‘朝鮮物産共進會’ 연구 , 식민지 조선과 매일신보-1910년대, 신서원, 2002. | 미소장 |
203 | '김윤식사회장' 찬반논의와 사회주의세력의 재편 | 소장 |
204 | 1920년대 전반기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물산장려운동 , 역사와 현실 47, 2003. | 미소장 |
205 | 『공영』을 통해 본 대동동지회의 활동과 친일논리 | 소장 |
206 | 아일랜드·인도의 민족운동과 한국의 자치운동 비교 | 소장 |
207 | 1890년대 후반 도일(渡日) 유학생의 현실인식-유학생친목회를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31, 1999. | 미소장 |
208 | 식민지시기 조선인들의 일본시찰 , 지방사와 지방문화 9권 1호, 2006. | 미소장 |
209 | 1880년대 초 일본의 국가체제 구상 , 學林 15, 1993. | 미소장 |
210 | 日帝末期 大同事業體의 經濟自立運動과 理念 ![]() |
미소장 |
211 | 1930년대 物産獎勵運動과 民族․資本主義經濟思想, 東方學志 115, 2002. | 미소장 |
212 | 조선 지식인의 경제통제론과 ‘신체제’ 인식 , 방기중 편, 일제하 지식인의 파시즘체제 인식과 대응, 혜안, 2005. | 미소장 |
213 | 日帝下忠南道廳移轉의 過程과 結果: 植民政策强行에 대한 民族抗拒의 한 斷面千寬宇先生還曆紀念韓國史學論叢, 정음문화사, 1985 | 미소장 |
214 | 韓國近代社會史硏究 | 소장 |
215 | 구한말 輔安會의 창립과 민족 운동 ![]() |
미소장 |
216 | 일제의 새로운 식민지 지배방식과 재조일본인 및 '자치'세력의 대응,1919-22 : 3·1운동 직후 '자치'에 대한 논의 | 소장 |
217 | 한말~일제하 경아전의 관료진출과 정치적 동향 , 韓國近代移行期中人硏究, 신서원, 1999. | 미소장 |
218 | 대한자강회의 애국계몽운동 , 조항래 편, 1900년대의 애국계몽운동연구, 아세아문화사, 1993. | 미소장 |
219 | 1906~1910년의 地方行政制度변화와 地方自治論議, 韓國學報 42, 1986. | 미소장 |
220 | 해제 : ‘조선귀족’과 중추원 파악의 기본자료 ,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편,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Ⅳ : 조선귀족과 중추원,2009. | 미소장 |
221 | 韓末愛國啓蒙思想과 社會進化論, 釜山女大史學 2, 1984. | 미소장 |
222 | 1920年代중후반 維石趙炳玉의 民族運動과 現實認識, 實學思想硏究14․15, 무악실학회, 2000. | 미소장 |
223 | Articles : the Chungchu`won reform and Colonial Politics in Korea | 소장 |
224 | '伊藤博文追悼會' 개최 전후 '사회세력'의 동향과 親日 정치세력의 형성 | 소장 |
225 | 일제하 '조선왕실'의 지위와 이왕직의 기능 | 소장 |
226 | 東學敎團의 ‘甲辰開化運動’(1904-1906)에 대한 연구 | 소장 |
227 | 파시즘기 국제 정세의 변화와 전쟁 인식 , 방기중 편, 일제하 지식인의 파시즘체제 인식과 대응, 혜안, 2005 | 미소장 |
228 | 1920년대 초 자치청원운동과 維民會의 자치구상 , 역사와 현실 39, 2001. | 미소장 |
229 | 『共榮』 : 1920년대 전반 친일세력의 고민과 세계관 | 소장 |
230 | 『시사평론』을 통해서 본 국민협회의 근대국가인식과 참정권청원론 | 소장 |
231 | 1930년대 전반 민족주의세력의 국제정세인식과 파시즘논의 , 역사문제연구 19, 2008. | 미소장 |
232 | 대한협회에 대하여 , 아세아연구 13-3, 1970. | 미소장 |
233 | 조선귀족과 일본귀족과의 관계에 대한 자료조사 및 해제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5년도 보고서, 2005. | 미소장 |
234 | 운양 김윤식의 죽음을 대하는 두개의 시각 | 소장 |
235 | 일제시대 민족개량주의운동의 계보와 논리 , 일제 식민지시대의 민족운동, 한길사, 1988. | 미소장 |
236 | 日帝의 京城帝國大學 설립과 운영 | 소장 |
237 | 물산장려논쟁을 통해서 본 민족주의세력의 이념적 편차 | 소장 |
238 | 러일전쟁 전후 일본의 대륙정책과 테라우치(寺內正毅) | 소장 |
239 | 1910年代韓一銀行과 서울의 商人, 서울학연구12, 1999. | 미소장 |
240 | 朝鮮總督 寺內正毅의 韓國觀과 植民統治 : 漸進的 民族同化論과 民族差別 暴壓政策의 이중성 | 소장 |
241 | 舊韓末 平安道地方의 東學;敎勢의 伸張과 性格에 대한 檢討를 중심으로 | 소장 |
242 | 朝鮮物産奬勵運動의 展開過程과 그 歷史的 性格 | 소장 |
243 | 朝鮮總督府 中樞院의 初期 構造와 機能 | 소장 |
244 | 매일신보를 통해 본 1910년 일본시찰 한일민족문제연구 6호, 2004 | 미소장 |
245 | 한말 조선 지식인의 동아시아 삼국제휴 인식과 논리 | 소장 |
246 | 「朝鮮事情 硏究會」의 硏究 | 소장 |
247 | 1898년 독립협회 운동의 주도세력과 지지기반 , 역사와 현실 15, 1995. | 미소장 |
248 | 한국 근대국민국가 수립과정에서 왕권의 역할, 1880~1894 | 소장 |
249 | 한국 근대 정치사와 왕권 : 총론 | 소장 |
250 | 1930년대 초반기(1930-33) 사회주의자들의 민족개량주의 운동비판 , 한국인문사회과학의 현단계와 전망, 역사비평사, 1989. | 미소장 |
251 | 日帝下公州地域有志集團硏究- 사례2 : 金甲淳(1872~1960)의 ‘有志基盤’과 ‘有志政治’ 于松趙東杰先生停年紀念論叢, 1997. | 미소장 |
252 | 1920년대 사회주의 민족운동의 성격에 대한 고찰-조선노농총동맹을 중심으로 , 한국독립운동사연구 5, 1991. | 미소장 |
253 | 安國善(1879-1926)의 生涯와 啓蒙思想(上), 韓國學報63, 1991. | 미소장 |
254 | A Study on the Independent Club's Idea of the Political System | 소장 |
255 | 大垣丈夫硏究-大韓自强會와 大韓協會의 活動을 中心으로 , 淑明女大國史學科碩士學位論文, 1995. | 미소장 |
256 | 韓末과 日帝下法學協會의 活動愛山學報 2, 1982. | 미소장 |
257 | 한말 한서 남궁억의 정치·언론 활동 연구 | 소장 |
258 | 大韓協會의 현실정치론 ![]() |
미소장 |
259 | 3․1운동 직후의 조선 식민지정책-齋藤의 ‘문화정치’의 본질을 중심으로, 차기벽 엮음, 일제의 한국 식민통치, 정음사, 1985. | 미소장 |
260 | 韓末~日帝下社會變動과 鄕吏層, 韓國近代移行期中人硏究, 신서원, 1999. | 미소장 |
261 | 일제하 사상범보호단체 "소도회(昭道會)"의 설립과 활동 | 소장 |
262 | 1920년대 초 ‘조선소작인상조회’에 대한 연구 , 김호일교수화갑기념논총간행위원회, 한국근현대이행기 사회연구, 신서원, 2000. | 미소장 |
263 | 일진회의 일어학교에 관한 고찰 | 소장 |
264 | 植民地統治와 조선인의 대응 ,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5권, 2005. | 미소장 |
265 | 國家의 理想 | 소장 |
266 | 日帝侵略初期의 朝鮮人官吏硏究, 연세대학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1990. | 미소장 |
267 | 산미증식계획과 식민지 농업의 전개 , 韓國近代經濟史硏究, 사계절, 1983. | 미소장 |
268 | 總督政治と政党政治-二大政黨期の總督人事と總督府官制․豫算- , 朝鮮史硏究會論文集, 朝鮮史硏究會, 2000. | 미소장 |
269 | 帝國主義の政治理論, (岩波講座) 近代日本と植民地 1, 岩波書店, 1992. | 미소장 |
270 | 近代日本は植民地で何をし, 何を残したのか, 佐佐木隆爾編, 爭點日本の歷史第6卷近․現代編, 新人物往來社, 1991. | 미소장 |
271 | 一進會と日本- 政合邦と倂合- , 朝鮮史硏究會論文集 31, 1993. | 미소장 |
272 | 持地六三郞の生涯と著作, 臺灣近現代史硏究 2, 1979. | 미소장 |
273 | 外地參政權問題, 手塚豊編, 近代日本史の新硏究Ⅸ, 北樹出版, 1991. | 미소장 |
274 | 「植民地朝鮮における同化政策と在朝日本人朝鮮史硏究會論文集41, 2003. | 미소장 |
275 | 英國と日本の植民地統治, (岩波講座) 近代日本と植民地 1, 岩波書店, 1992. | 미소장 |
276 | 滿洲事變と朝鮮民族-東亞日報, 朝鮮日報の分析を中心に, 中村勝範編, 滿洲事變の衝擊, 勁草書房, 1996 | 미소장 |
277 | 甲山火田民事件(1929年) , 旗田巍先生古稀紀念會編, 朝鮮歷史論叢 下, 龍溪書舍, 1979. | 미소장 |
278 | 植民地期民族運動の近代觀-その方法的考察, 朝鮮史硏究會論文集 26, 1989. | 미소장 |
279 | 植民地期朝鮮人の政治參加-解放後史との關聯において, 朝鮮史硏究會論文集 31, 1992. | 미소장 |
280 | 黑龍會․內田良平の同光會活動, 法政論叢 32, 日本法政學會, 1996. | 미소장 |
281 | 日本の政治支配と朝鮮民族主義-1920年代の‘朝鮮自治論’を中心として戰爭․復興․發展-昭和政治史における權力と構想, 東京大學出版會, 2000. | 미소장 |
282 | 日本の朝鮮統治政策(一九一0-一九四五)の政治史的硏究, 法政理論 23-3․4, 1991. | 미소장 |
283 | 現地新聞と總督政治, (岩波講座)近代日本と植民地 7, 岩波書店, 1993. | 미소장 |
284 | 問題提起, 社會經濟史學 51-6, 1986. | 미소장 |
285 | 第一次大戰後の植民地政策論-朝鮮問題わめぐって, 小野一一郞․吉信肅 編, 兩大戰期のアジアと日本, 大月書店, 1979. | 미소장 |
286 | 吉野作造と朝鮮, 大正デモクラシ, 有精堂, 1977. | 미소장 |
287 | 植民地期朝鮮における參政權要求運動団体, 國民協會について, 浅野豊美․松田利彦編, 植民地帝國日本の法的構造, 信山社, 2004. | 미소장 |
288 | 日本統治下の朝鮮における警察機構の再編-憲兵警察制度から普通警察機構への轉換をめぐって, 史林 7-5, 1991. | 미소장 |
289 | 朝鮮總督府秘書課長と‘文化政治’ , 日本の朝鮮, 臺灣支配と植民地官僚, 2007, | 미소장 |
290 | 新幹會の創立わめぐって, 飯沼二郞․姜在彦, 近代朝鮮の社會と思想, 未來社, 1981. | 미소장 |
291 | 明治14年の政變- 免官者の政治構想を中心に, 歷史評論 348, 1979. | 미소장 |
292 | 日本統治下朝鮮の高等教育--京城帝国大学と民立大学設立運動をめぐって ![]() |
미소장 |
293 | 一進會立「光武學校·考朝鮮學報 178, 2001. | 미소장 |
294 | 近代日本ノ君主制ノ形成ト朝鮮-韓國皇帝, 皇族等ノ日本國民ヘノ包攝- 法學論叢 154-4․5․6, 2004 | 미소장 |
295 | korea and Ito Hirobumi | 소장 |
296 | 對韓政策の一側面-一進會の位置九州史學84, 1985 | 미소장 |
297 | 文化統治初期にをける朝鮮總督府官僚の統治構想, 史學雜紙 115-4,2006. | 미소장 |
298 | 政党內閣期(一九二四-一九三二年)の朝鮮總督府官僚の統治構想, 東京大學日本史學硏究室紀要 第十一号, 2007. | 미소장 |
299 | 南次郞總督時代における中央朝鮮協會, 日本歷史 720, 2008. | 미소장 |
300 | 一進會の前半期に關する基礎的硏究-1906年8月まで, 朝鮮社會の史的展開と東アジア, 山川出版社, 1997. | 미소장 |
301 | 運動団体としての一進会--民衆との接触様相を中心に ![]() |
미소장 |
302 | 一進會の後半期に關する基礎的硏究-一九○六年八月~解放- 東洋文化硏究 1, 1999. | 미소장 |
303 | 日本の植民地支配下における國籍關係の經緯-臺灣․朝鮮に關する參政權と兵役義務をめぐって, 愛知縣立大學外國語學部紀要 9, 1974. | 미소장 |
304 | 朝鮮近代のナショナリズムと文明, 思想 808, 1991. | 미소장 |
305 | 朝鮮總督府の文化政治, (岩波講座) 近代日本と植民地 2, 岩波書店, 1992. | 미소장 |
306 | 京城日報社長としての副島道正の朝鮮統治論, 靑山學院大學東洋使論集編輯委員會編, 東アジア世界史の展開-靑山學院大學東洋史論集, 汲古書院, 1994. | 미소장 |
307 | 近代日本の植民地統治と原敬, 日本植民地主義の政治的展開1895~1934-その統治體制と臺灣の民族運動, アジア政經學會, 1980. | 미소장 |
308 | 北米における韓國植民地期硏究: 最近の傾向, 東洋文化硏究 10, 2008. | 미소장 |
309 | 關東大震災朝鮮人虐殺硏究の二つの流れについて-アカデミックなアプローチと運動的アプローチ- , 專修史學 第四六号, 2009. | 미소장 |
310 | 愛相會-朝鮮人同化団体の步み, 在日朝鮮人硏究 9, 在日朝鮮人運動史硏究會, 1981. | 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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