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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국문초록

목차

第1章 서론 11

第1節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11

第2節 선행연구의 검토 16

第3節 연구방법 및 분석틀 21

第2章 북한의 종교관 및 북한 종교 23

第1節 일반 종교의 개념 23

1. 종교의 정의 및 기원 23

2. 종교의 유형 25

第2節 사회주의 종교관 및 종교 정책 28

1. 사회주의 종교관 28

2. 사회주의 국가의 종교 정책 30

第3節 북한의 종교관 및 북한 종교의 특징 34

1. 북한의 종교관 34

2. 북한 종교 기능의 이중성 42

第3章 북한의 종교정책 전개 과정과 변화 44

第1節 냉전기 북한의 종교정책 과정 및 정치적 기능 44

1. 북한의 종교 정책 과정 44

2. 북한 종교의 정치적 기능 54

第2節 탈 냉전기 북한의 종교정책 및 종교 본연의 기능 62

1. 북한의 종교 정책 양상 62

2. 탈 냉전기 종교 본연의 기능 현상 66

第4章 북한 종교의 현황 및 갈등 양상 72

第1節 북한 종교 단체의 종교 본연의 활동 현황 72

1. 북한 기독교 현황 75

2. 북한 불교 현황 79

3. 북한 천주교 현황 83

4. 북한 천도교 현황 86

第2節 상이한 두 기능의 역학관계 및 갈등 88

1. 종교 본연의 기능 발달 추이 88

2. 정치적 기능과 종교 본연의 기능의 갈등 양상 90

第5章 결론 101

참고문헌 104

Abstract 112

표목차

〈표 3-1〉 북한 주민의 성분 분류 및 대우 50

〈표 3-2〉 북한 종교인 계층 순위 및 내용 50

〈표 3-3〉 북한 헌법의 종교 관련 조항 변화 69

〈표 3-4〉 북한 종교관련 용어 변화 비교 70

〈표 4-1〉 북한 종교단체 현황 72

〈표 4-2〉 대북지원 종교단체 북쪽 파트너 73

〈표 4-3〉 북한의 종교 실태 (2008년) 74

〈표 4-4〉 기독교 시기별 활동내용 79

〈표 4-5〉 불교 시기별 활동 내용 82

〈표 4-6〉 천주교 시기별 활동내용 85

그림목차

〈그림 1-1〉 북한의 종교 정책 변화 과정 22

〈그림 2-1〉 북한 종교의 이중적 기능 43

〈그림 3-1〉 북한정권의 기독교 탄압 근거 49

〈그림 3-2〉 북한의 통일전선 지휘체계 61

〈그림 3-3〉 조선종교인 협의회 구성(2011년) 61

〈그림 4-1〉 종교 본연의 기능 발전 과정 90

초록보기

북한은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정신적 지주였던 김일성이 사망한 후, 극심한 경제난과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는 대재앙을 만났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 근간이 크게 흔들렸지만 큰 역풍을 만나지 않고 김정일의 권력 세습이 무난하게 이어졌다. 또한 최근에 화폐개혁 실패로 또 한번의 경제적 위기와 김정일 와병설로 내부적으로 매우 어수선 하였지만 근대 정치사에 유례없는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 세습을 천명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갈등이 크게 표출 되지 않고 북한 주민들의 동요도 거의 없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이 독재 체제에 저항하지 않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왕조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하는 순응적 인간으로 조형화된 것은 북한의 철저한 정치사상교육, 즉 정치사회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은 모든 권력이 수령 1인에게 집중된 대표적인 전체주의국가이다. 북한도 형식상 입법, 사법, 행정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실제적 권력은 수령1인에게 집중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북한의 수령은 '인민의 최고뇌수'로서 전지전능한 무오류의 '신격화'된 인간으로서 모든 권위의 원천이 된다. 곧 김일성은 북한주민들에게 칭송을 넘어 신앙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뿐만 아니라 김정일도 숭배의 대상이다. 북한은 1995년부터 김정일의 우상화·신격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정일의 당 총비서 추대(1997. 10. 8)의 당위성을 선전하기 위해 자연현상까지 날조하였다. '조선그리스도 연맹'은 9월 1일 담화에서 김정일을 '하느님'으로 불렀다. 그런데 김일성·김정일을 신으로 떠받드는 북한에도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이 존재하고 종교 정책과 종교 제도도 있다.

김일성 1인 독재 체제가 수립된 I960년대 중반에 북한의 종교들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던 북한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중대 전환점'을 맞아 북한 종교들의 활동을 재개 시키면서 대남비방 및 통일전선 등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다가 1980 년대 중반부터 남한을 비롯한 서방 세계들이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거세게 비난을 하자 북한 정권은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일련의 조치로 1988년 평양에 봉수교회가 건축되고 장충 성당이 건립되었다. 또한 남한에서 개최된 '88 서울국제올림픽'을 견제하기 위해 1989년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종교 활동의 폭이 늘어났다. 이러한 북한 내 사회적, 종교적 분위기가 결국 1992년에 김일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가시적으로라도 종교에 대해 새롭게 제시하게 하였고 그해 북한은 헌법을 개정하여 '반종교 선전의 자유'란 문구를 삭제하였고 더불어 종교건물 건축과 종교의식의 자유를 법제화 시켰다.

이와 같은 북한의 종교정책 변화에 대해 남한의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해석과 평가를 하고 있다. 크게 전통주의(반공적), 수정주의(북한 중심적), 중도주의(재수정주의)의 관점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상이한 평가들은 북한 정권의 종교 정책 변화에 대한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이것이 연구자 뿐만 아니라 북한 종교를 연구하는 후진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가져다 준다. 누구의 책을 읽었느냐에 따라 관점이 고정화 되는 경향이 많다.

1988년 이후부터 북한 종교의 상황을 보면 종교 안에 이중적 기능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통일전선 등의 정치적 기능과 종교 본연의 기능이 맞물려 작동되고 있다. 1988년에 북한 정권이 '대외선전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북한 내 종교의 외형적 건물을 세우면서 부터 서서히 종교 본연의 기능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종교 본연의 기능은 북한 종교 안에 지배적인 정치적인 기능과 서로 갈등과 대립을 지속해 왔다.

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이러한 북한 종교 상황을 좀 더 세밀하게 연구하여 북한 정 권이 어떤 변화요인(중대 전환점)들을 맞아서 종교 정책의 변화를 꾀했는지, 또한 종교 정책 변화로 인해 북한 종교의 기능에 어떠한 변화와 갈등 양상이 나타났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이는 향후, 북한 종교 안에 존재하는 종교 본연의 기능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를 파악하고 북한 종교 안에 종교 본연의 기능이 강화되기 위해서 남한 종교들이 어떠한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색하여 북한과의 종교 교류 및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는데 있어서 좋은 정책적 대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