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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국문초록

목차

Ⅰ. 서론 15

1. 들어가며 15

2. 선행연구 20

3. 논문의 구성 24

Ⅱ. 星星畵會의 탄생배경 27

1. 가족로망스 개념을 통해 본 문혁세대의 특성 27

1) 근대국가의 형성과 가족로망스 개념 28

2) 문화대혁명과 지식청년들의 비극 31

3) 星星畵會의 가족로망스 성립배경 39

2. 포스트 문혁기의 중국의 사회적, 문화적 변화 42

1) 1976년 베이징의 봄과 사상해방의 조류 42

2) 미술계의 재건과 상흔미술, 향토리얼리즘의 대두 45

3) 星星畵會 이전의 재야미술그룹의 약진 52

3. 星星畵會의 성립과정 58

1) 다양한 살롱문화의 활성화 58

2) 『今天』의 창간 63

3) 星星畵會의 탄생 65

Ⅲ. 星星畵會 활동의 전개와 특성 73

1. 제1회 星星美展과 제2회 星星美展의 전모 73

1) 제1회 星星美展과 항의시위 73

2) 제2회 星星美展과 해체 82

2. 작가별 작품분석(1979~2010) 89

1) 黃銳 : 재야의 새벽별, 流浪에서 定住로 90

2) 王克平 : 성상파괴자에서 인체탐색자로 95

3) 馬德升 : 부조리의 폭로자에서 철학적 구도자로 103

4) 李爽 : 삶 자체가 전위였던 시대의 희생양 107

5) 艾末未 :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113

6) 邵飛 : 영원한 여성성의 탐색 120

Ⅳ. 星星畵會의 성과와 한계 124

1. 星星畵會의 아방가르드적 특성 124

1) 탈중심성과 확장성 127

2) 조형언어의 다원화 131

3) 게릴라성 퍼포먼스 136

2. 星星畵會의 디아스포라, 그 득과 실 139

Ⅴ. 결론 145

도판 150

참고문헌 188

Abstract 194

도판목차

도판1. 侯一民, 근尙誼 외 4인 〈우리는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완수해야한다〉, 1972 150

도판2. 高小華, 〈왜〉, 1978 150

도판3. 程叢林, 〈1968年×月×日雪〉, 1979 151

도판4. 羅中立, 〈父親〉, 1980 151

도판5. 문혁기 선전화 151

도판6. 마國東, 〈自在者〉, 1979, 부분 152

도판7. 無名畵會 1회전시, 1979 152

도판8. 趙文量, 〈故宮〉, 1970, 제1회 전시 출품작 152

도판9. 趙文量, 〈1966년 8월 18일〉, 1966 153

도판10. 張偉, 〈四五事件〉, 1976 153

도판11. 『今天』 잡지 153

도판12. 제1회 星星美展 153

도판13. 제1회 星星美展 입장권 153

도판14. 제1회 星星美展 154

도판15. 제1회 星星美展 154

도판16. 제1회 星星美展 전시폐쇄 포고문 154

도판17. 전시폐쇄 항의집회에서 연설하는 馬德升 154

도판18. 星星美展 전시폐쇄 항의집회 154

도판19. 행진하는 시위대와 군중 154

도판20. 星星畵會와 시위대의 가두행진 155

도판21. 1979년 10월 15일자 『뉴스위크』지에 실린 항의시위 155

도판22. 1979년 11월 23일 畵舫濟에서 개최된 제1회 星星美展 연장전을 보기위해 줄 선 인파들 155

도판23. 『中國建設』 1980년 6월호에 실린 제1회 星星美展 기사 155

도판24. 제2회 星星美展 참가자 단체사진 156

도판25. 제2회 星星美展 참가자 단체사진 156

도판26. 제2회 星星美展을 보기위해 줄 선 관람객들 156

도판27. 제2회 星星美展 관람객들 156

도판28. 프랑스대사 부부와 星星회원들 157

도판29. 홍콩잡지 『관찰가』, 1980년 10월호 157

도판30. 홍콩잡지 『七十年代』, 1981년 9期 157

도판31. 『親權察』에 실린 星星美展기사 157

도판32. 黃銳, 〈圓明園-신생〉, 1979 158

도판33. 黃說, 〈圓明園-장례〉, 1979 158

도판34. 黃說, 〈圓明園-기억〉, 1979 158

도판35. 黃說, 〈圓明園-기억〉, 1979 158

도판36. 黃說, 〈紫禁城〉, 1981 159

도판37. 黃說, 〈사합원변주3〉, 1982 159

도판38. 黃設, 〈사합원이야기〉(1982) 159

도판39. 黃說, 〈사합원추상〉(1983) 159

도판40. 黃說, 〈공간구성〉, 1983 160

도판41. 黃設, 〈공간구성〉, 1984 160

도판42. 黃設, 〈모주석만원〉, 2007 160

도판43. 黃設, 〈모주석만원〉, 2007, 부분 160

도판44. 黃說, 〈CHINA-坼那 NO.2〉, 2010 161

도판45. 黃說, 〈동물의 시간으로 본 중국역사〉, 2008 161

도판46. 黃說, 〈팔괘〉, 퍼포먼스, 2010 161

도판47. 王克平, 〈호흡〉, 1978 162

도판48. 王克平, 〈침묵〉, 1978, 23×23×45cm 162

도판49. 王克平, 〈偶像〉, 1978, h.62cm 162

도판50. 王克平, 〈만만세〉, 1978-1979 162

도판51. 王克平, 〈높이 들고, 튀어나가라〉, 1978 163

도판52. 王克平, 〈토템〉, 1980, h. 63cm 163

도판53. 王克平, 〈무제〉, 1980 163

도판54. 王克平, 〈여인〉, 2002 163

도판55. 王克平, 〈커플〉, 1997 164

도판56.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키스〉, 1912 164

도판57. 王克平, 서울올림픽공원 조형물, 1988 164

도판58. 翁逸之, 〈있는 힘껏 농업을 지원하라〉, 1965 164

도판59. 唐小禾, 〈거센 풍랑 속에 전진하라〉, 1971 165

도판60. 케테 콜비츠, 〈죽음의 무릎에 안긴 여인〉, 1921 165

도판61. 馬德升, 〈휴식〉, 1979 165

도판62. 馬德升, 〈전망〉, 1980 166

도판63. 馬德升, 〈무제〉, 1980 166

도판64. 馬德升, 〈수묵인체〉, 1983 166

도판65. 馬德升, 〈수묵인체〉, 1984 166

도판66. 馬德升, 〈수묵추상〉, 1984 167

도판67. 馬德升, 〈石斗記〉, 2007 167

도판68. 馬德升, 〈石斗記〉, 2009 167

도판69. 馬德升, 〈石斗記〉,2009 168

도판70. 李爽, 〈분투〉, 1979, 목판화 168

도판71. 李爽의 구명운동 벌이는 프랑스인들, 1981 168

도판72. 李爽, 〈기다림〉, 1980년경 169

도판73. 李爽, 〈신탁 밑의 아이〉, 1980 169

도판74. 李爽, 〈휴식〉, 1981 169

도판75. 李爽, 〈소요〉, 1983 170

도판76. 李爽, 〈고독〉, 1984 170

도판77. 李爽, 〈4인상〉, 1989 170

도판78. 潘嘉峻, 〈나는 바다제비〉, 1972, 유화 170

도판79. 李爽,〈자화상〉, 2009 171

도판80. 艾末未, 〈쑤저우풍경〉, 1980 171

도판81. 艾末未, 〈Mao-Image 1-3〉 1985 171

도판82. 艾末未, 〈원근법연구〉, 1995-2003 172

도판83. 艾末未, 〈원근법연구〉, 1995-2003 172

도판84. 艾末未, 〈원근법연구〉, 1995-2003 172

도판85. 艾末未, 〈코카콜라 로고가 새겨진 漢代의 항아리〉,1994 172

도판86. 艾末未, 〈漢代의 항아리 떨어뜨리기〉, 1995 172

도판87. 艾末未, 〈세 개의 다리와 세 귀퉁이를 가진 탁자〉, 1997 173

도판88. 艾末未, 〈한 쌍의 다리를 벽에 붙인 테이블〉, 1997 173

도판89.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173

도판90. 艾末未, 〈해바라기씨〉, 2010 173

도판91. 艾末未, 〈해바라기씨〉, 2010 173

도판92. 邵飛, 〈타지크족 자매〉, 1980, 25×37cm, 종이에 유화 174

도판93. 근尙의, 〈타지크족 신부〉, 1983 174

도판94. 邵飛, 〈변형〉, 1979 174

도판95. 邵飛, 〈금색가을〉, 1986 175

도판96. 失及正, 〈금색가을의 계절〉, 1962 175

도판97. 潘玉良, 〈번영〉, 1929 175

도판98. 邵飛, 〈小橋流水〉, 2008, 85×90cm, 채색수묵 175

도판99. 邵飛, 〈林中〉, 2009, 90×118cm, 채색수묵 176

도판100. ≪原點 : 星星畵會回顧展≫ 전시장, 2007, 北京 今日美術館 176

도판101. 馬德升, 〈무제〉, 1980 176

도판102. 黃說, 〈여공〉, 1979 177

도판103. 嚴力, 〈유랑〉, 1979 177

도판104. 嚴力, 〈베이징〉, 1979 178

도판105. 嚴力, 〈베이징〉, 1979 178

도판106. 嚴力, 〈베이징〉, 1979 178

도판107. 楊益平, 〈만두 파는 사람〉 178

도판108. 毛栗子, 〈대문〉, 1980, 80×65cm 179

도판109. 薄雲, 〈아! 만리장성〉, 1979 179

도판110. 薄雲, 〈세기초〉, 1980, 54×131cm 179

도판111. 何寶林, 〈길 따라 끝없이〉, 1979 180

도판112. 何寶林, 〈자화상〉, 1979 180

도판113. 黃說, 〈무제〉, 1980 180

도판114. 曲磊磊, 〈하늘을 깁는 女왜〉, 1979 180

도판115. 關及판, 〈무제〉, 1980, 캔바스에 유화 181

도판116. 關及판, 〈무제〉, 1980, 캔바스에 유화 181

도판117. 黃說, 〈목욕하는 여인〉, 1980 181

도판118. 包泡, , 〈무제〉, 1979 181

도판119. 鄭振庭, 〈무제〉, 1980 182

도판120. 邵飛, 〈예술가의 생활〉, 1980, 80×80cm, 캔바스에 유화 182

도판121. 邵晶坤, 〈무제〉, 1980, 캔바스에 유화 182

도판122. 蕭大元, 〈무제〉, 1980 183

도판123. 蕭大元, 〈무제〉, 1980 183

도판124. 宋紅, 〈느릅나무〉, 1980, 42×67cm, 목판에 유화 184

도판125. 宋紅, 〈자화상〉, 1980, 45×51cm, 목판에 유화 184

도판126. 宋紅, 〈조개잡이〉, 1980, 87×64cm, 목판에 유화 184

도판127. 李爽, 〈초상〉, 1979, 27×29cm, 캔바스에 유화 185

도판128. 李爽, 〈비파연주〉, 1980, 63×66cm, 목판에 유화 185

도판129. 尹光中, 〈長成〉, 1980 186

도판130. 嚴力, 〈대화〉, 1980 186

도판131. 李爽, 〈희망의 빛〉, 1980 187

도판132. 曲磊磊, 〈조국〉연작(1), 1979 187

초록보기

星星畵會에 관한 총체적인 연구는 해외는 물론 중국 미술사에서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연구는 1979년과 1980년 단 두 차례의 전시를 가지고 해체 되었던 星星畵會가 생성되기까지의 배경을 고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70년대 말 베이징에 거주하는 젊은 실험주의적 작가들이 非官方 미술그룹 星星畵會를 조직했고 1979년 9월 28일 당국의 허락을 맡고 北京美術館에서 첫 전시를 가졌다. 대부분의 성원들은 아마추어 작가였으며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은 국제미술계의 동향이나 미술이론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특성들로 인해 星星畵會는 당시 주류 사조의 한계를 벗어나 전위 미술의 성격을 지닐 수 있었다. 이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을 거부하고 후기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서구 모더니즘 양식을 통해 자신들의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그 뿐 아니라 星星畵會는 정부에 의해 전시가 3일 만에 폐쇄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하고 가두행진을 벌이며 예술의 자유는 물론 사회민주화 등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표출했다. 星星畵會는 198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주요 성원들이 정부의 정치적 탄압으로 하나씩 해외로 이주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조형언어를 탐색했다. 특히 서구로 이주한 작가들은 민속지학자 역할과 더불어 디아스포라 작가로 활동하면서 국제적인 명성도 얻었다.

본 연구는 1970년대 말 중국의 정치사회적인 맥락은 물론 린 헌트의 가족로망스 개념을 통해 星星畵會의 탄생과 발전과정을 추적했다. 따라서 당시 격변기 중국의 상황을 ‘더 나은 아버지’를 갈망하는 아들들의 분투라는 전제로 묘사했다.

프로이트의 가족로망스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아버지를 갈망하는 어린아이의 신경증을 이야기 한다. 아이는 아버지를 통해 최초로 권력관계를 경험하고 모든 신념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단순히 혈연관계를 넘어 사회적 권력구조로 확장된다. 즉 상징적인 아버지격인 국가와 그 지도자와의 관계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星星畵會의 구성원들 대부분은 문화대혁명 당시 가족해체의 아픔을 겪었다. 또한 홍위병 활동을 하면서 자신들의 친아버지를 부정했다. 하지만 문혁이 지속될수록 그들은 자신들이 존경했던 상징적인 아버지 마오쩌둥에게 등을 돌리고 자신의 친아버지를 복원하거나 자신들이 직접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다.

본 연구에서는 星星畵會의 활동과 작품에서 드러난 가족로망스 징후들을 돌아보며 이것이 중국현대미술의 발전과정 속에서 어떻게 체현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린 헌트가 『프랑스혁명과 가족로망스』에서 한층 발전시킨 가족로망스 개념을 적용했다. 또한 원시적 아버지, 고아, 사생아, 형제들의 연대와 같은 용어와 개념을 인용해 1970년대 후반 중국의 상징적인 질서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星星畵會의 궤적을 추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