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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초록 7

I. 서론 10

1. 문제제기 10

2. 선행연구 12

3. 연구관점과 논문의 구성 15

II. 20세기 초 화단의 경향과 이도영의 회화입문 18

1. 20세기 초 화단의 경향 18

1) 서화가들의 위상변화 18

2) 근대 미술제도의 유입 23

2. 이도영의 화단입문과 교유활동 30

1) 안중식 문하 입문 30

2) 교유관계의 형성 34

III. 애국계몽운동기 출판활동과 삽화제작 41

1. 애국계몽운동기 이도영의 출판활동 41

1) 애국계몽운동과 출판 41

2) 이도영의 출판활동 48

2. 계몽도서 삽화 53

1) 국민교육회 발행『初等小學』(1906) 54

2) 보성관 발행『初等小學』 62

3) 최재학 저술『蒙學必讀』 64

3. 『大韓民報』삽화 66

1) 제작자 문제 68

2) 감상화 73

3) 풍자화 78

4) 『대한민보』 삽화의 특징 86

4. 소설책의 삽화와 표지화 91

1) 신소설 92

2) 딱지본 고전소설 101

IV. 미술교육 활동과 도화교과서 제작 106

1. 근대 미술교육과 이도영의 활동 106

1) 미술교육의 도입과 교과서의 간행 106

2) 이도영의 도화교육과 서화가교육 113

2. 이도영의 도화교과서 117

1) 『毛筆畵臨本』 118

2) 『鉛筆畵臨本』 127

V. 전람회 활동과 서화감평 134

1. 서화시장의 확대와 일본전람회 체험 135

1) 대규모 전람회와 서화시장의 확대 135

2) 이도영의 訪日과 전람회 체험 138

2. 서화협회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 활동 143

1) 서화협회전람회 143

2) 조선미술전람회 149

3) 전람회 출품과 화단의 평가 154

3. 고서화 감평활동 161

1) 고서화전람회 운영 161

2) 서화수장가들과의 교유와 서화감식 169

VI. 이도영의 회화세계 180

1. 이도영 화풍의 형성배경 181

1) 상해화단 화풍의 유입과 장승업 화풍의 유행 181

2) 일본회화의 자극과 안중식 화풍의 영향 184

2. 전기 회화 : 1901년~1919년 192

1) 화조영모화 192

2) 산수화 198

3) 인물화 206

4) 기명절지화 210

5) 화훼·사군자 214

3. 후기 회화 : 1920년~1933년 219

1) 기명절지화 219

2) 인물화 225

3) 산수화 234

4) 화조영모화 240

5) 화훼·사군자 244

VII. 결론 251

참고문헌 257

Abstract 362

표목차

표 1. 『尋常小學讀本』, 『(新訂)尋常小學』, 『初等小學』의 삽화 비교 57

표 2. 『大韓民報』 관서별 인물표현 비교 1 71

표 3. 『大韓民報』 관서별 인물표현 비교 2 71

표 4. 『毛筆畵臨本』 上冊의 목차와 내용 122

표 5. 『毛筆畵臨本』·『鉛筆畵臨本』과 『圖畵臨本』의 비교 124

표 6. 『鉛筆畵臨本』下冊의 목차와 내용 127

부표목차

부표 1. 이도영 연보 367

부표 2. 이도영의 삽화 목록 372

부표 3. 『圖畵臨本』의 목차와 내용 373

부표 4. 이도영의 작품 목록 377

부표 5. 이도영의 인장 385

도판목차

(도 1) 이도영, 〈봉황도〉, 지본수묵 285

(도 2) 고희동, 《畫筆生涯五十年帖》중 제2폭〈兩人相對話秋心〉, 1956 285

(도 3) 심전 안중식 외, 《詩情畫意》, 지본담채 285

(도 4) 안중식 외, 《문인화첩》, 지본수묵 285

(도 5) 안중식,〈민충정공혈죽도〉 285

(도 6) 안중식, 이도영, 서병오, 곽석규, 〈축수도12첩병풍〉, 1904 286

(도 7) 今村雲嶺, 〈축수도〉, 1915, 지본수묵 287

(도 8) 안중식, 〈촉석루도〉, 1913, 견본담채 287

(도 9) 유길준, 김응원 외 〈합작도〉, 지본수묵 287

(도 10) 이도영, 〈산수도〉, 1916, 견본담채 287

(도 11) 조석진, 『철세계』, 안동서관, 1908 288

(도 12) 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egum, 1877 288

(도 13) 이마무라 운레이, 『원앙도』, 보급서관, 1911 288

(도 14) 이마무라 운레이, 『고목화』, 박문서관, 1922 288

(도 15) 이마무라 운레이, 『피터대제』, 광학서포, 1908 288

(도 16) 『초등소학』 중, 〈鴈〉 288

(도 17) 『초등소학』중〈竹〉 288

(도 18) 『초등소학』중〈마차〉 289

(도 19) 『대한민보』 1910.04.16 289

(도 20) 『초등소학』 중 〈효서〉 289

(도 21) 『대한민보』 1909.07.16 289

(도 22) 『초등소학』 중 〈묘〉 289

(도 23) 『대한민보』 1909.07.06 窮鼠嚙猫 289

(도 24) 『초등소학』 중 〈麥〉 290

(도 25) 『초등소학』중〈羊, 猪〉 290

(도 26) 『초등소학』중〈토끼와 거북〉 290

(도 27) 『초등소학』중〈그림이약이3〉 290

(도 28) 『초등소학』중〈그림이약이〉 290

(도 29) 『초등소학』중〈狐와 鼓〉 290

(도 30) 『초등소학』중〈약속〉 290

(도 31) 안중식, 『청춘』제1호 권중삽화 291

(도 32) 『유년필독』중 〈十濟끄臣開國岡〉 291

(도 33) 『유년필독』중, 〈을지문덕〉 291

(도 34) 안중식, 〈고사도8첩병풍〉중 부분, 1907 291

(도 35) 『유년필독』중〈越王句踐臥薪嘗膽圖〉 291

(도 36) 안중식, 〈해상신선도〉, 견본담채 291

(도 37) 『유년필독』중 〈민영환혈죽도〉 291

(도 38) 『초등소학』중, 〈석류〉 292

(도 39) 『초등소학』 중, 〈박〉 292

(도 40) 『초등소학』 중, 〈솔〉 292

(도 41) 『초등소학』 중, 〈산〉 292

(도 42) 『초등소학』 중, 〈하사〉 292

(도 43) 『대한민보』 1909.07.20 부분 292

(도 44) 『초등소학』 중, 〈농부〉부분 292

(도 45) 『대한민보』 1909.09.01 부분 292

(도 46) 『몽학필독』 중〈산수 1〉 292

(도 47) 『몽학필독』 중〈산수 2〉 292

(도 48) 『몽학필독』 중〈소년〉 293

(도 49) 『대한민보』 1909.09.01 293

(도 50) 『몽학필독』 중〈파리〉 293

(도 51) 『몽학필독』 중〈천도교중앙총부〉 293

(도 52) 『몽학필독』 중〈솥〉 293

(도 53) 『몽학필독』 중〈벼루〉 293

(도 54) 국민교육회 『초등소학』중〈총〉 293

(도 55) 보성관『초등소학』중〈탑〉 293

(도 56) 『몽학필독』 중〈학교학도들이〉 293

(도 57) 『몽학필독』 중〈탑〉 293

(도 58) 『대한민보』 1910.06.02 294

(도 59) 『대한민보』 1910.06.16 294

(도 60) 『대한민보』 1909.10.10 294

(도 61) 『대한민보』1909.01.01 294

(도 62) 이도영,〈매화와 학〉부분(1906) 294

(도 63) 『대한민보』 1909.09.08 295

(도 64) 『대한민보』 1909.10.03 295

(도 65) 『대한민보』 1909.06.22 295

(도 66) 『대한민보』 1909.10.17 295

(도 67) 고희동, 〈織布〉, 견본담채 295

(도 68) 『대한민보』 1910.02.23 295

(도 69) 『대한민보』 1909.08.22 295

(도 70) 『대한민보』1909.11.06 296

(도 71) 『대한민보』 1910.01.25 296

(도 72) 『대한민보』 1909.07.30 296

(도 73) 『대한민보』 1909.07.13 296

(도 74) 『유년필독』 중〈금강산일만이천봉〉 296

(도 75) 『대한민보』 1910.08.04 296

(도 76) 『대한민보』 1910.03.24 296

(도 77) 『대한민보』 1909.12.23 296

(도 78) 『대한민보』 1910.01.20 296

(도 79) 『대한민보』 1909.08.24 297

(도 80) 『대한민보』 1909.08.25 297

(도 81) 『대한민보』 1909.09.30 297

(도 82) 『대한민보』 1909.08.10 297

(도 83) 이도영,〈송학도〉부분(도 259의 부분) 297

(도 84) 이도영, 〈연로도〉부분(도 259의 부분) 297

(도 85) 이도영,〈추응도〉부분(도 259의 부분) 297

(도 86) 이도영, 〈오동폐월도〉부분(도 267의 부분) 297

(도 87) 이도영, 〈연꽃과 물총새〉부분(도 259의 부분) 297

(도 88) 『대한민보』 1910.01.22 297

(도 89) 『대한민보』 1910.08.22 297

(도 90) 『대한민보』 1910.02.25 297

(도 91) 『대한민보』 1910.04.16 297

(도 92) 『대한민보』 1909.06.30 298

(도 93) 『대한민보』 1909.08.04 298

(도 94) 『대한민보』 1909.08.29 298

(도 95) 『대한민보』 1909.10.14 298

(도 96) 『대한민보』 1909.11.07 298

(도 97) 『대한민보』 1910.08.02 298

(도 98) 『대한민보』 1909.06.19 298

(도 99) 『대한민보』 1909.06.20 298

(도 100) 『대한민보』 1910.04.20 298

(도 101) 『대한민보』 1909.11.23 298

(도 102) 『대한민보』 1910.04.01 298

(도 103) 『대한민보』 1910.05.31 298

(도 104) 『대한민보』 1909.06.17 299

(도 105) 『대한민보』 1909.07.25 299

(도 106) 『대한민보』 1909.09.05 299

(도 107) 『대한민보』 1909.09.16 299

(도 108) 『대한민보』 1909.09.02 299

(도 109) 『대한민보』 1909.10.31 299

(도 110) 『대한민보』 1909.11.21 299

(도 111) 『대한민보』 1909.09.25 299

(도 112) 『대한민보』 1909.11.03 299

(도 113) 『대한민보』 1909.12.19 299

(도 114) 『대한민보』 1909.06.26 299

(도 115) 『대한민보』 1910.05.14 299

(도 116) 『대한민보』 1910.05.05 299

(도 117) 『대한민보』 1910.02.24 299

(도 118) 『대한민보』 1909.06.29 299

(도 119) 『대한민보』 1910.05.22 300

(도 120) 『대한민보』 1910.06.18 300

(도 121) 『대한민보』 1910.05.20 300

(도 122) 국민교육회 『초등소학』 300

(도 123) 『대한민보』 1909.10.12 300

(도 124) 『대한민보』 1910.03.25 300

(도 125) 『대한민보』 1909.11.17 300

(도 126) 『대한민보』 1909.08.27 300

(도 127) 『圖書帖』표지 300

(도 128) 『圖畫臨本』 2권 25도〈태극〉 300

(도 129) 『岡畫臨本』 4권 23도〈이화문양〉 300

(도 130) 『대한민보』 1909.09.19 300

(도 131) 『대한민보』 1909.10.20 300

(도 132) 『대한민보』 1910.03.29 301

(도 133) 『대한민보』 1910.06.11 301

(도 134) 『대한민보』 1910.07.17 301

(도 135) 『대한민보』 1910.01.23 301

(도 136) 『대한민보』 1909.10.24 301

(도 137) 『대한민보』 1909.12.01 301

(도 138) 『신정심상소학』〈虎와 狐의 話〉 301

(도 139) 『대한민보』 1909.06.16 301

(도 140) 『대한민보』 1909.06.25 301

(도 141) 『대한민보』 1909.07.08 301

(도 142) 『대한민보』 1910.01.09 301

(도 143) 『대한민보』 1909.11.16 302

(도 144) 『대한민보』 1910.01.27 302

(도 145) 『대한민보』 1910.07.19 302

(도 146) 『대한민보』 1909.07.31 302

(도 147) 『대한민보』 1910.02.17 302

(도 148) 『대한민보』 1910.07.17 302

(도 149) 『대한민보』 1910.06.28 302

(도 150) 이상범,〈寒林1寺〉, 견본담채 302

(도 151) 『대한민보』 1910.08.17 303

(도 152) 『대한민보』 1910.07.21 303

(도 153) 『대한민보』 1910.06.12 303

(도 154) 『대한민보』 1910.02.06 303

(도 155-1, 2) 『夢見諸葛亮』중 권두삽화 303

(도 156) 『紅桃花』, 유일서관, 1908 303

(도 157) 『聖山 明鏡』, 동양서원, 1911 303

(도 157-1) 부분 303

(도 158) 『話中話』, 광동서국, 1912 303

(도 159) 『十五小豪傑』, 보급서관, 1912 304

(도 160) 『黃金塔』, 동양서원, 1912 304

(도 161) 『行樂圖』, 동양서원, 1912 304

(도 162) 『朴淵瀑布』, 유일서관, 1913 304

(도 163) 『玉壺奇緣』, 보급서관, 1912 304

(도 163-1) 『玉壺奇緣』부분 304

(도 164) 『탕月』, 박문서관, 1916 305

(도 165) 『獄中花』, 보급서관, 1914 305

(도 165-1) 『獄中花』부분 305

(도 165-2) 『獄中花』삽화 305

(도 166) 『秋風感樹錄』, 동양서원, 1912 305

(도 167) 이도영, 〈月下待人〉, 1919, 견본채색 305

(도 168) 『海上名人書稿』 305

(도 169) 이도영, 〈離情脉脉〉, 1919, 견본채색 306

(도 170) 『古今名人畫稿』 306

(도 171) 『증상연예 옥중가인』, 신구서림, 1914 306

(도 171-1~3) 『증상연예 옥중가인』삽화 306

(도 173) 『圖畫臨本』권1 제25도〈四角紋〉 307

(도 174) 『圖書臨本』권3 제23도〈幾何模樣〉 307

(도 175) 『圖書臨本』권3 제24도〈蝶^模樣〉 307

(도 176) 『圖書臨本』권4 제24도〈飛雁紋樣〉 307

(도 177) 이도영, 〈領毛〉, 지본수묵 307

(도 178) 이도영, 〈산수〉, 지본수묵 307

(도 179) 이도영, 〈龍鱗振響〉, 지본수묵 307

(도 180) 이도영,〈書窓淸供〉, 지본수묵 307

(도 181) 이도영, 『천자문』, 지본묵서 307

(도 182) 『毛筆畫臨本』(上), 제1도〈竹〉 308

(도 183) 이도영,〈蔓玉淸聲〉, 지본수묵 308

(도 184) 『毛筆畫臨本』(上), 제6도〈梅〉 308

(도 185) 이도영, 〈玉貌仙姿〉, 지본수묵 308

(도 186) 『毛筆畫臨本』(上), 제11도〈層〉 308

(도 187) 盧雁圖, 1916, 지본담채 308

(도 188) 『毛筆畫臨本』(上), 제29도〈水鳥〉 308

(도 189) 이도영,〈물촉새〉부분 308

(도 190-1~3) 『毛筆畫臨本』(上), 제12도〈佛手村〉, 18도〈蓄薇〉, 25도〈爐〉 309

(도 191) 이도영,〈기명절지도〉, 1916, 견본담채 309

(도 192) 이도영〈산수도〉(부분) 309

(도 193) 『毛筆畫臨本』(上), 제19도〈水閣〉 309

(도 194) 『毛筆畫臨本』(上), 제3도〈老樹〉 309

(도 195) 『毛筆書臨本』(上), 제4도〈책상〉 310

(도 196) 『毛筆畫臨本』(上), 제7도〈荷車〉 310

(도 197) 『錯筆畫臨本』(下), 제21도〈犬〉 310

(도 198) 『錯筆書臨本』(下), 제27도〈牛〉 310

(도 199) 『銷筆畫臨本』(下), 제23도〈松奪〉 310

(도 200) 『錯筆書臨本』(下), 제11도〈枝와 葉〉 310

(도 201) 『錯筆書臨本』(下), 제29도〈郵家〉 310

(도 202) 『錯筆畫臨本』(下), 제30도〈洋屋〉 310

(도 203) 『錯筆畫臨本』(下), 제26도〈雪景〉 310

(도 204) 『毛筆書臨本』(上), 제8도〈소년〉 310

(도 205) 『餓筆畫臨本』(下), 제15도〈小兒〉 310

(도 206) 이도영·고희동,〈선면기명절지〉, 1915, 견본담채 311

(도 207) 이도영,〈秋堂淸供〉, 1915, 견본채색 311

(도 208) 『대한민보』 1910.03.03 311

(도 209) 이도영, 〈錦鶴圖〉, 1922 311

(도 210) 이도영, 〈石窟庵觀音像〉, 1929 311

(도 211-1) 이상좌, 〈雲龍害〉, 『조선일보』 1929.10.15 311

(도 211-2) 이상좌, 〈雲龍害〉, 견본묵서 311

(도 212) 이상좌, 〈나한도대련〉, 견본수묵 311

(도 213) 강희안, 〈산수도대련〉, 견본수묵 311

(도 214) 이징, 〈고사망월도〉, 견본수묵 312

(도 215) 이징, 〈준마도〉, 견본수묵 312

(도 216) 이도영, 〈게〉, 1929, 지본담채 312

(도 217) 이도영, 〈陶侃運藍圖〉, 1926, 지본담채 312

(도 218) 傳 변상벽, 〈묘작도〉, 지본채색 312

(도 219) 傳 진재해, 〈月下吹笛圖〉, 17세기말, 지본채색 312

(도 220) 윤두서,〈말〉, 견본담채 312

(도 221) 안중식, 〈완당선생 소상〉, 1909, 지본수묵 313

(도 222) 이한철,〈阮堂先生肖像〉, 유지채색 313

(도 223) 허련, 〈阮堂先生肖像〉, 지본담채 313

(도 224) 조정규, 〈魚蟹圖10첩병풍〉, 지본담채 313

(도 225) 조석진, 〈魚蟹圖10첩병풍〉, 1918, 견본담채 313

(도 226) 조정규, 〈老松栗鼠〉, 지본담채 314

(도 227) 조정규, 〈어해도〉, 견본담채 314

(도 228) 장승업, 〈元亮愛菊圖〉, 지본채색 314

(도 229-1) 안중식,〈桃柳春雀〉, 지본담채 314

(도 229-2) 안중식,〈老松掛月〉, 견본담채 314

(도 229-3) 안중식,〈白梅古器〉, 지본채색 314

(도 229-4) 안중식,〈黃菊秋實〉, 지본채색 314

(도 230) 조석진, 〈화조도〉 314

(도 231) 이도영, 〈산수도〉, 1912, 지본설채 315

(도 231) 장승업, 〈深山臨溪〉, 견본채색 315

(도 233) 안중식, 〈추경산수〉, 1909, 견본담채 315

(도 234) 장승업, 〈백물도권〉, 견본채색 315

(도 235) 이도영, 〈기명절지〉, 1902 315

(도 236, 237) 장승업, 〈산수인물도〉2폭, 견본담채 316

(도 238, 239) 馬禱, 『詩中書』 卷上, 1885 316

(도 240) 안중식, 〈楓林停車岡〉, 1900, 견본담채 316

(도 241) 안중식, 〈夏山煙雨〉, 견본담채 316

(도 242-1, 2) 안중식 외, 《詩情書意》, 1916, 지본담채 316

(도 243) 안중식, 〈화조영모도12첩병풍〉, 1901, 견본채색 317

(도 244) 熊代熊斐, 〈花鳥圖〉, 견본채색 317

(도 245) 장승업 ,〈화조영모도10첩병풍〉, 견본담채 317

(도 246) 오경윤, 〈축수서화대련〉, 1856, 지본담채 318

(도 247) 안중식, 〈화조영모도〉, 1901 318

(도 248) 円山應擧, 〈老松雙鶴圖〉, 1777, 견본채색 318

(도 249) 김윤보, 〈송학도〉, 견본채색 318

(도 250) 심인섭,〈송학도〉, 견본담채 318

(도 251) 안중식, 〈桃源問津〉, 1913, 견본채색 319

(도 252) 안중식, 〈桃源行舟〉, 1915, 견본채색 319

(도 253) 田崎草雲〈武陵春色圖〉, 견본채색 319

(도 254) 有隣惠, 〈산수〉, 1908 319

(도 255) 이도영,〈화조도두폭가리개〉, 1904, 견본담채 319

(도 256) 장승업, 〈豪鷹耽視〉, 지본담채 319

(도 256-1, 2) 이도영, 〈송학도〉, 〈추응도〉, 1909, 지본담채 320

(도 257) 안중식, 〈秋廳圖〉, 견본담채 320

(도 258) 필자미상, 〈秋鷹圖 초본〉, 지본수묵 320

(도 259) 이도영, 〈화조도〉, 1906, 견본채색 320

(도 260-1,2) 이도영, 〈화조도〉, 1906, 견본채색 321

(도 261) 김창환,〈봉황도〉, 1917, 견본채색 321

(도 262) 이도영, 〈송록도〉, 1906 321

(도 263) 안중식,〈영모절지화〉, 1904, 견본채색 321

(도 264) 장승업, 〈焦園芝鹿〉, 견본채색 321

(도 265) 이도영, 〈화조영모도8첩병풍〉, 1911, 지본담채 322

(도 266) 조석진, 〈쏘가리와 송사리〉 322

(도 267) 이도영, 〈달 보고 짖는 개〉, 1906 322

(도 268) 안중식, 〈오동폐월도〉중 제11폭 322

(도 269) 장승업, 〈오동폐월도〉중 제1폭 322

(도 270-1, 2, 3) 안중식, 〈유압도〉, 〈송학도〉, 〈노안도〉(『心田書譜』) 323

(도 271) 이도영 외, 〈청둥오리〉, 견본담채 323

(도 272) 안중식, 〈桃汀遊鴨圖〉, 견본담채 323

(도 273) 김은호, 〈春江雙鴨圖〉, 1916, 견본담채 323

(도 274) 이도영,〈松年鶴壽〉, 1912, 견본담채 323

(도 275) 이도영,〈노안도〉, 1910 323

(도 276) 안중식,〈노안도〉, 1909, 견본담채 323

(도 277) 이도영, 〈携琴訪友圖〉, 1909, 지본담채 324

(도 277-1) 이도영, 〈携琴訪友圖〉부분 324

(도 278) 안중식,〈野館圖〉, 1909, 지본담채 324

(도 278-1) 안중식,〈野館圖〉부분 324

(도 279) 이도영, 〈산수도〉 325

(도 280) 안중식, 〈산수도 대련〉, 지본담채 325

(도 281) 이도영, 〈秋溪獨釣〉, 1918, 견본담채 325

(도 282) 안중식, 〈산수도〉, 1901, 견본담채 325

(도 283) 오일영,〈落木空山〉, 견본채색 325

(도 284) 이상범,〈楓林獨釣〉, 견본담채 325

(도 285) 이도영, 〈江樹圖〉, 1913, 지본담채 325

(도 286) 이도영,〈一草堂圖〉, 1914, 견본담채 325

(도 287) 이도영,〈空亭圖〉, 1915, 지본담채 326

(도 288) 안중식,〈산수도〉, 지본수묵 326

(도 289) 이도영, 〈雪江獨釣〉, 1914, 지본담채 326

(도 290) 이도영, 〈산수도〉, 1910 326

(도 291) 안중식, 〈半江紅葉圖〉, 1908, 견본담채 326

(도 292) 이도영, 〈天保九如〉, 1911, 지본수묵 326

(도 293) 이도영, 〈산수도〉, 1916, 견본채색 326

(도 294) 이도영, 〈청록산수〉, 1921, 견본담채 326

(도 295) 이도영, 〈매화서옥도〉, 1916, 지본담채 327

(도 296) 허련, 〈매화서옥도〉, 지본담채 327

(도 297) 안중식, 〈매화서옥〉, 지본담채 327

(도 298) 강필주, 〈매화서옥도〉, 지본담채 327

(도 299) 이한복, 〈매화서옥도〉, 견본채색 327

(도 300) 오일영,〈매화서옥도〉, 견본담채 327

(도 301) 이도영,〈桃源問津圖〉, 1914, 지본채색 327

(도 302) 이도영〈귀거래도〉, 1917, 견본담채 327

(도 303-1, 2) 안중식, 〈명경대전망왕자성〉, 〈장안사화엄사〉, 1918, 지본담채 328

(도 304-1, 2) 이도영, 〈外船潭〉,〈靑壺淵〉, 1918 328

(도 305-1, 2) 左久間鐵園, 〈金剛山の山水〉, 1915, 견본채색 328

(도 306-1, 2) 조석진, 〈금강산도10폭병〉중 9폭〈萬物相〉, 10폭〈九龍淵大瀑〉 328

(도 307) 이도영, 〈九龍淵圖〉, 〈萬物相圖〉(나전의걸이장 상층문판) 328

(도 308) 김진갑, 〈나전조선장〉상층문판, 1937 328

(도 309) 〈나전침대〉 328

(도 310-1, 2) 이도영, 〈海金剛立石之松島〉, 〈金剛山萬物相圖〉(〈나전침대〉머리판과 발판) 328

(도 311) 이도영, 〈獨坐彈琴〉, 1918, 견본담채 329

(도 312) 이도영,〈梧竹秋聲〉, 견본담채 329

(도 313) 이도영, 〈江上至樂〉, 1908, 지본담채 329

(도 314) 이도영, 〈黃岡竹樓〉, 1909, 지본담채 329

(도 315) 이도영, 〈고사도〉, 1913, 지본채색 329

(도 316) 이도영, 〈신선도〉, 1915, 견본채색 329

(도 317) 이도영,〈竹解虛心是我師〉, 1919, 견본담채 329

(도 318) 이도영, 〈매화고사도〉, 견본담채 330

(도 319) 조석진, 〈심매도〉, 견본담채 330

(도 320) 작자미상, 〈高士觀梅圖 초본〉, 지본수묵 330

(도 321) 최우석,〈고사관매도〉, 견본채색 330

(도 322) 이도영,〈瑤池進讓〉, 1915, 지본수묵 331

(도 323) 조석진,〈搖池春色圖〉, 견본채색 331

(도 324) 이도영,〈南極星圖〉, 1917, 지본채색 331

(도 325) 이도영,〈달마도〉, 지본담채 331

(도 326) 이도영,〈반신달마도〉, 견본담채 331

(도 327) 안중식,〈기룡관음도〉, 1915 331

(도 328) 加藤遠澤,〈騎龍觀音〉, 견본수묵 331

(도 329) 이도영,〈기명절지도 가리개〉, 1908, 견본담채 332

(도 330) 조석진,〈기명절지도 가리개〉, 견본채색 332

(도 331) 이도영· 김응원,〈書窓淸供〉, 1910, 지본담채 332

(도 332) 이도영·김응원〈기명절지〉, 1921년 이전 332

(도 333) 李方膚,〈분란도〉, 지본수묵 332

(도 334) 오경석,〈蹇蘭圖〉, 지본수묵 332

(도 335) 이도영,〈기명절지도〉, 1916, 견본담채 333

(도 336) 안중식,〈詩聰淸供〉, 1912, 견본담채 333

(도 337) 안중식,〈기명절지〉, 1914, 견본채색 333

(도 338) 이도영,〈기명〉, 1917 333

(도 339) 이도영,〈기명절지도〉, 1917, 지본담채 333

(도 340) 안중식,〈기명절지도〉 333

(도 341) 이도영,〈滿枝圓實〉, 1917, 지본채색 334

(도 342) 이도영,〈紫爸紅刺〉, 지본채색 334

(도 343) 이도영,〈玉堂富貴〉, 1918, 견본채색 334

(도 344) 안중식,〈금니사군자화훼10첩병풍〉, 1901년, 견본금니 334

(도 345) 이도영,〈모란도〉, 1916, 견본채색 335

(도 346) 안중식,〈모란도〉, 1908, 견본담채 335

(도 347) 이도영,〈富貴圖〉, 견본채색 335

(도 348) 周閑,〈모란도〉, 지본담채 335

(도 349) 趙之謙,〈모란도〉, 지본담채 335

(도 350) 이도영,〈수목화조도 대련〉, 지본채색 336

(도 351) 이도영,〈祀菊延季〉, 지본수묵 336

(도 352) 안중식,〈화조영모도8곡병풍〉 중 〈국화도〉, 1913, 지본담채 336

(도 353) 이도영,〈묵송도〉,〈묵죽도〉, 1917, 견본수묵 336

(도 354) 『芥子園書傳』,〈滿湘風雨〉 336

(도 355) 『點石齋叢書』,〈老龍聲出夜明珠〉 336

(도 356) 이도영,〈묵죽도〉, 1917, 지본수묵 337

(도 357) 이도영,〈묵죽도〉, 1917, 지본수묵 337

(도 358) 이도영,〈墨菊〉, 지본수묵 337

(도 359) 이도영,〈世外香盟〉, 지본수묵 337

(도 360) 이도영,〈괴석도〉, 1918, 지본수묵 338

(도 361) 안중식 외,〈사군자 합작도〉 338

(도 362) 이도영 외,〈합작도〉, 지본담채 338

(도 363) 이도영 외,〈선면 君子樂之圖〉, 견본담채 338

(도 364) 이도영 외,〈합작도 칠가묵묘〉, 지본담채 338

(도 365) 이도영,〈정물〉, 1922 339

(도 366) 이도영,〈器皿圖〉, 지본담채 339

(도 367) 이도영,〈玉堂淸品〉, 지본담채 339

(도 368) 이도영,〈기명절지도〉, 1926, 지본담채 339

(도 369) 이도영,〈기명절지도 대련〉, 1929, 견본담채 339

(도 370) 안중식,〈한일통상조약체결기념연회도〉, 1883, 지본채색 339

(도 371) 최우석,〈기명절지도 대련〉, 견본담채 340

(도 372) 이도영,〈害窓淸供〉, 견본담채 340

(도 373) 이도영,〈富貴不麗〉, 지본담채 340

(도 374) 이도영,〈기명절지〉 340

(도 375) 이한복,〈기명절지도〉, 1917, 견본채색 340

(도 376) 이도영,〈書窓淸供〉, 1923, 기명절지도, 지본담채 341

(도 377) 이도영,〈羅麗器院〉, 1930, 지본담채 341

(도 378) 이도영,〈기명절지도〉, 1926, 수묵담채 342

(도 379) 안중식,〈기명절지도8첩병풍〉중 1폭, 견본담채 342

(도 380) 이도영,〈기명절지도〉, 지본담채 342

(도 381) 이도영,〈매화도〉 342

(도 382) 이도영,〈石窟授書圖〉, 1922, 견본채색 343

(도 382-1) 이도영,〈석굴수서도〉부분 343

(도 383) 이도영,〈高士觀畫圖〉, 1925, 견본채색 343

(도 383-1) 이도영,〈고사관화도〉부분 343

(도 384) 안중식,〈閑山忠武圖〉, 1918, 견본채색 344

(도 385) 안중식, 『청춘』제4호 344

(도 386) 이도영,〈蘇東坡圖〉, 1925, 지본채색 344

(도 386-1) 이도영,〈蘇東坡圖〉의 부분 345

(도 387) 지운영,〈東坡先生笠屐圖〉, 1922, 견본담채 344

(도 388) 이도영,〈소동파도〉, 견본채색 344

(도 389) 宋代 작자미상,〈유마거사상〉 344

(도 390) 이도영,〈竹林七賢圖〉, 1927, 지본채색 345

(도 390-1) 이도영,〈竹林七賢圖〉의 부분 345

(도 391) 조석진,〈竹林七賢圖〉, 견본채색 345

(도 392) 이도영,〈李白斗酒百篇圖〉, 1928, 견본채색 346

(도 393) 이도영,〈神仙圖〉, 1932, 견본채색 346

(도 394) 조석진,〈把酒問月圖〉, 견본담채 346

(도 395) 작자미상,〈李白對月圖 초본〉, 지본수묵 346

(도 396) 이도영,〈斗酒聽廳圖〉, 1928, 견본담채 346

(도 397) 안중식,〈斗酒聽廳圖〉, 1907, 지본채색 346

(도 398) 조석진,〈高上賞春圖〉 346

(도 399) 이도영,〈樹下閑日岡〉, 1931 347

(도 400) 이도영,〈書水渡江〉, 1924, 견본담채 347

(도 401) 이도영,〈梧竹秋聲〉, 견본담채 347

(도 402) 이도영,〈吾園先生揮毫圖〉, 1929 348

(도 403) 이도영,〈책 읽는 위창선생〉, 1926, 지본수묵 348

(도 404) 이도영,〈완당선생제시도〉(부분), 1932, 지본담채 348

(도 405) 이도영,〈雅藝一年1〉, 『동명』, 1923.01.01 348

(도 406) 이도영,〈우당선생소조〉, 1928 349

(도 407) 고희동,〈진암소조〉, 1925 (도 452의 부분) 349

(도 408) 이도영, 〈壽星圖〉, 『동아일보』 1920.07.25 349

(도 409) 『동아일보』 1931.01.09 349

(도 410) 『동아일보』 1932.01.03 349

(도 411) 이도영,〈松下人勿圖〉, 1921, 지본수묵 350

(도 412) 이도영·김돈희,〈塔桐詩會圖〉, 1925, 지본담채 350

(도 413) 이도영,〈東郭觸咏圖〉, 1925, 지본담채 350

(도 414) 이도영,〈東林雅集圖〉, 1925, 지본담채 350

(도 415) 이도영,〈洗劍亭圖〉, 1925, 지본담채 351

(도 416) 고희동, 〈청계표백도〉, 1915, 견본채색 351

(도 417) 이도영〈秋林聽渥〉, 1924, 견본채색 351

(도 418) 이도영,〈物外淸淨〉, 견본채색 351

(도 419) 안중식,〈夏景山水圖〉, 견본담채 351

(도 420) 이도영,〈산수도8첩병풍〉, 견본담채 352

(도 421) 이도영,〈松鶴圖〉, 1922, 지본담채 353

(도 422) 이도영,〈松鶴圖〉, 지본채색 353

(도 423) 이도영,〈松齡鶴壽〉 353

(도 424) 이도영,〈松鶴岡〉 353

(도 425) 최우석,〈화조도병풍〉, 1930, 지본담채 353

(도 426) 이도영,〈藏雁圖〉, 1923, 견본담채 354

(도 427) 이도영,〈月盧雁飛〉, 지본담채 354

(도 428) 이도영,〈秋夜圖〉, 1922, 지본담채 354

(도 429) 장승업,〈노안도12첩병풍〉 355

(도 430) 안중식,〈달밤의 기러기〉, 견본수묵 355

(도 431) 이도영,〈藏雁圖〉, 1924, 지본담채 355

(도 432) 이도영,〈董雁圖〉(『경매된 서화』) 355

(도 433) 이도영,〈청죽도〉, 1926, 수묵담채 356

(도 434) 이도영,〈綠竹雙雀〉, 지본채색 356

(도 435) 안중식,〈화조영모도8첩병풍〉중, 1913, 지본담채 356

(도 436) 왕사신, 《花舟冊》, 지본채색 356

(도 437) 円山應擧,〈若竹ᄃ小禽圖〉, 1795 356

(도 438) 이도영,〈콩새〉, 1930 356

(도 439) 이도영,〈楓葉樓禽〉, 지본채색 356

(도 440) 이도영,〈河上초鳩圖〉 357

(도 441) 이도영,〈호도〉 357

(도 442) 이도영,〈天馬行空〉 357

(도 443) 이도영,〈봉황도〉 357

(도 444) 이도영,〈四季淸香〉, 견본담채 358

(도 445) 益頭峻南,〈四季草花〉, 견본담채 358

(도 446) 安田米備,〈名花十友圖〉 358

(도 447) 小室翠雲,〈名花十友〉(『서화백년』) 358

(도 448) 이도영 외,〈芳隣小會書書圖卷〉, 1925, 지본수묵 359

(도 449) 이도영 외,〈重香群賢圖〉, 지본담채 359

(도 450) 이도영 외,〈延壽 益康〉, 1929, 견본채색 359

(도 451) 이도영 외,〈증해파선생서화병〉, 1922, 지본수묵 359

(도 452) 이도영 외,〈산벽시사서화합벽도〉, 1925, 지본담채 360

(도 453) 안중식, 조석진, 김응원, 조중응,〈사군자 합벽〉, 견본담채 360

(도 454) 이도영 외,〈근대십오대가합작도〉, 1925, 지본담채 360

(도 455) 大沼枕山, 大槪磐溪, 福島柳圃 외, 〈花奔圖贊〉, 지본담채 361

(도 456) 河鍋曉畜, 오原晴湖, 人沼枕山,〈竹に花甁, 奇石圖〉, 견본수묵 361

(도 457) 이도영,〈묵매도〉, 1930 361

(도 458) 이도영,〈홍매도〉, 지본채색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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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貫齋 李道榮(1884~1933)은 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새로운 활동영역을 개척하고 다양한 장르의 미술활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통 서화가로서의 보수적인 성격을 고수함으로써 '중국의 화법을 모방하는 데 그친' 화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도영이 당대의 화단에서 누렸던 지위와 왕성했던 활동에 비하여 그의 書畵는 제대로 된 조명과 평가를 받지 못한 셈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삽화가 · 교육가 · 감평가 · 서화가로서의 이도영의 면모를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이도영이 20세기 초 화단에서의 차지했던 위상과 회화세계를 조명하였다.

지금까지 근대미술사 연구에서는 1920년을 기점으로 안중식과 조석진이 주도하였던 1920년대 이전과 이상범·노수현·이용우·변관식의 신진세대가 부상하는 1920년대 이후를 분절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그 중간 세대인 이도영을 구세대에 맞서 새로운 화풍을 선도하지 못한 무기력한 화가로 위치 짓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필자는 안중식으로 대표되는 전통화풍의 직접적인 계승자로서 일제강점기라는 국망기의 화단을 이끌었던 이도영이 추구하였던 것은 '일본화'와 '중국화(지나화)'에 대응할 수 있는 '조선화'의 모색이었고, 그 방법은 전통회화의 개량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또, 그동안 시사만화, 인쇄미술, 도화교과서 등의 영역에서 분절적으로 이해되어 온 이도영의 작품들과 활동에 대해서도 이 시기 새롭게 이입되고 있었던 '미술'의 개념과 '미술가'의 역할이라는 시각으로 검토해 봄으로써 그의 다양한 미술활동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도영은 안중식이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인 1901년 안중식의 문하에 입문하였다. 그는 당시 화단에서 유행하던 장승업 화풍을 비롯하여 청말 해상화파와 사왕화파의 화풍을 익히는 한편, 일본화가의 내한 및 일본회화의 유입을 통해 접하게 된 일본화풍도 수용하였다. 따라서 이도영은 장승업, 안중식으로 이어지는 전통화단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일본회화를 통해 근대적인 신감각을 소화하여 자신의 화풍을 형성해 나갔다. 또 안중식의 거처인 경묵당에는 서화가, 학자, 관료 등 당대의 다양한 인사들이 출입하였기 때문에, 이도영은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유하였고 애국계몽기 출판운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안중식 문하에서의 학습기는 이도영이 자신의 화풍을 형성하는 배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가로서 다양한 활동영역을 모색할 수 있는 요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도영의 미술활동은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면서 삽화가로서 활동하던 출판 활동기, 미술교육단체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학교에서 도화교과를 지도하던 미술교육 활동기, 각종 전람회의 운영에 참여하면서 출품작을 감평·심사하던 전람회 활동기의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도영의 출판미술 활동은 그가 국민교육회와 대한자강회 활동을 시작하는 1906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이도영은 교과서 간행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신문 삽화와 만평 제작 등 출판미술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는데, 이 시기 이도영의 활동은 1905년 을사조약에서 1910년 일제강점까지 활발하게 추진되었던 애국계몽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도영은 교과서 삽화, 『대한민보』의 신문삽화, 이해조의 『홍도화』를 비롯한 신소설의 표지화와 삽화를 제작하였다. 이도영의 삽화는 일본의 교과서 삽화를 참조 · 번안하였던 초기의 교과서 삽화에서 시작되어 『대한민보』의 삽화에 이르러 삽화의 다양한 양식을 습득해 나갔다. 신소설의 표지화도 초기에는 소설을 설명하는 기능에만 머물렀으나 점차 상징적이고 장식적인 표지화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초기 삽화가 그러했듯이 미술교과서 제작도 초기에는 일본교과서를 번안하는 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근대식 미술교육은 1910년 일제강점 이후 식민통치를 위한 일본식 교육제도의 유입이라는 시대상황과 맞물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도영이 저술한 『연필화임본』과 『모필화임본』은 일본교과서의 번안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미술교육 실정에 맞게 편제를 새롭게 갖추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풍경화와 정물화 등 서양미술 장르에 대한 이해와 적극적인 수용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도영은 1916년경에는 각종 단체활동과 교육활동을 접고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였다. 그러나 화단에서 이도영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안중식과 조석진이 잇달아 타계한 뒤인 1920년대부터이다. 이 해, 이도영은 일본을 방문하여 동경화단을 둘러보고 돌아왔으며, 귀국 후에는 곧바로 전람회의 개설과 운영에 참여하였다. 이도영은 1921년 개설된 서화협회전람회의 운영에 참여하였으며, 1922년 개설된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이도영은 전람회 출품작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전람회의 성격에 걸맞은 회화를 모색해 나갔다. 또 서화매매가 본격화되던 1930년경부터는 고서화전람회의 운영에 참여하면서 고서화 감평과 감식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고서화 전람회의 참여는 고서화에 대한 이도영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며, 전통적이고 복고적인 회화로 회귀하였던 후기회화의 성격과도 관통하는 것이다.

이도영의 회화작품은 1920년을 기준으로 이도영이 각종 사회활동을 하면서 삽화제작과 미술교육에 몰두하였던 전기와 일본에서 귀국한 뒤 전람회 활동과 작품제작에 몰두하였던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안중식과 조석진의 타계로 이도영이 전통화단의 지도자로 부상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따라서 전기의 회화에는 안중식·장승업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며, 일본회화나 도화 교과서를 통해 수용한 근대적인 감각과 서양화법이 조금씩 감지된다. 이도영은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등 다양한 화목에 걸쳐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그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화조화이다. 사실적이면서도 장식적인 공필채색 화조화에서부터 호방한 필치로 분방한 묵법을 보여주는 수묵화조화까지 다양한 그림을 통해 이도영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산수화와 기명절지화에서는 실재감있는 자연과 사실적인 경물을 묘사하고 있는 점에서 풍경화와 정물화의 영향을 보여준다.

후기에는 이도영이 서화협회 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던 1920년대 전반에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었다. 그는 이전까지의 중국적인 고사인물화와 기명절지화에서 탈피하여 조선적 소재를 다룬 역사인물화와 기명절지화를 제작하여 조선적인 회화를 모색하였다. 아울러 1920년대 후반에는 시사활동을 통해 문인적 아취에 심취하면서 아회도, 매병도 등 복고적인 회화로 회귀하면서도 새로운 조형감각을 보여주면서 회화적 성취를 이룩하였다.

이도영은 길지 않은 생애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삽화가, 만평가, 교육가, 감평가 등 다양한 영역을 개척하였고 20세기 초 근대미술을 선도하였다. 지금까지 이도영은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으면서도 전근대적인 화풍을 면치 못했다고 이해되어 왔지만, 본 연구를 통해 근대적인 삽화양식을 수용하여 전통회화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근대적이고 주체적인 '조선화'를 제시하고자 했던 이도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도영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일본을 통해 새로운 미술과 제도를 수용하되 이를 한국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그의 노력이 갖는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