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결과 내 검색

동의어 포함

목차보기

표제지

목차

논문요약 9

I. 서론 12

1. 문제제기 12

2. 선행연구 검토 21

3. 연구방법 및 논문의 구성 31

II. 이론적 분석틀 35

1. 관념과 정책의 상관성 35

1) 관념 36

2) 정책 39

3) 관념과 정책의 상호관계 41

2. 안보화론(安保化論)적 분석틀 42

III. 덩샤오핑의 위협인식과 안보관 형성 50

1. 중국근대화와 공산혁명 과정에서의 위협인식 50

1) 덩샤오핑의 성장배경과 정치역정 50

2) 반(反)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공산혁명 59

2. 문화대혁명과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위기인식 68

1) 문화대혁명의 원인과 목표 68

2) 문화대혁명과 정치·사회적 분열 79

3) 덩샤오핑의 위기인식: 문화대혁명이 남긴 상처와 영향 88

IV. 덩샤오핑의 위기 대응전략: 사회주의 강국 건설 103

1. 마오주의의 수정(修正)과 사회주의적 쇄신 103

1)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부활과 사상해방(思想解放) 103

2) 중국사회주의 현실규명과 목표설정: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108

2.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안보화 전략 116

1) 중국공산당의 전통적 안보의제(安保議題)의 견지(堅持) 117

2) 새로운 안보의제(安保議題)의 창출 135

V. 덩샤오핑의 안보화 전략: 관념과 정책 157

1. 관념, 정책, 그리고 안보화 전략 157

2. 보혁(保革) 갈등과 안보화 조치 170

3. 덩샤오핑 안보화 전략의 현재적 의미 177

VI. 결론: 요약과 함의 182

참고문헌 189

ABSTRACT 204

표목차

〈표 1〉 중국에 대한 일본의 ODA 제공액 149

〈표 2〉 중국에 ODA를 지원한 DAC 국가들의 지원 비율 150

〈표 3〉 중국경제의 GDP 규모 및 산업별 구성비 156

그림목차

〈그림 1〉 안보화론적(安保化論) 정책결정 과정 47

〈그림 2〉 덩샤오핑의 정책결정과정과 관념, 정책, 안보화의 상관성 159

초록보기

 본 논문은 덩샤오핑(鄧小平)이론을 안보화론(安保化論)에 근거하여 분석하고 그 이론의 형성배경과 현대 중국사회주의 국가목표와 대외정책에 갖는 의미와 위상을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다.

G2의 중국, 오늘의 경제대국화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거나, 1990년대 초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쓰나미와 함께 중국사회주의도 막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주의 혁명이념의 견지'와 '경제발전' 이라는 '두 요소의 균형적 추진'에 있었다. 앞선 지도자들, 마오쩌둥(毛澤東)도 화궈펑(華國鋒)도 경제발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역설했고 국가목표로 정하기도 했으나, 그 목표를 실천하지 못했다. 방법에 문제가 있었고 경직된 이념과 사상에 갇혀 정책 추진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30년의 역사에도 빈곤과 낙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주의 비전이 사라지는 현실을 국가의 위기로 판단했고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한 '두 요소의 균형적 추진'을 안보화(安保化: securitisation)를 통해 이루어냈다.

안보화는 정책결정자가 위협요인을 인식하여 정치적 이슈를 안보의제(安保議題)로 끌어올려 이를 선포하고 이것의 실행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 및 정책을 동원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긴급성의 인식,' '주요 지지자들과 대중의 용인(容認),' 그리고 '우선권 부여' 등의 구성요소를 수반하게 된다. 또한, 위협인식과 안보의 문제로 발전시키는 안보화 과정에서 정책결정자가 가진 관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덩샤오핑의 관념은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인해 자신의 조국이 위기에 처한 시기에 떠난 프랑스 유학시절부터 소련에서의 사회주의 학습, 귀국 후 22년간의 혁명전쟁을 치르면서 형성되었다. 역사적 현실에서 실천을 통해 형성된 관념은 강권주의가 지배하는 국제질서에서 외세를 막아내고 인민의 풍요를 가져다 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사회주의의 현실은 달랐다.

마오쩌둥에 의해 폐쇄적 자력갱생의 원칙 하에서 추진된 대약진운동의 실패에 이어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추진된 문화대혁명은 파괴, 부정, 분열로 치닫는 비생산적 폭력 운동에 불과했고 중국사회주의를 위기로 몰아갔다. 더욱이 후계자로 지명된 화궈펑(華國鋒) 역시 양개범시(兩個凡是)를 주창하며 마오의 사상적 착오를 계승한다고 천명하는 현실을 덩샤오핑은 좌시할 수 없었다. 덩샤오핑은 복권과 함께 경제중심의 안보화 전략으로 현실극복을 위한 제2의 혁명을 단행하였다.

덩샤오핑에게 사회주의 체제의 위기는 곧 국가 존립의 위기였다. 생산력 발전을 경시하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좌경화와 계급투쟁론 등을 위협요인으로 보았고, 위협요인의 제거와 함께 긴급하고 특별한 조치에 대한 당내 지도자그룹의 인식 공유와 대중의 용인을 이끌어내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덩샤오핑은 제11차 3중전회의에서 생산력 발전을 위해 개혁개방과 모든 수단과 방법 및 동력을 집중하는 사회주의 현대화 사업을 선포했고, 안보적 관점에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덩샤오핑이론은 당내(黨內)의 보혁(保革)간의 갈등을 넘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안보화 조치로 추진되었다. 국내외 안정과 평화를 기본 전제로 하여 추진되었기 때문에 국내적으로 사회적 안정을 저해하는 좌경화뿐만 아니라 우경화 노선에 대해서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였고 국제적으로는 평화공존5원칙에 기반 한 반(反)패권주의 등 평화적 환경 조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개방이후 발생하는 사상노선에 관한 불안요인을 제거하고 쐐기를 박는 제2의 사상해방과 개혁개방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발표가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선포되었다. 4항기본원칙을 견지하며 실천에 의해 검증된 개혁개방 정책과 사회주의 현대화 사업에 관한 안보화 전략의 강화를 선언한 것이었다. 이로써 덩샤오핑이론은 구체화되었고, 제14차 전국대표대회 당장에 삽입되어 제도화된 후 후대 지도자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