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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I. 서론 5

II. 일제강점기 안호상의 민족문제 인식과 국가사상 형성 9

1. 대종교 입교와 민족문제 인식 9

2. 해외유학과 국가관의 이론적 체계화 13

III. 해방 이후 교육활동과 '민주적 민족교육론'의 전개 21

1. 조선교육연구회 결성과 교육활동 21

2. '민주적 민족교육론'의 전개와 내용 26

IV. 문교정책을 통해 본 '민주적 민족교육론'의 실체 34

1. 학원 내 사상 통일과 학도호국대 34

2. 일민주의의 보급과 성인교육 39

V. 결론 45

참고문헌 49

국문초록 55

ABSTRACT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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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한국의 교육은 일제강점기의 교육 잔재를 청산하고자 하는 노력과 반공주의라는 기조 속에서 큰 변동 없이 전개되어왔다. 때문에 현재 한국의 교육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한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해방 직후 교육계의 활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대한민국의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했던 안호상의 '민주적 민족교육론'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의 교육이념과 교육정책의 내용 및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안호상은 해방 이후 교육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갔으며 이승만 정부에서 문교부장관을 역임하며 일민주의 이데올로그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일제강점기 지식인으로서 안호상은 국내에서의 대종교 입교를 통해 혈연을 기반으로 하는 종족적 민족의 개념을 확립했다. 또한 여타의 대종교 인사들과 교유하는 가운데, 국민대표회의의 경험을 통해 공산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생각 아래 민족의 사상통일을 꾀하고자 하였다.

이후 독일과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을 통해 안호상은 극우적인 민족주의자·국가지상주의자들을 만나고, 이들을 통해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혈연적 민족주의에 더하여 국가지상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이때 안호상이 접한 이들의 국가주의는 국가를 절대상위가치로 규정하며 개인의 가치를 국가의 하위에 위치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전쟁의 논리까지 정당화하는 성격까지 갖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일제강점기의 경험 속에서 안호상은 민족관과 국가관을 정립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또한 그의 교육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안호상은 교육을 통해 학생의 사상 통일을 기하고자 하였고, 특히 '의리의 인간'을 강조하며 국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화랑'과 같은 인물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특히 여수·순천사건 이후에는 반공적인 색채를 더욱 강하게 띄며 학도호국단이라고 하는 단체를 만들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학원 내 사상 통일을 위하여 좌익계열의 교원을 숙청하거나 학교 내 모든 단체를 해산시키고 상부기관으로서의 정부의 지휘 아래 모든 학생의 행동과 생각까지 통제하고자 하였다.

학생과 교원뿐만 아니라 안호상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이러한 사상의 통제와 통일을 기하기 위해 일민주의 보급회를 통하여 전국적으로 일민주의 보급 강연회를 실시하였으며, 성인재교육을 통해 사상의 선도를 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이승만 정부 초기의 국민통합이라는 측면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때 사상의 통일을 통한 국민통합은 그의 '민주적 민족교육론' 이후에는 '일민주의 교육론'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안호상의 '민주적 민족교육론'은 민족의 영도자 혹은 지도자의 생각을 절대시하는 것이었으며, 이때 지도자는 다름 아닌 이승만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강력한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안호상의 교육론에서 국가와 민족의 앞에서 각 개인의 개성과 사상의 자유는 몰가치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 아래에서 일본의 전쟁논리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멸사봉공'이라는 표현으로 재현되었으며, 통제와 숙청이라는 폭력적인 기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정책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듯이 일제강점기 아래 그것과도 큰 차별이 없었다.

한편, 안호상은 그의 교육론에서 '민주적'이라는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며 자신의 교육론을 '민주적 민족교육'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먼 시대적 분위기에 의한 단순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안호상은 한국의 전통에서 민주주의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렇게 정의된 그의 '민주주의관'은 이후 박정희 정부의 '한국적 민주주의'와도 유사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와 같이 안호상은 극우적인 민족주의자로서 또한 국가지상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교육정책을 전개해 나갔다. 한편으로 그는 일제강점기의 한 지식인의 생애와 경험이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지 그 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교육정책의 방향은 향후 성립되는 정권과 맞물려 큰 변화 없이 한국 교육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