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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약어 일러두기 12

국문초록 13

1. 서론 15

1.1. 문제제기와 연구목적 15

1.2. 연구사 18

1.3. 연구방법과 자료 23

2. 해방 이후 국내외의 인권담론 27

2.1. 국제연합과 세계교회협의회의 인권담론 28

2.1.1. 국제인권레짐의 형성 28

2.1.2. WCC 인권신학의 발전 35

2.2. 해방 이후 한국의 인권담론 47

2.2.1. 지배세력의 인권담론 47

2.2.2. 민간의 인권담론 53

2.2.3. 개신교회의 인권담론 58

3. 유신체제의 성립과 인권위원회의 창설 69

3.1. 유신체제의 비인권적 성립과정과 구조 69

3.2. 유신체제 성립기의 인권적 상황 75

3.2.1.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75

3.2.2. 노동자, 도시빈민 생존권 80

3.3. 유신체제 성립 직후 NCCK의 움직임 87

3.3.1. '오늘의 구원'협의회와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 87

3.3.2. 남산부활절 연합예배사건 93

3.3.3. 1973년 인권문제협의회 99

3.4. 인권위원회의 창설과 기반 구축 102

3.4.1. 인권위원회의 창설 102

3.4.2. 인권위원회 활동 기반의 구축 106

3.5. 인권위원회의 변화 113

3.5.1. 특별위원회로의 전환 113

3.5.2. 운동방향의 구체화 117

3.5.3. 운동대상의 확장 122

4. 정부의 인권탄압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대응 126

4.1. 자기방어 활동 126

4.1.1. 선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둘러싼 정부와의 성명전 126

4.1.2. SMCO 선교자금사건 133

4.1.3. 3.1 민주구국선언사건 144

4.1.4. SMCO 실무자 연행사건과 정부의 새로운 전략, 용공시비 152

4.1.5. 산업선교에 대한 탄압과 용공시비의 격화 158

4.2. 인권침해 현장에서의 실천 168

4.2.1. 언론의 자유 168

4.2.2.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 175

4.2.3. 신체의 자유 179

4.2.4. 수감자 인권문제 186

4.3. 인권신학의 정립과 확산 194

4.3.1. 인권개념의 정립 194

4.3.2. 인권신학의 확산 204

4.4. 에큐메니칼 연대 208

4.4.1. 세계교회와의 연대 208

4.4.2. 각 부문운동세력과의 연대 216

5. 유신체제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운동의 특징 221

5.1. 민주화운동을 보호하는 인권운동 221

5.2. 도전과 응전의 엮임 225

5.3. 소수의 운동 229

6. 결론 238

6.1. 요약 및 과제 238

6.2. 제언 245

참고문헌 249

Abstract 267

日文抄錄 270

표목차

표-1. 세계인권선언 조문별 내용 31

표-2. 유엔의 주요 국제인권규약 및 성명 33

표-3. 국제인권법상 인정되는 인권목록 34

표-4. 1960년대 인권옹호상 수상자 포상 이유 50

표-5. 정부와 NCCK의 인권이해 67

표-6. 긴급조치와 기본권 침해내용 73

표-7. 1970년대 반공법, 국가보안법 검거 인원 75

표-8. 1974년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사업계획 117

표-9. SMCO 선교자금사건 관련 성명서 목록 138

표-10. 월별 법률구조활동 사건수와 예산사용내역(1975-1979) 176

표-11. 월별 법률구조활동 사건명(1976-1979) 177

표-12. NCCK 주최 주요 인권관련 협의회(1974-1978) 194

표-13. 인권문제협의회 개요(1974-1977) 197

표-14. 인권위원회 생산 주요 인권성명서(1973-1978) 200

표-15. 인권위원회 주최 인권주간행사 개요(1974-1978) 205

초록보기

 해방 이후 남한의 단독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표방하면서 헌법에 인권의 보장을 명시하였지만 한국에서 인권은 상당한 기간 국가권력에 의한 침해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었다. 정부는 인권을 반공과 경제성장의 개념으로 제한하면서 그 의미를 왜곡하고 있었으며 민간의 지식인들은 개인의 권리로서의 인권보다는 민족 혹은 민중을 단위로 하는 민권을 저항적 이념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따라서 유신체제 성립 이전까지의 한국에서 인권은 저항적 운동의 담론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유신체제는 제헌헌법부터 유지해왔던 자유민주주의적 경향을 완전히 배재한 새로운 헌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인민의 인권을 더욱 광범위하고 극심하게 침해하였다. 그 결과 저항적 인권운동이 태동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세계 교회의 지원 속에서 시작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의 인권운동이었다. NCCK의 인권운동은 유신체제 성립 이후 증가하는 정부의 인권탄압에 저항한 진보적 개신교계의 반정부운동이었다. 자유주의적 경향을 가진 한국교회의 진보적 일각에서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자 정부는 이를 탄압하였다. 진보적 개신교인들이 정부에 의해 연행, 구속되는 일이 반복하여 발생하자 NCCK가 '선교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인권위원회를 창설하였다.

이후 NCCK의 인권운동은 유신정부라는 적대세력과의 '도전과 응전'의 구도 속에서 진행되었다. 초기의 인권운동은 인권의 개념을 선교의 자유에 집중하여 이해하고 있었으며 운동의 대상도 사실상 개신교인으로 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와의 대결이 지속되면서 인권운동이 다루는 인권의 범위는 정치적 자유, 민중의 생존권을 차례로 포함하면서 확장되었다. 운동의 대상 역시 비개신교인까지 포함하였다. 이와 흐름을 같이 하며 NCCK의 인권이해도 심화되었다.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구체적 현장으로서의 한국이해가 깊어졌을 뿐 아니라 인권을 주제로 성서를 연구하면서 신학적으로도 섬세해졌다.

NCCK의 인권운동은 구속된 민주화운동가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인을 선임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법률구조활동을 핵심사업으로 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NCCK는 해직 언론인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인권소식」을 발행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위해 활동하는 한편 부당한 연금과 연행을 규탄하며 '신체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수감 중인 민주화운동가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처사들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모두 진보적 성직자, 학생, 지식인, 재야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민주화운동 진영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민중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발견되지 않는다. 유신 말기에 이르면 NCCK가 노동자의 인권문제에 개입하게 되면서 민중생존권 역시 인권운동의 활동 범위에 포함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실제적인 활동의 측면에서는 직접적으로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보다 산업선교회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지식인 중심적 경향을 드러내었다.

NCCK 인권위원회는 독자적인 활동만으로는 인권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초기부터 깨닫고 다양한 관련 기관들과 연대하였으며 1978년 한국인권운동협의회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국사회의 민주화·인권 관련 단체들과의 연대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과 대조적으로 NCCK의 인권운동은 교회 내부의 폭넓은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에는 실패하였다. 진보적 개신교 진영이 요구한 정치적 각성으로서의 교회 갱신이 교회 일반에 특히 보수적 진영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데다가 진보적 진영 역시 폭 넓은 교회의 참여를 수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배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