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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논문개요 7
I. 머리말 9
II. 현모양처 사상의 유입과 여성관의 변화 16
A. 근대 이전 부처모의 삼도 16
1. 며느리의 도리 부도 16
2. 아내의 도리 처도 20
3. 어머니의 도리 모도 24
B. 근대 이행기 현모양처 사상의 등장 29
1. '현모양처' 용어의 등장 29
2. 현모양처 개념의 논의 32
III. 근대 가족 제도와 현모양처 담론 36
A. 가족 제도의 가치 변화 36
1. 근대가족 개념의 대두와 가정의 탄생 36
2. 근대가족 개념의 수용 41
B. 현모양처 담론의 변화 45
1. 문명화된 어머니 45
2. 가정 내 내선동화의 구심점 50
3. 신가정의 운영자 56
4. 충량지순한 황국여성 61
IV. 국민을 양성하는 현모의 재현 68
A. '국민의 어머니'로 기대된 현모 69
1. 모자상 70
2. 모녀상 75
B. 현명한 양육자로 기대된 현모 79
1. '어린이'의 발견과 모성 담론의 형성 79
2. 모성의 강화 84
C. 시국에 부응한 군국의 어머니 87
1. '제이국민'을 육성하는 전시 모성 88
2. 대리 모성 93
V. 신가정의 안주인 양처의 재현 95
A. 일부일처의 구성 96
1. 자유연애와 혼인 96
2. 부부 중심의 신가정 106
3. 매력 있는 '애처'의 조건 110
B. 양처의 직무 114
1. 남편의 내조자 114
2. 가정 살림의 책임자 123
3. 성별 역할 분업의 강화 128
C. 시국에 부응한 군국의 아내 132
1. 근검절약하는 아내 133
2. 노동하는 아내 136
3. 황군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아내 139
VI. 맺음말 147
참고문헌 152
도판 175
ABSTRACT 196
본 논문은 한국 근대 시각문화에 투영된 현모양처 이미지에 주목하여 현모양처 담론과 이미지의 전개 양상을 심층적으로 고찰했다.
근대가족 개념이 일본을 통해 유입된 1900년대 초부터 일제 강점기 전 기간에 걸쳐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대두한 현모양처 사상은 서구에서 18세기경, 산업 자본주의에 의한 근대가족의 형성과 공사 영역의 분리로 형성된 근대사상이다. 이것은 일본에서 근대화 계획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일본의 식민지 상태로 근대를 경험한 한국도 자의 반 타의 반 받아들이게 되었다.
근대 이전 봉건적 가족질서에서 시부모와 남편에 대해 敬順의 도덕규범을 실천하고 '봉제사 접빈객'을 주관하며, 가문의 대를 잇는 傳宗接代의 의무를 다해야 했던 여성은 근대기 국민국가가 성립, 정착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직무와 태도를 요구받는다. 여성에게 차세대 국민을 양성하고, 국가 통치의 기초 단위로 구획된 가정을 맡아 꾸려가는 현모양처의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이것은 여성이 가문의 일원에서 국가의 국민으로 호명되었음을 의미한다.
현모양처에게 기대된 태도와 직무는 국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문명화된 어머니', '가정 내 내선동화의 구심점', '신가정의 운영자', '忠良至醇한 황국여성'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일본의 지배와 문화통합의 조류 속에서 근대의 생활 규범은 물론, 여성의 역할과 태도도 일본 여성을 닮아가도록 촉구된 것이다.
현모양처는 시각문화에서도 중요한 제재로 자리 잡았고, 근대기 여성 인물상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국민을 양성하는 현모의 이미지는 '국민의 어머니'와 현명한 양육자, 시국에 부응한 군국의 어머니로 재현되었다. 또한, 신가정의 안주인으로 자리 잡은 양처의 이미지는 일부일처를 구성하는 존재로서 남편의 내조자, 가정살림의 책임자, 시국에 부응한 군국의 아내로 형상화되었다. 이렇게 현모양처를 재현한 이미지는 여성이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짊어진 심리적, 육체적 책임과 의무를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물론, 당대 사회가 요구한 여성상을 형성하고 여성으로 하여금 현모양처 사상을 내면화하도록 유도했다.
근대기 '현모양처' 이미지는 가정이 근대가족의 안식처로 주목받고 이상적인 가정생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시기에 제작된 여성 이미지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스위트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사회적으로 무력화되는 양상도 발견되는데, 이는 현모양처의 직무와 가정이라는 공간이 여성에게 또 다른 억압과 구속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현모양처가 생각보다 많은 일을 담당하며 가정과 사회, 국가가 유지되는데 큰 힘을 보탠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유지되고 고착되는 데 일조하고, 여성의 역할이 가부장 중심의 가족 제도와 가족과 모성의 틀에서만 허용되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모양처가 수행한 임무와 책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회·문화적으로 강요된 여성의 희생을 대변하거나, 다양한 역할을 전담하며 능동적으로 활동한 여성의 모습을 담는 등 현모양처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현모양처 이미지가 부자 중심의 가족 윤리가 부부 중심의 가족 윤리로 전환된 근대가족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여성이 근대국가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각 자료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간 현모양처 이론에 관한 연구는 역사학, 사회학, 국문학, 여성학, 언론학, 가정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어 왔지만 미술사학적 관점에서 '현모양처' 이미지는 심도 있게 분석되지 못한 실정이었다. 여기에 본 논문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향후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현모양처 이미지의 시각 문화적 의미를 함께 고찰하여 현모양처 담론의 층위를 밝히고, 회화사 이해의 폭을 넓히는 연구로 발전시키고자 한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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