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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논문요약 6

제1장 서론 8

1. 연구목적 8

2. 연구 범위와 방법 11

제2장 강진 유배와 다산학단(茶山學團)의 형성 13

1. 사의재(四宜齋) 제자 16

2. 다산초당(茶山草堂) 제자 22

3. 전등계(傳燈契) 제자 24

제3장 다산(茶山)과 전등계(傳燈契) 제자 26

1. 만덕사(萬德寺) 승려 26

2. 대둔사(大芚寺) 승려 48

제4장 다산가(茶山家)와 제자들 간의 유불(儒佛) 교유 68

1. 다산가와 승려들의 다교(茶交) 68

2. 다신계(茶信契) 제자와 전등계(傳燈契) 제자들의 교유 75

제5장 결론 82

參考文獻 85

Abstract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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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후기 실학자이며 차인인 다산이 강진 유배지에서 형성했던 다산학단중에 승려들과 맺었던 전등계(傳燈契) 제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과 다산이 남긴 증언 및 시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다산의 방외(方外)제자들은 대부분 연담의 제자이며 만덕사와 대둔사의 승려들로 구성되었다는 특징을 보인다. 다산의 전등계(傳燈契) 형성은 다산이 아암과 만난 이후에 그의 문도들과 대둔사의 승려들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아암은 다산이 사의재 시절 거처를 보은산방으로 옮겨 주었고 차도 공급해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다산을 도와주었다. 이들은 다산에게서 『주역(周易)』이나 『시학(詩學)』, 학문적인 방법론, 역사관 등에 대해서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다산의 영향은 그가 해배된 후에도 해남의 대둔사를 중심으로 한 유불(儒佛)의 종유(從遊)가 이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아울러 다산의 자제들과 전등계(傳燈契) 제자들의 대를 이은 교유를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본 논문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외에 『동사열전(東師列傳)』, 『금당기주(琴堂記珠)』, 『백열록(柏悅錄)』, 『매옥서궤(梅屋書궤)』, 『초의선사전집(草衣禪師全集)』, 『유산일문첩(酉山一門帖)』, 『가연유사(迦蓮幽詞)』 등 원전자료와 한국고전번역원의 고전데이타를 참조하여 다산의 전등계(傳燈契) 제자에 대한 연구를 개진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첫째, 다산의 강진 유배 시기에 형성된 방외(方外)의 학연을 맺은 제자로는 다신계(茶信契)에 수록된 수룡(袖龍, 1777~1846)과 철경(철鯨 ?) 이외에, 다산과 학연을 맺었던 승려 제자들이다. 이들 중에는 아암(兒庵. 1772~1811)과 기어(騎魚, ?)와 철선(鐵船, 1791~1858)을 비롯하여 호의(縞衣, 1778~1868), 초의(草衣, 1786~1866) 뿐만 아니라 다산이 보은산방에 머물 때에 『예학(禮學)』과 『주역(周易)』을 배웠던 만덕사의 승려들까지 범위를 확대해 볼 수 있다.

둘째, 다산은 주로 증언(贈言)과 서간첩을 통해 전등계(傳燈契) 제자들을 강학하면서 이들의 학문적 식견과 공부의 자세를 강조하였다. 또한 다산은 『대둔사지(大芚寺志)』와 『만덕사지(萬德寺志)』 그리고 『만일암지(挽日菴志)』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전등계(傳燈契) 제자들에게 고증을 통한 객관적인 역사의 서술방법과 역사관의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셋째, 다산의 유배시절 전등계(傳燈契) 제자들로 교유가 확대되었는데 이들의 교유에는 차가 중요한 매개물 이었다는 특징을 보인다.

넷째, 다산이 해배되어 강진을 떠난 후에도 해남 대둔사를 중심으로 다산학단을 이루었던 유생들과 승려들이 함께 시회를 여는 등 유불 종유가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다산이 강진 유배시절 신분을 초월하여 승려들과 학연을 맺었던 것에서 영향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