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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국문초록 5

ABSTRACT 8

I. 서론 12

1. 연구의 목적 12

2. 선행 연구의 검토 15

3. 연구의 범위 및 방법 18

II. 近·現代 茶文化의 형성배경과 전개 22

1. 近·現代 茶文化의 배경 22

1) 茶山 丁若鏞의 차와 愛民精神 22

2) 草衣 意恂의 차와 中正哲學 35

2. 近·現代 茶文化의 양상과 전개 49

1) 일제강점기 차문화의 전개 49

2) 현대 차문화의 양상 52

III. 湖岩 文一平의 「茶故事」와 차문화관 57

1. 호암 문일평의 생애와 문화관 57

2. 「茶故事」의 차문화사적 위치 62

3. 호암의 '朝鮮心'과 茶心 72

IV. 曉堂 崔凡述의 茶道無門精神 78

1. 효당의 생애와 차생활 78

2. 효당의 차생활 대중화운동 84

3. 효당의 茶道無門精神 89

V. 亞人 朴鐘漢의 五性茶道論 98

1. 아인의 삶과 교육 98

2. 아인의 차문화 부흥운동 107

3. 아인의 다도정신 117

VI. 근·현대 한국 차인의 차문화의식 131

1. 차문화를 통한 민족의식의 함양 131

2. 차교육을 통한 자주의식의 고양 145

3.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룬 차문화의식 158

VII. 結論 166

참고문헌 170

부록 183

초록보기

 차는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약용, 식용, 음용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한편 차를 마시는 일은 단순하게 음료를 마시는 일이 아닌 道의 차원으로 여겨지면서 인격을 수련하고 선의 경지에 이르는 또 하나의 길인 茶道로 그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따라서 차와 사람의 만남인 차문화는 인류 전반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며 존재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차문화는 긴 역사를 자랑한다. 차문화의 특징은 사람과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왕실과 귀족, 승려와 선비, 그리고 일반 백성 등 다양한 계층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차를 마시고 즐기며 차를 통해 위로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차는 다양한 문화와 시대정신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차는 하나의 문화이므로 사람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문화의 과제가 민족문화의 수립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근 · 현대를 살아간 차인들의 차문화의식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근 · 현대의 차인들에 주목한 이유는 그들이 살다간 시대의 특수성 때문이다. 차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일제강점기와 해방의 시기는 우리의 전통 차문화와 일본차문화의 충돌과 모순으로 점철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시련 속에서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의 차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하는 차인들의 노력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차는 신라시대에 도입된 이래 다양한 변화와 굴곡을 견디면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다. 18세기에 이르러 茶山(丁若鏞, 1762-1836)은 차를 통해 愛民精神을 발현했고, 草衣(意恂, 1786-1866)는 우리나라 차의 우수성을 찾아내고, '中正'이라는 차의 哲學을 통하여 일상에서의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근대는 사회 전반에 걸쳐 전환과 격동의 시대였다. 차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미약하게나마 유지해오던 한국 차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위기에 처했고, 일제는 일본식 다도 교육을 통해 그들 문화의 우월성을 인식시킴으로써 일본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영향으로 일부에서는 일본식다도를 우리의 전통다도라고 여기는 경향이 남아있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차문화를 굳건히 지켜온 여러 차인들이 있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차가 광복 이후 다시 우리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것은 시대와 상황을 직시하고 어려운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긍지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차생활운동을 전개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湖岩(文一平, 1888-1939), 曉堂(崔凡述, 1904-1979), 亞人(朴鐘漢, 1925-2012) 등이 본 연구의 대상이다. 이들은 일제하에서 좌절과 상실감으로 지치고 상처받은 백성들을 일으켜 세우고 영혼과 정신을 치유하는 방편으로 차문화에서 그 길을 찾았다.

호암은 언론인이며 사학자이다. 한국역사의 우수성과 '조선심'을 강조하여 우리 민족의식의 우월성을 알리고자 했다. 그의 업적 중에서 차와 관련하여 돋보이는 것은「茶故事」의 저술이다. 그는 이「茶故事」를 통해서 우리의 전통문화인 차문화를 발굴 · 계승하고 한국차의 우수성을 알렸다. 또한 우리 차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전통과 다도라는 개념을 파악하여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의「茶故事」에는 차문화를 통하여 조선심을 드러내려는 보이지 않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 차문화사 전반을 살펴볼 때 호암은 한국차의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며, 우리의 차문화 역사를 알림으로써 민족의 긍지를 높이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효당은 한국의 현대 차문화를 중흥시킨 차인이다. 그는『韓國의 茶道』라는 저술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도의 대중화를 선도하였다. 다솔사에서의 차생활은 그가 차문화의식을 대중화하는 접점의 장소였다. 차문화의 불모지였던 당시, 한국 전통차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기여할 많은 지도자를 육성하여 차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의 차문화의식은 '茶道無門정신'으로 요약된다. 효당은 이를 통하여 차의 본질을 和로 규정하고, 茶道가 평화로 가는 길임을 역설하였다. 효당은 그 和의 연원을 원효에게서 찾았으며, 원효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효당이라 자칭할 정도였다.

아인은 민족의식 함양에 노력한 교육자이자 조형의식과 다도를 미학의 세계로 끌어올린 뛰어난 차인이었으며 도예인이었다. 그는 오민교육이라는 전인교육 체계를 창안하여 민족교육, 충혼교육을 실현하여 사회의 우수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에 노력하였다. 아인은 五性茶道 교육과 敬義情 茶道정신을 통해서 자라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서안정 및 인성교육을 실천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학교에서 茶道교육을 실시하였다. 아인은 우리 차문화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통하여 茶道교육을 민족교육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아인은 차문화 부흥운동을 통해 대중적인 茶道를 선도했다.

이상과 같이 근 · 현대 한국의 차인들은 모두 우리의 차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남달랐던 인물들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참담한 시대를 산 그들은 조국의 독립이라는 역사적 사명의 부름에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근 · 현대 한국의 차인들은 차문화를 통해서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차 교육으로 우리 자주의식을 고양하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 내재하고 있는 삶에 근거한 유구하고 심원한 민족의 전통에서 문화를 재창조하여 우수한 우리의 민족성을 자각시켰다. 그러나 차문화관에 있어서는 태도와 방법을 달리했다. 그들은 일본의 다도를 피하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여 그들 나름대로 수용하고 재해석하여 한국인다운 참된 차문화를 회복하려고 했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우리의 차문화를 재창조하여 한민족으로서의 자존감을 세우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문화적인 독립도 중요하여 우리의 차문화를 수립하고 그것을 보급하려고 노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