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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국문 초록
목차
I. 서론 7
II. 모델 마이너리티의 문화번역 18
1. 북한과의 연결 통로 18
2. 모델 마이너리티의 초상: 한슈라 30
3. 한인 정체성 및 동양적 모티프의 활용 37
III. 소련의 인종, 민족 프로파간다와 세계시민주의 44
1. 세계시민주의의 이상 44
2. 흑인 초상화 47
3. 푸슈킨 축제 59
VI. 1980년대의 변화 65
1. 해외여행과 서양미술 전통의 활용 65
2. 어머니와 북한 작품들 73
V. 결론 80
참고문헌 83
도판 97
Abstract 122
도1. 변월룡, 〈조선의 어부들〉, 1947. 작품 유실. 좌) 덕수궁 전시 영상 캡쳐,... 97
도2. 변월룡, 〈1946년 청진항에서 소련해군 마중〉, 1949. 캔버스에 유채,... 97
도3. 변월룡, 〈북한에서〉, 1951-1955, 캔버스에 유채, 150x250cm, 유족 소장 97
도4. 변월룡, 〈조선인 학생〉, 1953.... 97
도5. 세묜 추이코프, 〈소비에트 키르기지아의 딸〉,... 97
도6. 변월룡, 〈평양 대동문〉,1953. 캔버스에 유채, 29x47cm, 유족 소장 98
도7. 변월룡, 〈금강산 풍경〉, 1953. 캔버스에 유채, 37x95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98
도8. 변월룡, 〈평양 재건〉, 1953. 캔버스에 유채, 36x55.7cm, 유족 소장 98
도9. 변월룡, 〈판문점에서의 북한포로 송환〉, 1953. 캔버스에 유채, 51.5x71cm, 국립현대미술관 98
도10. 변월룡, 〈북조선 풍경(백마산성)〉, 1953. 캔버스에... 98
도11. 변월룡, 〈개성 선죽교〉, 1953. 캔버스에 유채, 36x55cm, 유족 소장 98
도12. 변월룡, 〈인민배우 박영신〉, 1954. 캔버스에 유채, 78x60cm, 유족 소장 99
도13. 변월룡, 〈조류학자 원홍구〉, 1954. 캔버스에 유채, 79x59cm, 유족 소장 99
도14. 변월룡, 〈무용가 최승희〉, 1954. 캔버스에 유채, 118x84cm, 유족 소장 99
도15. 변월룡, 〈근원 김용준 초상〉, 1953. 캔버스에 유채, 51x70.5cm, 유족 소장 99
도16. 변월룡, 〈간부회에서, 김일성〉. 1954. 종이에 연필, 26.5x38.3cm, 유... 99
도17. 변월룡, 〈노어 학습〉, 1959. 에칭, 64.8x39.2cm, 유족 소장 100
도18. 변월룡, 〈해방 기념일: 1945년 8월 15일 평양〉, 1958. 에칭, 59.5x49.5cm, 유족 소장 100
도19. 변월룡, 〈협동가축농장〉, 1958, 에칭, 59x39cm, 유족 소장 100
도20. 변월룡, 〈개성의 인삼 농장〉, 1958-9. 에칭, 32x49cm, 유족 소장 100
도21. 변월룡, 〈재일한인 북송〉, 1960. 에칭, 34.5x64cm. 101
도22. 1959년 12월 14일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에 사용된 선박 101
도23. 변월룡, 〈사회주의 노동영웅 한슈라〉, 1969. 캔버스에 유채, 200x115cm,... 101
도24. 변월룡, 〈조선의 모내기〉, 1955. 캔버스에 유채, 115x200cm, 유족 소장 101
도25. 변월룡, 〈평양 해방 기념일〉, 1957. 캔버스에 유채, 180x305cm, 작품 소재 불명 102
도26. 변월룡, 〈북한 해방〉, 1959. 캔버스에 유채, 220x365cm, 작품 소재 불명 102
도27. 렘 니콜라예비치 에르몰린(Рем Николаевич Ермолин), 〈발렌틴... 102
도28. 변월룡, 〈어머니〉, 1938. 캔버스에 유채, 38.5x30.5cm, 유족 소장 102
도29. 변월룡, 〈자화상〉, 1963. 캔버스에 유채, 75x60cm, 유족 소장 102
도30. 변월룡, 〈한슈라 스케치(얼굴)〉, 1968, 종이에 목탄, 64x50.5cm, 유족 소장 103
도31. 변월룡, 〈한슈라 스케치(상반신)〉, 1968. 종이에 목탄, 연필. 64.5x50cm, 유족 소장 103
도32. 변월룡, 〈한슈라 스케치(상반신)〉, 1969. 종이에 목탄, 65x50cm, 유족 소장 103
도33. 보리스 게라시모비치 샤흐나자로프, 〈사회주의 노동영웅 알렉산드라 스테파노브나 한... 103
도34. 변월룡, 〈K.M.메라비쉬빌리〉, 1970. 석판화, 75.5x53.5cm, 유족 소장 104
도35. 변월룡, 〈V.V.아쉬크〉, 1972. 석판화, 54.5x51cm, 유족 소장 104
도36. 변월룡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연하장. 왼쪽부터 이팔찬(1960),... 104
도37. 변월룡, 〈조각가 보리스 플료킨의 초상〉,... 104
도38. 정종여, 〈양시의 봄 병아리〉, 1954. 화선... 104
도39. 정종여, 〈춘설〉, 1957, 화선지에 수묵담채, 크기... 105
도40. 김용준, 〈진달래꽃〉. 연도, 크기 미상. 105
도41. 변월룡, 〈갈리나 소코토브의 초상〉, 1970. 석판화,... 105
도42. 변월룡, 〈바쿠에서 온처녀 레이라의 초상〉, 1973.... 105
도43. 변월룡, 〈레베제바 아주머니 초상〉,... 105
도44. 변월룡, 〈레베제브 선생 초상〉, ... 105
도45. 변월룡, 〈오스묘르킨 선생〉, 1977. 에칭, 65x49cm, 유족 소장 106
도46. 변월룡, 〈국화를 그리는 정종여〉, 1954. 종이에 연필, 35x20cm, 유족 소장 106
도47. 변월룡,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박 선생〉, 1953. 종이에 연필,... 106
도48. 변월룡, 〈동경 학생〉, 에칭, 1975. 65x49.5cm, 유족 소장 106
도49. 변월룡 동양화 습작 106
도50. 변월룡, 〈우리 시대의 사람들〉, 1969. 에칭, 53.3x84.3cm, 유족 소장 107
도51. 변월룡, 〈사모트라케의 니케〉, 1971, 캔버스에 유채,... 107
도52. 변월룡,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1968, 리놀륨 판화(linocut). 크기 및 소장처 미확인 107
도53. 변월룡, 〈레닌께서 우리 마을에 오셨다〉, 1964, 에칭,... 107
도54. 변월룡, 〈토고인 학생 라이몬드 델라케나〉, 1974. 캔버스에 유채, 110x65cm, 유족... 108
도55. 변월룡, 〈라이몬드 델라케나〉, 1977. 캔버스에 유채, 80x70cm, 유족 소장 108
도56. 변월룡, 〈예멘인 학생〉, 1977. 캔... 108
도57. 변월룡, 〈식민주의 족쇄를 끊어버려라〉, 1945. 종이에 과슈,... 108
도58. 아프리카에서의 유럽 식민주의 종식을 축하하는소비에트 만평. 잡지 『악어』, 1960. 크기 미확인 109
도59. 코레츠키(Koretsky), 〈아프리카는 싸운다, 아프리카는 승리할 것이다〉, 1981. 크기 및 소장처 미확인 109
도60. 코레츠키(V. B. Koretsky), 〈반파시즘 전사들... 109
도61. 테레셴코(N. I. Tereschenko), 〈침략자를 멈춰라〉, 1958. 다색 석판화. 86.7x56.9cm, 세르고 그리고리안... 109
도62. 코레츠키(V. B. Koretsky), 〈5월 1일 만세〉. 1956. 오프셋 프... 109
도63. 작자 미상, 〈3월 8일(세계 여성의 날)〉, 1961. 크기 미확인, 세르고 그리고리안 컬렉션 110
도64. 작자 미상, 〈세상의 평화는 우리의 행복!〉, 1961. 크기 미확인, 세르고 그리고리안 컬렉션 110
도65. 발렌틴 폴랴코프(Valentin Polyakov), 이고르 라도만(Igor... 110
도66. 세묜 추이코프, 〈캘커타의..관. 110
도67. 세묜 추이코프, 〈인도의 쿨... 110
도68. 드미트리 오보즈넨코(Dmitri Oboznenko), 야로슬라프 세로프... 111
도69. 에릭 불라토프, 〈샘에서〉, 1957. 캔버스에 유채, 128x100cm, 개인 소장 111
도70. 콘스탄틴 마콥스키, 〈흑인(아랍) 소년〉, 1876. 캔버스에 유채, 63x47cm,... 111
도71. 변월룡, 〈사브키노 산의 푸시킨〉, 에칭, 1975, 크기 및 소장처 미확인. 111
도72. 변월룡, 〈미하일롭스코예 마을의 시 축제〉, 에칭, 1975. 65x49.5cm, 유족 소장 112
도73. 뱌체슬라프 마리우폴스키, 〈개척자들 중의 지도자〉, 1949. 캔버스에 유... 112
도74. 겔리 코르졔프, 〈전쟁의 나날들〉.... 112
도75. 변월룡, 〈스톡홀름〉, 1967, 종이에 마카펜, 50x32cm, 유족 소장 113
도76. 변월룡, 〈프라하 카렐 다리 위에서〉, 1972, 합판에 유채, 25x36.5cm, 유족 소장 113
도77. 변월룡, 〈이스탄불의 택시 운전사〉, 1961, 유족 소장 113
도78. 변월룡, 〈자유와 통일을 위한 투쟁속의 남한 시리즈〉, 1961-62, 개별 작품... 114
도79. 변월룡, 〈조선 분단의 비극〉, 1962. 에칭, 44x64.5cm, 유족 소장 114
도80. 변월룡, 〈남조선의 기근〉, 1962. 에칭, 65x49.5cm, 유족 소장 114
도81. 변월룡, 〈베트남〉, 1968. 에칭, 42.5x64.5cm, 유족 소장 114
도82. 변월룡, 〈시위 행진〉, 1982. 에칭, 24.5x41cm, 유족 소장 115
도83. 반핵무기 시위 행진, 영국 옥스퍼드. 1980 115
도84. 변월룡, 〈겐트 거리에서〉, 1980. 에칭, 24.7x41cm, 유족 소장 115
도85. 성 바보 성당과 제단화(Hubert and Jan van Eyck, Ghent Altarpiece,... 115
도86. 변월룡, 〈몽마르트르에서〉, 1980/83. 에칭, 24.7x41.2cm, 유족 소장 115
도87. 좌)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성모자상〉, 1950 - 1951. 석판화... 115
도88. 변월룡, 〈루브르박물관에서〉, 1982. 에칭, 24.8x40.7cm, 유족 소장 116
도89.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 28일, 1830. 캔... 116
도90. 변월룡, 〈레닌그라드 밤 풍경〉, 1968. 에칭, 63.5x49.5cm, 유... 116
도91. 변월룡,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들 사이의 V.I.레닌〉, 1969. 에칭, 54x83.7cm, 유족 소장 116
도92. 변월룡, 〈네브카 강변〉, 1965. 에칭, 49.2x90.2cm, 유족 소장 116
도93. 변월룡, 〈콘서트에서, 진타리〉, 1975. 종이에 목탄, 49x63cm, 유족 소장 116
도94. 변월룡, 〈화가 A.V. 슈미트〉, 1986, 캔버스에 유채, 80x70cm, 유족 소장 117
도95. 엘 그레코, 〈라오콘〉, c.1610-14. 137.5x172.5cm,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117
도96. 변월룡, 〈안무가 블라딜렌 세묘노프의 초상〉, 1970-71. 캔버스에 유... 117
도97. 에드가 드가, 〈발레〉. 1876-77. 모노타입에 파스텔, 58.4x42.0 cm. 오르세 미... 117
도98. 변월룡, 〈포르투갈 세탁부〉, 1982. 에칭, 24.6x41cm, 유족 소장 118
도99. 밀레, 〈이삭 줍기 The Gleaners〉, 1855-56. 에칭, 19.1x25.4 cm, 메트로폴리탄... 118
도100. 밀레, 〈씨 뿌리는 사람 The Sower〉, c.1865. 캔버스에 유채, 101.6x82.6 cm.... 118
도101. 고야, 《전쟁의 참상》 시리즈, 1810-20. 118
도102. 변월룡, 〈어머니〉, 1985. 캔버스에 유채, 119.5x72cm, 유족 소장 119
도103. 변월룡, 〈그곳의 기념비(다라니 석당)〉, 1984. 캔버스에 유채, 80x90cm,... 119
도104. 변월룡, 〈가족〉, 1986. 캔버스에 유채, 68x134cm, 유족 소장 119
도105. 변월룡, 〈북한의 농부〉, 1954. 캔버스 천을 씌운 카르통에 유채,... 119
도106. 변월룡, 〈금강산의 소나무〉, 1987. 캔버스에 유채, 72x129.5cm, 유족 소장 120
도107. 변월룡, 〈담뱃대를 들고 독서하는 노인〉, 1987. 캔버스에 유채, 45x59.5cm,... 120
도108. 변월룡, 〈타슈켄트의 김일〉, 1974. 종이에 목탄, 65x50cm, 유... 120
도109. 변월룡, 〈타슈켄트의 화가 니콜라이 박(박성룡)〉, 1969. 종이에 목탄,... 120
도110. 변월룡, 〈소나무〉, 1962. 에칭, 49x34.5cm, 유족 소장 120
도111. 변월룡, 〈나홋카 가는 길〉, 1961. 에칭, 44.5x65cm, 유족 소장 121
도112. 변월룡, 〈나홋카에서〉, 1961. 에칭, 49.5cmx64.5cm, 유족 소장 121
도113. 변월룡, 〈극동공장(에튀드)〉, 1961. 패널에 유채, 50x70cm, 유족... 121
도114. 변월룡, 〈극동공장 돌격작업반원 사벨랴 마쉬코브스키〉,... 121
도115. 변월룡, 〈연해주 건설〉, 1962. 에칭, 64.5x44cm, 유족 소장 121
변월룡(Pen Varlen, 1916-1990)은 한국계 소련인 화가로, 1940-80년대에 레닌그라드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활동하였다. 변월룡의 작품세계는 이주로 인해 다면화된 그의 정체성과 소련에서의 삶을 개척하기 위한 그의 전략을 반영한다. 그는 레닌그라드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자 한인 사회와 소련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소련의 이데올로기 및 동시대 정책에 부합하는 세계시민주의를 추구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변월룡이 한인이라는 점이 강조된 데 비해 소련에 동화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상당 부분 간과되었다. 필자는 변월룡에게 한인으로서의 자의식이 남아있었음을 인정하되,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고국에 대한 향수와 결부시키는 기존 해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변월룡은 연해주 한인 마을에서 태어났으나 1937년 강제이주 대신 유학길에 올랐으며, 러시아 대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마치고 소련 엘리트 사회에 진입하였다. 그는 학업을 지속하여 모교인 레닌그라드 미술아카데미에서 교수로 활동하였다. 변월룡은 1953년 전후 북한 미술계의 재건 및 소련 미술 제도의 전수를 목적으로 평양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1954년 소련으로 돌아온 이후 변월룡은 '민족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두 번 다시 북한 땅을 밟지 못하였다. 그는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를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한인 사회와의 접촉과 분리를 거듭하며 그의 정체성은 복잡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변월룡은 민족과 국적의 불일치로 인해 한인 집단과 러시아인 집단 양쪽에서 주변적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가 소련 중심부에 자리 잡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변월룡은 우선 한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소련의 국가 이데올로기에 충성하는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 시민의 역할을 자처하였다. 그 일환으로 변월룡은 〈노어 학습〉(1958), 〈재일 한인 북송〉(1960)과 같이 북한 테마의 작품을 제작하고 한글 텍스트를 사용하였다. 한편, 사할린 한인으로서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받은 한슈라의 대형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소련 내 모델 마이너리티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 밖에 변월룡이 소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민족적 배경을 활용한 사례로는 동양화적 요소를 차용한 1970년대의 판화들이 있다.
1970년대는 국제정세의 변화가 변월룡의 개인적 관심사와 맞물려 세계시민주의적 작품들이 제작된 시기이다. 1970-75년간 절정을 이룬 미소 데탕트 시기, 소련은 '평화로운 공존'의 슬로건을 내걸고 제3세계로의 세력권 확장을 시도하였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1969-1973)에는 레닌 시기에 구축된 국제주의적 이상과 러시아 문화가 세계를 포섭한다는 70년대 소련의 야망이 결합되어 있다. 소련의 이러한 태도는 변월룡의 입장에서도 옹호할 만한 것이었다. 변월룡이 거주하는 러시아의 문화가 세계 각지의 민족들을 아우른다면 그 자신도 무소속의 떠돌이가 아니라 '세계 시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변월룡이 제작한 흑인 이미지에서도 소련의 정치적 요구와 세계시민주의적 발상의 결합이 드러난다.
변월룡의 1980년대 작품에서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눈에 띈다. 첫째는 해외여행에서 영감을 받거나 서양미술 전통과의 접점을 강조하는 작품들, 둘째는 20여 년 만에 재부상한 북한 테마 및 〈어머니〉(1985)이다. 1980년대의 해외여행 작품들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완화됨에 따라 변월룡도 프로파간다보다는 예술 창작에 몰두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변월룡은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년기 및 북한 방문기를 회상하는 작품들을 다수 제작하였다. 이전까지 그는 자신의 한인 정체성을 제한적으로만 드러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완화된 사회적 분위기, 세계시민주의적 태도, 아카데미 정교수라는 그의 지위 등이 맞물려 변월룡은 한인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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