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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 포함
표제지 1
목차 4
국문초록 12
제1장 머리말 15
제2장 백자도의 연원과 한국적 수용 22
1절 중국 동자그림의 전통 23
2절 백자도의 한국적 수용 32
제3장 백자도 전래(傳來)의 기록-유득공의 「맹영광백동도가」 46
1절 맹영광과 그의 그림에 대한 조선 지식인 계층의 인식 48
2절 〈맹영광백동도〉의 성격-우의적 풍자화 혹은 감계화 55
3절 〈맹영광백동도〉의 추정 도상 62
제4장 조선 백자도 도상의 성립과 유형별 검토 78
1절 초기 도상 '제1형식' 의 성립과 특징 80
2절 과도적 도상 '제2형식' 의 성립과 특징 83
3절 전형적 도상 '제3형식' 의 성립과 특징 94
4절 궁중가례용 병풍 '제4형식' 의 성립과 특징 104
5절 조선 백자도 도상의 영향과 파급 113
제5장 조선백자도의 기능과 용도 120
1절 혼례 및 연향용 병풍-궁중장식화 121
2절 길상과 액막이-세화와 절기그림 126
3절 백자도의 또 다른 기능-풍자와 감계 135
제6장 전형(典型)과 변용(變容)-민화백자도 142
1절 백자도의 구조-놀이와 길상적 소재 144
2절 민화 백자도 도상의 성격과 특징 159
3절 민화 백자도의 또 다른 모습들 169
제7장 맺음말 178
참고문헌 184
Abstract 191
(도1) 傳 周功, 〈麟趾圖〉, 부분, 唐, 견본채색, 36.7×328cm 24
(도2) 傳 周功, 〈麟趾圖〉, 부분, 唐, 견본채색, 36.7×328cm 24
(도3) 傳 소한신, 〈백자유희도〉, 부분, 宋, 견본채색 30.3×525.5cm 24
(도4) 傳 소한신, 〈백자유희도〉, 부분, 宋, 견본채색 30.3×525.5cm 24
(도5) 작자미상, 〈백자유희도〉, 南宋, 견본채색, 24.5×25cm 27
(도6) 작자미상, 〈백자유희도〉, 南宋, 견본채색, 31.2×28.7cm 27
(도7) 구영, 〈영희도〉, 송대 모사본, 明, 견본채색, 27.2×25.5cm 28
(도8) 구영, 〈영희도〉, 송대 모사본, 明, 견본채색, 27.2×25.5cm 28
(도9) 청화호(靑化壺), 明, 높이 29.2cm 28
(도10) 청화투채영희도병, 明, 높이 5cm 구경6cm 28
(도11) 초병정, 〈백자단원도〉, 淸, 견본채색, 27.2×20cm 30
(도12) 초병정, 〈백자단원도〉, 淸, 견본채색, 27.2×20cm 30
(도13) 초병정, 〈백자단원도〉, 淸, 견본채색, 27.2×20cm 30
(도14) 심경란, 〈동자유희도〉, 淸, 견본채색, 159.7×80.2cm 30
(도15) 〈동제동자당초문원형경〉, 고려, 지름 14.1cm 33
(도16) 〈동제연화동자문원형경〉, 고려, 지름 9.4cm 33
(도17) 〈동제동자유희문원형경〉, 고려, 지름 23.6cm 33
(도18) 〈청자상감 포도동자무늬 주전자와 받침〉, 고려 34
(도19) 〈청자상감 연꽃동자무늬 완〉, 고려 34
(도20) 〈백동자도 8폭 병풍〉, 지본채색, 134.5×344cm 69
(도20-1) 〈도20〉의 제4폭 71
(도20-2) 〈도20〉의 제2폭 71
(도20-3) 〈도20〉의 제5폭 71
(도20-4) 〈도20〉의 제7폭 71
(도20-5) 〈도20〉의 제8폭 71
(도21) 〈도27〉의 제8폭 69
(도22) 맹영광, 〈해상군선도〉, 77.0×48.2cm 74
(도23) 맹영광, 〈패검미인도〉, 99.1×43.0cm 74
(도24) 맹영광, 〈팔선도〉 74
(도25) 〈백자도〉, 지본채색, 61.9×33cm 81
(도26) 〈백동자도 8폭병풍〉 중 2폭, 지본채색, 각폭 53.2×34.5cm 81
(도27) 〈백동자도 8폭 병풍〉, 조선, 지본채색, 각폭 134×384cm 82
(도28) 이공린, 〈면주도 免胄圖〉, 부분, 32.3×223.8cm 87
(도29) 〈곽분양행락도 8폭병풍〉, 지본채색, 각폭 151×56.5cm 89
(도29-1) 〈도29〉의 부분 89
(도29-2) 〈도29〉의 부분 89
(도30) 〈곽분양행락도 10폭 병풍〉, 견본채색, 162×440cm 89
(도30-1) 〈도30〉의 부분 89
(도30-1) 〈도30〉의 부분 134
(도30-2) 〈도30〉의 부분 89
(도30-2) 〈도30〉의 부분 134
(도31) 〈백자동도 8폭 병풍〉, 지본채색, 각폭 58×35.5cm 93
(도31-1) 〈도31〉의 부분 93
(도32) 서원희, 〈백자도 10폭 병풍〉, 견본채색, 각폭 94×32.1cm 98
(도32-1) 〈도32〉의 부분 101
(도32-2) 〈도32〉의 부분 102
(도32-3) 〈도32〉의 부분 102
(도33) 〈백동자도 10폭 병풍〉, 견본채색, 각폭 89.6×32.5cm 98
(도33-1) 〈도33〉의 부분 101
(도33-1) 〈도33〉의 부분 167
(도33-2) 〈도33〉의 부분 102
(도33-3) 〈도33〉의 부분 102
(도33-3) 〈도33〉의 부분 118
(도33-4) 〈도33〉의 부분 111
(도33-4) 〈도33〉의 부분 166
(도33-5) 〈도33〉의 부분 118
(도33-6) 〈도33〉의 부분 138
(도33-7) 〈도33〉의 부분[내용없음] 7
(도33-8) 〈도33〉의 부분[내용없음] 7
(도34) 〈백동자도 8폭 병풍〉, 견본채색, 각 78.0×27.6cm 99
(도34-1) 〈도34〉의 부분 102
(도34-2) 〈도34〉의 부분 102
(도34-2) 〈도34〉의 부분 124
(도35) 〈백동자도 6폭 병풍〉, 견본채색, 각폭 126.5×52.8cm 99
(도35-1) 〈도35〉의 부분 101
(도35-2) 〈도35〉의 부분 110
(도35-3) 〈도35〉의 부분 110
(도35-4) 〈도35〉의 부분 111
(도35-5) 〈도35〉의 부분 115
(도35-6) 〈도35〉의 부분[내용없음] 8
(도35-7) 〈도32〉의 부분 168
(도36) 〈백자도 6폭 병풍〉, 견본채색, 96×296.8cm 108
(도36-1) 〈도36〉의 부분 110
(도36-2) 〈도36〉의 부분 110
(도36-3) 〈도36〉의 부분 111
(도36-4) 〈도36〉의 부분 111
(도37) 〈곽분양행락도 12폭 병풍〉, 견본채색, 각폭 145.5×35.9cm 115
(도37-1) 〈도37〉의 부분 115
(도38) 〈태평성시도 8폭 병풍〉, 견본채색, 각폭 113.6×49.1cm 116
(도38-1) 〈도38〉의 부분 116
(도38-2) 〈도38〉의 부분 116
(도38-3) 〈도38〉의 부분 116
(도38-4) 〈도38〉의 부분 116
(도39) 〈경직도 6폭 병풍〉, 지본채색, 각폭 82×39.5cm 118
(도39-1) 〈도39〉의 부분 118
(도40) 〈경직도 8폭 병풍〉, 조선 지본채색, 각폭 80×38.7cm 118
(도40-1) 〈도40〉의 부분 118
(도41) 〈백동자도 8폭병풍〉, 부분도, 견본채색, 78×310cm 124
(도42) 〈동자도〉, 지본채색, 46.2×36.2cm 134
(도43) 〈백동자도 10폭 병풍〉, 부분도, 견본채색, 78×310cm 138
(도44) 〈투계〉, 『삼재도회』 明 146
(도45) 〈투초〉, 『삼재도회』 明 146
(도46) 소한신, 《추정영희도〉 宋, 견본채색, 192.5× 108.7cm 146
(도47) 〈백동자도 10폭 병풍〉, 지본채색, 각폭 78.5×33.5cm 149
(도47-1) 〈도47〉의 부분 149
(도47-2) 〈도47〉의 부분 149
(도47-3) 〈도47〉의 부분 149
(도47-4) 〈도47〉의 부분 149
(도47-4) 〈도47〉의 부분 165
(도48) 〈백자도 10폭 병풍〉, 지본채색, 각폭 83.6×30.3cm 150
(도48-1) 〈도48〉의 제10폭 150
(도48-2) 〈도48〉의 제9폭 150
(도48-3) 〈도48〉의 제8폭 150
(도48-4) 〈도48〉의 제7폭 150
(도48-5) 〈도48〉의 제6폭 150
(도48-6) 〈도48〉의 제5폭 150
(도49) 〈백동자도 8폭 병풍〉, 지본채색, 각폭 85×41.2cm 157
(도49-1) 〈도49〉의 제2폭과 확대 부분 157
(도50) 〈백동자도 8폭 병풍〉, 지본채색, 각폭 60×34cm 158
(도50-1) 〈도50〉의 부분 158
(도50-2) 〈도50〉의 부분 158
(도50-3) 〈도50〉의 부분 158
(도50-4) 〈도50〉의 부분 158
(도51) 〈백동자도 6폭 병풍〉, 지본채색, 각폭 61×32cm 160
(도51-1) 〈도51〉의 부분 160
(도51-2) 〈도51〉의 부분 160
(도51-3) 〈도51〉의 부분 168
(도52) 〈백동자도 6폭 병풍〉, 지본채색, 각폭 57.8×32cm 161
(도52-1) 〈도52〉의 부분 168
(도53) 〈백동자도 10폭 병풍〉, 지본채색, 각폭 101.5×33cm 163
(도53-1) 〈도53〉의 부분 163
(도53-2) 〈도53〉의 부분 163
(도53-3) 〈도53〉의 부분 166
(도54) 유숙, 〈대쾌도〉, 지본채색, 105×54cm 165
(도54-1) 〈도54〉의 부분 165
(도55) 〈백동자도 8폭병풍〉, 부분도, 지본채색 166
(도56) 〈백동자도 6폭 병풍〉, 부분도, 지본채색 166
(도57) 〈백동자도 10폭 병풍〉, 부분도, 지본채색 167
(도58) 〈백동자도 10폭 병풍〉, 부분도, 견본채색, 78×31cm 168
(도59) 〈포벽화 백자도〉, 예천 용문사 170
(도60) 〈포벽화 백자도〉, 예천 용문사 170
(도61) 〈백자도 6폭 병풍〉, 부분도, 지본채색 172
(도62) 〈백자도 6폭 병풍〉, 부분도, 지본채색 172
(도63) 〈백동자도 10폭 병풍〉, 지본인쇄, 각폭 89×30cm 175
(도64) 〈백동자도 10폭 병풍〉, 지본인쇄. 각폭 80.5×28cm 175
(도65) 〈보진재 인쇄 백동자도〉의 낙관 175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중회화 중 하나인 백자도는 독특한 도상과 폭넓고 다양한 용도, 그리고 '민간의 그림 [民畵]'으로 확산되는 과정 등을 통해 조선 후기 궁중회화의 성립과 전개 양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미술작품이자 사료(史料)이다. 이국(異國)적인 도상의 특징으로 보아 여러 면에서 중국의 전통적 회화 장르의 하나인 영희도(嬰戱圖)나 동자유희도(童子遊獻圖)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단순한 수입이나 모방이 아니라 당시 조선 왕실의 필요에 따라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 한국적 도상으로 재창조된 그림이기도 하다.
조선 백자도는 17세기 중엽, 최초의 범본으로 추정되는 〈맹영광백동도(孟英光百童圖)〉가 조선 왕실에 직접 전래된 이후 중국 청대(淸代) 동자유희도류의 영향을 받은 초기 형식에서 출발,18세기 후반에 이르러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도상을 완성한다.
조선 백자도의 전형적인 도상은 우람한 태호석, 갖가지 수목(樹木)과 기화요초(琪花瑤草), 화려한 중국풍의 전각(殿閣)이 들어찬 뜰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갖가지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장면은 아이들의 놀이별로 낱장으로 그려져 8폭 혹은 10폭의 각 폭 병풍으로 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전형적인 도상을 비롯, 이제까지 백자도의 도상은 배경을 이루는 전각의 유무(有無)와 병풍의 형식에 따라 3가지의 유형으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기존 분류에 하나의 형식을 새롭게 추가, 모두 4가지 형식으로 분류했다. 추가된 형식은 19-20세기의 문헌에〈분양백자도(汾陽百子圖)〉 〈분원백자도(汾園百子圖)〉 〈곽분양백자도(郭汾陽百子圖)〉 등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백자도이다.
이 백자도는 그 동안 백자도와 곽분양행락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 정도로 이해되어 왔으나, 이 논문에서는 독립된 도상을 지닌 하나의 형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 형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각폭(各幅)'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백자도 병풍의 가운데 폭에 곽분양(郭治陽)과 그의 부인이 등장하는 것으로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 돼 있는 2점의〈곽분양행락도〉가 이러한 도상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형식의 백자도가 등장한 시기를 일단 전형양식의 성립보다 앞선 18세기 중엽으로 추정했으나,〈분양백자도〉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시기를 감안하면 그 보다 훨씬 늦은 19세기 초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도상의 완성을 포함한 조선 백자도의 성립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8세기 후반 이후 새롭게 등장한 다른 여러 궁궐 그림들, 예컨대 〈곽분양행락도〉 〈요지연도〉 〈태평성시도〉 등과 함께 조선 왕실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일련의 정책 내지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결과이다. 백자도를 포함한 이들 그림이 도상에서 많은 유사한 부분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백자도의 성립 과정과 성격 및 위상을 18세기 후반 궁중회화의 큰 흐름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백자도의 기능과 용도와 관련, 이제까지의 연구는 '혼례용 병풍'으로서의 기능에 집중되어 왔으나, 실제로는 궁중 가례용으로 쓰이기 훨씬 이전부터 매우 폭넓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의 여러 문헌에는 백자도가 궁궐의 중요한 풍습들인 연상시(延祥詩)나 단오첩(端午帖) 등의 주요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이런 점으로 보아 백자도는 일찍부터 새해의 벽사구복(聞邪求福)을 염원하는 세화(歲畫)나 청명, 단오 등의 절기에 쓰이는 액막이 그림 등으로 폭넓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궁궐과 민간의 중간지대라고 할 수 있는 조선 후기 지식인 계층에서는 백자도가 삶의 교훈과 경계의 뜻이 담긴 우의적(寓意的) 풍자화(諷刺畵), 혹은 감계화(鑑戒畵)로 널리 쓰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개인 문집 등에는 백자도를 이런 시각에서 인식한 시문(詩文)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런 폭넓은 용도와 기능을 감안했을 때 백자도는 대표적인 장황 형식인 병풍뿐만이 아니라, 선면화(扇面畵)를 비롯한 축(軸), 첩(帖) 등 다양한 낱장 그림으로도 많이 제작되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대부분의 궁중회화들은 18세기 후반부터 급격히 진행된 사회 변동의 물결을 타고 민간으로 확산되어 민화(民»)로 변모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다른 그림들도 어느 정도 그러하지만, 특히 백자도는 독특한 도상의 특성상 민화 백자도에서 이를 데 없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백자도의 도상은 크게 아이들의 '놀이'와 길상적 의미를 담은 '상징적 소재'를 양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도상의 특징은 민화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민간 작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상상력과 재량에 따라 무궁무진한 변용을 가능케 했다. 놀이와 상징적 소재를 교체하거나 더하고 빼는 방식으로 궁중회화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효과와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화 백자도'는 백자도 연구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더욱이 민화 백자도는 현재 남아 전하고 있는 백자도 중에서 수적으로도 월등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화 백자도에 대한 고찰은 기존 연구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논문에서는 몇몇 새로운 작품을 포함한 실물 자료를 중심으로 민화 백자도의 다양한 유형과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는 궁중회화로서의 백자도와 민화 백자도를 모두 아울러 조선 백자도의 '전모(全貌)'와 미술사적 의의를 조선후기 궁중회화의 흐름이라는 큰 틀 속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한 연구이다. 논문에서 다뤄진 내용들이 선행 연구의 빈 공간을 일부라도 채워주고 백자도에 대한 더 깊은 연구에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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