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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요약

목차

Ⅰ. 서론 12

1. 연구목적 12

2. 연구동향 14

3. 연구방법 18

Ⅱ. 궁예의 미륵사상과 정치적 이상 21

1. 궁예의 사상적 배경과 형성 21

1) 말세신앙과 불교 21

2) 미륵사상의 평화적 성격 25

3) 궁예미륵(弓裔彌勒) 29

2. 궁예의 정치적 이상(理想) 32

1) 신라의 '금덕정치(金德政治)' 32

2) 궁예의 '수덕정치(水德政治)' 36

Ⅲ. 궁예의 건국과정 45

1. 궁예의 평화적 건국과정 45

1) 북원(北原)의 동고동락(同苦同樂) 45

2) 명주(溟州)의 무혈입성(無血入城) 48

3) 서진(西進)과 철원성 구축 52

Ⅳ. 태봉국 철원성의 평화적 성격과 비전 60

1. 계획도시로서의 철원성 60

2. 철원성의 개방성 64

3. 대동방국(大東方國)의 평화이념 70

Ⅴ. 결론 75

참고문헌 79

Abstract 85

붙임 : 궁예의 일대기 연표 87

그림목차

〈그림 Ⅲ-1〉 궁예의 길 59

〈그림 Ⅳ-1〉 상경성(발해)과 장안성(당) 조감도 62

〈그림 Ⅳ-2〉 태봉국 철원성 모형도(축척:1/500)_ 철원평화전망대 전시실. 2023.03.12.촬영 63

〈그림 Ⅳ-3〉 태봉국 철원성 항공사진(1951년 촬영)과 지점의 위치 표시 66

〈그림 Ⅳ-4〉 태봉국 철원성의 내·외부 지형모형 68

〈그림 Ⅳ-5〉 태봉국 철원성을 가로지르는 경원선 72

사진목차

〈사진 Ⅱ-1〉 궁예미륵상_국사암. 2022.7.27.촬영 30

〈사진 Ⅱ-2〉 선각대사편광령탑비_후면, 2022.10.6.촬영 42

초록보기

본 연구는 태봉국을 건국한 궁예 사상의 평화적 성격과 그가 축성하였던 철원성의 평화적 가치에 관한 연구이다. 역사서『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궁예를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그의 사상 배경과 역사기록, 민간설화나 지역 미륵불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보면, 궁예를 기존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궁예는 신라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년)의 서자(庶子)로 태어났고, 신라 말 왕권 다툼의 과정에서 신분상 위협을 피해 10세 무렵 영월 세달사(世達寺)로 출가하였다. 그곳 세달사에서 궁예는 자연히 기본적인 불교 교리를 접하게 되었고, 그의 불교적 지식은 훗날 궁예 미륵이 되는 발판이 되었다.

궁예가 불교에 귀의한 만큼 그의 사상적 배경은 불교를 바탕으로 한다. 궁예는 원효(元曉, 617~686년)의 화쟁사상(和諍思想)과 의상(義湘, 625~702년)의 무애사상(無礙思想) 등 불교 지식을 기반으로 미륵을 통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특히, 궁예는 원효의 미륵정토신앙(彌勒淨土信仰)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미륵화 하고 미륵 정신을 구현하려했다. 실제로 궁예는 철원, 포천, 안양, 나주 등 향토 신앙에서 '궁예미륵'으로 신격화되어 신봉되고 있다.

궁예의 정치는 신라의 '금덕정치(金德政治)'와는 달리 '수덕정치(水德政治)'의 성격을 지닌다. 수덕은 오행사상(五行思想)에서 금(金) 다음으로 이어지는 수(水)의 개념이다. 궁예는 905년 연호를 성책(聖冊)으로 하고, 20여 권의 서책을 저술하기 시작하며 그의 저술행위는 앞으로 표방하게 되는 수덕정치의 주요한 기반이 된다. 궁예는 911년 국호를 태봉(泰封)으로 바꾸면서 연호도 수덕만세(水德萬歲)로 하였다. 연호 수덕만세에 잘 표명 되었듯이 궁예는 수덕정치로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끌어내고자 했다.

궁예의 건국 과정은 세 가지의 평화적 특성으로 나타난다. 북원(北原, 지금의 원주)에서의 동고동락(同苦同樂), 명주(溟州, 지금의 강릉)의 무혈입성(無血入城) 그리고 태봉국 철원성 축성이다.

궁예는 895년 철원에 입성한 후 거점으로 철원과 송악을 오가며 10여 년간 세력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궁예는 901년에 스스로 왕이라고 자칭하고 나라를 건국했으며 국호는 고려(高麗)라고 하였다.

궁예는 904년부터 철원성 축성을 시작하였다. 태봉국 철원성은 사전에 준비된 계획도시였다. 태봉국 철원성은 평화의 터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궁예는 자신의 미륵 사상을 구현시킬 공간으로 '미륵도성(彌勒都城)'을 구축하였고, 미륵 사상으로 대동방국(大東方國)의 평화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