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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목차
論文要約 10
Ⅰ. 서론 12
1.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12
1) 연구의 필요성 12
2) 선행연구 검토 15
3) 연구 목적 31
2. 연구 범위와 방법 33
1) 연구 범위 33
2) 연구 방법 34
Ⅱ. 조선시대 『大學』 해석과 청대 학술 유입 37
1. 朱熹의 『大學』 해석과 그 의미 39
1) 「大學章句序」의 의미 39
2) 신분에 따른 『大學章句』 이념의 적용 42
2. 조선 학자들의 『大學』 해석 양상 46
1) 주자학적 聖學論의 조선시대 전개 양상 46
2) 『大學章句』 체제 옹호와 개정 논의 53
3) 古本 『大學』으로의 회귀 57
3. 18세기 조선 학자들의 청대 학술 인식 59
Ⅲ. 正祖의 經書 해석 저변과 聖王論 71
1. 주자학적 懷疑情神과 자득적 實學 추구 73
1) 주자학적 공부 방법론 계승 73
2) 회의적 검증을 통한 주자학으로의 회귀 추구 78
3) 自得, 實學, 格物致知의 通看적 이해 85
2. 抄啟文臣制와 주자학의 재정립 89
1) 抄啟文臣制를 통한 경학 문답 시행 89
2) 「大學章句序」에 대한 경전적 권위 부여 95
3) 국가정체성 확립을 위한 문체의 실용 추구 98
4) 주자서 선집을 통한 문풍 진작 102
3. 학문적 이해에 근거한 異端과 邪學 비판 109
4. 道統 계승을 통한 聖王 자임 124
1) 정조의 성인 인식 125
2) 萬川明月主人翁 천명의 진의 131
Ⅳ. 正祖의 『大學』 관련 著作 140
1. 日得錄_文學 141
1) 편찬 배경 141
2) 내용 구성 143
3) 의의 145
2. 「經史講義_大學」과 「經史講義_總經_大學」 146
1) 편찬 배경 146
2) 토론 참여 명단 148
3) 내용 구성 151
4) 의의 161
3. 故寔_大學 162
1) 편찬 배경 162
2) 내용 구성 164
3) 의의 169
4. 策問 170
1) 편찬 배경 170
2) 내용 구성 173
3) 의의 176
5. 曾傳秋錄 177
1) 편찬배경 177
2) 내용 구성 178
3) 의의 180
6. 大學類義 180
1) 편찬 배경 180
2) 내용 구성 182
3) 의의 184
Ⅴ. 正祖의 「大學章句序」와 三綱領 해석 186
1. 本性 회복과 지속 강조 187
2. 고대 학교의 제도적 이해 192
3. 明德本心說의 심화 199
4. 新民의 주체 명료화 213
5. 止於至善의 體用·知行 분속 227
Ⅵ. 正祖의 八條目 해석 237
1. 格物致知의 의미 명료화 244
2. 誠意 공부 방법 제시 259
3. 正心과 修身의 유기적 이해 271
4. 齊家와 治國의 행위 근본 제시 283
5. 聖王의 平天下 방안 논의 292
1) 絜矩之道章 5분절설 제시 296
2) 好惡를 통한 絜矩의 실천 강조 305
Ⅶ. 結論; 경학사적 의의를 겸하여 315
參考文獻 329
附錄 352
ABSTRACT 378
그림 1. 이곤수의 正心修身 관계도 280
그림 2. 이상황의 忿懥好樂 분속도 281
그림 3. 정조의 '治國平天下章' 6분절설 도식화 298
본 연구는 正祖의 경학 지향 및 『大學』 해석 특징을 고찰하여 18세기 조선의 경전 해석 일면을 새롭게 밝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정조는 경전 및 주자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여 스스로 도통의 계승자라 자임하고, 성인의 지위를 획득하였음을 천명한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治統의 권위를 공고히 하려 하였다. 따라서 정조의 『대학』 해석은 주희의 『大學章句』 체제와 해석을 바탕으로 하였다.
정조는 즉위 이전부터 주자학적 문풍 쇄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주자학을 근본으로 하면서도 그 논리에 대해 스스로 숙고하여 無疑而有疑 有疑而無疑의 懷疑情神을 통해 논리를 보강하기를 추구하였다. 그는 주자학을 자득의 학문인 실학이라 이해하고 그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였으며, 이단과 사학을 비판하고 이를 당쟁에 대한 통제책으로 사용하였다. 종국에 정조는 자신이 주자학적 도통의 계승자라 자임하며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천명한다. 이처럼 성왕을 자임한 정조의 학술 행보는 깊이 있는 주자학 이해를 토대로 조선 전반에 경학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그 논의를 활발하게 하는데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군주적 권위를 쇄신하는 데도 효과적인 활용 방안이 되었다.
18세기 조선에 유입된 양명좌파, 고증학, 서학 등의 새로운 학술 동향 속에서 정조는 「經史講義_大學」, 「日得錄_文學」, 「故寔_大學」, 「策問」, 「曾傳秋錄」, 『大學類義』 등을 통해 신하들과 방대한 경학 토론을 벌였다. 그의 대다수 경학 논의는 질의와 응답으로 구성되었으며 논의 방향은 주자학적 『대학』 해석을 공고화하고 논의를 심화시키는 데 있었다. 논의 참여자는 초계문신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뛰어난 학자와 과거 응시자, 여러 유생을 포괄하는 대다수 학자집단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곧 정조의 학술 정책과 행보가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 전반에 거대한 주자학적 학술 담론을 일으키고자 한 구상의 연장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정조 『대학』 해석의 구체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정조는 「大學章句序」를 『대학』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고, 本性 이해라는 心學적 측면과 학교 제도의 토대 마련이라는 경세적 측면을 함께 도출하며 「대학장구서」에 경전적 권위를 부여하였다. 삼강령에 대해서는 자신의 明德을 밝히는 것과 新民의 일이 동시 작용이며, 신민이란 백성들이 그들 '스스로' 명덕을 밝히는 것임을 명료히 하였다.
정조는 八條目과 格物致知補亡章이라는 주희가 고안한 체제와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되 이러한 논리 구조가 더욱 타당성을 얻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이론을 보강하고자 하였다. 정조는 格物致知가 주자학이 實學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이라 보았다. 誠意와 正心을 풀이하면서는 인간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긍정하면서, 誠意章에서는 毋自欺 必自謙과 愼獨을, 正心章에서는 未發之中 상태에서의 敬 공부를 강조하였다. 또한 誠意-正心-修身章을 유기적으로 이해하여 정심장의 四有所를 수신장의 五辟과 직접적으로 연관지어 해석하였다. 정조는 齊家-治國의 근본이 효제자에 있음을 확실시하였다. 심지어 그는 禮樂刑政의 다스림조차 그 근본은 효제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특히 치국평천하장에서는 주희의 설을 중심으로 대지를 고수하되, 5분절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전3장에서 전10장까지 모두 好惡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호오를 파악하기 위해 격물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致知 이후에도 精一로서 마음을 지켜나가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정조는 백성들의 호오와 임금의 호오는 단지 그 파급력과 중요성에서 차이가 있을 뿐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한다는 내용면에서는 모든 인간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자학의 이해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정조의 『대학』 해석이 갖는 경학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경학사에서 유일하게 군주가 직접 주도하여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 낸 독창적 결과물이다. 둘째, 성왕을 자임하며 당색과 학파를 초월한 균형적 시각으로 주자학에 기반한 『대학』 해석의 정설을 확립하려 하였다. 셋째, 활발한 경학 담론을 추진하여 당대 학술 토론에 참여했던 학자들이 스스로 각자의 경학 성과물을 도출하게 하였으며, 학자들 간 학술 토론의 興起에 기여하였다. 이처럼 정조는 신하들에게 경전 해석에서 無疑而有疑 有疑而無疑의 방법론을 제시하며 다양한 사고의 시도를 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사유의 바탕은 주희의 사유체계가 가지는 보편성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국가적 경전 해석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였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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