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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목차
Ⅰ. 머리말 12
Ⅱ. 고려시대 청자문방구의 제작배경 16
1. 송대(宋代) 서재문화와 문방구 완상(玩賞)문화의 발달 17
2. 고려 문치주의의 확산과 문방구 문화 수용 양상 25
Ⅲ. 고려시대 청자문방구의 현황 35
1. 출토유물 현황 35
1) 생산유적 37
2) 해저유적 52
3) 소비유적 55
2. 전세유물 현황 69
Ⅳ. 고려시대 청자문방구의 종류 74
1. 벼루 74
2. 연적 77
1) 식물형 79
2) 동물형 85
3) 인물형 91
4) 주자형 92
3. 필가, 필통, 묵호 94
Ⅴ. 고려시대 청자문방구의 특징과 성격 98
1. 시기에 따른 조형의 변천과정 98
1) 전기(10세기~11세기 후반) 98
2) 중기(12세기~13세기 중반) 99
3) 후기(13세기 후반~14세기 말) 104
2. 선호된 소재와 표현기법의 독창성 106
3. 고려시대 청자문방구의 성격과 의의 117
Ⅵ. 맺음말 124
참고문헌 127
부록 141
도판 142
Abstract 144
삽도 1. 〈청백자연적(A형)〉, 높이 9.2cm, 遂宁金鱼村南宋窖藏 출토 24
삽도 2. 〈청백자연적(B형)〉, 높이 8.5cm, 遂宁金鱼村南宋窖藏 출토 24
삽도 3. 〈청백자수승(A형)〉, 높이 11cm, 遂宁金鱼村南宋窖藏 출토 24
삽도 4. 고려시대 청자문방구 국내 출토유적 지도 37
본 연구는 고려시대에 등장해 완상물(玩賞物)이자 일상생활품으로 제작되었던 청자문방구에 대한 종합적인 의의를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고려시대 청자문방구는 유학자를 비롯해 왕족, 귀족, 승려 계층을 중심으로 애용되었던 기물이다. 청자문방구의 기종 분류, 기형, 장식문양을 분석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기물의 특징과 성격을 두루 살핀 결과, 청자문방구는 시대적 유행에 따른 애호품으로 부상한 기물임이 확인된다. 이에 고려시대 청자문방구는 당시 사회·문화의 일면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청자 기술의 수준과 활용양상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한 연구자료로 판단된다.
중국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문방구는 이미 당대(唐代)에 이르러 널리 사용되었고, 한국은 삼국시대부터 문방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청자문방구는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사용하였고, 고려 초 중국에서 청자의 제작기술을 도입한 이후에서야 청자문방구의 제작이 시작되었다. 청자문방구의 기원은 중국 당대 이전이나, 청자와 백자로 제작된 송대(宋代)의 도자문방구가 다수 전세되고 있는 것을 통해 송대에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도자문방구의 성행과 제작배경에는 과거제의 열풍과 함께 송의 문인사대부 계층으로부터 파생된 문인문화의 영향이 감지된다. 이는 서재, 금기서화(琴棋書畵), 진기(珍奇)한 완상물의 감상과 수집 등 문인의 취미생활과 당대(當代)의 문방구 전문서적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학문 도구였던 문방구가 당시의 경제·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애호품의 성격으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문방구의 유행은 고려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포착된다. 시초는 고려 광종(光宗, 재위 949~975)과 성종(成宗, 재위 981~997)대의 문반정책으로, 이는 고려에서 안정적으로 문학과 관련된 취미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고려 문인들의 취미생활을 살펴보면, 문방구는 기물의 사용자와 같은 공간에서 존재하였다. 또한 문방구는 생활품, 완상물, 선물 등 여러 목적에서 사용되며 고려 사회 내에서도 성행하였다. 이는 현재 남겨진 문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그중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은 청자문방구에 대한 문인의 인식과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 서술되어 있다.
고려시대 청자문방구는 다양한 자연물 소재를 형상화하였다. 소재 중에서는 오리와 참외가 다수 제작되었는데, 이 소재들은 당대(當代)에 선호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음각·양각·상감·철화·퇴화 등 다양한 기법이 문양으로 장식되었으며, 길상성을 강조하기 위한 연적의 연줄기 표현과 심미성을 위한 필가의 투각 기법은 고려시대 청자문방구에 즐겨 사용되었던 표현으로 추정된다. 인물형 연적을 통해서는 유·불·선 사상이 공존하였던 고려 사회의 양상을 볼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고려 중기의 문인 곽여(郭輿, 1058~1130)가 불교와 도교를 모두 신앙하고 있었음이 언급되어 있다. 기록에 부합하듯, 인물형 연적의 의복과 의관 표현에는 여러 종교가 혼재된 양상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청자문방구가 소비계층의 취향이 반영된 애호품이자 고려의 유행문화를 수반하는 기물인 것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청자문방구는 고려 중기부터 집권층의 취향과 청자의 기술 발전에 따라 기능성과 뛰어난 조형성을 겸비하였고, 이러한 점은 기물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에 청자문방구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국적으로 여러 지역에서 제작 및 소비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 고려 전기에 제작된 청자문방구의 기종은 벼루[硯]가 확인된다. 그러나 중기 이후부터는 연적(硯滴), 필가(筆架), 필통(筆筒), 묵호(墨壺) 등 여러 기종이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현황은 고려 중기부터 청자문방구가 성행하였던 고려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시대 청자문방구는 제작기술과 시대적 상황, 소비자의 수요와 유행 등에 따라 전기·중기·후기별로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시기별 유물의 제작상태나 조형적 특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기의 유물은 출토량이 적어 양상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대부분 무문(無紋)의 벼루이다. 그러나 중기부터는 상감과 철화기법이 청자문방구의 문양으로 장식되고, 여러 자연물 소재가 상형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중기의 장식 경향은 후기까지 지속되나, 후기의 청자문방구는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 문양의 장식경향이 단순해지고 청자의 질도 퇴보한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출토 및 전세유물의 편년에 따르면 고려시대 청자문방구는 고려 전시기에 걸쳐 지속해 제작되고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문방구는 기본적으로 학문 도구인 만큼 기능성을 고려해야 했기에 기종과 기형에 제약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중국의 유행문화와 기술적 영향을 받아들인 것부터 시작하여 독창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청자문방구를 제작한 것이 파악된다. 이에 본 논문은 조형적 특징과 장식기법을 통해 고려시대 청자문방구의 전반적인 제작 양상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고려 사회의 모습과 문인문화를 복합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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