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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2
목차 5
국문요약 9
ABSTRACT 11
Ⅰ. 서론 13
1. 연구목적과 의의 13
2. 선행연구 14
3. 연구범위와 방법 17
Ⅱ. 생애와 예술관 19
1. 생애 19
2. 예술관 23
1) 실사구시(實事求是) 23
2) 숭상비학(崇尙碑學) 26
3) 성문격치(聖門格致) 30
Ⅲ. 추사의 선학(禪學) 39
1. 선(禪)의 개념 39
1) 선(禪)·선의(禪意)·선학(禪學) 39
2) 선종(禪宗) 45
3) 선정(禪定)과 입정(入定) 48
2. 선(禪)과 예술 50
1) 불립문자(不立文字) 50
2) 응신정사(凝神靜思) 52
3) 기봉(機鋒)·초아(超我)·신화(神化) 54
3. 선학(禪學) 수용 59
1) 추사의 불교수용 59
2) 실사구시의 불교의식 62
3) 추사의 선학 예술 64
Ⅳ. 문예론(文藝論) 69
1. 시론(詩論) 69
1) 시론의 형성 69
2) 시론의 특징 77
2. 書論 91
1) 서론의 형성 91
2) 서론(書論)의 특징 100
3. 화론(畫論) 117
1) 화론(畫論)의 형성 117
2) 화론(畫論)의 특징 127
Ⅴ. 결론 143
참고문헌 147
[도 1] 傳 貫休, 〈拾得到〉·〈寒山圖〉·〈豊干圖〉, 지본수묵,... 43
[도 2] 玉澗, 〈廬山圖〉, 145 × 259cm, 岡山縣立美術館 55
[도 3] 김정희, 〈山寺舊作〉, 지본묵서, 24 × 60.5cm, 호암미술관 66
[도 4] 김정희, 〈黙笑居士自讚〉, 30.2 × 128.5cm, 보물 제1685-1호, 국립중앙박물관 93
[도 5] 김정희, 〈梣溪〉, 분당지, 42.8 × 122.7cm, 간송미술관 95
[도 6] 김정희, 〈大烹高會〉, 분당지, 32 × 129.5cm × 2,... 99
[도 7] 〈好古硏經〉, 지본수묵,... 103
[도 8] 김정희, 〈谿山無盡〉, 지본수묵, 62.5 × 125.5cm, 간송미술관 108
[도 9] 김정희, 〈且呼好共〉, 지본묵서, 135.9 × 30.2cm × 2... 115
[도 10] 김정희, 〈板殿〉, 나무, 77 × 181cm, 봉은사 116
[도 11] 김정희, 〈歲寒圖〉, 지본수묵, 27.2× 70.2cm, 국립박물관 121
[도 12] 청 朱學年, 〈古木閑雅圖〉 122
[도 13] 김정희, 『蘭盟帖』, 27 × 22.9cm, 지본수묵, 간송미술관 122
[도 14] 김정희, 〈疏林茅亭圖〉. 지본수묵,... 124
[도 15] 黃公望(1269-1354), 〈富春山居圖〉, 지본수묵, 33 × 639.9cm, 浙江省博物館 131
[도 16] 김정희, 〈高士逍遙圖〉, 지본수묵, 24.9 × 29.7cm, 간송미술관 132
[도 17] 張庚(1685~1760), 〈疏林茅屋〉 132
[도 18] 김정희, 〈不二禪蘭圖〉, 지본수묵,... 139
본 논문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시·서·화 예술이 선학(禪學)의 기조하에서 발현되었음을 밝히고 그의 예술이 선(禪)의 경지와 동일한 경계에 있음을 고찰 연구하였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시대의 문예부흥기로 불리는 18세기 후반 당시 새롭게 대두된 북학파(北學派)의 한 지류로서 사상과 예술 방면에 국내외적으로 조선의 문화 예술을 발전·선양시키는데 위대한 영향을 미친 실학자이자 예술가이다. 당시 문화정치의 표상이었던 정조(正祖, 1766-1800)가 문화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북학자를 대거 등용함으로써 사회·경제의 개혁은 물론 조선 후기 문화 예술의 전반적인 인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실사구시를 제창했던 추사는 젊은 시절 청(淸)나라 연경(燕京)의 대학자 옹방강(翁方綱, 1733-1818)·완원(阮元, 1764-1849)과 사제의 연을 맺은 후 청학(淸學)을 수용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는 훗날 추사가 박학(博學)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실사구시 정신을 강조하게 되는 모태가 되었으며 그의 성문격치(聖門格致)적 예술관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추사는 정통 사대부 집안 출신이었지만 선종(禪宗)의 진제(眞諦)에 도달할 정도로 불경(佛經)에 조예가 깊었고 도가(道家)에도 남다른 연구와 박학(樸學)의 진의(眞意)를 체득하였다. 그의 예술사상은 유학(儒學)·선종(禪宗)·도가(道家)와 더불어 불교사상을 폭넓게 수용하여 소승(小僧)과 대승(大僧), 선학(禪學)의 영역까지 학문적 경계를 넓혔던 개방적 세계관의 소유자이다.추사는 선종(禪宗)을 불문(佛門)의 이단으로 여겨 달마(達磨)의 선관(禪觀)까지도 승조(僧肇)의 아류로 치부하였으며 당시 선문(禪門)에서 두루 행해졌던 간화선(看話禪)도 철저히 부정하였다. 이러한 당대 선종에 대한 불신과 비판은 그의 실사구시 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추사는 두 차례의 기나긴 유배 생활과 가화(家禍) 등 감내하기 힘든 참혹한 삶의 현실에서도 학문과 예술을 선학(禪學)의 경지에서 이루었다. 견성(見性)한 선생 또는 해동(海東)의 유마거사(維摩居士)라고 불렸던 그의 만년은 예선합일(藝禪合一)의 최고 경계를 추구하며 조선의 예술사에서 한 획을 남겼다. 그의 시·서·화 예술정신은 문학과 선학(禪學)이 융회되어 발현되었으며 그의 선적(禪的) 깨달음은 예술작품과 동일묘경에서 작용하는 중요한 미적 요소들이었다. 추사의 예술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예술과 선학의 합일을 추구하며 융화·통회(融和通會)되어 독보적인 예술세계로 승화되었다.
이렇듯 추사의 문자향·서권기 정신의 시·서·화 예술은 유(儒)·불(佛)·도(道) 정신을 초월하여 깨달음의 경지인 선학(禪學)의 기조하에서 구현되었다. 내면 깊숙이 스며든 통합적 선학의 기조를 예술에 접목하여 삼매경(三昧境)에 진입한 추사는 그의 선학 예술과 함께 지인(至人)의 경지에서 우주 본연의 진리와 인간 본성의 융화를 꾀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선학 예술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현대의 예술문화 분야에까지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며 그 빛을 발하고 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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