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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1

목차 4

국문초록 9

Ⅰ. 서론 11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11

2. 선행연구 검토 13

1) 야마구치현과 재일코리안에 관한 선행연구 검토 13

2) 조선학교 커뮤니티에 관한 선행연구 검토 15

3. 연구 대상과 연구 과정 18

1) 연구대상지 18

2) 시모노세키 재일코리안과 조선학교 현황 21

3) 연구 과정 22

Ⅱ. 시모노세키와 재일코리안의 역사 26

1. 시모노세키와 한반도의 관계 26

1) 조선통신사를 통해 보는 한반도와의 관계성 26

2)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보는 조선과 일본의 관계 31

2. 조선인의 시모노세키 유입 36

1)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의 역사 36

2) 시모노세키에 들어온 조선인들의 동향 44

3. 재일코리안의 시모노세키 정착 50

1) 해방 후 일본에 있었던 조선인들의 동향 50

2) 귀국하지 못하고 시모노세키에 정착한 조선인의 생활사 54

Ⅲ. 야미구치현 조선학교와 재일코리안 62

1. 야마구치현 조선학교의 형성 과정 63

1) 전국 조선학교교육 투쟁의 첫 걸음이 된 야마구치 교육 투쟁 63

2)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의 역사 72

2. 정주를 전제로 한 교육 내용의 변화 79

3. '우리학교'를 바라보는 조선학교 재일코리안의 시선 90

1) 조선학교 교사 91

2) 조선학교 학부모 96

3) 조선학교 졸업생 103

4. 재일코리안 사회에서 조선학교 민족교육의 존재 의의 105

Ⅳ. 시모노세키 조선학교 재일코리안의 삶 107

1.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107

1) 조선학교의 존재 의의 107

2) 조선학교 커뮤니티의 형성과 유지 112

2. 재일코리안과 조선학교를 둘러싼 문제들 114

1) 차별 115

2) 코로나의 영향 124

3. 일본 사회에서 야마구치현 조선학교 재일코리안으로 산다는 것 126

1) 일본인과의 공생 127

2)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129

Ⅴ. 결론 132

참고문헌 136

Abstract 148

日文抄錄 151

표목차 7

〈표 1〉 관부연락선 38

〈표 2〉 재일조선인 인구 추이 46

〈표 3〉 전후 야마구치현 내외의 재일코리안과 조선학교 관련 역사 70

사진목차 8

[사진 1] ▲좌: 한반도와 가까운 야마구치현 ▲우: 시모노세키시 확대 지도 19

[사진 2] 재일코리안 조직의 야마구치현 본부 및 시모노세키 시부. 시모노세키에는 대한민국 민단의 야마구치현 지방 본부와 시모노세키시부가 총련의 야마구치현 본... 22

[사진 3] 시모노세키시에 있는 조선통신사 상륙 기념비 31

[사진 4] ▲좌: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장소 요정 '슌판루(春帆樓)' ▲우: 슌파로에 설치된 시모노세키 조약 일본 대표였던 이토 히로부미와 무쓰 무네미츠 흉상. 슌판루... 35

[사진 5] 시모노세키항에 정박하고 있는 관부연락선 쇼케이마루(昌慶丸) (1935년대) 39

[사진 6] 격침된 곤론마루(崑崙丸) 위령비 ▲좌: 정면 ▲우: 뒷면 41

[사진 7] ▲좌: 1918년 산요호텔. ▲우: 산요호텔이 있었던 곳에 설치되어 있는 산요호텔 설명문 49

[사진 8] ▲좌: 개관식 당일의 쇼와관(1928년) ▲우: 쇼와관이 있었던 장소.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 정문 옆에 소재한다 49

[사진 9] 근린 항구에서 귀국하는 조선인 51

[사진 10] 다게자키 나가토시장(竹崎長門市場). 1층은 시장이고 2층은 임대주택이다 55

[사진 11] ▲좌: 그린몰 입구. 입구에 있는 문에는 '부산문'이라 쓰여고 있다. ▲우: 그린몰 내의 상가. 한국식품을 파는 가게들이 곳곳에 있다 55

[사진 12] 2022년 '리틀 부산 페스티벌' 56

[사진 13]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가 위치하는 재일코리안 마을 58

[사진 14] 오쓰보 재일코리안 마을 59

[사진 15] ▲좌: 화장장(과거), 현재 간다공원(神田公園) ▲우: 시모노세키 형무소(과거) 현재 주민 센터 59

[사진 16] ▲좌: 재일 대한불교조계종 광명사 ▲우: 재일 대한기독교시모노세키교회 59

[사진 17] ▲좌: 조선학교 근린 조선시장 ▲우: 사진관(과거). 민족의상을 입은 재일 코리안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豊田 1989: 127) 60

[사진 18] ▲좌: 1948년 3월 18일 조련 시모노세키초등학교 제2회 졸업기념 사진 ▲우: 1949년 3월 조련 시모노세키초등학교 65

[사진 19] 1948년 3월 31일 야마구치 현청 앞. 조선학교 폐쇄 명령에 판대하는 인민대회(야마구치 교육 투쟁) 67

[사진 20] 야마구치현 내의 조선학교 위치 73

[사진 21]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는 시모노세키시의 중심지인 시모노세키역에서 1.54km, 코리아타운에서 1.32km 떨어져 있다 73

[사진 22]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 79

[사진 23] 태블릿 교과서 (초급부 4학년의 음악교과서) 86

[사진 24] 지역 토요 교실(地域土矅教室). 민족 음악 수업 89

[사진 25] 2022년 9월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 운동회 플래카드 110

[사진 26] 2022년 10월 조선학교 교육보조금 지급 촉구 운동 ▲좌: 야마구치 현청 앞에서 항위 운동하는 참가자들의 모습 ▲우: 현수막에는 "모든 아이들은 평등하게... 122

[사진 27] 야마구치 교육 투쟁 당시의 야마구치현청의 현재 모습. 왼쪽 뒤에 현재 야마구치현청이 보인다 123

초록보기

 본 연구의 목적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의 유일한 재일코리안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대상으로 이 학교가 시모노세키 재일코리안에 갖는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학교에 관한 연구는 주로 한국과 일본 양국의 재일코리안, 한국인,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다양한 각도로 시도돼왔다. 대부분 인구가 많은 대도시 조선학교를 대상으로 하였다. 주제도 대부분 역사였는데 조선학교가 위치한 도시와 한반도 간의 역사적 관계성은 간과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재일코리안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도시인 시모노세키와 그곳에 소재한 조선학교에 주목하였다. 시모노세키와 한반도가 맺어온 관계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조선학교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재일코리안에게 조선학교가 갖는 존재 의의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가깝고 오래전부터 한반도와 일본 사이 왕래의 거점이었다. 시모노세키와 한반도는 조선통신사의 첫 상륙지, 시모 노세키 조약, 관부연락선 등의 역사적 사건과 계기 등으로 관계가 깊다. 특히 관부 연락선은 일제 강점기 때 많은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갈 수 있는 통로였다. 해방 후 많은 조선인이 조국으로 귀국하였으나 일본에 정착을 선택한 이들의 숫자도 상당하였다. 그들의 후손은 현재까지 일본사회에서 재일코리안으로 살고 있다.

조선시대 때 시모노세키는 조선통신사가 입도하는 한반도와 일본 간 문화 교류의 출발지였으나 관부연락선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광복 후 귀국하지 않고 이곳에 남은 조선인들로부터 재일코리안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시모노세키에는 코리아타운, 재일코리안 민족학교인 조선학교, 재일코리안 마을, 재일코리안 조직(민단, 총련)의 야마구치현 본부 등 재일코리안 관련 단체와 기관들이 다수 자리하고 있다.

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이 운영하는 재일코리안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는 해방 후 빼앗긴 민족문화를 재일코리안 후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언어교육을 비롯해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교육 기관이고 일본 전국에 산재해 있다. 그중 하나가 시모노세키가 속해있는 야마구치현에 있다. 시모노세키는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에 비해 소규모 도시임에도 조선학교가 5개나 있었다는 면에서 야마구치현은 일본 내에서 재인코리안의 민족교육 의식이 높았던 지역이다. 하지만 현재 야마구치현과 시모노 세키시 재일코리안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휴교하는 조선학교도 늘어났다. 재일코리 안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시모노세키에는 야마구치현에서 유일하게 야마구치 조선초 중급학교만 남아 있다.

이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는 1956년에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시모노세키에 사는 재일코리안 아이들을 위해 민족교육을 실시해왔다. 교육 내용은 설립 초기 귀국 준비에 집중하다 현재는 일본 정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사회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학교 관계자(교사, 학부모, 졸업생)에게 조선학교의 존재 의의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민족의식을 육성하는 장소다. 나아가 일본사회에서 재일코리안 커뮤니티의 중심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조선학교에서 배우는 민족교육을 통해 자기 뿌리에 대해 알아가고 민족의식을 키워간다. 조선학교에서 학습한 경험은 자녀에게 전달되어 그들이 다시 조선학교로 돌아오는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그러나 조선학교를 둘러싼 문제는 차별, 인구감소, 민족의식 약화 등 어렵고 복잡하다.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 관계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과 실행에 애를 먹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일본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현실을 타개하려 여러 시도를 해왔다. 그 결과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의 작은 조선학교를 무대로 조선학교 재일코리안과 일본인의 연대가 이뤄지고 있고 실제로 조선학교에 대한 기부와 지원자수가 늘고 있다. 야마구치조선초중급학교를 둘러싼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조선 학교를 지키려는 사람의 숫자가 느는 것은 시모노세키에 마지막으로 남은 조선학교의 가치가 학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식민지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으면서도 다른 지역 재일코리안 연구에 비하면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소규모도시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를 대상으로 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앞으로 야마구치현과 시모노세키 재일코리안에 관한 연구와 소규모 지역 조선학교의 역할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이 진행 중일 때 이뤄진 연구라서 코로나가 조선학교에 미친 최근의 영향을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