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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지 2

목차 5

국문요약 12

摘要 14

Ⅰ. 緒論 16

1. 研究的目的和理論背景 16

1) 問題與目的 16

2) 理論背景 19

2. 研究範圍和研究方法 22

1) 研究範圍 22

2) 研究方法 24

3. 先行研究的考察 25

Ⅱ. 翁方綱的書學 31

1. 翁方綱的學術背景 31

1) 清代的學術背景 32

2) 翁方綱的書學背景 35

3) 翁方綱的書學定位 38

2. 漢學為基 40

1) 漢宋之爭 41

2) 翁之漢學 42

3) 金石之作 45

3. 兼採宋學 49

1) 義理為終, 經學方法 50

2) 先漢後宋, 以圖治經 54

3) 金石經史, 法帖書畫 56

Ⅲ. 翁方綱與黃易的書學活動 60

1. 翁黃交遊 62

1) 翁黃互動 63

2) 金石互享 65

3) 心得互傳 69

2. 以《三公山碑》為中心的書學活動 71

1) 尋碑經過 71

2) 漸進交流 74

3) 三公影響 76

3. 以 《武梁祠》為中心的書學活動 78

1) 活動經過 78

2) 保護工作 79

3) 碑文考釋 80

Ⅳ. 翁方綱的碑帖鉴藏活動 85

1. 華山碑 85

1) 三本还是四本? 85

2) 乙未還是甲午? 88

3) 經歷過程 90

2. 化度寺碑 97

1) 唐楷第一 97

2) 鉴藏活動 100

3) 蔣愚亭本 107

3. 天際烏雲帖 112

1) 得 《天際烏雲帖》 113

2) 用 《天際烏雲帖》 114

3) 推 《天際烏雲帖》 116

Ⅴ. 翁方綱與朝鮮的書學活動 118

1. 朝鮮後期的學術環境 118

1) 朝鮮文化自主 118

2) 從程朱到漢學 118

2. 翁方綱與金正喜, 申緯的書學活動 120

1) 翁方綱與金正喜的書學活動 120

2) 翁方綱與申緯的書學活動 130

3. 翁方綱對金正喜的書學影響 138

1) 書跡 139

2) 書論 147

Ⅵ. 總結 158

1. 書學影響 158

2. 碑帖二分 158

3. 影響東國 159

ABSTRACT 161

參考文獻 164

표목차 9

〈表 1〉 先行論文 26

〈表 2〉 金正喜獲翁方綱相關物品表 128

〈表 3〉 翁方綱見米芾書法狀況 146

〈表 4〉 "拔燈法"與"拔鐙法"的區別 150

〈附表〉 171

그림목차 10

圖 1. 翁方綱像 浙江省圖書館 31

圖 2. 國朝漢學師承記 翁方綱條 44

圖 3. 翁方綱 《粵東金石略》 哈佛燕京圖書館藏本 46

圖 4. 翁方綱 《兩漢金石記》 卷十七 49

圖 5. 翁方綱 《蘇齋筆記三》 手稿 53

圖 6. 翁方綱與現代學科的書學分類對比 58

圖 7. 黃易像 浙江省圖書館 61

圖 8. 翁方綱 《復初齋詩集》 局部 63

圖 9. 宋槧 《蘇東坡詩施(元之)顧(禧)注》 64

圖 10. 《熹平石經殘石》 高 67cm, 寬 63cm 66

圖 11. 清拓翁方綱縮臨蘭亭 墨紙半開 高 7.3cm, 橫 4.8cm 68

圖 12. 清拓翁方綱縮臨蘭亭題跋 墨紙半開 高 7.3cm, 橫 4.8cm 68

圖 13. 左: 《祀三公山碑》顏光敏舊藏清初拓本 故宮博物院藏... 72

圖 14. 翁方綱題 《武梁祠重修記》... 84

圖 15. 長垣本選頁 86

圖 16. 華陰本選頁 86

圖 17. 四明本選頁 86

圖 18. 《華山碑》 順德本題簽 87

圖 19. 金農"金氏冬心齋印" 88

圖 20. 王蘭蔭 《朱笥河先生年譜》 局部 90

圖 21. 阮元 《漢延熹西嶽華山碑考》 92

圖 22. 長垣本 《華山碑》 陳崇本題跋 93

圖 23. 成親王題跋 《化度寺碑》 109

圖 24. 翁方綱 《天際烏雲帖考》... 113

圖 25. 金正喜題 《蘇齋筆記》 127

圖 26. 金正喜 《送紫霞入燕》 133

圖 27. 申緯題 《施顧註東坡先生詩》 137

圖 28. 金正喜 《溪堂書帖》 (局部) 139

圖 29. 金正喜 《永慕庵扁背題識跋》 (局部) 139

圖 30. 金正喜 《蘭盟帖》 局部 142

圖 31. 金正喜與米芾單字對比[그림없음] 144

圖 32. 葛嗣浵 《清翁方綱隸書屏》 155

초록보기

 본고는 비학의 부흥에 대한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연구가 시작됐다. 일반 학계의 주류 관점에서는 비학의 부흥은 건가(乾嘉)시기 금석학의 발달로 인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금석(金石)부터 서학(書學)에 이르기까지의 영향이 학제 간의 영향이라는 견해는 너무나 간략하고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러한 영향의 전후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옹방강(翁方綱)은 비학 전기에 금석을 몸소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 수많은 금석연구 자료들 남겼기 때문에 본 연구의 전형적인 사례로 삼았다. 본 연구의 주요 의의는 금석 실천이 비학의 초기단계에서 비학의 이론적 발전에 미치는 영향과 촉진 작용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하는 데 있다.

본문의 연구방법은 '작품'을 매개로, '인물'과의 연결고리로 서로 다른 장과 절에서 서로 다른 각도로 작품의 이면에 나타나있는 서학 활동의 세부사항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제2장에서는 옹방강의 학문적 위치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옹방강은 청대 이래로 한학(漢學), 고거(考據)에만 전념한 학자가 아니라 한학(漢學)과 송학(宋學)을 동시에 중시한 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옹방강은 금석 탁본(法帖)을 고증의 대상이자 경사(經史) 연구의 한 부분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법첩서화(法帖書畫)는 예술에 속하기 때문에 경사(經史)로 옮겨서는 안 된다. 경사 고증을 통해 법첩서화 연구의 명성을 높이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다. 금석과 경사를 예술 분야에서 배제한 것도 옹방강이 아직 비학 이론의 문을 열지 못한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옹방강과 황이(黃易)의 서예교류에 초점을 맞췄다. 두 사람 사이의 세부적인 교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봤을 뿐만 아니라 <삼공산비(三公山碑)>, <무량사(武梁祠)>를 사례로 들어 금석학과 서학에서 두 사람의 구체적 교류정황과 세부적인 연구 내용을 심도있게 발굴해 냈다.

제4장에서는 <화산비(華山碑)>, <화도사비(化度寺碑)>, <천제오운첩(天際烏雲帖)> 세 작품에 초점을 맞추어, 옹방강이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판본, 서로 다른 소장자 및 서로 다른 관점 간의 교류와 충돌을 깊이 탐구했다. 바로 이러한 소소하고 구체적인 서학 활동에서 금석학과 서학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옹방강은 이론적으로 금석을 예술로 보지 않았지만 3장과 4장에서 금석을 경사 고증과 결부시켜 서학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비학 이론의 출현에 훌륭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5장에서는 옹방강이 조선 서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 장은 옹방강과 김정희(金正喜), 신위(申緯)의 교유에 중점을 두고 옹방강이 조선의 예술 관념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했다. 서예의 이론과 실기에서 김정희의 서학에 중요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서단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옹방강의 서학 활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오늘날 금석학과 서학이 이미 서로 다른 학문으로 나눠졌기 때문에 옹방강도 마찬가지로 다른 유형으로 간주됐다. 그렇지만 옹방강은 금석학과 경사 고증의 실현에서 모두 금석을 본보기로 삼았기 때문에 금석학과 서법예술의 융합을 위한 토대를 마련함과 동시에 비학 이론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옹방강은 금석을 복원할 때 '형준(形準)'과 '묵색(墨色)'을 특히 중시하고 추구했다. 이러한 금석[拓片] 복원에 대한 조망태도, 나아가 판본의 우열 판단을 중시하는 것은 금석학이 서학 상에서의 구체화, 가시화, 도상화 된 표현이기도 하다. 셋째, 옹방강은 금석학 연구 과정에서 금석의 해석에 심혈을 기울이고 고대의 실제 상황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의고(疑古)'와 '존고(尊古)'의 '옛것을 의심해 진실을 구하다[疑古求眞]'라는 이념을 고수했다. 이것들은 모두 금석학 연구에 나타난 경학사상으로, 이후의 비학 이론 출현에 주요한 실천적 전제이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또한 그 여파는 동방의 조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