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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출산 조절의 문제는 국가ㆍ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민족적 존망의 위기 속에서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이 수용되었고, 민족개량의 수단으로 우생학적 산아제한을 통한 인구의 질적 개량이 중요시되었다. 중국의 경우 근대적 인구통제 및 민족개량의 방식으로써 출산에 대한 고려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산아제한론의 수용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즉 1920년대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출산율ㆍ수명ㆍ생식력ㆍ건강상태와 같은 변수를 내포한 인구에 대한 관심이 증대 되었고, 인구를 재생산하는 직접적 주체로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여성이 인구 재생산의 주체라는 점에서 모성 이데올로기는 현모양처의 양성을 통해 국가의 기본 단위인 가족의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결국 모성은 민족의 모성으로, 여성의 모성적 역할은 민족에 대한 사명이며 여성의 천직으로 간주되었고, 여성을 모성으로부터 이탈시키면 아무런 존귀함이 없게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선전되었다. 때문에 산아제한론도 ‘더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모체의 보호’를 위해서 등과 같은 모성보호라는 측면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었다. 즉 1920년대 산아제한론의 전파와 함께 ‘多産’이 인구의 질적 하락과 사회적 빈곤을 일으키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출산과 양육에 대한 모성적 책임은 더욱 가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거릿 생어의 산아제한론의 수용과 더불어 일부 여성들이 출산은 자연적ㆍ숙명적 인고의 대상이 아닌 인위적ㆍ과학적 개입을 통해 통제가능한 일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 여성의 신체를 단순히 ‘生育의 機器’로만 치부했던 가부장적 시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출산 통제에 대한 욕망도 모성보호ㆍ우생학ㆍ신맬서스주의와 같은 민족주의ㆍ부국강병의 담론에 함몰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여성들은 주로 경제적 여유ㆍ신체적 건강ㆍ자녀교육 등의 이유에서 피임을 실천하려 하였지만, 일부 여성들은 학업ㆍ직업ㆍ자아실현ㆍ모던적 문화의 향유라는 개인주의적 목적에서 피임을 실천하려고 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근대적 출산 통제에 대한 여성의 욕망은 전적으로 외생적인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생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여성의 출산 통제에 대한 자생적 욕망은 근대 산아제한 운동의 전개와 피임 의료의 보급에도 상당한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民國時期 행해진 일련의 사회조사를 통해 근대 중국 여성 지식인의 산아제한에 대한 태도와 피임의 경험 등을 살필 수 있다. 특히 北京과 上海 지역의 여학생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서 당시 여성 지식인의 75∼90%가 산아제한에 찬성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들의 근대적 피임법에 대한 앎의 욕구도 매우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전통적ㆍ근대적 피임법을 동원하여 출산 억제를 시도해본 경험이 있는 여성은 19%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들 가운데 근대적 피임법을 알고 있는 여성도 16% 미만이었다. 또한 이들이 산아제한을 실시하고자 했던 이유를 살펴보면, ‘우종의 건강한 국민을 미래에 전해야 한다’는 민족적 모성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내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출산에 대한 여성의 국가적ㆍ민족적 책임은 여성의 모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변함없이 강조하였고, 그 결과 여성 지식인의 산아제한에 대한 태도도 모성을 벗어나서 여성≠모성≠생육의 담론 질서를 형성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소수 여성들이 모성에 대한 본질적 회의를 던지기 시작하면서, 초보적인 형태지만 생육의 자주권과 신체의 자결권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도 하였다. 전통 중국 여성은 모녀ㆍ자매ㆍ친구ㆍ이웃 사람 및 ‘三姑六婆’로 조성된 여성 정보 전달 네트워크를 통해 출산ㆍ임신ㆍ피임ㆍ낙태와 관련된 생육 정보를 취득하였다. 이외에도 중의학 의서에 ‘不受胎(避孕)’ㆍ‘斷產(絕育)’ㆍ‘打胎(墮胎)’의 의약 처방과 침ㆍ안마 기술을 이용한 낙태 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를 이용한 생식 억제 행위가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三姑六婆 가운데 稳婆ㆍ醫婆ㆍ藥婆는 생육 및 성 지식의 전파에 중요한 작용을 하였으며, 여성들의 생육공간에서 일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1920∼30년대 까지도 ‘三姑六婆’로 조성된 여성 정보 소통망은 여전히 유용하게 작동되고 있었으며, 여성들은 이들 정보망을 통해 획득한 피임법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신뢰했다. 즉 서구 의약품과 의료 서비스의 보급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출산 및 성과 관련된 전통적 중의학 정보 및 민간 처방은 여전히 여성들의 생육공간에서 의료적ㆍ의식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1920년대 加布西(Carbozine Tablets)ㆍ史斑通(Septon)ㆍ制育良友ㆍ產兒限制萬應避孕球ㆍ她的友(lady's friend)ㆍ康妥約(Control) 등 서구 피임약이 대량으로 중국에 수입되었다. 또한 節育指導所와 같은 공공 의료 기관에서는 雞納彈劑(Quinine)ㆍ젖산용액과 스펀지ㆍ페서리ㆍ고무 콘돔 등을 이용한 피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외에도 민간 의료기관에서는 WF節育器ㆍBCR廠 節育環ㆍ피하주사를 이용한 피임 시술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民國時期 여성들은 서구 피임약과 의료 시술의 효과에 대해 맹목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탕약이나 丸 형식으로 먹는 중의학적 內服劑에 익숙해져 있던 여성들은, 질이나 음부에 삽입하는 外用劑 피임약품의 사용을 번거롭게 여겼다. 여성들은 피임약과 피임 시술의 비싼 가격에 대해서도 경제적 부담을 느꼈으며, 서구적 피임법의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와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한 근대적 의료 공간에서 여성들은 의사들의 권위적인 시선과 새로운 의료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종종 무력감과 인격적 모멸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때문에 이들은 ‘병원 가지 않기’, ‘피임약 처방을 따르지 않기’, ‘전통적 방식으로 피임하기’, ‘낙태하기’ 등 일련의 행동 방식으로 근대적 의료 규율과 권력에 대해 일정한 균열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北京과 上海의 節育指導所에서 오랫동안 피임 진료를 담당했던 沈驥英은 근대적 피임법에 대한 여성의 정서적 거부감을 완화시키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沈驥英은 ① 일반 민중의 기대와 생활방식에 맞는 피임법의 개발, ② 공공위생 교육의 실시, ③ 어떤 시간ㆍ거리ㆍ습관ㆍ풍속ㆍ사회경제적 상황을 막론하고 여성이 쉽게 접근 가능한 節育指導所의 증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는 여성의 주체성이 근대적 피임 의료 체계의 개선을 촉진시킨 결과이기도 하며, 근대적 의료 권력의 여성의 요구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근대적 피임 의료의 수용과 거부라는 측면에서 여성들의 생육공간은 新ㆍ舊 혹은 中ㆍ西 의료 권력의 대립과 갈등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三姑六婆로 대표되는 전통적 의료 권력과 중의학 업자들은 산아제한이라는 서구적 생육 관념의 전파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반면 근대적 의료 권력은 출산의 의료화를 통해 여성의 생육공간에 대한 규율을 확립하고,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고 감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통적 의료 권력과 중의학적 의학 질서에 대한 여성들의 관성적 습관과 믿음은 오랫동안 성과 생육에 관한 여성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였다. 사적인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던 출산 통제의 행위를 ‘의료화’라는 공적 영역으로 불러내는 것은 지난한 세월을 거쳐야 했다. 국가는 근대적 위생 의료 시스템을 정비하여 서구적 산부인과 의료 기술을 습득한 의사나 조산사에게 신체 통제의 권력을 부여하였지만, 감정 중립(affection- neutrality)의 직업 특징을 가진 이들은 人情을 중시하는 지역사회의 관계망과 종종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때문에 근대적 의료 권력은 새로운 의료 환경에 대한 생소함과 부적응이라는 여성의 두려움과 거부 반응을 “친근감이라는 정서적 유대관계의 형성”을 통해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이는 한편으로 감정중립의 출산 기술자로서의 근대 의료 권력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기도 하였으며, 여성의 생육공간에서 전통 의료 권력이 담당했던 사회관계의 조절 기능을 대신하기는 것이기도 하였다. 즉 근대 의료 권력이 전통적 의료 권력이 담당한 일부 사회적 기능을 수용함으로써 보다 자연스럽게 여성의 생육공간에 대한 정서적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22年4月桑格夫人访华之后在“生育节制”和“母性自决”的呼声中, 知识女性逐渐形成“生育自主”观念, 对传统妇女的社会性别角色直接提出了挑战. 桑格夫人所主张的“母性自决”意味着妇女依靠自己的愿望, 选择自己的配偶, 计划要生孩子的时期, 严格地规定产儿数, 而使得妇女享有“自由的母性”. 值得一提的是, 提倡生育节制的知识分子将生育节制与妇女解放联系在一起, 挑战传统妇女的“生育机器”的命运, 呼吁妇女争取生理上的解放而得到真正的妇女解放. 大部分妇女以经济困难、母体健康为由提出生育节制, 但是有些妇女为了自己的理想和事业, 甚至为了满足自己的摩登欲望选择生育节制. 不过民国时期虽然许多知识妇女已认识到节育的必要, 并且希望了解科学避孕方法, 但实际运用科学避孕方法施行生育节制的妇女并不占多数. 据Lamson教授的“中国已婚知识妇女对于生育节制的经验和态度的调查”, 城市知识妇女中运用传统或近代避孕法实行节育者不超过19%, 其中了解近代西方避孕方法的不过16%. 另外, 不少女性仍然沿用分床、停止房事、禁欲、服中药的传统避孕法, 有的还是通过传统中医的打胎法施行堕胎. 随着西方避孕药品的传播, 中医的避孕方药受到了强烈的冲击, 到了3、40年代中医避孕方药的广告逐渐减少, 而西方避孕药物和节育医疗服务广告不断增加. 不过, 中医的传统甚悠久, 市场上仍具有一定的消费层. 尤其民间的各种避孕偏方, 长期通过民间俗文化的传播网络渗透到人们的日常生活當中, 人们对传统避孕偏方的信任是出乎我们的意料. 许多妇女希望使用简便而效果好的避孕药物. 中医的避孕方药大半是内服剂, 虽然其功效不如西方避孕栓剂, 但由于求易的心理和习惯, 一般妇女更喜欢用口服的中医避孕药物. 相反, 西方避孕药物的效果比中药好一点, 但大多是外用栓剂, 其手续麻烦而中途废弃者比较多. 另外, 价格方面中医的避孕方药稍微便宜, 因此经济条件相对落后的城市妇女多用中医的避孕方药. 民国时期市场上所售的避孕药品的种类甚多, 如有“史斑通(SPETON)”、“制育良友”、“她的友(LADY´S FRIEND)”、“金鸡纳霜”等片状阴道栓剂, 还有牙膏状的“节育避孕香膏”以及“泡沫粉”、“起泡药粉”等粉剂避孕药. 并且医生通过“节育的医疗化” 建设其专业权威, 并取得控制或规划妇女身体的权利. 在“节育的医疗化”的影响下, 妇女的生育主体性没有被尊重, 她们为了节育所付出的努力和痛苦也被边缘化, 而只是言听计从地接受医生的各种治疗和建议, 妇女的身体却成为医学试验的施展对象. 不过, 围绕生育空间的医疗支配与权威的建立, 中西、新旧势力之间展开一场权力较量和争夺. 虽然随着近代医疗体系的建立和卫生观念的传播, 西医和卫生专家逐渐开始控制妇女的生育空间和身体, 而“三姑六婆”和“中医”的权威以及他们所传播的传统避孕和堕胎方法, 在意识形态和生育行为规范上给妇女带来根深蒂固的影响. 妇女对“三姑六婆”和传统“中医”所掌握的信息网络的自觉认同和信任, 致以依赖避孕偏方或迷信之术的特异效果. 新生育观念和医疗技术并没有立刻改变她们的行为习惯, 三姑六婆和中医的权威仍受到传统医疗文化和意识形态的支持和呵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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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목차
播種期 農作物에 대한 農民의 生態 認識 : 『齊民要術』과 『農桑輯要』를 中心으로 崔德卿 pp.1-44

北朝期 交通路를 통한 河北地方 白玉像의 地域性 考察 徐男英 pp.45-79

唐代球類運動探析 范永聰 pp.81-116

弘治年間(1488-1505)의 經筵과 政局運營 : 내각제 복원과 공론정치와 관련하여 尹貞粉 pp.117-148

角色扮演與榜樣塑造 : 從地方志看淸代臺灣封旌女性現象的時代差異 劉佳 pp.149-177

民國時期 여성 지식인의 산아제한 인식과 피임의 실천 兪蓮實 pp.179-225

上海市通志館(1932.7~37.11, 1945.11~46.12)과 上海史 연구 金承郁 pp.227-259

與"靡靡之音"開戰 : 簡析抗戰後國民政府對上海唱片業的管制 葛濤 pp.261-282

二十世紀八十年代以來大陸學界 : 先秦社會性質問題硏究述評 郭善兵 pp.283-302

北宋寺觀管理政策初探 : 兼論『談苑』"今三萬九千寺"的"今"字指代 孫旭 pp.303-318

한중간 역사문제의 현황과 대응방안 하도겸 pp.319-343

『청명집』「호혼문」卷九. 上 朴玖澈, 任大熙 pp.345-378

再現中華飮食文化的傳承與衍變 : 「中國飮食文化史」, 王學泰 評 <서평> 李净昉 [평] pp.379-383

참고문헌 (120건) :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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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1 “男女節育器”廣告 ( 申報 1925.6.8.), 10면. 미소장
2 “萬應通經丸”廣告 ( 申報 1928.8.1), 11면; 미소장
3 “免育仙丹”廣告 ( 申報 1928.8.8), 19면. 미소장
4 “她的友”廣告 ( 女青年 第10卷 第2期, 1931.2), p.14. 미소장
5 “節育保健所”廣告 ( 申報 1942.6.10), 5면. 미소장
6 “節育福音”廣告 ( 申報 1942.1.19), 3면. 미소장
7 “節育停孕丹”廣告 ( 申報 1928.3.26), 9면. 미소장
8 “節育避毒器”廣告 ( 申報 1928.3.4), 18면. 미소장
9 “停經敵”廣告 ( 申報 1928.8.8), 15면. 미소장
10 “千金通經丸”廣告 ( 申報 1928. 8.11), 14면; 미소장
11 “馮俊英婦產科”廣告 ( 申報 1942.1.13), 3면. 미소장
12 “避娠丸”廣告 ( 申報 1928.8.31), 14면. 미소장
13 「發刊詞」 ( 時事新報ㆍ現代婦女 第1期, 1922.6.9), 1면]. 미소장
14 「防妊新法」 ( 申报 1925.11. 9), 6면]. 미소장
15 「婦人墮胎被控」 ( 申報 1935.7.26), 11면. 미소장
16 「三位母親的通信」 ( 北平晨報·人口副刊 第6期, 1932.9.4), 8면. 미소장
17 「修正刑法中之墮胎罪」 ( 長壽 第127期, 1934.11.9), p.213. 미소장
18 「與人通奸懷孕打胎送命」 ( 晨報 1934.1.21), 6면. 미소장
19 「已嫁婦的呼吁」 ( 北平晨報ㆍ人口副刊 第10期, 1933.1.1), 8면. 미소장
20 「節育運動」 ( 醫學衛生旬刊 第55期, 1936.8.28), 3면. 미소장
21 「節育者注意」 ( 北平晨報ㆍ人口副刊 第6期, 1932.9.4), 8면]. 미소장
22 「節育者通信」 ( 北平晨報ㆍ人口副刊 第13期, 1933.4.2), 8면. 미소장
23 「節育者通信」 ( 北平晨報ㆍ人口副刊 第16期, 1933.7.2), 8면. 미소장
24 「節育者通信」 ( 北平晨報ㆍ人口副刊 第19期, 1933.10.8), 8면. 미소장
25 「节育者通信」 ( 北平晨报ㆍ人口副刊 第26期, 1934.5.6), 5면. 미소장
26 「节育者通信」 ( 北平晨报ㆍ人口副刊 第27期, 1934.6.3), 5면. 미소장
27 「征文當選: 假使我有了兒子」 ( 女子月刊 第1卷 第10期, 1933.12.15), pp.137—146. 미소장
28 Frank Dikötter, Imperfect Conceptions; Medical Knowledge, Birth Defects, and Eugenics in China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미소장
29 Frank Dikötter, Sex, Culture and Modernity in China: Medical Science and the Construction of Sexual Identities in the Early Republican Period (London: Hurst & Company, 1995 미소장
30 Lamson, Herbert Day, “Educated Women and Birth Control in China” (Chinese Medical Journal, Nov.44, 1930.11), pp.1100-1109. 미소장
31 Lamson, Herbert Day, “Family Limitation among Educated Chinese Married Women: A Study of the Practice and Attitudes of 120 Women”(Chinese Medical Journal, Nov.47, 1933.5), pp.493-508. 미소장
32 Marie Stopes, 夫婦良箴 (上海: 英商別發有限公司, 1926); 미소장
33 Mrs. Margaret H. Sanger, 中華節育硏究社, 生育節制法 (蘇州: 中華節育硏究社, 1922); 미소장
34 江中孝, 張競生文集 上卷 (廣州出版社, 1998), p.188. 미소장
35 高希聖, 產兒制限ABC (上海世界書局, 1929); 미소장
36 郭松義, 「清代男女生育行爲的考察」 ( 中國史研究 , 2006年 第2期) 참고. 미소장
37 歸有光, 「先妣事略」 ( 震川先生集 권25,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81), pp.593-594. 미소장
38 金仲華, 「目前中國之婦女兒童保護問題」 ( 東方雜誌 第30卷 第9號, 1933.5.1), p.3]. 미소장
39 金仲華, 「節制生育與婦人生理的解放」 ( 婦女雜志 第17卷 第9號, 1931.9.1), pp.2-10. 미소장
40 梁議生, 「燕京大學60女生之婚姻調查」 ( 民國時期社會調查叢編: 婚姻家庭卷 , 福州: 福建教育出版社, 2005), pp.57-68. 미소장
41 雷祥麟, 「負責任的醫生與有信仰的病人: 中西醫論爭與醫病關系在民國時期的轉變」 ( 新史學 14卷 l期, 2003.3), pp.45-96; 미소장
42 廖國芳, 「打倒山額夫人」 ( 紅玫瑰 第3卷 第20期, 1927.6.18), p.3. 미소장
43 劉王立明, 「母性應擺脫嗎?」 ( 女聲 第1卷 第19期, 1933.7.1), p.6. 미소장
44 劉靜貞, 不舉子: 宋人的生育問題 (台北: 稻鄉出版社, 1998); 미소장
45 劉天路 編, 身體ㆍ靈魂ㆍ自然: 中國基督教與醫療、社會事業研究 (上海人民出版社, 2010) 미소장
46 李伯重, 「墮胎ㆍ避孕與絕育: 宋元明清時期江浙地區的節育方法及其運用與傳播」 ( 多視角看江南經濟史(1250-1850) , 北京: 三聯書店, 2003), pp.177-212 참고. 미소장
47 李傳斌, 基督教在華醫療事業與近代中國社會(1835—1937) (蘇州大學歷史系博士學位論文, 2001); 미소장
48 李中清, 王豐, 陳衛, 姚遠, 人類的四分之一: 馬爾薩斯的神話與中國的現實(1700-2000) (北京: 三聯書店, 2000); 미소장
49 瑪格麗特, 桑格, 封熙卿, 家庭性教育實施法 (上海: 商務印書館, 1923); 미소장
50 瑪格麗特, 桑格, 楊步偉, 女子應有的知識 (上海: 商務印書館, 1926); 미소장
51 瑪格麗特, 桑格, 陳海澄, 節育主義 (上海: 商務印書館, 1925); 미소장
52 瑪麗, 司拖波, 現代節育法 (上海: 健康生活社, 1937). 미소장
53 蠻石著, 節育的實施 (上海: 新文化編譯社, 1933). 미소장
54 毛履亨, 宋鑽友, 「一個洋行職員的經歷」 ( 史林 2000年 第3期), p.18]. 미소장
55 木也, 「關於節育的故事」 ( (上海)晨報ㆍ婦女與家庭 1933.6.4), 9면. 미소장
56 繆端生, 產兒調節之理論與實際 (上海新亞書店, 1933); 미소장
57 潘光旦, 「中國之家庭問題」, 民國時期社會調查叢編: 婚姻家庭卷 (福州: 福建教育出版社, 2005), p.307. 미소장
58 不問, 「談談墮胎」 ( 時事新報ㆍ新醫與社會 1933.3.17), 3장 3면. 미소장
59 山額爾夫人, 陳海澄, 節育主義 (上海: 商務印書館, 1925), p.151. 미소장
60 上海市檔案館館藏號 B3-2-75-27, 上海市民主婦女聯合會福利部關於避孕宣傳的工作報告(1956年). 미소장
61 徐傅林, 生育節制論 (上海: 中華書局, 1922); 미소장
62 셔어리 그린 저, 이덕주 역, 피임의 풍속사 (내일을 여는 책, 1993); 미소장
63 瑟廬, 「愛倫凱女士與其思想」 ( 婦女雜志 第7卷 第2號, 1921.2.5), p.27. 미소장
64 신규환 지음, 국가, 도시, 위생: 1930년대 베이핑시정부의 위생행정과 국가의료 (아카넷, 2008); 미소장
65 辛圭煥, 「助產士의 制度化와 近代的 生育管理: 1930年代 北平市政府의 衛生行政과 出生統制」 ( 中國史研究 42, 2006.6), pp.199-232; 미소장
66 沈驥英, 「節育: 一個丈夫的懺悔」 ( 中華健康雜誌 第4卷 第6期, 1942年 11-12月), p.21. 미소장
67 심영희, 정진성, 윤정로 공편, 모성의 담론과 현실: 어머니 성ㆍ삶ㆍ정체성 (나남출판, 1999). 미소장
68 아드리엔느 리치 저, 김인성 역,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평민사, 2002); 미소장
69 앵거스 맥라렌, 「‘낯선 사람이 아니라 의사였어요’: 19세기 후반 의사와 성문제」 (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 , 한울, 2001), 미소장
70 앵거스 맥러랜 지음, 정기도 옮김, 피임의 역사 (책세상, 1998) 참조. 미소장
71 楊念群 編, 空間ㆍ記憶ㆍ社會轉型-“新社會史”研究論文精選集 (上海: 人民出版社, 2001), pp.177-188]. 미소장
72 楊念群, 再造“病人”: 中西醫沖突下的空間政治(1832-1985) (北京: 中國人民大學出版社, 2006); 미소장
73 於文, 生育與國家: 1950年代中國婦嬰衛生運動中的政治、科學與性別 (復旦大學歷史系碩士學位論文, 2008.6); 미소장
74 嚴與寬, 節育的理論與方法 (上海大東書局, 1933); 미소장
75 王曉翠, 民國時期中西醫論戰研究 (曲阜師範大學歷史系碩士學位論文, 2010); 미소장
76 姚毅, 「近代中國における新式出產運動に對する女性たちの對應」 ( 中國女性史研究 15, 2006.1), pp.1-21; 미소장
77 産婆的?制度化?與近代中國的生育管理-以南京國民政府爲中心- 소장
78 姚毅, 產科醫ㆍ助產士ㆍ接生婆: 近代中國生育的近代化與國家化 (東京大學綜合文化研究科相關社會科學博士請求論文, 2008.3); 미소장
79 惲怡, 「隨筆: 作了母親(一)」 ( 婦女雜志 第17卷 第1號, 1931.1.1), p.34. 미소장
80 魏文英, 「社評: 生育是女子的職業麼」 ( 婦女月報 第2卷 第9期, 1936.10.10), p.4. 미소장
81 俞蓮實, 民國時期城市生育節制運動的研究: 以北京ㆍ上海ㆍ南京爲重點 (復旦大學歷史系博士學位論文, 2008.6), pp.406-466 참고. 미소장
82 유연실, 「1920년대 마거릿 생어의 중국 방문과 산아제한에 대한 사회적 반응」 ( 중국사연구 67, 2010.8), pp.123-166. 미소장
83 民国时期生育节制团体的设立和避孕的医疗化 소장
84 兪蓮實, 「民國時期關于“生育節制”的四大論戰」 ( 史林 總第108期, 2008年 第5期), pp.128-146; 미소장
85 俞洽成, 「家庭訪問記: 劉王立明女士」 ( 申報 1934.6.21), 18면. 미소장
86 意紅, 「隨筆: 作了母親(三): 連帶想到做了妻子」 ( 婦女雜志 第17卷 第1號, 1931.1.1), p.37. 미소장
87 伊懋可, 邁克爾ㆍ詹姆斯, 約瑟芬ㆍ福克斯, 「18世紀末至19世紀初婺源縣的婚內節育」, 家庭史研究的新視野 (北京: 三聯書店, 2004), pp.299-346; 미소장
88 李文海, 民國時期社會調查叢編: 婚姻家庭卷 (福州: 福建教育出版社, 2005). 미소장
89 이연정, 「여성의 시각에서 본 ‘모성론’」 ( 모성의 담론과 현실: 어머니 성ㆍ삶ㆍ정체성 , 나남출판, 1999), pp.34-37]. 미소장
90 一個讀者, 「高等婦女逃避受孕的情形」 ( 中央日報․婦女周刊 第49期, 1936.3. 18), 3장 2면. 미소장
91 張溪愚, 「知識婦女與優生問題」 ( 華年周刊 第4卷 第18期, 1935.5.11), p.348. 미소장
92 前山加奈子, 「母性は劣位か?-1930ㆍ40年代におけゐ潘光旦の女性論」 ( 論集中國女性史 , 吉川弘文館, 1999), pp.150-167. 미소장
93 丁芝, 「城市鱗爪: 節育醫院訪問記」 ( 市政建設 第1卷 第4期, 1950.1), p.32. 미소장
94 程浩, 節制生育問題 (上海: 東亞圖書館, 1925); 미소장
95 Women's Reproductive Rights in the Medicalized Childbirth Practice 소장
96 趙婧, 「1927-1936年上海的婦幼衛生事業: 以衛生行政爲中心的討論」 ( 史林 2008年 第2期), pp.128-130]. 미소장
97 趙婧, 近代上海的分娩衛生硏究(1927-1949) (復旦大學歷史系博士學位論文, 2009.12); 미소장
98 周建人, 「現代女子的苦悶問題」 ( 新女性 第2卷 第1期, 1927.1), p.32. 미소장
99 朱振聲, 求孕與避孕(初集) (上海: 幸福書局, 1933), pp.99-100. 미소장
100 周春燕, 女體與國族: 強國強種與近代中國的婦女衛生(1895-1949) (高雄: 麗文文化事業, 2010) 미소장
101 仲華, 「女性與生育的藝術: 女性之話一」 ( 東方雜志 第29卷 第4號, 1932.10. 16), p.12. 미소장
102 지현숙, 「1930년대 中國의 ‘婦女回家’論爭과 南京政府」 ( 歷史敎育 88, 2003.12) pp.221-247 참조. 미소장
103 지현숙, 「北平市의 中學男女分校令(1935年) 실시를 통해 본 賢母良妻敎育」 ( 東洋史學硏究 72, 2000.10), pp.205-235; 미소장
104 지현숙, 南京國民政府(1928-1937)의 國民統合과 女性: 新賢母良妻敎育을 中心으로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2); 미소장
105 陳利蘭, 「中國女子對於婚姻的態度之研究」 ( 民國時期社會調查叢編: 婚姻家庭卷 , 福州: 福建教育出版社, 2005), pp.250-251. 미소장
106 陳明光, 中國衛生法規史料選編(1912—1949.9) (上海: 上海醫科大學出版社, 1996), pp.635-636]. 미소장
107 澄子, 「請求指導節育經過」 ( 申報ㆍ婦女專刊 第34期, 1936.9.12), 17면. 미소장
108 천성림, 「1920·30年代 中國知識人의 ‘母性’ 談論과 ‘母性保護’ 認識」 ( 中國史硏究 24, 2003.6), pp.207-245; 미소장
109 천성림, 「모성의 ‘발견’: 엘렌 케이(Ellen Key, 1849∼1926)와 1920년대의 중국」 ( 동양사학연구 87, 2004.6), pp.187-220; 미소장
110 모성의 거부―20세기 초 중국의 ‘獨身女性’ 문제― 소장
111 天矞, 「婦女與家事」 ( 新女性 第3卷 第2期, 1928.2), p.126. 미소장
112 沈驥英, 「北平節育診所八百五十二例案之研究」 ( 中華醫學雜志 第22卷 第5期, 1936.5) 미소장
113 沈驥英, 「節育事工之檢討」 ( 中華醫學雜志 第28卷 第5期, 1942.5) 미소장
114 何某某, 「通訊欄」 ( 時事新報ㆍ現代婦女 第20期, 1923.3.26), 4면. 미소장
115 賀蕭(Gail Hershatter), 「生育的故事: 1950年代中國農村接生員」 ( 百年中國女權思潮研究 , 復旦大學出版社, 2005), pp.301-327; 미소장
116 胡桂芬, 「永不會再添孩子了」 ( 婦女 第3卷 第9號, 1948.12), p.7. 미소장
117 黃寄萍, 「劉王立明訪問記」 ( 新女性講話 , 上海: 聯華出版社, 1937), p.27. 미소장
118 黃石, 「婦女果不適於職業麼」 ( 婦女雜志 第10卷 第6號, 1924.6.1), p.875. 미소장
119 黃秀芬, 「通信: 一. 生育的機器要做到幾時爲止呢」 ( 婦女雜志 第17卷 第1號, 1931.1.1), pp.221-223. 미소장
120 侯楊方, 「明清江南地區兩個家族人口的生育控制」 ( 中國人口科學 , 1998年 第4期); 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