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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제11차 癸未使行(1763~1764) 조선 문사의 江戶 체험과 그 의미를 살펴봄을 목적으로 한다. 강호는 일본 幕府의 소재지로서 정치·문화의 중심지이며, 통신사가 국서를 전달하고 회답서를 받아오는 공적 임무를 일단락하는 곳이다. 특히 계미사행이 강호까지 간 마지막 사행이라는 점에서 그 체험을 살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첫째, 국서 전달을 둘러싼 갈등이다. 영조로부터 ‘二陵松柏’의 감개를 전해 받고 출발한 조선 문사에게 강호는 처음부터 충돌을 내포하는 공간이었다. 조선 문사들은 關白과 抗禮하는 데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고 있었거니와, 전에 없이 지체된 일정 속에서 四拜禮, 회답서의 문자 등으로 갈등을 겪으면서 ‘이릉송백’의 치욕과 울분을 강력히 재소환했다.

둘째, 정제된 교류 상황과 그 내면의 긴장이다. 강호에서는 비교적 정제된 상황에 교류가 진행되었다. 인간적으로 소통하고 문화적으로도 의미 있는 교유도 있었으나, 공식 행사 참석, 江戶官學 林家 문인들과의 수창, 各蕃 소속 태수나 유신들과의 교류 등 관례에 따른 교류가 많았다. 대체로 우호적이고 유대를 확인하는 형식이었으나, 이면에는 상호 경쟁과 경계의 긴장 관계를 갖고 있었다.

셋째, 불경한 질문들과 위기의식의 고조이다. 연로에서 이미 徂徠學派 문사들을 만나 위기의식을 가졌던 조선 문사들은 강호에서도 劉維翰 등 조래학자로부터 사상적 도전을 받았다. 그런데 柴邦彦은 철저한 주자학자이면서도 한일 역사에 대한 왜곡과 華夷에 대한 전복적 사고를 노골화함으로써 사상 논쟁을 넘어 문명사적 물음을 제기했다.

조선 문사들은 한일 관계와 문화, 사상, 세계관 등에서 이전과 지속되는 측면 한편으로 상당한 변질과 균열을 체험. 이것은 연로에서 이미 노정되었으나, 관백의 도읍이자 관학의 본거지인 강호에서의 체험은 상당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돌아오는 길에는 崔天宗 피살 사건과 瀧鶴臺와의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이것은 한일 관계, 나아가 세계관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가장 풍성한 문화교류를 기록한 계미사행이 이후 긍정적으로 지속되지 못한 이유의 발단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This paper focuses on the to official trips to Edo(江戶) of Chosun's Literary men at the 11th Kyemisahaeng(癸未使行). Edo(江戶) was the seat of Bakufu(幕府) and the political-cultural center, in which Tongsinsa(通信使) would carry out the duty of presenting their credentials. The experience of Chosun's literary men in 11th Kyemisahaeng has the special significances because it was the last official trips to Edo.

First, there was a trouble on presenting credentials. For Chosun's literary men was skeptical about their equal position with Kanbaku(關白), Edo was the place which could cause a discord. Delayed schedule, some phrases in the document for reply and suchlike gave rise to a storm of literary men's indignation.

Second, there were arranged associations in regular order and a strained relation in actual fact. In spite of some meaningful cultural associations, most were formal associations by official conventions. Those had the form of identifying a friendly relationship but as it is there was a strained relation between the two.

And third, Chosun's literary men had to meet with some uncomfortable and disrespectful questions. They experienced the theoletical challenges by scholars of a Jorae school(徂徠學派) in Edo. By the distorted history of Korea and Japan, and the thought against Sinocentrism, a scholar of a Jorae school brought up questions in the history of East-Asian civilization as well as in theoretical issues.

Chosun's literary men experienced a considerable change and break in the culture, the thought, the world view and the Korea-Japan relationship. The official trips to Edo caused the feel of a crisis to Chosun's Literary men. On their way to home country, there were Choi Jong-Cheon's assassination and the argument with Nong Hak Dae(瀧鶴臺). It was required to reexamine the rel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and the world view of the day. Although Kyemisahaeng was recorded as the most fruitful cultural exchange, it could not be continued for those rea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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