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기사보기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결과 내 검색
동의어 포함
이 글에서는 5세기 백제 및 남조 주변제국의 군주 및 신하가 책봉된 장군호를 비교·분석하여,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질서 속에서 백제의 위상을 검토하고, 남조의 입장에서 파악되는 백제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왕조 주변 각 정치제의 군주가 책봉받은 장군호의 품계를 기준으로 각 정치체의 국제적 위상을 판단해 보면, 동방은 고구려, 백제, 왜의 순서로 높다고 할 수 있었고, 서방은 토욕혼과 구지가 비슷하거나 토욕혼이 좀더 높다고 할 수 있는 반면 탕창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백제가 시종일관 고구려보다 장군호가 낮았다는 점이었는데, 토욕혼·구지 등에서 장군호가 자주 변화되었던 원인을 고려하면 북위를 상대하는 데에 고구려의 전략적 가치가 백제보다 컸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책봉호는 국제질서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수여 주체의 인식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였다.
백제에서 신하로서 장군호를 수여받은 자들은 왕족, 귀족, 漢人系 정도로 출신을 구분할 수 있는데, 비교적 고르게 분포하고 있었다. 장군호의 품계는 백제가 다른 정치체들보다 폭이 넓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신하들 간의 서열화가 잘 이루어졌음을 보여주었다. 다른 정치체들의 경우 임읍을 제외한 정치체들의 신하가 대체로 백제보다 상위의 장군호에 책봉되었고, 임명대상자가 군주의 혈연적 근친이나 차기 계승권자 등 왕족의 핵심부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하의 장군호는 임명대상자가 국내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백제 신하들의 장군호가 다소 낮은 것은 그만큼 다른 정치체들보다 군주와의 권력 격차가 컸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
| 1 | 金鍾完, 『中國南北朝史硏究-朝貢・交聘關係를 중심으로-』(一潮閣, 1995). | 미소장 |
| 2 | 金翰奎, 『古代東亞細亞幕府體制硏究』(一潮閣, 1997). | 미소장 |
| 3 | 정동준, 『동아시아 속의 백제 정치제도』(일지사, 2013). | 미소장 |
| 4 | 坂元義種, 『古代東アジアの日本と朝鮮』(東京: 吉川弘文館, 1978). | 미소장 |
| 5 | 五世紀 百濟의 「王」·「侯」·「太守」制에 對하여 | 소장 |
| 6 | 金英心, 「5∼6세기 百濟의 地方統治體制」 『韓國史論』 22(서울대, 1990). | 미소장 |
| 7 | 魏虜의 百濟侵入 記事 | 소장 |
| 8 | 南亨宗, 「東城王代 支配勢力의 動向과 王權의 安定」 『北岳史論』 3(1993). | 미소장 |
| 9 | 김종복, 「남북국(南北國)의 책봉호(冊封號)에 대한 기초적 검토」 『역사와 현실』 61(2006). | 미소장 |
| 10 | 漢城期 백제의 將軍號 활용 배경과 정치적 의미 | 소장 |
| 11 | 백제에서의 장군호 수용과 막부제 | 소장 |
| 12 | Tsu Yokugon to Nanboku ryocho tono kankei ni tsuite ![]() |
미소장 |
| 13 | 坂元義種, 「五世紀の日本と朝鮮の国際的環境」 『京都府立大學學術報告』 21(1969). | 미소장 |
| 14 | 北村一仁, 「南北朝政権の辺境統治に関する一考察」 『河合文化教育研究所研究論集』 7(2009). | 미소장 |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 전화번호 |
|---|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 번호 | 발행일자 | 권호명 | 제본정보 | 자료실 | 원문 | 신청 페이지 |
|---|
도서위치안내: 정기간행물실(524호) / 서가번호: 국내08
2021년 이전 정기간행물은 온라인 신청(원문 구축 자료는 원문 이용)
우편복사 목록담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저장 되었습니다.